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사도 (4)
“선배! 결과 확인했어!”
다음 날 점심 무렵이 됐을 때, 사라가 침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오늘이 정확히 3일째 되는 날이었으니, 사실상 이틀 만에 끝낸 셈이었다.
그 탓일까, 눈가에 패여 있었던 다크서클이 더더욱 깊어져 있었다.
“선배가 엊그저께 와서는 마력이 오염되고 있다고 했잖아? 딱 그거야. 마력 오염. 마수가 죽어 버리면 증상이 없어지는 것도 죽으면 마력이 사라지니까 당연한 거였고.”
“물이나 체액으로 전염이 되는 것도, 마력을 오염시키는 질병이어선가? 어쨌든 공기보다는 물이 신체에 영향을 끼치기 쉬우니까.”
“질병이라기보다는 흑마법의 일종이라는 게 맞을 것 같아. 어쨌든, 응. 물을 매개로 해서 전이되는 흑마법. 그렇게 생각하면 돼.”
빠르게 설명을 쏟아 낸 사라는 카를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제까지만 해도 끙끙 앓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근데 선배… 괜찮아?”
“…완전히 나은 것 같다.”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완전히 나았다고?”
사박. 사라가 카펫을 밟으며 다가왔다.
키 차이가 조금 있었던 탓에 그녀는 까치발을 하며 손으로 카를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오히려, 자신의 손보다 이마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나았네?”
구토와 복통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고열은 모든 환자의 공통된 증상이었다.
그 열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병의 증세가 호전되었다, 혹은 카를의 말처럼 나았다는 게 된다.
“뭐야, 어떻게?”
혹시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 제 볼을 꼬집자, 그대로 통증이 올라왔다.
아픔 때문에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눈으로, 그녀는 카를을 바라보았다.
“자, 자, 잠시만. 확증이 필요하니까… 칼리 좀 데려올게.”
그녀는 방을 뛰쳐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를 데리고 돌아왔다.
중간에 쉬지도 않고 달렸는지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피만 뽑아 가면 되는데 뭘 그렇게까지.”
“아. 맞네. 잠깐만, 채혈 도구 안 가지고 왔다.”
잠을 못 잔 탓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채혈 도구를 가지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피곤해 보이는 걸음걸이를 보고 카를이 말했다.
“됐다. 가져올 필요 없어.”
“……응?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아, 저 그게, 바로 흡수하는 게 가능하긴 한데….”
칼리가 소심하게 입을 열었다.
애시당초, 그녀는 자신의 피로부터 마력을 얻었던 혈마법사다.
그 과정에서는 신체 부위를 깨물어 피를 강제로 내는 것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남이더라도 흡혈귀처럼 피를 흡수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어… 그… 선배가 괜찮으면, 응, 그렇게 하고.”
“자.”
카를은 팔뚝을 걷어서 맨살을 드러냈다. 심장에 가까운 왼팔이었다.
그것을 본 칼리는 살짝 망설이는가 싶더니, 성큼 다가와 입을 살짝 벌렸다.
“윽….”
날카롭게 자란 이빨 탓에 카를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잠깐 동안 그렇게 팔뚝을 물고 있었던 칼리는 입을 떼고 몸을 돌렸다.
……마수의 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농도의 마력이 흐르는 피.
이것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는 충동을 짓누르며 칼리가 말했다.
“깨끗해요.”
“…정말?”
“네. 아주 깨끗해요.”
칼리의 말을 들은 사라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카를을 향해 물었다.
“호,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약이라도 만들었어?”
“…약이라면 약이지.”
“응? 어쨌든, 만들었다는 거네?”
“평범한 약은 아니야.”
카를은 그녀를 향해 노트를 내밀었다.
어제 하루 동안 백색용, 하늘꿈이 내린 축복으로부터 힌트를 얻어서 설계한 치료제의 제조법을 적어 둔 노트였다.
“선배, 이건 약이 아니라… 독, 아니야?”
사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한번 노트를 들여다보았다.
복용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체내의 마력 순환을 정지시키는 물건.
순환이 멈추면 마력의 오염도 멈춘다. 한곳에서 멈추지 못하는 마력 오염의 특성상 순환이 멈춘 몸속에서 반강제적으로 빠져나가게 되리라.
뭘 어떻게 봐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마법사한테는 그렇지.”
“……그런가?”
마법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체내의 마력이 적으니 강제로 빠져나가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꿈이 내린 축복은 ‘급속 치유’였다.
용족들이 상처 입은 동족을 치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축복.
사람인 카를은 그것만으로도 단숨에 몸이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갑자기 구역질이 치솟은 건 오염된 마력이 말끔하게 치유된 몸속에서 날뛰다가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
이미 통상적인 형태의 질병이 아님은 짐작하고 있었고, 사라가 분석해 내며 확실해졌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흑마법이라면, 단 한 번 마력을 토해 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노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사라가 중얼거렸다.
“가루로 만들어서 물에 타 마시게 만들면 되겠다. 그럼 흡수도 빠를 거고… 먹는 사람이 마법사가 아니면 부작용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세… 선배가 설계를 잘해 놔서 이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부터 시작하면 늦어도 오늘 저녁?”
“저녁이라….”
카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하늘은 자신이 세워 둔 결계로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조금 쉬고 있어라.”
“응? 한시가 바쁜 상황 아냐?”
“…애초에 약을 만든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 [최우선 목표 : 사도 제거] [보상 : 특성 포인트 +15]카를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았다.
아직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 * *
“…….”
시장 청사의 입구에 선 카를은 말없이 자신이 만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신성 결계로 둘러 싸여서 새하얗게 물든 하늘.
그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마력이었다.
“…좋아.”
마법은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되는 힘.
결계를 구축하는 데 걸린 시간을 단축한 방법은 오로지 카를 자신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사고하며, 새로운 상상을 떠올린다.
‘이 상태로 사도를 찾아내는 건 너무 번거롭다.’
알란 신부의 몸에서 빠져나간 사도는 계속해서 결계 내부를 배회하고 있었다.
결계 내부에서 누군가의 몸에 새로이 빙의하면 카를이 그것을 감지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리라.
영혼의 상태라면 육안에 보이지 않고, 결계 내부라도 포착하기 어렵다.
‘제 발로 나타나게 만들어야겠지.’
“후.”
그는 두 손을 펼쳤다.
결계를 구축하기 위해 폭발시켜 사방으로 흩뿌렸던 마력이 다시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잘만 활용한다면.
‘제령이나 신성 마법을 사용해도 효과를 보긴 어려울 테고….’
그에 대처할 마법을 고민하던 카를의 사고는 결국 돌고 돌아 결계 마법에 도달했다.
영혼을 색적하는 결계를 치거나, 신성 결계를 새롭게 구축해 범위를 좁힌다면.
‘색적 마법은 아니야.’
애초에 영혼은 색적 마법으로도 찾기 어려웠다.
사방에 마력이 퍼져 있어서 색적 마법을 사용하기엔 좋았지만, 사도를 상대로는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더군다나, 결계 마법은 한 번 범위를 설정하면 바꿀 수 없다.
새롭게 만든 결계의 범위 밖에서 사도가 빠져나가 버린다면 그대로 허탕을 치게 된다.
그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도를 걸러 낸다면.”
천천히 하늘을 둘러본다.
자신이 친 결계가 ‘어항’이고 마력이 ‘물’이라면 그 속을 유영하는 사도는 ‘물고기’가 된다.
어항에서 물이 빠지는 순간 물고기는 어항의 바닥에 가라앉게 된다.
그와 같은 원리로 결계 내부에 흩뿌려 놓았던 마력을 회수한다면, 사도가 마력에서 벗어났을 때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
“……그래.”
한번, 시도해 보자.
카를은 자신이 흩뿌려 놓았던 마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백색용의 축복 덕분에 몸이 회복되긴 했지만 체내 마력은 아직도 다 회복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몸은 스펀지처럼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스스로 중얼거리면서 회수하는 속도를 통제한다.
너무 빠르게 흡수하면 사도의 존재를 놓친다. 그렇다고 너무 느릿하게 흡수하면 감각이 무뎌져서 놓칠 것이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흡수하는 속도를 유지하며 자신이 흩뿌려 놓았던 마력에 감각을 집중한다.
“…찾았다.”
마치 길을 가다가 발에 채인 돌멩이와 비슷했다.
대략 300m 정도 떨어진, 성당 근처에서 명백한 ‘일그러짐’이 느껴졌다.
두고 볼 것도 없었다. 카를은 곧장 그곳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속세에서 흐려진 그림자가 드러난다.”
‘일그러짐’ 위로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게임에서 사도를 상대로 사용하는 군중 제어기.
과연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카를은 주변에 있는 작은 새를 사역마로 삼았다.
그 새의 눈을 통해 빛의 기둥이 내려꽂혀진 곳을 보았다.
“키익…!”
등이 굽어 있는, 임프를 닮은 괴물이 고통스러워하며 빛의 기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보였다.
사도의 본체.
마법이 영혼을 드러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카를은 사도가 위치한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각하를 따라서 이동한다!”
그런 카를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테나는 주위의 두 집행관, 알타냐와 베시아에게 명령했다.
세 사람은 카를을 뒤따라 리안의 골목을 내달렸다.
사사삭.
좁은 골목에 들어선 순간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렸다.
수백 마리의 벌레가 그늘에서 튀어나와 카를을 향해 날아들었다.
역병 메뚜기. 역병신의 사도가 부리는 권능.
“…타올라라.”
허나, 권능이어도 벌레는 어디까지나 벌레였다.
단 한마디의 영창으로 그 벌레들은 한 줌 재도 남기지 못하고 타올랐다.
직후, 골목 안으로 발을 들였다.
“키하아악….”
사도의 아가리가 쩌억 벌어졌다.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이변이 일어났다.
밟고 있는 땅이 요동치면서 썩어 문드러진 짐승의 사체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윽….”
알타냐가 숨을 집어삼켰다. 완전히 썩은 백골이라면 모를까,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아직 생전의 상태를 어느 정도 유지한 모습이 공포스러웠다.
허나, 카를의 눈에 그 모습은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네놈도 알고 있겠지.”
역병에 걸려 죽은 생물을 되살리는 권능.
허나 그 권능은 생물을 ‘완전한 모습’으로 되살린다.
썩다 만 시체의 형태로 되살아나는 것 자체가 권능이 불완전해졌다는 뜻이었다.
“네놈의 신이 네놈을 버렸다는 것을.”
“카악!”
카를의 말에 반발하려는 듯 사도가 기이한 소리를 내뱉었다.
죽은 사냥개 시체가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드득!
팔을 한 번 휘둘러 쏘아 낸 얼음 창이 그것의 아가리를 꿰뚫었다.
“키르악!”
사도가 제 권능을 또 한 번 발동했다. 이번에는 시궁쥐, 참새, 고양이 따위의 작은 생물도 되살아났다.
그 뒤, 놈은 바로 옆에 있는 집의 지붕을 기어 올라갔다. 시간을 끌면서 달아나려는 속셈이었다.
허나, 카를의 앞길을 막기엔 턱없이 모자란 전력이었다.
“…여기는 그대들에게 맡기지.”
“예! 각하!”
사도를 쫓아 지붕 위로 올라가자, 이미 바닥에 착지한 놈은 팔과 다리를 써서 원숭이처럼 내달려,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카를은 놈을 따라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시, 신부님…! 괘, 괜찮으세요?”
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견습 신부인 에뮬이 놀란 얼굴로 노신부에게 다가갔다.
노신부는 그런 에뮬이 거슬린다는 듯 팔로 확 밀쳐 버렸다.
“카를로스.”
노신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카를을 돌아보았다.
한없이 인자했던 얼굴이 사도의 악의에 뒤덮이고,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카를로스 크로우…!”
비명과도 같은 포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