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57
57화 거미의 속삭임 (3)
거미의 말에 카를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재차 확인하기 위해 겨우 입을 열었다.
“……크로우 가문의 공작을 말하는 건가?”
“맞아.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거미의 입에서 나온 자신과 관련된 정보는 천금을 주고서도 얻기 힘든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입을 다물고 동요를 티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거미는 팔 두 개를 써서 카를에게 차를 타서 내밀었다.
“제도의 펠하임, 서방의 라지엘 동방의 클레라리온, 남방의 하카인 그리고 방금 말한 북방의 크로우. 이 대귀족들은 모르는 사람이 더 적겠지만… 아무래도 카를로스 크로우라는 이름은 조금 덜 알려진 게 사실이야.”
카를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면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면 당황한 게 티가 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 카를로스 크로우의 이름이 확 알려진 일이 있었지. 이런 낡고 좁은 공방 주인의 귀에 들어올 정도로.”
“……공작위 찬탈, 때문인가?”
“그게 시작이었어. 공작위를 무력으로 찬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 제국 말고 대륙에 있는 다른 약소 왕국의 영토가 공작의 영지보다 작다는 걸 생각하면… 왕위 찬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차, 어떤 걸로 탔는지도 말 안 해 줬는데 잘 마신다?”
카를은 찻잔을 내려놓고 그 내용물을 보았다. 보리차처럼 약간 짙은 색이었고, 맛도 비슷해서 의심하지 않고 마셨다.
여기에 뭔가를 탄 건가.
그렇게 찻잔을 노려보는 카를의 모습을 본 거미가 키득대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곡물차야. 안심해. 아무튼, 카를로스 크로우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그거지. 그런데 그 이름이 제도의 백성들 귀에까지 들어간 이유는… 마족 토벌 때문이야. 들어는 봤지?”
“그래.”
“내가 듣기로는 침입한 마족의 수가 약 50. 마물은 한… 200쯤 되는 걸로 아는데. 아무튼, 그 정도면 대군이지.”
소문은 이리저리 전달되다 보면 과장되고 부풀려지는 법이다.
실상은 그 수의 절반도 안 되었으나, 카를은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대군을 마법사이기도 한 공작이 직접 나서서, 직접 토벌했다. 이렇게 된 거야. 과장을 조금 보태면… 영웅의 탄생이지.”
“영웅이라.”
“제국의 입장에선 영웅이지. 그 많은 마족과 마물이 전멸을 했으니까 감히 국경을 넘을 생각도 못 하고 있거든. 근데 마족들 입장에선 영웅이 아니지. 재앙이야. 반드시 제거하고, 배제해야 할 대상이지.”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거지?”
“이제부터 내가 줄 정보가 그거랑 관련이 있거든.”
그렇게 말한 거미는 앉아 있었던 의자에서 내려와 카운터 아래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물건을 뒤적이던 그녀는 카를을 향해 어떤 액체가 든 약병을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알아?”
액체는 회색빛에 찰랑거렸다.
약물에 관해 공부한 기억은 없다. 카를로스에게도, 그리고 정현에게도.
카를이 고개를 젓자, 거미는 짓궂게 웃으면서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확 들어 올렸다.
“펑!”
“…….”
“전혀 안 놀라네… 어쨌든, 이건 마력과 공명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액체야. 여기에 술식 몇 개를 미리 조합해 두면 마력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폭발을 일으킬 수 있어.”
“……카를로스 크로우를, 폭탄을 이용해 죽이려고 한다는 건가? 마족들이?”
“으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마족들이 노리는 게 카를로스 크로우 한 명이 다가 아니거든.”
그 말까지만 들어도 짚이는 게 있었다.
“설마, 황제 폐하를.”
“정답이야.”
거미의 대답을 듣자마자 카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돌아서 나가려는 순간 거미가 뻗은 손이 카를의 손목을 잡았다.
“더 안 들어? 나, 아는 게 좀 많은데.”
“…어디까지 알지?”
“으음… 어디까지 아느냐고? 내 고객 중에는 마족도 있어. 그중에는 인간과 싸우기보다는 대화로 풀어 나가고 싶어 하는, 온건한 마족. 내가 어디까지 알 것 같아?”
“…….”
“그 마족을 만났을 때 독기 찬 두꺼비 같은 표정으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고… 나는 그림자 밖으로 못 나오는 사람이니 편하게 털어놨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
그 말을 들은 카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카운터 앞에 앉았다.
거미는 아까 위협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마법을 이용해 문을 틀어 닫았다.
“일단,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 줄게. 마족 중에는 인간을 싹 다 죽여 버려야 한다는 포악한 녀석들이 있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온건한 녀석들도 있어.”
“그래서?”
“그런데 상황이 참 묘해. 포악한 녀석들은 많이 섞여 있거든. 순혈도 있고 잡종도 있어. 그런데 마족들은 핏줄이 곧 신분이야. 잡종들은 순혈이 말하면 넙죽 따라야 한다는 거지.”
“……웬 정신 나간 순혈 한 놈이, 잡종들을 데리고 황제 폐하를 암살하려는 모의를 하고 있다?”
짝짝짝―
거미가 손들을 한 번씩 부딪히자, 박수 소리가 세 번 났다.
“이해가 빠르네. 하여간 그 늙은이가 제자는 잘 키워. 아무튼, 그놈이 제 아래에 있는 잡종들한테 명령을 내려서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거야.”
“마족 놈들이 죄다 회까닥 돌아서 저지르는 일은 아니다… 그럼 그놈은 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거지?”
“동생이 죽었다더라. 카를로스 크로우한테.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겸, 대의랍시고 황제까지 같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해가 되었다.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그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카를로스 크로우한테 슬쩍 접근해서, 내가 한 말을 전해 줘. 그러면 그 공작은 나름대로 대책을 세울 테고, 호위는 더 엄중해져서 마족들의 암살은 실패하고 정보를 알려 준 당신은 승승장구한다… 이거지.”
“이런 걸, 나한테 말해 줘도 되나?”
“안 될 이유가 뭐 있어? 이용권을 가졌는데도 돈도 멀쩡히 냈으니까 해 주는 서비스지.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죽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카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령술사들이 일으키는 ‘죽음의 축제’ 따위의 작은 이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답은 확실히 하도록 하지.”
“다른 건 필요 없으니까 돈이나 많이 가져와.”
거미는 공방을 나서는 카를을 향해 손들을 흔들어 준 뒤, 바로 시선을 돌렸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고밀도의 영혼석. 이걸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 * *
카를은 그 길로 곧장 제도 안에 있는 칼리테의 저택으로 향했다.
대문을 두드려 자신의 이름을 대자마자 하인들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차가 나오기도 전에 칼리테가 들어왔다.
“나를 급하게 찾았다고 들었는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심각한 일이다.”
“…그래?”
차와 다과를 준비해 응접실로 들어오던 하인은 그 말을 듣고 바로 물러섰다.
문밖의 인기척이 사라지자마자 카를은 거미에게서 들은 말을 입에 담았다.
“마족들이 폐하에 대한 암살 모의를 하고 있다.”
카를의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평소답지 않게 딱딱하게 굳어졌다.
칼리테는 목소리에서 장난기를 지우고 물었다.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방식은 폭탄. 마력과 공명을 일으키는 약물에 술식을 조합해서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시기는… 아마 탄신일 축제의 마지막 날.”
“마지막 날?”
“그놈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나야. 주동자가 내게 동생을 잃었다더군. 하지만 제도에서 테러를 저지른다는 미친 짓을 하려면, 나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만 가지고는 명분이 부족하지.”
“그러니 카를로스 너와 함께 폐하까지 노린다는 건가… 일리가 있는 추측이군. 마지막 날에는 폐하께서도, 너도 확실히 참가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보의 출처는? 신뢰할 수 있나?”
칼리테의 물음에 카를은 잠시 고민했다.
그는 거미의 고객 중 한 명이다.
은빛 거미에게서 들었다고 했다가, 의심 많은 칼리테가 카를이 어떻게 거미와 접촉하게 되었는지 파고들게 되면 되레 곤란해진다.
카를은 그럴듯한 대답을 지어냈다.
“수용소.”
“…수용소?”
“저번에 국경을 넘은 마족 중 생포한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불이 네놈들을 심판할 것이다. 이딴 말을 지껄였다더군.”
“불이라.”
“거기에 수용소를 관리하는 집행관이 조치를 취해서 얻어 낸 정보다. 신뢰할 수 있어.”
칼리테는 카를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너희 가문의 집행관이라면… 그래, 확실하겠군.”
“걸리는 게 없었나?”
그의 정보력이라면 단편적인 실마리는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칼리테는 전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의아함을 느낀 카를이 묻자 칼리테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없었지. 우리 가문의 비밀정보부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내가 명령을 내리는 것만 조사하거든.”
“…….”
“어쨌든 꽤 심각한 일이군. 우리끼리 이야기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야.”
칼리테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응접실 테이블 위의 작은 종을 흔들었다.
딸랑딸랑.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시 뒤, 하인 한 명이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목례했다.
“손님을 이쪽 응접실로 모셔 오도록.”
하인은 허리를 깊이 숙인 뒤 응접실을 나섰다. 그 말을 들은 카를이 물었다.
“…선객이 있었나?”
“용무는 끝났어. 손님께서는 저택을 구경하고 계셨지.”
계셨지.
칼리테가 자리에 없는 제삼자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 제삼자가 황족일 때였다.
“어, 음.”
새로운 인물이 응접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두 명의 수행원이 그 인물을 뒤따라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제의 동생, 팔란 대군이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대군 저하.”
“아, 음. 저는, 아니, 나는 괜찮았… 네. 음. 앉게, 크로우 공작.”
자리에서 일어나 예법에 따라 인사를 올리는 카를을 본 팔란 대군은 짐짓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펠하임 공자. 내게 다시 할 말이 있나?”
“대군께서 직접 발걸음을 옮기시게 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크로우 공께서 가져오신 정보를 알려 드려야 할 듯하여서 그랬습니다.”
“어떤 정보이기에?”
아직 앳된 얼굴의 대군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응접실의 상석에 앉았다.
“마족들이 황제 폐하에 대해 암살 모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뭣…?!”
“아마 그놈들은 대군 저하마저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을까. 감히, 그리 추측하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중고등학생 정도 되었을까.
칼리테의 말을 들은 팔란 대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갔다.
“그, 그럼, 어찌해야겠는가?”
“그 문제로 대군 저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크로우 공, 대군 저하께도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까?”
카를은 칼리테에게 했던 것처럼 팔란 대군에게도 설명했다.
경악해서 크게 뜬 눈은 작아질 줄을 몰랐다.
설명을 모두 들은 팔란은 으으음… 하고 깊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일단, 황실 기사단을 움직여서 그 마족을 찾아서… 그래! 제압해야겠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하.”
“그, 그러면 크로우 공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 아니, 좋을 것 같나?”
“이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져선 안 됩니다.”
카를은 단호하게 말했다.
꿀꺽 침을 삼킨 팔란 대군이 되물었다.
“어, 어째서인가…?”
“대군 저하께서도 폐하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소문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래. 누님, 아니 폐하와 관련된 헛소문들… 말이지.”
“예. 그런 소문들이 퍼져 있는데, 하필이면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제도에 마족이 테러를 벌이려고 한다는 게 공공연하게 알려지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제도까지 마족의 손에 넘어갔는데, 황제는 제 생일이나 즐기고 있다.
지금 상태로는 이런 소문이, 혹은 이보다 더한 소문이 돌 것임은 안 봐도 뻔했다.
황제의 소문이 나빠지는 것은 카를로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기사단을 움직일 게 아니라 소수 정예의 인물들을 따로 차출해 조용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 일리가 있는 말이군. 펠하임 공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흐음.”
칼리테는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한참 동안이나 고민을 이어 갔다.
펠하임 가문은 황실만큼이나 제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만큼 이번 일에서도 칼리테의 의견이 중요했다.
고민을 끝낸 칼리테는 자세를 한 번 고친 뒤 진중하게 말했다.
“저는 크로우 공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어, 어째서인가?”
“대군 저하도 아실 것이고, 특히 크로우 공께서 제일 잘 아실 겁니다. 마족들의 행동은 이미 선을 한참 넘었습니다.”
“……화, 확실히 그렇긴 하지. 크로우 공 그, 그대는 그것들에 의해 죽을 뻔했다고도 들었네.”
“이런 상황에서, 놈들이 이 제국의 심장인 제도와 황제 폐하를 건드리려고 하는데… 저희가 이것을 감추어 가면서 테러를 저지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 칼리테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얼핏 보면 팔란 대군이 아니라 그가 앉은 자리가 상석처럼 보였다.
“강경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일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으음, 그것도 맞는….”
“칼리테.”
차갑게 가라앉은 카를의 목소리에 말을 하던 팔란 대군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펠하임은 “왜 그러지?” 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경한 대응은 곧 보복을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카를은 칼리테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보복을 행하면 그다음엔 전쟁이 벌어질 텐데, 그건 칼리테 네가 감당할 생각인가?”
냉기로 가득 찬 응접실 안에서, 오직 팔란 대군만이 덜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