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역병 (6)
―마법사님. 혹시 아직 안에 계십니까?
노크 소리가 울린 직후, 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이 겹치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었던 사라가 휴,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를은 염동 마법을 사용해 문을 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카를의 얼굴을 본 그녀가 경례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각하, 기침하셨습니까?”
“…얼마 안 됐다. 무슨 일인가, 차석 집행관?”
“예. 다름이 아니라 마법사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그 전에 각하께 보고드릴 사안이 두 개가 있습니다.”
테나가 손에 든 종이 뭉치를 몇 장 넘겼다.
“하나는 오늘 아침에 새로이 확인한 추가 환자의 수입니다. 리안에서 세 명, 그 외 타 지역에서 스물두 명이 추가로 발생했습니다. 이들 모두 일단은 격리했습니다.”
까득. 보고를 들은 카를이 이를 꽉 깨물었다.
사도가 카를의 존재를 인지했듯, 카를 또한 사도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 사실을 아는 역병신의 사도는 더욱 빠르고 넓게 병을 확산시킬 것이기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동쪽 산에서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산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했는가.”
“천월산입니다. 이곳에서 걸어서 하루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 산에서 곰의 사체를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천월산.
게임에서도 나오는 지역이었다.
근방에서 가장 가파르고 높아, 하늘(天)의 달(月)이 잘 보인다 하여 천월산.
……사도가 강림하는 지역 중 하나다.
“병사나 폐사가 아니라 원래 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가리 찢겨 있었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살지 않는 지역이기에 마물이나 마수의 짓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마수의 시체를 흘깃 본 테나가 덧붙였다.
“더군다나 저 마수의 경우를 고려하면, 마물보다는 마수일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제 놓친 사도가 새로이 빙의한 것이리라.
빙의하면 마수의 능력을 쓰지 못하더라도 본래의 육체 능력 덕분에 곰 따위는 쉽게 살육할 수 있으니.
“그리고… 어제 각하께서 내리신 명령에 따라 통제를 벗어나 구획을 건너간 이들의 목록입니다. 모두 합쳐 열여섯이고, 신원 조사는 끝내 두었습니다.”
카를은 그녀에게서 리스트를 건네받았다.
가볍게 훑어보았으나 분석 특성이 작용한 덕분에 정보들이 순식간에 정리된 상태로 머릿속에 들어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진 않군.”
사도의 존재를 확신하기 전, 혹시나 그것이 사람의 몸에 빙의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린 명령이었다.
그러나 신원을 조사한 이들 대부분이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구획에 자신의 가게가 있거나, 가족이 있어서 만나러 갔거나, 새벽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 성당을 찾았거나 하는 사소한 이유들이었다.
“예. 그리고 각하, 구획 간 통제에 관한 것인데….”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시행된 일이니 혼란이 있었으리라. 개중에는 평소엔 신경도 쓰지 않던 영주가 왜 갑자기 간섭하느냐며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구가 천 명에 달하는 도시에서, 열여섯 명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그래도 어제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그러면 실질적인 예방의 효과는 얻을 수 없을 텐데… 정말 어제처럼 유지하는 게 옳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테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반문하기보다는 내린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이였기에 굉장히 의외인 행동이었다.
그만큼 카를 자신의 명령이 타인의 눈으로 보면 의문투성이라는 것이다.
“일단은.”
하지만.
그 의문을 해소하려거든 사도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언제 인간의 몸에 빙의할지 모르는 존재.
테나 한 명뿐만 아니라, 다른 집행관들에게까지 이유를 설명한다면 제 존재가 이미 알려져 있음을 알게 된 사도는 달아날 것이다.
“내가 다른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는, 일단은 그렇게 하도록.”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충성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카를의 말을 들은 테나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각하.”
“그리고.”
카를은 방 안의 광경을 확인하듯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아무리 급하게 왔다지만, 시설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마수의 사체를 분석하는 데 쓰인 장비라고 해봐야 자그마한 칼과 접시, 그리고 마력석 몇 개뿐.
“이 도시의 의원들을 싹 다 모아 오도록.”
“…전부, 말씀이십니까?”
“전부 다.”
칼리가 보조로 있다지만, 그녀는 정말 기초적인 보조밖에 할 수 없다.
혈마법사로서의 그녀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병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었다.
‘분석’을 활용하기 위해 지식을 공부하는 것보다 그녀를 믿는 것이 빠르니까.
“사라.”
“으, 응?”
“인력을 최대한 붙여 줄 테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봐. 표본도 새로 구해 줄 테니까.”
“어…? 알았어.”
“그리고 피 자체를 분석하려면 마력석으로 하지 말고 칼리한테 부탁해. 고유 능력에 가까운 혈마법이라고 해도 혈마법의 틀 안에 있어. 아마 도움이 될 거다.”
카를의 말을 듣던 사라의 표정이 바뀌었다.
당황하고 힘없던 얼굴에 다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언령 마법을 베이스로 하는 마탑에서, 혼자 꿋꿋이 매개 마법을 연구하는 녀석이다. 무지(無知)에 가로막히면 알 때까지 공부를 하던 녀석이니, 환경만 만들어 주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선배, 내가 적어 주는 것들 좀 구해다 줘.”
“알겠다.”
사라의 손에서 하얀 마력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휙― 카를이 손에 들고 있었던 종이를 빼앗아 간 그녀가 연필을 손에 들었다.
빠르게 종이에 목록들을 써 내린 사라는 그 종이를 카를에게 내밀었다.
“일단은 이만큼.”
“…오케이.”
거의 서른 개에 달하는 목록들.
구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부르르―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뺨을 치며 정신을 깨운 사라가 이어서 말했다.
“다시 제대로 시작해 보자.”
* * *
그날 이후, 리안의 분위기는 사뭇 바뀌었다.
전염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주민들도 도시의 의원들이 모조리 소집되는 것을 보고 심각함을 약간은 깨달은 것이다.
사라는 일곱 명의 의원들을 데리고 하루 종일 연구에 몰두했다.
마탑에서 그랬던 것처럼,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계속 연구만 반복했다.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의원이 있을 정도였다.
“쯧….”
그러는 사이에 카를은 마수를 사냥했다.
마수의 추적과 제압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카를이 유일했다.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애초에 빙의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세 번째 마수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나직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푸른 털의 원숭이를 닮은 마수.
덩치가 약간 작고 팔은 더 긴 긴팔원숭이 마수.
그리고 강가에 나타난 악어를 닮은 마수까지.
총 세 마리의 마수가 일주일 동안 리안 주위에 출몰하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크로우 가문의 당주들은 정기적으로 영지의 마수를 토벌해 왔다.
사역을 당하지 않은 마물은 동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나, 마수는 야생 상태로도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잦아서였다.
국경 지대에서 마족이 사역하는 마수가 어슬렁거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영지 내에선 마수를 볼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셋이나 되는 마수가 출몰했다.
마수가 먹이로 삼는 덩치 큰 짐승이라곤 곰 몇 마리가 전부인 곳에서.
사도의 개입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나, 카를이 마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도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빌어먹을.”
카를은 욕을 씹어뱉으며 마수의 사체를 회수했다.
병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샘플이었다.
마수의 사체와 사라가 구해 달라고 부탁한 재료들을 가지고 리안으로 돌아왔다.
“각하, 각하를 만나 뵙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나를?”
사라에게 물건들을 넘기고, 연구실로 개조된 창고를 나선 순간 테나가 다가와서 말했다.
그녀가 직접 와서 말을 할 정도면 중요한 사안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예. 백십자 성당의 신부님입니다.”
백십자교. 가톨릭을 베이스로 한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가상 종교 중 하나.
현실의 가톨릭처럼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종교였다.
리안 같은 작은 도시에도 청사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성당이 지어져 있었다.
그 성당에서 예배를 올리는 신부는 귀족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이 도시의 주민들 대부분이 신자일 것이고, 차석 집행관인 테나도 ‘신부님’이라며 존칭을 쓸 정도이니.
“…만나 보겠다.”
“그러면 각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카를은 그녀를 뒤따라 청사의 정문 쪽으로 향했다.
무늬라곤 하나도 없는 검은색 옷에 새하얀 십자가 하나만 달랑 걸고 있는 노인이었다.
다만 그 모습에서는 카를이 내심 놀랄 정도로 엄숙함과 신성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신앙심이 마력과 같이 힘의 형태로 존재하는 세계관인 것이 그 이유였다.
“반갑습니다. 영주님. 저는 리안에서 작은 성당 하나를 맡고 있는 알란입니다.”
인자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늙은 신부는 카를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카를은 그의 주름진 손을 맞잡았다. 괜히 어렸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네. 신부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노신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먼저 카를에게 제안했다.
“같이 걸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카를은 그와 함께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나이 때문일까. 신부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느렸다.
신부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예?”
“돌림병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 영주님께서 살신성인하신 덕분에 주민들이 안심하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어서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카를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한 뒤로 정말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통제를 벗어나서까지 교회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신자들의 예배를 막아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신앙은 꼭 성당에서 예배를 올려야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들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예.”
그 대화 이후로, 카를과 노신부는 한동안 말없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여름으로 접어들려고 하는 날이어서일까, 햇볕은 뜨거웠으나 바람이 시원했다.
“오늘 이렇게 제가 찾아온 것은, 미력하나마 영주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하여서입니다.”
“……도움이라면, 어떤 것이지요?”
“성당을 개방하여 부랑자들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리안은 작은 도시였지만 소수의 부랑자가 있었다.
최근에는 부랑자 한 명이 병에 걸렸는데, 격리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보고까지 올라왔다.
임시방편으로 빈집 하나를 급하게 정리해 격리해 두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그렇게 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또, 제게 이렇게 허락을 구하러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예. 그렇지만 고맙다는 말을 직접 전하고 싶었습니다. 지옥에서 굴러 나온 악마가 술수를 부린 것이 아닐까 하였는데… 영주님 덕분에 그 악마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사 주변을 쭉 돌아서, 다시 정문에 가까워졌을 때쯤 노신부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주님께 식사를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신부가 카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금색이어서 눈에 확 들어왔다.
날카로웠다.
신성한 분위기와 인자한 목소리와 달리, 치켜뜬 금색 눈동자는 날카롭게 카를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