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39
39화 해결 (3)
리안에서 출발한지 8일째 되는 날.
일행이 탄 마차는 저택에 도착했다.
“아으으… 멀미 때문에 죽는 줄 알았네.”
사라는 아직도 속이 메스꺼운지 제 가슴을 문지르면서 마차에서 내렸다.
후우, 하. 후, 하.
신선한 바람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녀를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잘 해결하고 왔니? 사라.”
그 누군가는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
북부 마탑의 탑주, 시아나였다.
“아, 앗. 네!”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네. 사실 치료제가 만들어졌다는 것까진 들었는데 그 이후 소식은 아직 못 들었거든.”
시아나가 사라를 바라보면서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마차에서 뒤늦게 내린 카를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안녕, 카를! 잘 해결됐다면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응응. 위험한 일은 없었고?”
“…….”
순간 카를은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그 모습을 보고 사라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뭘까 이 분위기? 꼭 카를이 나랑 한 약속을 어기고 뭔가 위험한 일을 한 것 같은데?”
“…….”
“이실직고하렴, 카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겠니?”
“…돌림병에 감염이 됐었습니다.”
“정말? 몸은 괜찮고?”
“예. 지금은 멀쩡합니다.”
카를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아나를 향해, 사라가 말했다.
“선배, 왜 자기 발로 가서 감염됐다는 말은 안 해?”
“……정말이니?”
“치료제가 급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기 몸을 써서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거구나, 우리 카를?”
그는 사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입을 움직여서 소리 없이 ‘내가 이른다고 했지?’라는 말을 한 그녀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아무리 치료제가 급해도 꼭 네 몸을 갈아 넣어 가면서까지 위험하게 그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
“…….”
“그렇지?”
“…네, 선배님.”
“이번엔 일이 잘 풀려서 괜찮았지만 정말 위험한 일이야. 또 그럴 거니?”
“……아뇨.”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고 있었던 카를은 잠자코 수긍했다.
안쓰럽다는 듯 카를을 바라본 시아나가 입을 열었다.
“근데 결계를 쳤다면서? 너희가 머무른 도시 주위로.”
“예.”
“그건 왜 친 거야? 하얀색 결계였다면서. 카를 네가 새로 만든 결계가 아니면 하얀색은 신성 마법이나 치유 마법인데… 치료제를 만들고 있었으면 치유 마법은 아닐 테고, 신성 마법을 쓸 일이 있었니?”
카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나의 눈이 살짝 휘둥그레졌다.
“선배님께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저희 가문 행정관이지요?”
“응.”
“…사도 때문이었습니다.”
곧장 본론을 꺼내자 시아나는 약간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뿐, 집행관들이나 사라와는 달리 그게 뭐냐고 되묻진 않았다.
“사도?”
“네. 그것 때문에 정보를 조금 조절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어, 혹시 탑주님은 사도가 뭔지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녀는 천외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법사.
특히 공간 계열의 마법사이기에, 이미 사도들이 제 신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다리로 사용하는 허상 공간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사도라는 개념을, 그녀는 알고 있다.
“응. 뭐라고 해야 할까… 악령? 귀신? 그런 것들이지?”
“선배는 귀신이라고 그러던데….”
“세세하게 따지면 귀신이 맞겠다. 아무튼, 사도가 나타났었다고?”
“역병신을 섬기는 사도였습니다. 돌림병도 역병이 아니라 흑마법에 가까운 것이었고요.”
시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결계를 쳤구나… 신성 결계에 갇힐 정도면 조금 약한 녀석이었고?”
“…네. 운이 좋았습니다.”
신성 결계가 혼을 가두는 결계라 하더라도.
강한 사도라면 그깟 결계는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카를은 새끼 백색용에게 허상 공간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용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모른다’였지만.
“선배님, 그런 의미에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말해 보렴.”
시아나는 다를 것이다.
“허상 공간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직접?”
“네.”
카를로스의 몸뚱이는 사도보다도 강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잠재력일 뿐, 당장 강대한 사도를 감당하기엔 힘이 모자라다.
이번 ‘이벤트’와 달리 다른 이벤트에서 훨씬 강한 사도가 나타난다면, 통상적인 마법으로 그들을 상대하기 어렵다.
신성 결계 따위로 가두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봐서 뭘 어떻게 하려고…?”
시아나의 입술 사이로 우려가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상 공간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의 공간이라면 사도가 취약해지지 않을까요.”
“그런 공간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카를 네가 결계로 만들겠다는 뜻이고.”
“네.”
카를의 말을 듣던 시아나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한 카를 본인도 그런 결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떤 반문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사라를 향해 물었다.
“사라, 너도 같이 가 볼래?”
“…아, 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 보겠어. 그치?”
“그, 그렇긴 한데요… 탑주님이랑 선배가 말하는 허상 공간이라는 곳은 사도가… 있는 곳, 아니에요? 되게 위험할 것 같은데….”
“사도도 있고, 용도 있고 신 비슷한 것도 있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나랑 있으면 괜찮아.”
사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앞선 걸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칼리라고 했나? 당신은 어떻게 할래? 같이 가 볼래?”
“아, 아뇨. 괜찮아요. 저는 조금 피곤해서….”
“알겠어. 그러면, 자.”
시아나가 카를과 사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는 것과 동시에,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찰나의 순간,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열린다.”
얼음이 바스러지는 것처럼 “쩌저적”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풍경이 바뀌었다.
무채색으로 물든 세상.
아니, 오직 잿빛뿐인 세상이었다.
―쿠우우웅.
천지가 뒤집히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거대한 날개가 지나갔다.
카를은 그것을 보자마자 일행 주위를 감싸는 결계를 쳤다.
그와 동시에 시아나가 발동한 방어막이 그들을 감쌌다.
그 덕택에 가까스로 날개가 일으킨 풍압에 휘말리진 않았으나,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용이 왜 여기에…?”
“백색용이야. 쟤네는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거든.”
“우와아….”
온몸이 새하얀 비늘로 뒤덮인 백색용이었다.
하늘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
고작해야 축구공만 했던 새끼용과 달리 성체는 고층 빌딩과 맞먹는 크기였다.
그런 용을 보면서 시아나가 중얼거렸다.
“운이 좋네. 평소엔 못 보는데.”
날아오른 용은 허상 세계의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한동안 그들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사람이 땅을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살라카야살라스.
―탈라라키.
이내 그 백색용은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온 사방에서 벌레들이 사각거리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흐릿한 것들이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흐아…?”
“겁낼 필요 없어. 저것들은 그냥 망령이거든.”
“망령… 이요?”
어느 망령이 카를을 향해 휙― 팔 같은 것을 휘둘렀다.
방어막과 결계를 뚫고 들어왔으나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반투명한 윤곽을 가진 팔은 그저 카를의 몸을 통과했다.
―이시칼라일라.
언뜻 보면 공포스러워 보이는 외형과 달리 침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신의 신에게서 총애를 잃은 사도들.”
―이칼리아사…!
“목적도 잃어버리고, 섬기는 신을 잃었기에 스스로의 존재마저 잃어버린 것들.”
시아나의 설명에 망령들이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허나 그게 고작이었다. 카를이 결계의 밀도를 높이자 목소리는 그저 묻혀 버렸다.
“그래서 망령이 된 게 저것들이야.”
“…아.”
시아나가 사라를 가르치는 사이 카를은 시아나의 손을 놓고 방어막으로부터 빠져나왔다.
물과 흙의 중간, 진흙 같은 바닥을 밟아 어느 망령을 향해 다가갔다.
―엘케리아사!
망령의 몸뚱이가 집채만큼 커졌다. 수십 개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이 돋아났다.
그것들이 일제히 꾸물거렸으나, 카를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허상 공간과 반대되는 성질의 공간.
이곳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공간을 파악하는 데 힘을 쏟았으나 간단한 힌트조차 얻지 못했다.
문득 자신의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사도를 본 카를이 생각했다.
‘단순히 총애를 잃은 존재라면.’
망령은 날카로워 보이는 발톱을 휘두르고 이빨로 깨물었지만, 그 모든 공격은 허사로 돌아갔다.
직후 카를의 손에 붉은빛을 띠는 마력이 모였다.
‘이렇게만 해도 될 텐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마법식의 도출이 끝났다. 카를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중얼거렸다.
“가여워진 것들에게 마지막 빛을 보여 주리라.”
흡사, 검과 같은 모양을 한 붉은 빛이 휘둘러졌다.
빛은 정확히 눈앞에 있는 망령을 노렸고, 꿰뚫어 갈랐다.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망령이 산화했다.
그 빛을 본 다른 망령들은 혼비백산하여 바쁘게 달아났다.
“…어렵네요.”
“뭐가?”
“이 공간의 성질을 도저히 모르겠어요. 알아낸다 해도 그 반대를 결계로 구현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완전히 꽉 막혀 버렸다.
카를로스의 지식도 그것을 ‘이해’한 정현의 두뇌도 알맞은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려운 게 정상이야. 어쩌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고.”
“…….”
“원래 신이란 게 그렇잖니? 결국, 이 공간은 신이라는 것들이랑 관련 있는 곳인데….”
그때, 멀리서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
달아났던 망령들이 한데 뭉쳐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망령이 뭉쳐 봤자 어떤 일을 낼 수는 없을 테지만,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오는 괴물이 있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연구하던 마법사들은 모두 죽거나 미쳤다고 그러잖아?”
나락으로 떨어진, 한때 신이었던 존재.
그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시아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얼마나 어려우면 마법사들이 미쳐 버렸겠어. 오늘 이렇게 잠깐 보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
“…그렇군요.”
“응. 그러니까 카를, 오늘은 일단 돌아가자.”
시아나가 카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카를이 그 손을 잡자마자 그녀는 마법을 영창했다.
우르르 떼 지어 몰려오는 망령의 쇄도가 닿기 직전, 그들은 원래의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카를, 네 연구를 먼저 완성해 봐. 그러면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제 연구를요?”
“응. 카를 네가 정리해 달라고 했잖아? 그때, 살짝 봤거든. 그냥 개요 부분만.”
미안하다는 표정 반, 재미있다는 표정 반. 살짝 미묘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꽤 흥미로운 이론이더라.”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카를로스의 연구가 남아 있었다.
한계가 명확한 결계 마법을 가지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던 근거.
카를로스 본인조차 전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연구에 그 근거가 담겨 있었다.
긴급 이벤트를 끝마쳤으니 당분간은 그리 큰일도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연구에 몰두할 수 있을 터.
그때, 카를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공자, 아니 크로우 공작님.”
환관 볼레르가 공작저의 정문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