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3
3화 공작가의 차남 (2)
카를은 살아남은 군마와 주변 마을에서 탈 수 있는 말을 전부 다 긁어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의 숫자가 모자라서, 공작가로 향하는 이들의 수는 40명까지 줄어들었다.
카를은 말이 달릴 수 있는 한계까지 달리고 지쳐 엎어지는 말이 생기면 쉬는 방식으로 최대한 빨리 공작가로 향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카를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계까지 말을 혹사해야만 하는 이유는 정현도 알고 있었다.
이번 반란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병사는 고작 40명. 하지만 공작가에서는 명령만 내리면 하루 만에 기사만 40명을 넘게 모을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덴 크로우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반란은 실패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정말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정현은 게임 속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도련님. 따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하게.”
마지막 휴식 지점.
말을 쉬게 해놓고 근처의 냇가에서 수통을 채우던 카를로스에게 카일론이 다가왔다.
그는 혹시나 다른 사람이 들을 것을 염려하는지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아마 공작가에는 아덴 크로우의 전속 기사가 머무르고 있을 겁니다.”
“알고 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오러를 다룰 줄 압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 한 명에게 저희 병사들이 모두 목숨을 잃을 겁니다.”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기사.
평범한 기사도 그 단단한 갑주와 실력 때문에 병사가 한꺼번에 열 명은 달려들어야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기사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병사가 덤벼들어도 부족했다.
문자 그대로 일당백의 전력이었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예?”
정현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작품마다 다르긴 해도 오러 사용자는 평균적으로 강자에 속했다.
하지만 카를로스 크로우가 된 지금은 그들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오러 사용자면 뭐 어떤가.’
“내가 제압할 것이니 그대는 병사들을 이끌고 아덴 그놈이나 붙잡아 두도록.”
“…허나 도련님.”
“나를 의심하는가?”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세계관에서는 검과 오러보다는 마법이 훨씬 더 비중이 높았다.
심지어 마법사들은 굉장히 중요했다. 일종의 비대칭 전력으로, 마법사 한 개 부대가 일개 군단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카를은 그런 비대칭 전력인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에서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천재였다.
‘잠깐만, 의심할 수도 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대칭 전력으로 취급받는 만큼 이 세계에는 마법사가 드물었다. 작품의 주 무대인 황궁에도 소수만 존재했다.
하물며 마탑 출신의 마법사는 더더욱 드물었다.
‘못 봤으면 그럴 만도 하지.’
정현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기습을 당했을 때, 카를은 급한 마음에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다가 마법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창에 찔렸다.
그전에는 마탑에 있었으니 카일론도 카를이 마법을 쓰는 건 못 봤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보여 주겠다. 잘 보도록.”
필요한 건 상상력과 마력. 마력은 이미 충분했기에 상상력만 있으면 될 것이다.
기사는 갑옷을 입고 있다. 오러까지 다룬다면 평범한 마법으로는 뚫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갑옷으로도, 오러로도 막을 수 없는 마법이 무엇이 있을까….
‘번개.’
카를은 냇가에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는… 일단 구름부터 불러와야 했기에 어려웠다.
대신에 그냥 손에서 뻗어져 나가는 전류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라이트닝.”
한 줄기의, 약간 보랏빛을 띤 번개가 그의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왔다.
인터넷에서 본 낙뢰 사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순간, 그 한 줄기 번개는 정확히 나무에 적중했다.
화르륵!
번개는 나무의 뿌리부터 어린잎까지 모조리 새까맣게 태워 버리고 바싹 탄 나뭇가지만을 남겼다.
재가 날리면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위력에 정현은 살짝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나?”
카일론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들이 국경을 넘어올 때 그들을 퇴치하기 위해 고용하는 마법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의 마법이었으니까.
‘아무리 오러를 다루는 기사라고 해도 저 정도 위력이라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 강한 확신이 든 순간, 그의 주인이 등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면 충분히 쉰 것 같으니 이만 출발하지.”
* * *
“크로우 각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흥을 깨는 목소리였다.
68년산 팽소니에. 기쁨의 여운을 즐기기에 썩 나쁘지 않은 와인에 적당히 취해 있었던 참이었으니까.
이대로 연회의 분위기를 즐기다가 점 찍어둔 무희를 데리고 갈 생각뿐이었던 아덴 크로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꺼져라. 지금은 듣지 않겠다.”
“…하, 하지만 각하.”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은 모양이군?”
기분이 더러웠다. 보고를 올리러 온 부하를 내쫓기 위해 그는 꺼지라는 의미를 담아 손을 내저었으나,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덴 크로우가 날카롭게 째려보며 이유를 묻자 부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 부하에게서 전서구가 왔습니다. 각하께서 파병하신 병사 중 몇몇이 갑작스레 모습을 감추었다 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카를로스 님의….”
그는 황급히 말을 삼켰다. 아덴 크로우의 눈썹이 꿈틀댔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를로스의 죽음에 분노한 병사들이 각하께 반기를 드는 것 같습니다.”
카를로스 크로우는 죽었다. 다름 아닌 그의 친형인 아덴 크로우가 용병 사이에 심어 놓은 암살자 때문에.
전장이 어지러워 목을 잘라 오거나 하진 못했으나, 크로우 가문이 길러 낸 암살자이니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하. 내 동생을 지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는가.”
이곳은 연회장. 듣고 있는 귀가 있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런 생각에서 내뱉은 말일 테지만, 뻔뻔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었다.
“반역자 놈들이 모두 몇인가?”
“스물에서 백 사이입니다.”
“하… 스물에서 백?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하, 하오나 각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저로서는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카를로스 크로우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병사가 약 스물. 거기에 카일론 장군을 따르는 병사까지 포함하면 최대가 백 명이었다.
“남작, 네놈의 무능함은 잘 알겠다. 대충 머릿수 정도만 맞춰 주면 되겠지.”
와인을 한 모금 홀짝인 아덴 크로우가 말했다.
“가서 나의 친위대를 오십 정도만 데려오거라.”
“…오십, 말씀이십니까?”
“백 명이 있다고 해서 전부 다 끌고 올 수 있겠느냐? 말도 부족하고 마차도 없으니 많이 쳐도 오십이겠지. 그보다 더 많아도 나의 기사가 있으면 하찮은 반란군 따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다.”
크로우 가문의 사병 중 최정예인 친위대. 거기에 기사까지.
이성을 잃고 날뛰는 패잔병들은 쉽게 제압될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어딘가 찝찝했다. 어째서 병사들이 갑자기 공작가를 노리는가, 그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아서였다.
“네놈이 알아서 그것들을 제압하고 보고서는 서면으로 올려라. 반역죄는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고 있겠지?”
“…멸족입니다.”
“그래. 적당히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아덴 크로우는 그 말만을 남기고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는 무시한 채.
* * *
“곧 공작가에 도착합니다. 도련님.”
크로우 가문의 저택은 가끔 다큐멘터리에서 본 귀족들의 거대한 저택을 닮아 있었다.
정현 자신은 처음 본 저택이었지만 몸은 어째서인지 익숙함을 느꼈다.
그리움과 더불어… 강렬한 증오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녀석한테 먹히진 않겠지.’
정현은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카를로스 크로우의 의식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지만, 군데군데에서 그 잔여물 같은 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나다.’
이건 카를로스 크로우가 하려고 했던 일을 마무리 지을 뿐이다.
이 상황을 마무리 지은 뒤에는, 나로서 이 세계를 살아갈 것이다.
정현은 속으로 단단히 다짐한 뒤 주먹을 쥐어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 멈춰라!”
카일론이 그를 거들었다. 카를이 정지 신호를 내린 직후, 병사들은 말의 고삐를 잡아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도련님, 따로 내리실 명령이라도 있으십니까?”
“여기서 잠깐 기다리도록.”
그 명령을 내린 후 카를은 말에서 내렸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본 그의 시야에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는 새가 몇 마리 보였다.
어느 소설에서 그는 마법사가 동물의 눈을 빌려 정찰을 하는 부분을 읽은 적 있었다.
그 동물은 사역마였지만, 처음 보는 동물이라도 카를의 압도적인 재능이라면 사역마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미물이여, 나에게 복종하라.’
나지막이 주문을 중얼거린 카를이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순간 그의 시야는 땅 위가 아니라 하늘에 떠 있었다.
‘성공이다.’
마치 1인칭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듯한 시야에, 리얼함을 덧붙이면 이런 풍경일까.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크로우 가문의 저택. 축구장보다 더 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넓은 정원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하인이나 정원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갑옷을 입고 창칼을 손에 들고 있진 않을 테니까.
‘경비병…? 아니, 친위대인가.’
어느 병사가 들고 있는 깃발. 그는 카를의 기억을 뒤져 그것이 친위대의 깃발임을 떠올렸다.
친위대가 왜 저택 뒤편의 정원에 모여 있는가.
‘알고 있었던 건가.’
최대한 빨리 달려온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덴 크로우는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친위대가 무장까지 하고 정원에 모여 있을 리가 없으니까.
‘수가… 50명. 기사까지 포함하면 52명에, 경비병까지 포함하면 60명이 넘나.’
카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군의 머릿수가 부족한 것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수적 열세는 마법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친위대가 시간을 끄는 사이 놈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놈의 눈앞까지 갈 방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 돌아왔다는 걸 당당히 알리며 저택으로 돌아가도 아덴 크로우는 자신을 직접 반기지 않을 것이다, 부하가 와서 자신을 마주하다가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려 들겠지.
정면으로 병사들을 끌고 들어가면 금세 달아날 것이다.
당장 카를의 목표는 아덴 크로우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기에, 놈을 붙잡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본능은 우직하게 걸어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현이 아닌, 카를로스 크로우의 본능.
고지식한 귀족 태생에, 상대적으로 폐쇄된 환경인 마탑에 오랫동안 있어서 이런 정공법밖에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놈의 본능에 따르면 실패할 거다. 방심을 유발할 기발한 수가 필요하다.
“카일론.”
“예. 도련님.”
“근처에 있는 마을로 가서 장의사에게 내 키와 비슷한 관을 하나 사 오도록.”
“…!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의 말을 들은 카일론은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병사 몇 명과 함께 마을로 향했다.
아덴 크로우는 카를로스 크로우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카를로스 크로우의 시체를 제 눈으로 확인할 것이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