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5
5화 공작가의 차남 (4)
저택의 앞마당. 거의 100명에 가까운 인간이 그곳에 있었음에도 사방이 가라앉은 듯 고요했다.
마법사.
만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존재. 그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 마탑에서 수행을 하다가 나온 마법사.
그 마법사의 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도 치료하지 못하는 무능한 마법사지만 내게 칼을 겨누는 자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있다.”
“끅….”
“기사는 주인을 수호하는 방패이고 적을 베는 칼이다. 네놈은 방패로 주인을 지키는 게 아니라 칼을 겨누었구나.”
기사가 몸을 움찔거리면서 떨어뜨린 검을 다시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칼자루를 잡은 기사는 검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너무 무거워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자신의 검을 보았다. 구둣발. 카를로스 크로우가 그의 검을 밟고 있었다.
“주인을 지키지 않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지. 검을 든 채 날뛸 뿐인 망나니다. 네놈은 망나니구나. 이 저택에서 사라져야 할.”
“크으윽….”
카를은 그의 검을 밟고 있었던 발을 떼고 등을 돌렸다.
수십 개의 경악이 담긴 시선이 그를 향했다.
“카일론.”
“예. 도련님.”
“저 자를 구속해 감옥에 가두어라.”
경비병들, 크로우 가문의 친위대들.
심지어 그 기사의 종자마저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기사의 무례가 먼저 선을 아득히 넘었고, 무엇보다.
“지금 움직이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카를로스 크로우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기사가 마법을 막기 위해 모은 오러가 깨졌다.
웬만한 마법사들은 오러를 깨뜨릴 만큼 강한 마법을 한 번 쏘아 내면 몇 분은 쉬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괜히 나섰다가는….’
오러를 다루는 기사도 겨우 숨만 붙어 있다. 그렇지 않은 평범한 병사가 저 마법에 직격당하면? 그 결과는 뻔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 만큼 아덴 크로우에게 깊은 충성심을 가진 병사도 없었다.
그들은 크로우 가문에게 고용된 것이지, 아덴 크로우에게 고용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형님.”
“도, 도, 동생아.”
“참으로 멍청한 판단을 내리셨습니다. 저주를 걸어 아버지를 살해하시다니요.”
카를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은 그 말 자체에 경악했고, 알았던 이들은 카를이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가에 대해 경악했다.
“그저 기다리면 될 일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마탑에 계속 머무를 작정이었고, 유리아는 여성이니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형님께서 가주가 될 것이었습니다.”
유리아는 제국의 수도로 유학을 떠나 있는 두 사람의 여동생이자, 크로우 가문의 셋째 딸이었다.
정현이 기억하기로는 유리아도 아덴 크로우의 술수에 죽었다. 가주는 물론이고 권력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언급된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셨냐고는 묻지 않겠습니다. 형님께서도 제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저를 전장으로 내쫓으셨으니.”
“살, 살려 다오….”
추레한 몰골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싫습니다.”라는 말을 내뱉고 싶었다. 그러나 카를은 그 마음을 억눌렀다. 이곳엔 시선이 많았다.
지구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도 형제간의 도리 따위를 따졌다. 그래서 아덴 크로우는 카를로스를 직접 죽이지 못하고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만 했다.
“나, 나는 살고 싶다.”
“죽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발….”
“대신 사람답게 사시긴 어려울 겁니다.”
카를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인들은 납작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었고, 잠시나마 자신에게 창칼을 겨누었던 크로우 가문의 병사들은 무릎을 꿇었다.
놀란 가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대 가주를 살해한 죄인 아덴 크로우를 지하 감옥에 가두어라.”
다만 몇 명.
기사가 쓰러진 순간, 이 자리에서 달아난 이들이 몇 명 있었다.
아덴 크로우에게 달라붙은 가신들.
바꿔 말하자면,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자신까지 죽이려든 반역자들.
‘기억나는 얼굴은… 없군.’
카를이 마탑에 들어간 건 11년 전의 일이었다. 저 가신들은 카를이 가문에 없는 동안 들어온 가신이었다.
‘아덴 크로우가 들여온 건가.’
크로우 가문이 아닌 아덴 크로우를 위해 일하는 자들. 아덴 크로우는 피를 나눈 형제라 죽이지 못하지만, 저들은 사정이 달랐다.
“저것들은 끝까지 쫓아서 목을 쳐라.”
“알겠습니다. 도련님.”
카일론이 발 빠른 병사 몇 명을 골라서 그들을 쫓게 만들었다.
죽어라 달려도 운동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귀족이기 때문에 병사의 추격을 뿌리칠 순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비대와 친위대는….”
허억.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가문 간의, 혹은 가문 내부의 분쟁에서 희생당하는 건 언제나 말단 병사들이었으니까.
수틀리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대들은 다만 크로우 가문을 위해 일했을 뿐이니 오늘의 일은 넘어가겠다.”
“……?”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임을 약속하지. 단, 무기는 내려놓도록. 이곳은 전장이 아니니까.”
…이었으나, 그의 말 몇 마디에 상황이 끝났다.
카를로스 크로우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카일론과 그의 병사들은 경비병들의 무장을 해제했다.
설마 이러고, 말이랑 다르게 죽이는 건가?
누군가는 그런 의문을 품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하루는 자신들이 경비를 설 테니 돌아가 있으라는 말이 들려왔을 뿐이었다.
* * *
[최우선 목표 달성!]특성 포인트 +5
내 방이 어디였지…?
카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그가 나고 자란 저택의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걸어가던 중간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 방’이라고 한 것에 의문을 품고 머리를 흔들었다.
카를로스의 방이지, 내 방이 아니다라면서.
“하아….”
기억 속에 있는 카를로스의 방을 찾아 들어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침대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원래의 카를답지 않은 행동을 해도 괜찮은 장소였다.
정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이 녀석은 사라진… 건가?”
의식 자체는 며칠 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느낀 카를로스 크로우의 ‘잔여물’도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몸은 이제 온전히 자신의 몸이 된 것이다.
“묘하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공작가의 아들이자 마법사가 되어 있었다.
“아니지.”
공작가의 아들? 아니었다. 카를로스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장례식까지 치렀다.
가주의 자리를 이었어야 할 형은 자신의 손으로 끌어내려 감옥에 처박아 버렸다.
그렇다면 크로우라는 거대한 가문의 주인은 누가 되는가.
방계의 친척? 아니면 지금 제국의 수도로 유학을 떠나 있는 여동생?
전부 다 아니다. 자기 자신. 카를로스 크로우가, 크로우 가문의 차기 당주였다.
“허….”
정신이 살짝 아득해지는 것을 느낀 정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빙의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음성을 천천히 떠올렸다.
―제국은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
아데나 제국.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플레이어블 세력 중 하나이자, 마지막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는 장소.
동시에 크로우 공작가가 속한 제국.
제국은 숱한 위기를 겪고, 천천히 멸망해 간다. 그 멸망을 막는 게 마지막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도중에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정현의 기억에 따르면 크로우 공작가는.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로 몰락하는 가문인데….”
시나리오의 초중반에 완전히 몰락해 버리는 장소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게임을 시작하기 직전, 정현은 아덴 크로우를 먼저 죽이고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덴 크로우가 아니라면….”
누가 이 자리에 앉든 간에 최소한 아덴 크로우보단 영지 운영을 잘할 것이다.
카를 자신이 못할 것 같으면 영지 운영은 동생, 유리아에게 맡기면 된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마족.’
제국의 북쪽과 마족의 영토는 서로 맞닿아 있다.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지만, 마족들은 제국이 삐걱대는 걸 알아차리고 침공해 온다.
그걸 제일 먼저 막는 게 크로우 공작가였다.
무능한 가주인 아덴 크로우는 마족의 침공을 그리 오래 막아 내지 못한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항상 빠르게 망했다.
“음….”
머리가 아파 왔다.
앞으로 고작 몇 년, 아니 어쩌면 몇 개월 안에 마족들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될 터였다. 며칠 전의 전투는 그 서막에 불과했다.
영지 내부의 반란을 진정 시키면서 마족까지 막으라고?
게임으로 할 때도 못 했던 걸, 이제는 직접?
“환장하겠네.”
카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창으로 배를 꿰뚫렸을 때의 고통이 되살아났다. 이건 꿈이 아니다. 죽으면 아마 영영 죽게 되리라.
‘얼마나 버텨야 하지?’
게임의 클리어 조건은 60분을 버티는 것.
게임 속 시간으로 1분은 1달이었다. 12 곱하기 5는 60. 간단한 계산 끝에 5년만 버티면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5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단 돈이 많아야지..”
세상 모든 일은 돈과 연결되어 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그건 돈이 부족한 거다.
마침 그가 빙의한 카를로스 크로우의 가문은 제국에 다섯 개뿐인 공작가. 이미 돈이 썩어 넘치도록 많고 긁어모을 방법도 많았다.
게임의 지식을 활용하면 황실보다도 부유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내가 강해지는 거지.”
목표는 제국의 재건도, 영지를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카를 본인이 살아남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 드는 이가 있더라도, 그자들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카를의 몸에 흐르는 마법사의 재능.
마탑에서 지낸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잘 갈고닦아진 재능을, 자신이 조금 더 다듬는다면.
‘사도보다도 강해질 수 있나.’
에라 오브 엠파이어에는 ‘사도’라는 특수한 유닛이 존재한다.
신의 힘과 그대로 가져다 쓴다고 하여 사도.
자원도 많이 소모하고 소환도 어렵지만 일단 소환만 하면 말 그대로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유닛이다.
잘만 단련한다면 그 유닛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는 게 카를로스 크로우의 몸뚱이였다.
‘만약 인게임 캐릭터로 나왔으면….’
제국 진영에는 사기 유닛이 세 개나 되는 건가.
카를은 혀를 내두르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제 스스로를 단련할 방법을 생각했다.
‘역시, 숙련도지.’
마법사 유닛은 같은 마법을 쓰게 해 두고 계속 전투에 참여시키면 마법의 숙련도가 오르며 해당 마법의 위력이 강해진다.
어렵게 생각할 게 없었다. 자신도 마법사 유닛과 비슷하게 반복해서 단련하고, 강해지면 된다.
“마지막으로….”
에라 오브 엠파이어는 엄연히 RTS 장르의 게임이다. 사도든, 사기 유닛이든 머릿수 앞에 장사 없다.
만약 마족의 군대가 떼거지로 자신을 몰아붙이면 혼자서는 힘이 부족할 것이다.
“…나를 위해 싸워 줄 사람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쳐 지나간 것은 마법사였다.
카를의 기억에 따르면 마법사들은 파벌을 많이 따졌다. 어느 마탑을 나왔는가, 어느 마법사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았는가, 등등.
즉, 자신이 하나의 파벌을 만들어 그 아래로 다른 마법사들을 모으면….
‘아니, 이 방법은 아니다.’
카를이 아무리 마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 실력자라 한들 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대마법사쯤은 되어야 자신의 파벌을 모아 마탑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곧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마탑이 아니라, 학교를 세운다면.”
마탑은 폐쇄적인 환경이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학연이든 연줄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카를로스는 크로우 가문의 방대한 인맥을 통해 마탑에 들어갔다.
그런 폐쇄적인 마탑과 달리 상대적으로 공개적인 학교라면?
그곳에서 다수의 마법사를 육성하고, 그중 일부만이라도 자신의 아래로 들여온다면?
“…아카데미.”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