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재시작 (2)
“왕이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고양이를 보던, 전쟁의 신이 중얼거렸다.
주변이 어둑해졌다. 공기는 무거워졌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눈앞의 인간이 갖춘 ‘격’이 달라진 것이다.
신은 아니지만, 신에 버금간다. 언젠가 이런 격을 갖춘 인간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쟁의 신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꼈다. 자신감에 차 있으나, 방심은 하지 않고 있다.
그 사실에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좋은 방법이군. 카를로스 크로우. 하지만, 나는 얼마전에도 왕을 죽였다.”
“알아.”
“그 덩치 큰 불나방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대도 나를 실망시키지 말도록.”
왜냐하면, 이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태고부터 존재해왔던 용이 목숨을 불살랐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이것을 보았겠지.
성배라는 힘을 가졌음에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인간을 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하마, 인간들의 왕 카를로스 크로우.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다해 너를 상대할 것이다.”
말은 거기까지, 전쟁의 신은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고 자세를 고치는 것으로 자신의 전의를 드러내었다.
살짝 주먹을 쥔 카를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까마귀 공작…아니, 아니지.”
“…….”
“까마귀 군주. 카를로스 크로우.”
“전쟁의 신.”
카를의 선언에 전쟁의 신이 답했다. 대답은 오직 그것뿐. 영원의 기사라는 진명을 그는 밝히지 않았다.
단지 더 강해진 투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그것만으로도 모자람은 없었다.
“크으….”
땅을 차고, 바닥이 폭발했다. 신이 무기를 들고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굉음을 뒤덮는 포효 소리가 그 움직임을 뒤따랐다.
“크아아아아!”
검을 쳐들고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과 함께 파괴를 휘둘렀다.
적이 가진 투지는, 그리고 싸움에 대한 경험은 카를보다 훨씬 깊었다.
정직하게 싸울 필요 없다. 적이 자신의 장기를 내세우는 것처럼, 카를도 자신의 장기를 내세우면 그만이다.
힘은, 밀린다. 기세 역시, 밀린다. 아직도 전력의 차이가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그래.”
머릿속 생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에멘탈. 그 목소리에 카를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할 수 있다.”
적이 다가온다. 발을 내딛어 거리를 벌린다. 그것을 또 다가오고, 칼날 역시 다가온다. 생각. 생각해라. 사고의 틈을 주지 않으려는 상대에 맞춰, 더 빨리 사고했다.
다가오는 것을, 다가오는 것을, 다가오는 것을 막고, 걷어내고, 피하고, 부딪쳤다.
신격과 마력이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파에 대지가 가뭄이 든 것처럼 쩍 갈라졌다.
좋다. 이런 것도 응용한다.
생각과 동시에 심상이 현실에 구현되었다. 대지의 조각들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
“…오오.”
바위와 돌덩어리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대로 날려 보낸다. 칼날이 그것들을 모조리 양단했다. 어차피 맞출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했다.
목표는 애초에 흙먼지를 흩날리는 것.
공중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흙먼지가 빽빽하게 모여 황사를 이루었다. 일시적인 시야의 차단.
대응하기 전에 손바닥에 힘을 모았다. 성배의 힘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팔을 뻗었다.
“오, 오오오!”
적중했다. 다가오는 움직임을 살짝 저지했다. 반대로 말하면, 살짝 저지한 게 전부라는 것이다.
“오오오오!”
투신은 고함을 내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검. 육감에 의한 회피. 뒤늦게 보이는 검의 잔상.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멘탈, 불, 무서워하니?”
“무섭지 않다! 물이 더 무섭다!”
“하긴 넌 고양이니까….”
스쳐 지나간 죽음에 자기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런 싸움에선 어마어마한 틈이다. 그런 틈을 보이며 카를은 긴장을 풀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그래. 에멘탈. 우리, 제대로 태워볼까?”
“좋다!”
“자아, 에멘탈.”
심상을 떠올리면.
그것이 현실에 구현된다.
“네가 빛날 차례야.”
어깨에서 톡 튀어 오른 에멘탈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와중에 에멘탈의 덩치가 점차 거대해졌다.
카를의 머리 위에선 대형견에 가까운 크기, 눈까지 떨어졌을 땐 늑대가, 허리까지 왔을 땐 호랑이가, 그리고 바닥에 착지했을 땐 호랑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작은 언덕이 불타고 있는 듯 한 모습.
뜨거운 화염을 두른 호랑이가 아가리를 쩌억 벌리고 달려들었다.
흉악한 광경이었으나 투신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쿵! 한쪽 발을 바닥에 고정하고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뻗어, 휘감았다.
“……!”
바위마저 녹이는 화염을 내뿜고 있는 괴수를 맨손으로 안아 제압하고, 검을 정확히 목으로 찔러 넣었다.
겁에 질린 포효. 그와 함께 호랑이의 형상이 사라지고 다시 치즈색 고양이의 모습으로 들어왔다.
“저, 저, 저거 뭐다…?!”
“…미안해 에멘탈.”
잘못 생각했다. 놈은 숙련된 사냥꾼이다. 괴수와 싸우다 신이 된 자를 괴수로 상대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막고, 반동을 이용해 되받아치는 일격을 얼음 방패로 흘려낸다. 검을 거두고 곧장 이어지는 찌르기를 피하고 사선으로 날아드는 검에, 옷자락만 스치게 허용했다.
투신은 검에, 카를은 회피에 심취하여 찰나 동안이지만 춤을 추듯 공방전이 이어졌다.
몸의 한가운데를 노리고 날아드는 수평 베기. 그것이 분기점이었다.
“…무슨.”
카를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어깨 위에 앉아 있었던 에멘탈도 마찬가지다. 기척 자체를 느끼지 못한 신은 몸을 빠르게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얼음 꽃 한 송이가 폭발했다.
잘게 쪼개진 얼음 결정들이 녹으며 안개가 만들어졌다. 새파란 안개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카를이 신을 노려보았다.
“안개가 퍼지고 등불이 꺼지면.”
파스스스….
심상의 구현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활을 잡은 카를이 시위를 잡아당겼다.
“황폐한 정원엔 악몽이 찾아든다.”
안개 속에서 까마귀들이 울부짖었다. 새파랗게 빛나는 얼음 화살이 신을 노렸다.
피할 수 있을 만큼 재빠르게 반응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늦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일격. 정확히 반으로 쪼개지는 얇은 화살. 까마귀 떼를 뚫으며 달려드는 투신.
까마귀 안개 속에서 터지는 폭발이 다가드는 투신을 휘감았다.
“…크으.”
그 위력에 신마저 잠시 주춤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심상을 발현했다.
다시 활의 시위가 당겨지고 힘이 모여들었다. 아직 어떠한 형태가 되지 않은 힘. 카를이 입을 열었다.
“에멘탈.”
“듣고 있다!”
“이번엔 어떤 게 좋을까?”
아무리 에멘탈이 자신의 사념에서 태어난 인공 정령이라 한들, 녀석은 독자적인 생명체였다.
그리고 지능은 카를에게 밀리지 않는다.
“고래가 좋겠다!”
“고래?”
“주인이 바다로 나갔을 때 보았다! 엄청 크고, 엄청 무거운 녀석들! 어마어마하게 강할 것 같다!”
“그래. 그거 좋네.”
고래, 고래라.
카를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상을 이어 나갔다.
거대한 덩치와 압도적인 힘.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많이 있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번 발현의 핵심이 될, 특별한 무언가.
“…바다.”
그래. 바다부터 시작하자.
결정을 내린 것과 동시에 손에 푸르고 하얀 마력이 모여들었다. 적이 약간이나마 움츠러든 틈을 타서 더 구체적인 심상을 만든다.
땅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바다. 지면을 없애고 오로지 바다로만 채운다.
파직, 하고 터지는 스파크. 카를은 대지를 향해 겨누고 시위를 놓았다.
“하.”
쿠르릉! 대지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새까만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발 아래에서 터지는 벼락들. 전쟁의 신은 자신을 겨누고 있는 화살의 끝을 바라보면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눈으로 화살을 좇는다. 화살을 감싼 백청의 마력이 점점 더 덩치를 부풀려 가는 것도. 투신은 검을 양손으로 쥐고 땅을 박찼다.
벤다.
-구오오오오.
짐승 울음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번개로 휘감긴 고래가 투신을 향해 입을 벌렸다. 삼킨다. 삼켜졌다. 그리고 뚫어냈다.
고래 형태의 번개를 뚫어내고 땅을 박찼다. 오른쪽 귀가 다시 활 시위가 당겨지는 소리를 포착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쪽이 빠르다.
“하아아아!”
먹구름을 뚫고 공중에서 한 바퀴 선회한 투신의 검이 카를의 머리를 노렸다. 두 팔을 교차했다. 마력이 서로 엉겨들고, 그채로 방패가 되었다.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명중, 힘이 폭발한다.
“…후.”
막아낸 충격에 오른팔이 부러졌다. 왼팔도. 재생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런 재생에도 심상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금니를 깨물어 고통을 버텨냈다. 천천히 심상을 모은다. 필살의 한 수를, 준비했다.
“오오오!”
빠악! 금이 가 부서진 투구째로 머리를 부딪쳤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머릿속에서 구축되던 상상들이 순간이나마 증발했으니. 그리고 다음은 검으로 이어졌다.
피부를 파고드는 칼끝. 피가 먹구름 위로 흩뿌려졌다. 몸을 비틀어 배에서 터지는 고통을 지워내고, 피해를 억눌렀다.
‘이대로라면.’
머릿속으로 타이밍을 계산했다. 끊임없이 몰아치고 있으나 그러는 와중에도 착실하게 심상은 모이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 다섯 번.
투신의 공격으로부터 다섯 번 살아남으면 이기는 건 자신이 될 것이다.
“한계인가! 카를로스 크로우!”
심상을 다른 데 투자할 여유는 없다. 마지막 수를 위해 모아두어야 했다. 남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
자신의 마법들이 남았다.
수인을 맺었다. 눈으로도 마법을 펼쳤다. 어느 것이 중심이 될지는 모른다. 본능에 맡길 뿐.
“해골!”
천진난만한 고양이의 목소리와 함께 수인의 끝에서 두 마리 해골이 일어섰다. 본능적으로 방어를 택했으니, 얼음 방패 또한 같이 만들어졌다. 두 마법이 합쳐진 결과물은 얼어붙은 해골이었다.
“…잘했어.”
검은 카를의 목이 아니라 해골의 목을 베었다. 얼어붙은 해골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터졌다. 뼈와 얼음 파편들이 순간이나마 시야를 가렸다.
이걸로 네 번 남았다. 네, 번.
“빛줄기!”
먹구름으로 된 땅바닥을 딛자 벼락이 터졌다. 그 터진 벼락을 제어하는 것은 에멘탈.
막대한 열을 품은 채 번뜩이는 벼락이 빛줄기가 되어 날아갔다.
기억을 버렸나. 투신은 빛마저 베어버리고 달려들었다. 히에엑?! 귀엽게만 들리는 비명이 터졌다.
세 번.
“으에에…처, 천둥이다!”
먹구름으로 된 대지가 들썩였다. 투신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힘으로 짓밟아 다시 발을 디딘 순간 굉음이 터졌다.
두 번.
“부, 불길!”
커다란 불덩이가 쏘아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베어내고 달려드는 투신. 하지만 불덩이는 하나가 끝이 아니었다.
에멘탈은 마법을 위해 창조된 정령. 학습에는 주인인 카를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당연히 베어버릴 것을 예상했다는 듯 그야말로 ‘불길’이 될 만큼 많은 불덩이들을 쏘아냈다.
“미쳤다! 완전 미쳤다!”
크기가 조금 작아졌으나 수십 개에 달하는 불덩이들이 모조리 잘려 나갔다. 여전히 흉악한 기세를 풍기며 다가오는 신을 보고 에멘탈이 경악했다.
학습한 것 그 이상.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리라. 그래도 상관 없다.
“앞으로….”
한 번.
그 순간, 투신의 일격이 카를을 사선으로 베었다.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깊은 자상을 남기고 지나갔다. 심장을 노린 일격이었다. 아마, 베였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피가 터졌다.
“주, 주인!”
그래. 이게 투신이다. 전쟁의 신이다. 본신의 힘으로만 다른 신들을 압도하고, 용왕을 죽이고, 성배의 힘마저 뛰어넘었다.
빌어먹을, 거의 다 왔는데….
“…아?”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감각이 작은 진동을 느꼈다. 자신의 가슴이다. 심장이다. 베였다면 진동을 느낄 만큼 강하게 뛰지 못할 터인데.
의문은 한순간, 사고가 이유를 찾기 시작하고 시각이 그 원인을 포착했다.
투신의 왼쪽 눈. 투구가 깨진 탓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던 눈이 감기어 있다.
화상, 동상, 그을음 그리고 출혈. 투신의 얼굴 반쪽은 상처투성이였다.
이유는, 아까 자신이 저 투구를 깨뜨렸기에.
그리고 이어진 싸움에서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방어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베어내지 못하고, 빗나간 것이리라.
“아.”
희미한 미소가 카를의 입가에 떠올랐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앞을 가린다. 팔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온몸에 힘이 없다. 죽음의 문턱까지 끌려갈 뻔한 바람에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다.
하지만 심상은 완성되었다.
“세계.”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마법으로 움직임을 조정했다. 시야가 반전되었다. 구름이 머리 위에 있고, 하늘이 발아래에 있다.
“심상, 발현.”
꺾이지 않은 투기가 칼끝을 움직이는 것일까. 아직도 칼날은 끊임없이 카를의 죽음을 바라며 춤추고 있었다.
코앞까지 칼날이 들이닥친 순간.
“천체정렬(天體整列).”
먹구름에서 튀는 스파크가 멈춘다. 허공을 떠도는 자신의 핏방울도 멈춘다. 신의 칼날 역시 느릿하게만 다가오고 있었다.
“천공(天功).”
세계의 힘이 자신의 손안에 들어와 있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랗고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정지(停止).”
무엇이, 불가능할까.
“심상, 발현.”
멈춘 시간 속에서 카를은 먹구름을 밟고 서 있는 전사의 모습을 보았다.
저 눈이 바라보는 것은 카를 자신뿐이다. 방패는 진작에 깨졌고 갑옷도 너덜너덜하다. 깨진 투구 때문에 왼쪽 눈은 다쳤다.
그럼에도 투기는 여전하다. 부상 따위 개의치 않고 용맹하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최강의 전사이자 최강의 신이라는 수식이 어울렸다.
“우주(宇宙).”
감탄은 여기까지.
이제 남은 건, 끝을 내는 것뿐.
“홍황(弘荒).”
손안에 들어온 것을 검지손가락 끝에 모았다. 그 손가락을 천천히, 전쟁의 신이 쥔 검에 대었다.
대륙, 아니 별 전체의 힘이 그 손가락 하나에 담겼다.
“…….”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칼날에 닿은 순간 발생한 힘의 격류. 폭발과 함께 방출되는 힘에 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허.”
이해하지 못했다. 작금의 상황을. 하지만 전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직감까지 갈 것도 없다. 손에 쥔 검의 감촉이 사라졌으니까. 주먹을 쥔다고 해서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내 패배인가.”
씁쓸하게 한숨 지은 투신이 카를을 향해 물었다.
“이걸로 끝이로군. 그런데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분명 기회가….”
“아직 안 끝났어.”
투신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카를은 그런 신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도 알잖아. 이대로 끝내면 안 된다는 거.”
“…….”
“너를 죽여봐야 언젠가 또 다른 신이 탄생하는 걸로 끝날 뿐이니까.”
눈앞에 있는 전쟁의 신은 특이한 근원을 가지고 있다. 전쟁 기계보다는 전사에 가깝고 신보다는 인간에 가깝다.
하지만 진짜 전쟁을 근원으로 한 신이 태어난다면, 이런식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죽어.”
인간으로 남았기에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남은 이상,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신들은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를 기약할 수 있다. 700년 전에 그러했듯이.
“완전히, 끝을 내야지.”
먹구름이 걷힌 땅을 밟으면서 카를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전쟁의 신이 쥐고 있었던 검이 떨어진 곳이었다.
“완전히, 말이야.”
카를이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