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연구 (2)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사람 말을 하는 고양이였다.
샛노란 치즈색에 털이 반질거리는 고양이가 카를의 앞으로 다가와, 다람쥐처럼 허리를 세우고 일어섰다.
“…무슨 고양이가.”
카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기억의 회랑은 소유자의 사념과 마력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세계.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너는 누구… 엇.”
말을 꺼내는 것과 동시에 고양이는 바로 앞에 있는 서가에서 얇은 책 하나를 꺼내 와 전했다.
그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동시에 어느 [기억]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윽…?”
회랑 속에 저장된 카를로스의 기억이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비전(秘典) 정령, 에멘탈.
실험의 보조를 위해서 회랑 내부에서 창조된 사념체였다.
“이제 기억났다?”
“…아, 그래. 기억났다. 에멘탈.”
‘이 자식은 무슨 작명 센스가….’
에멘탈 치즈와 색이 비슷해서 에멘탈이었다.
자신이었다면 더 어울리는 이름을 주었을 텐데… 근데 확실히 치즈색이긴 하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카를을 향해 에멘탈이 물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왔다! 뭐 하다 왔다?”
다―로만 말을 끝내는 것이 에멘탈의 특징이었다.
카를로스의 미숙한 정령술로 창조한, 기억의 회랑 내부의 정령인 것이 원인이다.
하드웨어는 멀쩡한데 소프트웨어의 코딩이 어딘가 잘못된 기계와 비슷했다.
“…사정이 좀 있었어.”
“알았다! 그러면 어떤 것부터 먼저 하면 된다?”
“잠시만.”
이마가 지끈거렸다.
회랑에 들어온 이후 기억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두통이 좀 나아지자 그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일단, 이론 점검부터 하자.”
“몇 번이나 했던 거다! 다시 하는 거다?”
“그래, 다시. 철저한 게 좋으니까.”
“알았다!”
일반 정령도 아닌 사념 정령.
사실상 카를로스의 피조물이었기에 에멘탈은 군소리하지 않고 카를을 따랐다.
‘기억의 회랑은 영혼 자체를 분리하진 않는 건가.’
설정상 존재하는 영혼 회랑 따위는 영혼의 존재까지 구별했다.
그러나 카를로스의 영혼이 아닌 정현의 영혼이 들어왔음에도, 기억의 회랑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다.
앞서가던 에멘탈이 딴생각에 빠진 카를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인 뭐 한다?”
“가고 있어.”
카를은 에멘탈을 따라 회랑의 깊숙한 곳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기억의 회랑에서 가장 거대한 서가.
그 한가운데에는 카를이 회랑 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읽었던 문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
그러나 문서의 두께가 확연히 두꺼워졌다.
손가락 한 마디만 했던 것이 거의 그 두 배 정도 두꺼워졌다.
남들에겐 보여 줄 수 없는, 기억의 회랑 내부의 진짜 이론서.
가짜 이론서는 이 진짜 이론서에서 내용을 상당히 덜어 내어 밖으로 가져 나간 것이다.
카를은 그 이론서의 개요 부분을 다시 읽었다. 역시나 없었던 내용이 보충되어 있었다.
새롭게 얻은 이해 능력이 작용했다. 내용은 길었지만, 읽는 데 무리는 없었다.
약 15분의 시간을 들여 그것을 전부 다 읽어 낸 카를은 결론을 내렸다.
‘하긴… 남한테 보여 줄 수 없는 내용이긴 하네.’
정현이 살던 세상이라면 윤리적인 문제로 금지 되었을 내용이었다.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세계관에선, 특히 마법사들은 윤리 따위를 중시하지 않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이 본다면 비판받을 만한 내용이었다.
“다시 이론 점검 시작한다!”
회랑의 끝자락에는 검은색 칠판이 있었다.
에멘탈은 익숙한 듯 작은 사다리를 밀면서 가져와 칠판에 올라갔다.
카를 또한 칠판에 다가갔다. 분필을 잡은 그는, 칠판 윗부분에 이론의 제목을 썼다.
[마력 치환이 인간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이제 개요다!”
카를은 개요의 소제목들을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총 일곱 가지.
제1절 마력 치환이란.
제2절 마력 치환의 과정.
제3절 마력 치환의 통상적인 영향.
제4절 기존의 마력 치환이 갖는 단점과 한계.
제5절 인체가 한계까지 마력 치환을 시행할 때의 영향 측정.
제6절 영향의 결과를 극복할 방법.
제7절 연구 결과.
“마력 치환이 인간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 이론을 요약한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마력에는 한계가 있다.”
강한 마법사일수록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늘어난다.
허나, 카를로스 크로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던 에르딘 칼렉조차 결계 마법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결국 개인의 힘으로 결계 마법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마력 치환을 활용하면 최대 마력량을 늘릴 순 없어도 마력을 다시 충전할 수 있다.”
결계 마법이 갖는 이점 중 하나.
구축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도중에 마력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마력량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을 소모해 마법을 완성할 수 있다.
카를로스는 이 점에 주목했다.
“결계 마법의 한계는 결국 마력의 절대적인 양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균등한 마력의 분배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상대하는 입장에선 한 점에 힘을 모으면 뚫어 낼 수 있다.
뚫어내는 힘보다 분배된 마력이 강하다면, 그 한계를 극복했다 할 수 있지만.
‘강한 사도나 네임드 캐릭터면… 지금의 마력으로는 택도 없다.’
카를로스도 그것을 알았다.
당장 자신이 온 힘을 쏟아부어서 결계를 써도, 아직 실력이 한참 모자란 마탑의 후배 마법사들도 뚫을 수 있다.
“결계 마법을 구축하는 동안 마력 치환을 통해 마력을 확보하면 훨씬 안정된 결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소결론이다!”
에멘탈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첫 번째 소결론.
이후가 이 이론의 핵심이었다.
“허나 마력 치환 또한 한계가 있다. 먼저, 마법과 함께 쓸 수 없고.”
인간의 몸이 파이프라면 마법과 마력 치환은 서로 다른 종류의 가스였다.
하나를 사용하는 중에는 다른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력 치환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양은 총 마력량 중 적으면 1할, 많아도 8할에 불과하다.”
카를로스 자신의 총 마력량과, 거기에 8할을 더하면 시아나와 맞먹는다.
하지만 대마법사에 준하는 마력으로도 부족하다. 당장 대마법사였던 에르딘 칼렉 또한 부족했으니.
“동시에 마력 치환은 인간의 몸에 악영향을 미친다. 시행을 거듭할수록 체내 마력 순환이 불안정해지며, 인체는 망가진다.”
이 망가짐은 단순히 몸의 어딘가가 아픈 게 아니다.
암이나 방사능 피폭처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이것이 두 번째 소결론이다!”
“그러나.”
에멘탈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이론서의 심각한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육체의 회복 능력이 마력 치환으로 인한 악영향을 이겨 낸다면 반복해서 사용하여도 문제가 없다.”
“없다!”
바로 아래에 예시가 적혀 있었다.
사라가 실험을 하기 위해 입수한 마수 ‘에렌델의 달팽이’였다.
‘에렌델의 달팽이’는 독성 물질을 먹고 마력석을 뱉어 내는 마수.
사라가 해부한 결과 그 마수의 몸뚱이에는 소화 기관이 없었다.
마력 치환을 통해 마력석을 뱉어 내는 것이었다.
“…마수의 강대한 회복력은 반복된 마력 치환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치유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닌 이상 마수의 회복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다고 치유 마법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치유 마법 또한 회복에 한계가 존재했으니.
그걸 너무나도 잘 아는 카를로스 크로우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에 마수의 회복 인자를 이식한다면 인간 또한 마력 치환을 무한히 시행할 수 있으며 그러면 이식한 인자를 통해 마법과 마력 치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있다!”
……자신의 육체에 마수를 이식하는 것.
영화에 나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이론서에 적힌 실험 또한 비슷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실험이다!”
“…육체를 직접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마수에게서 회복 인자 추출과 그 이식의 실험이 필요하다.”
“이론 점검 완료다!”
그렇게 말한 직후 에멘탈은 양 앞다리를 들어 올리면서 와아다―! 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허.’
기뻐하는 에멘탈과 달리 카를은 속으로 탄식하고 있었다.
마수의 회복 인자 이식.
카를로스와 달리, 정현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자아내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망자.’
시나리오에 한정해서 등장하는 유닛이긴 하지만, 이미 게임 내에선 마족에게 마수의 육체를 이식해서 만들어 낸 괴물이 있다.
본래의 이성을 잃고, 마수처럼 포악해지며 마력의 중심이 심장에서 이식된 마수의 육체로 옮겨 가기에, 심장이 멈춘다.
이성을 잃고 심장까지 멈춘 것은 살아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게임 내 유닛명은 ‘마족 망자’였다.
‘이딴 걸 연구하고 있었던 건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카를을 바라보는 에멘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 오늘은 실험 안 한다?”
에멘탈이 말하는 실험은 마수 인자 이식 실험이 아닌, 회랑 내부에서 가능한 사고(思考) 실험이었다.
그중에서도 마력 치환 실험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실이 아닌 기억의 회랑 내부에서는 마력 치환으로 몸을 한계까지 몰아넣어도 부작용이 없어서였다.
“치환 실험 말이지? 그건… 일단 조금 이따가 하자.”
“알았다! 그럼 나 뭐 하면 된다?”
기억의 회랑은 사고 영역의 일부.
자신이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면 구현할 수 있다.
카를은 그릇과 생선 한 마리를 만들어 내 바닥에 두었다.
에멘탈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실체는 정령이지만, 그래도 고양이라는 것인지 생선을 보자마자 환장해서 달려들었다.
“주인, 고맙다! 잘 먹겠다!”
“그래. 맛있게 먹어.”
생선을 탐미하는 에멘탈을 두고 카를은 서가 사이를 걸었다.
회랑에서 들어온 기억에 의하면 카를로스는 원래부터 이런 종류의 실험을 준비한 건 아니었다.
“마력 치환으로 보충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시아나도 연구를 먼저 완성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잘만 사용한다면 분명 더 많은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론이었으니까.
“이론이 바뀌게 된 계기는… 마력 치환의 한계를 발견한 거고.”
마법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게 발목을 잡았고, 설령 마력을 보충해도 결계의 한계를 극복할 만큼의 마력을 확보할 순 없다.
결국 이론 자체가 그리 유용하지 않음을 애저녁에 깨달은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라의 해부를 도왔고….”
거기서 나온 게 ‘에렌델의 달팽이’였다.
마수의 육체를 이용하면 인체의 한계를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에렌델의 달팽이’를 본 이전의 카를로스 크로우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론이 변질된 것이었다.
어쩐지 딱한 마음이 들어 카를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 거렸다.
“네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스토리가 뒤집어지긴 했겠다.”
본래 가지고 있었던 힘 때문에 탑주가 아니면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최악의 망자가 되었거나.
혹은, 에르딘 칼렉을 뛰어넘는 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에멘탈!”
카를은 목소리를 높이자 치즈색 고양이는 생선을 먹다가도 달려왔다.
“주인 불렀다?”
“그래. 우리 잠깐 다른 연구를 해 보자.”
“다른 연구다?”
카를의 입가가 희미한 미소로 일그러졌다.
“승천에 대한 연구야.”
이 세상은 게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이 그랬듯, 이 게임에도 ‘각성’하는 캐릭터가 있었다.
그 각성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한계를 넘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