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마법을 너무 잘쓰는 공작님.
새하얗게 빛나는 구체가 손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성배. 자신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힘의 원천.
-당신……!
“원래.”
반쪽짜리 힘이 몸 안으로 온전히 흘러 들어왔다. 서서히 형체가 사라져 가는 소녀를 향해 카를이 말했다.
“바꾸는 것보다 부수고 새로 만드는 쪽이 나아.”
-……아?
“그러니까 안심해. 네가 염려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자, 커다란 눈을 깜빡이던 소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성배를 손에 쥔 카를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목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팔을 타고 손으로, 몸을 타고 발목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에서 순간 힘이 빠졌다. 수마가 찾아왔다.
몸이 나른하게 늘어지며 힘을 잃어갔다.
죽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찾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하얀 빛의 구체, 그것을 손으로 움켜 쥐었다.
손으로부터, 구체로부터 뻗어 나온 빛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나 갈라진 하늘이 완전히 부서진다. 갈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대지가 분쇄되었다.
곱게 빻은 밀가루처럼 부서진 세계가 빛의 입자가 되었다.
“세계.”
부서진 세계 위로 마법이 덧씌워진다. 성배의 힘을 완전히 차지한 카를의 마력이 세계를 촘촘히 덧씌웠다.
눈을 감아라. 상상해라. 떠올려라.
그물처럼 퍼진 마력이 일정한 가격을 두고 이 세상을 덮었다. 그것 하나 하나를 점으로 삼았다. 마력을 조금씩 응축시켰다.
“발현.”
세 개의 음절. 세 가지 의미를 담은 단어를 중얼거리는 것으로 마법을 발동한다.
온 정신을 그 마력에만 집중했다.
세계가 색을 잃었다. 시간마저도 의미를 잃고 흐르기를 멈추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을 둘러싸는 결계를 만들었다.
“…….”
이제 한 걸음 밖에 안 남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신들이 날뛰는 세계는 아니어야 했다.
설령 그렇더라도 그들 때문에 누군가가 희생하고 누군가가 죽는 세계만은 아니어야 했다.
그게 전부다.
그렇게 생각을 끝마치자 든 생각이 있었다.
너무 소박한 소원이 아닐까, 하고.
그래, 그러면….
“재창조.”
마지막 심상을 담아내는 것으로 마법을 완전히 발현했다.
그와 동시에 옅은 충격파가 일어나 세상의 표면을 뒤덮었다.
부서진 하늘과 파괴된 대지를 손길처럼 훑고 지나갔다.
그것으로, 사라졌던 색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재시작이었다.
* * *
“꽤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수십이나 되는 사도들이 황궁을 포위한 상태였거든요. 경비병들도 애초에 상대가 안 됐고….”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지? 오히려 빠지라고 한 덕분에 경비병들도 다 살았다면서.”
“네. 누구 덕분인지는 알죠?”
에헴, 하고 가슴을 피는 아나스타시아. 그 모습에 카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자 그녀는 손끝으로 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제대로 칭찬해줘요. 다시 생각해보니까 카를 당신은 은근히….”
“잘했어. 안나. 고마워. 덕분에….”
“으얏, 앗.”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손을 뻗어 입을 막았다.
“제가 말은 했다지만 갑자기 바로 앞에 대고 말을 하면…부끄럽잖아요.”
“듣고 싶었던 말이잖아? 나도 해주고 싶었고.”
“그건, 그렇지만….”
“그러니까 다시 말할게. 안나. 정말, 고마워.”
“……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야. 이건 꼭 말해주고 싶었어.”
“좋아라….”
방긋방긋.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했다.
“말하기 전에 이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그렇지?”
“…안나?”
“아, 음. 조금 이상했을까요?”
검지 끝을 서로 톡톡 맞부딪치면서 빤히 올려다보던 그녀가 횡설수설하듯 말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제 말투는 제가 편해서기도 하고, 또 이게 저다운 것 같아서 쓰는 거지만…부부 사이에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부부 사이….”
“무, 물론 아직 부부는 아니지만…그래도 될 거, 잖아? 아…아니야?”
부끄러움을 무릅 썼다는 게 느껴졌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하던 그녀는 톡, 하고 이마를 카를의 가슴에 부딪쳤다.
“아, 정말….”
“얼굴, 보여줄 수 있을까.”
“싫어요. 나만 이렇게 말하게 만들고….”
“내년 봄.”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카를이 속삭였다.
“내년 봄으로 하자.”
“…….”
“그리고 꼭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네 말대로 편한 게 중요하니까.”
“그럼…차차 바꿔 가는 걸로 할게요.”
그래도 그녀는 한동안 카를의 품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내쉬는 숨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데일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혼자 간직할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카를의 몸을 끌어당기면서 발꿈치를 떼었다.
“그리고 규칙도 하나씩 만들어가요.”
“어떤 규칙?”
“예를 들면, 하루에 한시간은 손 잡고 있기.”
“지금부터 적용되는 규칙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그래서 손을 잡았다.
딱히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아카데미의 외곽이었다.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불순한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 건…어디 있어요?”
“여기.”
울창하게 자라난 초록빛의 숲. 한동안 그 숲을 바라보던 그녀가 아,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매화나무네요.”
“응.”
“…설마 이게, 당신이 빈 소원이었어요?”
성배의 힘으로 재창조된 세계. 다시 만들면서 카를이 유일하게 사심을 담아 만든 것.
매화나무 숲이었다.
“왜, 매화나무를….”
“백매화 공작님이 생각났거든.”
“로맨틱해라…그 백매화 공작님이라는 사람, 참 부럽네요.”
“좋은 신랑을 데리고 있으니까.”
어쩐지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온몸을 칠흑의 정복으로 감싼 유리아가 서 있었다.
“속이 거북해….”
“…흠흠.”
그녀의 옆에 선 이시엘이 헛기침을 뱉어냈다. 머리에 자라난 뿔을 숨기지 않았다. 정체를 숨길 때 입는 제국의 옷이 아니라 마족들의 의상을 숨기지 않고 입었다.
“하긴 부부니까…예정이지만. 내가 이해해야겠지…? 아 그래도 속이 거북해…토할 것 같아.”
“등이라도 두드려 주면 되겠나?”
“아냐. 빈속으로 왔거든….”
두 사람 다 공식적인 자리에 참여할 때의 복장이었다. 한동안 문서를 주고 받는 것 외에 마족과의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다는 것을 떠올린 카를이 물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견학. 이시엘이 우리 아카데미보고는 자기들도 이런 거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작금의 마족들은 통합되어 있지 않다.”
총명하게 눈을 빛내며 그녀가 말했다.
“크게 보면 그대들의 제국처럼 권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나는 왕이지만 내가 서 있는 곳에서만 왕으로 군림한다.”
“힘으로 복종시키는 자리니까. 호랑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선 여우가 왕 노릇을 하겠지.”
“그래. 그러니,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시엘이 담백하게 말했다.
“그대들 식으로 표현하면 주먹구구로 돌아가고 있다. 그걸 매끈하게 돌아가게 해줄 관료들이 필요하지. 당장 유리아가 거느린 관료만 세어도 내 왕궁에 있는 관료들보다 많다. 이런 가문이 다섯이나 있고, 그보다 훨씬 거대한 제국이 있다.”
“전사가 아니라 관료들을 기를 학교를 만들 셈인가.”
“이미 뛰어난 전사들은 많다. 그리고 이제 와서 더 필요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내전은 끝났다. 제국의 입장에서도 마족과 더 싸울 이유가 없다. 아마 한동안은 평화로울 터이다.
“어머.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네요.”
“괜히 먼저 왔다 싶어요…시아나 탑주님! 저희 오라버니 좀 뭐라고 해주세요! 맨날 일은 안하고 이렇게 한량처럼 돌아다니기만 하는데….”
“카를로스 이사장은 정식으로 휴직계를 제출했어요. 사유도 충분하고…애초에 카를이 없어도 문제 될 건 없으니까요. 그래도 스승 된 입장으로서 한 마디만 하자면….”
시아나가 부드러운 눈길로 카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생 많았어.”
“……네.”
“더 얘기해주고 싶은 게 많지만 그건 나중에 하는 걸로 하자.”
“네. 스승님. 그러고 보니….”
“아, 음.”
시아나의 한걸음 뒤에 선 칼리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을 살짝 흔들었다.
“사라 대신 칼리를 데리고 오셨군요.”
“응.”
“나, 나도 이제 트리플이야…!”
그 말과 함께 송곳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어 피를 살짝 내는 칼리. 피를 마력으로 바꾸려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카를이 말했다.
“보여줄 필요까진 없어.”
“아…미안, 당, 당황해서.”
“조금 빡빡하게 가르치시는 모양이네요. 스승님.”
“잘 가르치라면서? 내 직속 제자들 중엔 제일 공들여 가르치고 있어.”
벌써 삼중술사가 되었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동시에 시아나가 평소답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족을 만나니까 칼리를 데려온 것 같진 않고…사라 대신 칼리를 데려온 이유가 있나요?”
“주변에 관심이 없구나, 카를. 하긴…그간 바빴으니까. 사라 이제 탑주 후보야.”
“네?”
“중앙 마탑. 일라이트가 그 짓을 해놔서 원래 소속된 마법사들도 많이 떠났잖아? 그래서 남는 마법사 중에 매개 마법을 잘 다루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찾아보니까…어머, 사라가 있네?”
“그래서 추천하셨군요.”
“다른 탑이라지만 꽤 오래 직속 제자였고…실력은 문제 없고, 실적도 있으니까. 카를 너는 탑주직 관심 없니? 솔직히 말하면 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네. 당분간은 쉬고 싶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저보다 훨씬 잘 가르치시니까요.”
“하긴 쉴 수 있을 때 쉬어둬야지. 대신 내가 은퇴하게 되면 네가 해야해?”
“네. 스승님.”
“그래. 그러면 나중에 마저 얘기하자 카를. 나는 손님이랑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손님들도 카를 자신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음을 그는 눈치챘다. 자신과 아나스타시아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었다.
“그러면…음, 저희는 갈까요? 일하는 사람들 방해하지 말고.”
“응.”
잠시 놓았던 손을 다시 잡고 두 사람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딱히 누가 먼저랄 것은 없었다. 손은 어느 한쪽으로 이끌리지 않고 함께 걸었다.
“어라?”
어디선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눈치챈 아나스타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누가 있나 보네요.”
“우리가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아니니까.”
전후 처리가 우선이었다. 아나스타시아는 제도쪽을, 카를은 자신의 영지 쪽을 정비했다.
전쟁신의 사도들이 행한 파괴를 수습하는데는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는 아담 선생님이 파지법을 알려줬어.”
“파지법…?”
“음…그러니까, 이런 막대기를 잡을 때 손가락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그런 거야. 물론 이제 엄마는 검을 안 쓰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
“좋은 선생님이구나!”
“그치. 내가 본 사람 중에 두 번째로 멋있는 사람이었어.”
“첫 번째는 누구야?”
“첫 번째는….”
다섯 살 정도 됐을까.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한 소녀가 매화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아이랑 떠들던 소녀는 카를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시선을 옮겼다.
“저기, 저 사람.”
“저 사람이 엄마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야?”
“응.”
소녀, 카리아 프라헨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옆에 앉혀두고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구나.”
“그때 주신 아티팩트 덕분에 살았어요. 덕분에 진로도 정했구요! 아무래도 저한테는 염동 마법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래. 잘됐네. 그런데….”
생글생글 웃는 카리아의 미소 뒤편에 앉아 있는 작은 아이. 그 아이를 보며 카를이 물었다.
“저 아이는….”
“아, 제 딸이에요!”
“딸?”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1년이 채 안 되었는데, 저 아이는 벌써 네 다섯 살 정도는 되어보였으니까.
그걸 알아챈 아나스타시아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없이 눈빛만으로도 의문을 표하고 있음을 느꼈는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음에도 카리아가 말했다.
“황새가 물어다 줬어요!”
“…정말로?”
“황새…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요. 새가 물어다 준 건 확실해요! 그리고 저를 엄마라고 부르길래…그냥, 제 딸 하기로 했어요!”
한없이 해맑은 미소에 카를은 할 말을 잃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그가 물었다.
“문제는 없고?”
“기숙사에 허락을 받았어요! 원래는 안 되는데, 탑주님이 허락해주셨고요…음, 아. 이사장님이 반대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호, 혹시…?”
“아니, 반대할 생각은 없어.”
“휴. 그러면 다행이네요. 으음, 그러면 이사장님…혹시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떤?”
“마법 하나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제 딸이 신기한 걸 좋아해서요.”
헤헤 웃으면서 묻는 카리아. 그 모습에서 무언갈 본 걸까, 아나스타시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보여주는 거 어때요? 예습, 이라고 생각하고.”
“…예습.”
“부끄러우니까 그렇게 다시 말하진 말고요….”
“그래. 그러면….”
잡았던 손을 잠시 놓고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온몸으로 퍼뜨렸다.
이미 자신의 기량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만이 아니었다.
성배의 힘은 사라졌지만, 한 번 성배의 힘이 깃들었던 몸은 정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눈을 감고, 집중했다.
신기한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이다. 마법 자체가 화려한 것도 좋겠지만,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현상을 바꾸자.
그렇게 마음먹고서 마력을 움직였다. 하늘이 검게 물들고 천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화나무 숲 위로, 밤이 찾아온다.
“우와아….”
딸보다 부탁한 카리아가 더 신기해하는 모양새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고 들어올려 자신의 팔 위에 앉혔다.
“순식간에 해님이 사라지고 달님이 왔어!”
“…….”
“신기하지? 우리 딸?”
카리아의 품에 안긴 작은 아이가 카를을 응시했다. 똘망똘망한 눈이, 알 수 없는 눈으로 변해 자신을 응시했다.
밤하늘에서 붉고도 푸른 별빛들이 아이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손등이, 언젠가 그녀가 주었던 ‘선물’이 밝게 빛났다.
“……아스텔.”
“우리 딸?”
“응! 신기해! 갑자기 밤이 됐어!”
“그럼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감사합니다아!”
카리아의 품에서 내려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아이. 그 아이가 고개를 들고 입을 움직였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술만을 움직여서, 카를을 향해 말했다.
“…….”
고마워.
덕분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어.
“카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카를을 향해 아나스타시아가 걱정스러운 투로 그를 불렀다. 이내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안심했다는 듯 더 이상 그를 부르지 않았다.
“…다행이네.”
다행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길 바란 그녀가,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어서.
어떤 인과가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었을지, 갓난아이가 아니라 이미 어느 정도 자란 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만들었을지는 모른다.
신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 세상에 남은 미지는 많았으니까.
“아저씨!”
“……응?”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가 카를을 바라보았다.
“이제 뭐 할 거에요?”
카를이 그 아이의 눈을,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스텔로서 물은 질문이었다.
“이제….”
자신의 삶은 그녀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를 궁금해하는 걸까.
카를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살아야지.”
당장 살아남고자 했던 과거의 그라면,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면서.”
확실하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미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공작님이 마법을 너무 잘 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