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46
46화 황제의 탄신일 (3)
“오라버니가 그동안 마법 공부만 한다고 마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건 잘 알아.”
그녀가 처음으로 끌고 간 곳은 어느 구석진 골목의 양복점이었다.
대로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에 그녀는 잠자코 따라오라고 할 뿐이었다.
“거기서 웬 로브만 입고 있었던 것도 알아. 그래서 패션에 딱히 관심이 없는 건 이해해. 정복? 충분하지. 평소였으면 나도 별말 안 했을 거야.”
피팅 룸도 하나뿐인 그 양복점의 주인은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었다.
그는 익숙한 듯 줄자를 가져와 카를의 몸 치수를 재기 시작했다.
“근데 오라버니, 이번에는 아니야.”
“…왜지?”
“왜냐니! 10년 동안 마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나온 오라버니를 궁금해하는 사교계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멋있게 차려입고 가기만 해도 주목이 끌릴 거라니까? 그다음에 다른 귀족들도 만나야 하잖아. 아냐?”
확실히, 칼리테도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제도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카를이라는 것을.
일부 귀족들은 미리 접촉을 해 오기도 했다. 탄신연 축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들과 미팅을 하기로 했었다.
정확히는 친목질에 가까운 짓이었지만.
“그리고 이번에는 더더욱! 잘 차려입고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하카인.”
“이번에 하카인은 초대받지 못했는데.”
“작년에는 우리가 초대를 못 받았어. 그걸 오라버니가 밀어낸 거야. 그럼 하카인보다 확실히 낫다는 걸 증명할 필요가 있겠지? 근데 거기서 그냥 칙칙한 정복을 입고 가면 어떻겠어.”
치수 재는 것을 끝마친 뒤 유리아는 옷을 만들 원단부터 작은 단추 모양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양복점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카인은 사교계에서 가장 발이 넓은 사람이었어. 그만큼 패션 감각도 뛰어나고, 외모도 출중해. 객관적으로 말해서 외모는 꿀릴 거 없으니까 옷차림만 신경 쓰자는 거지. 사람의 첫인상은 외모로 결정되는 거니까. 재단사님, 이게 어울릴까요? 아니지, 이게 나으려나?”
똑같은 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원단을 들고 이리저리 비교하는 유리아를 본 카를은 입을 다물었다.
의견을 피력하는 것보다 잠자코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너무 화려하면 안 되니까 이게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오라버니, 잠시만.”
그녀는 원단 하나를 들고 카를의 피부에 대어 보았다.
이거다,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유리아는 곧 생각을 바꾸었는지 다른 원단을 집어 들었다.
카를은 그녀의 행동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첫 번째 걸로 안 하고?”
“이게 개인적으로는 더 어울릴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이건 안나한테 안 맞아. 안나가 입을 거라고 했던 드레스는 연두색이었거든.”
그런가. 카를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재단사와 의견을 주고받은 그녀는 무려 네 벌의 옷을 주문했다.
겉옷으로 입을 재킷 하나와 두 벌의 연미복. 연푸른색의 정장이었다.
나흘 안에 완성될 것이라는 재단사의 말에 그녀는 웃으면서 값을 치렀다. 물론 카를의 지갑에서 나온 돈이었다.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네? 옷을 맞추러 이런 데로 온 게 신기해?”
“…신기하긴 하네. 귀족가나 대로에 있는 곳도 아니고, 네가 질색할 만한 곳이었는데.”
다른 영애들보단 덜하지만, 그녀에게는 귀족 특유의 선민 의식이 있었다.
하늘같이 높은 공작가의 영애로 태어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귀족 거리에 위치한 큰 가게도 아니고, 지저분한 골목에 위치한 작은 양복점에 간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스러웠다.
“칼리테 오라버니한테 소개를 받았어.”
“…그 녀석은 또 어떻게 저런 곳을 알았지.”
“원래 펠하임 가문의 전속 재단사였대. 자기 가게를 차리고 싶어서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칼리테 오라버니는 계속 저기서 맞춘다더라.”
칼리테의 옷차림은 확실히 여타 귀족과는 확실히 차이 나는 면이 있었다.
아예 게임 내에서도 ‘특이한 패션으로 항상 귀족들의 시선을 끈다.’라는 플레이버 텍스트가 있을 정도였다.
“그럼 이제 다른 데로 가자! 자, 출발!”
……이날, 유리아가 옷 한 벌을 사는 데는 무려 세 시간이 소요되었다.
* * *
황제의 호위 기사 라일은 심히 불편했다.
어째서 자신이 떠돌이 검사 따위와 목검을 가지고 대련을 펼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검사는 어디 한 군데가 모자란 놈이었다.
“서로를 마주 보아라.”
황궁 안채의 뒤뜰. 황족을 제외하면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공간.
흔들거리는 작은 그네와 아담한 연못을 사이에 두고, 라일은 검사를 마주 보고 섰다.
“후우! 기대되네요! 황실의 호위 기사와 싸워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라일은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목검을 쥐는 자세부터가 엉망진창이었다.
진검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죽이느니 감옥에 들어오는 게 낫다고 했던가.
저런 기본기로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부터가 어려울 것이다.
“준비하라.”
오래 끌 것도 없었다.
서로 검을 맞부딪힐 것도 없이, 파고들어서 목을 치면 된다.
그러면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황제도, 조금은 다시 볼 것이다.
“시작.”
그 목소리와 함께 라일은 단전에서 오러를 끌어 올렸다. 나무 막대에 불과한 목검은 오러가 실려 진검보다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다.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 뒤따를 뿐이다.
라일의 모습을 본 그가 말했다.
“오호라, 단순한 검술 대련이 아니라 오러를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알아서 하도록.”
“예! 그러면 무려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께 허가도 받았….”
순간, 라일은 시끄럽게 떠드는 그를 향해 단숨에 달려들었다.
오러로 강화된 다리의 순간적인 각력으로 인해 땅이 파일 정도였다.
거기에, 라일의 거대한 덩치는 흡사 곰이 돌진해 오는 것 같은 착각을 낳기에 충분했다.
“오?”
직후,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막혔다. 상대는 멀쩡했고, 라일의 검은 마찬가지로 오러를 두른 목검에 부딪혔다.
라일은 일단 뒤로 물러섰다. 찰나의 순간, 상대에게 반격의 여지가 있었다.
“이야! 기사님이 다루는 오러는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르긴 하네요. 몸 전체로 균등하게 사용한다니 전 그렇게 못 하거든요.”
“쫑알쫑알 시끄럽다!”
라일은 목검을 내찔렀다. 검사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피했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빈틈. 그는 다시 한번 검으로 찔렀으나, 이번에도 허공이었다.
“역시! 정확히 급소만 노리다니 호위 기사들은 무시무시하네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서 배운 검술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라일의 검을 침착하게 피하거나 방어해 냈다.
기본기는 엉망이었으나, 오러를 이용해 강화한 신체의 활용은 탁월했다.
“……하.”
싸움이 길어지는 것을 본 황제는 헛웃음을 흘렸다.
실질적인 호위의 역할은 ‘그림자’들이 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호위 기사라는 놈이 웬 방랑 검사 하나 이기지 못하다니.
그녀는 오랜만에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크윽!”
황제의 심경을 파악한 라일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달려들었다.
그런 그와 달리, 즐겁게 미소 지은 검사는 검을 휘둘렀다.
어디까지나 방어술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목검에 담긴 오러가 훨씬 강해진 것이다.
빠득!
라일이 손에 들고 있었던 목검은 그대로 박살 나면서 파편을 흩뿌렸다.
그리고 라일의 목에, 도리어 목검이 겨누어졌다.
“음!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
그는 즐겁게 웃으면서 목검을 거두었다. 황제의 눈이 살짝 휘둥그레졌다.
호위 기사들은 그래도 오러를 잘 다루는 자들이다. 특히, 황제의 호위인 라일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 기사를 상대로 속임수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순수하게 오러의 양과 질로 박살 내 버린 것이다.
“오러를 잘 다루는 모양이구나.”
“예! 오러를 다루는 건 자신 있습니다. 오히려 검술이 살짝 부족하지요. 그래서 순수하게 검술만으로 싸웠으면 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등 의미 없는 말이었다.
먼저 오러를 꺼낸 것은 라일 쪽이었고, 그는 마찬가지로 오러로 응수했을 뿐이니.
“그나저나 정말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이기려고 쓰는 검이 아니라 죽이려고 쓰는 검! 솔직히 급소를 파고들었을 때는 정말 식겁했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는 그와는 달리, 라일은 표정을 와락 구긴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러진 목검 자루만이 그의 악력에 비틀리고 있었다.
“네놈.”
“예! 폐하!”
“이름이 무엇이냐.”
“아, 제 이름은 아담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 뒤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리고 감히 자칭하기를, 검귀입니다.”
황제는 생각했다.
저자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라일의 검술을 살피느라고 수비 태세만 갖추었다.
그러고도 일격에 호위 기사를 꺾었으니 실력 하나는 대단했다.
“좋다.”
라일은 결투에서 삼중술사에 해당하는 마법사를 이긴 적 있었다.
그런 라일을 쉽게 제압했으니 삼중술사 정도 되는 마법사는 제압할 수 있으리라.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마.”
그렇다면.
카를로스 크로우라는 삼중술사는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하.”
오랜만에 즐거운 상상을 한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 * *
“유리아.”
“왜?”
“잠시 한 군데만 들렸다 가자.”
“응? 알았어.”
옷을 구매하고 가게에서 나온 유리아의 표정은 밝았다.
카를은 칼리아 학원으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데리고 귀족가의, 남성복을 취급하는 옷 가게로 향했다.
“옷은 다 맞췄잖아. 더 사려고? 그럼 아까 거기로 가지? 여기서 맞추려면 치수 다시 재야 할 텐데.”
“내가 입을 옷이 아니야.”
“그럼 선물? 오라버니가 선물을 할 만한 남자가 누가 있었지…? 설마 펠하임?”
“네가 입을 옷.”
유리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가게 안에 여성복은 천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입을 옷?”
“이번 기회에 네가 입을 정복을 한 벌 맞춰 두자.”
“……내가 남자들 정복을 왜 입어?”
“저번에 말했잖아. 공작위, 네가 맡을 생각은 없느냐고.”
카를의 말에 유리아는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바로 직후에 안나가 들어오고 두 사람의 대화를 문밖에서 엿듣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끝에 그 자리에서는 흐지부지한 이야기가 되긴 했지만.
“어, 어? 아?”
“네가 맡게 되면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남성용 정복이 필요하게 될 거다. 그러니까 지금….”
“자, 자, 잠시만! 그거, 그때 했던 말, 그거 진짜로, 진심이었어?”
“나는 네가 졸업하자마자 공작위를 양도할 생각이었는데.”
“…….”
유리아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기실, 그녀도 공작위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제도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광활한 영지에서 나오는 자원 덕분에 어느 귀족도 적대하지 못하고.
마족의 침략을 책임지고 방어하기에 황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것이 제국에서 크로우 공작이 가지는 위치다. 그런 위치에 오르는 것인데, 어떻게 욕심내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아덴은 맏이였고, 정식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카를에게는 마법이라는 힘과 뒤에는 마탑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
도저히 그 두 사람에게 덤빌 깜냥이 안 되어 얌전히 포기한 것이다.
“어…?”
대부분의 귀족 영애들이 그렇듯, 사교계에서 활동하며 정보나 물어 주다가 적당히 정략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포기한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왔다.
“내, 내가 공작이 되면, 오라버니는 뭐, 뭘, 할 건데? 마법 연구?”
“칼리테가 너희 학원 이사장인 것처럼, 나도 아카데미를 직접 관리할 생각이다. 당주가 가지는 모든 권한을 넘기긴 어렵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이미 자신에게 공작위를 넘기는 것을 상정한 말이었다.
유리아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으나, 자신이 상정하던 삶과는 너무나도 달라서일까. 넙죽 받는다고 하기엔 망설여졌다.
“내가 졸업하면 넘길 거라고 했지?”
“그래.”
“그, 그러면 졸업할 때까지 조금만 유예를 줘. 나도 고민해 봐야 하니까.”
“알았어. 그래도 옷은 미리 한 벌 골라 둬. 바로 승계식을 진행한다면 차질이 생기지 않게.”
“응.”
유리아는 가게 안에서 옷을 둘러보았다.
언젠가 자신이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손이 떨렸다.
그녀는 그렇게 어깨에 장식이 들어간 진청색의 정복을 골랐다.
“아, 오라버니. 나 이제 다시 가야 하는데… 통금 시간 거의 다 돼서.”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매장에서 나와 칼리아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의 정문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아와 같은 이유로 돌아가는 학생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들 사이에 홀로 가만히 서 있는 학생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카를.”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