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63
63화 변수 (2)
카를은 이고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불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황궁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될 정도라면 실전을 치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즉, 적어도 겔라누스는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기사다.
‘오러와 흑마법은 상반되는 힘인데….’
그러나 같은 육체를 공유하는 이고르는 흑마법을 다룬다.
어린애 장난 같은 마법이 아니라 단련된 마법이었다.
결계를 부수진 못했지만 거기에 균열을 낼 정도였다.
“그런데….”
카를은 긴장한 얼굴의 이고르에게 물었다.
“흑마법은 어디서 배웠지?”
“어, 예?”
“그 정도로 숙련된 흑마법이면 독학으로 깨우치기는 어려울 터인데.”
더군다나 다른 머리인 겔라누스는 기사다. 말투와 동작에 기사들 특유의 예법이 배어 있었다.
기사이면서 흑마법사.
전혀 맞지 않는 조합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겔라누스가 기사가 되는 동안 이고르는 흑마법을 단련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게 가능했다면….’
정현이 모를 리가 없다. 아마 네임드 캐릭터 중 한 명이 되었을 테지.
그러나 제국 측에 쌍두 오우거 네임드는 없다. 전체를 통틀어도 필드에 등장하는 중립 유닛 하나가 전부였다.
“누군가에게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말없이 오랜 시간 동안 고심하던 이고르가 말했다.
“그러면?”
“혼자서 배웠습니다.”
“흑마법을, 혼자서. 그것도 그대의 형제는 오러를 단련하면서 말인가?”
“예!”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카를은 바로 옆에 있는 겔라누스를 향해 물었다.
“그대의 형제의 말이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기사로서의 제 명예를 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그대들, 심장이 몇 개인가?”
카를의 질문에 그들은 즉답했다.
“두 개입니다.”
서로 다른 심장에 오러를 쌓고 마력을 단련한 것이라면, 말이 된다.
더군다나 게임에 등장하는 쌍두 오우거는 심장을 두 개 가진 놈이었다.
지금, 소속된 기사단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것이라면 시나리오에서 중립 유닛으로 등장하는 이유가 말이 된다.
“그렇다면.”
중립 유닛은 토벌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적과 싸우게 만들 수도 있다.
어중간한 3티어 유닛까지는 그냥 씹어 먹는 유닛이었으므로….
“그대들 모두 용아귀 기사단에 입단한 것을 환영한다.”
약간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쌍두 오우거는 서로를 한 번씩 마주 보았다.
눈빛을 몇 번 주고받은 뒤, 겔라누스가 대표로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장님!”
* * *
“오우거를 기사단에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시간쯤 뒤, 카를은 황제를 독대했다.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은 것인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른함이 묻어 나왔다.
“용아귀 기사단에 입단하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피력하여서 받아 주었습니다.”
“흐음… 그런가? 짐도 그 오우거를 만나 보았다. 친위대장 녀석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황실 기사단에서 일할 정도는 아니더라고 하더군.”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흑마법의 위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결계를 깨뜨리지 못했다.
영창도 하지 않고 만들어 낸 결계임을 감안하면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아마 오러 또한 비슷할 것이다.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 힘을 담는 그릇이 둘로 쪼개졌다는 것이 되니까.
“그것 또한 그대의 계획 중 하나인가? 인간이 아닌, 이종족까지 포용해 보겠다는?”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아아…… 그래, 그랬지. 그대가 혼혈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황제가 말한 것처럼, 이종족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종족 차별이 법으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은연중에는 남아 있었으니까.
그나마 인간과 큰 차이가 없는 종족이면 모를까, 쌍두 오우거나 오크 같은 종족은 여전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해서 공작, 용아귀 기사단에 속한 기사가 벌써 다섯 명이 넘었구나.”
황제가 직접 임명한 부단장과, 카를을 직접 찾아와 입단을 요청한 기사가 셋이 있었다.
기사단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 다섯이었다.
다섯이 되지 않더라도 황제가 유지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일단 명분상 다섯이라는 숫자는 지켜야 했다.
“일단 원칙적으로 황실에 소속된 기사단은 제도에 머물러야 한다.”
“예. 알고 있습니다, 폐하.”
“헌데… 그대는 본연의 일에 집중을 해야 하니 곧 북방으로 돌아가야겠지?”
카를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쩐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기사단장들은 기사단을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짐에게 보고를 올려야 한다. 짐이 그대의 고충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관리의 일은 부단장에게 일임하였지만…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있어 형식적으로나마 짐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기적으로 제도로 와야겠구나. 오는 김에 북방에 대한 소식도 가지고 오면 좋을 테고… 차나 한잔하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지. 두 달에 한 번, 아니지… 달에 한 번은 어떻겠는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또, 제도에 정기적으로 들려서 나쁠 건 없다.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그의 대답을 들은 황제는 싱긋 웃었다. 제도에 머무르는 동안 카를은 그런 황제의 얼굴을 거의 처음 보았다.
평소에 밤늦게 잠들어서 해도 뜨기 전에 눈을 뜬 것과 달리 오늘은 잠을 오래 자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실상은, 그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래서, 언제쯤 제도를 떠날 생각인가?”
“사절단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오늘 떠나겠다는 말이구나. 하긴, 공작 그대는 바쁜 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레지엘 공작과 클레라리온 공작은 진즉에 제도를 떠났다.
본래라면 카를도 탄신일 축제가 끝나는 날 떠날 계획이었으나, 암살 모의 사건에 엮여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입학생들이 하나둘 아카데미로 모여들고 있었고, 리안의 역병 건도 완전히 진압되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거기에 곧 강림할 사도의 대비까지….
언제까지고 제도에 발이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허면 함께 가지. 그대는 그들을 보아야겠고, 그자들은 짐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황제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를은 그녀를 뒤따랐다.
황궁의 거대한 응접실. 기가 죽다 못해 절망했다고 해도 될 만한 얼굴을 한 사절단들이 그곳에서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를의 말을 듣고 귀환을 택한 마족도 수갑을 찬 채 응접실 한 구석에 박혀 있었다.
“분위기가 축 처져 있군. 왜들 그러는가? 잠을 잘못 잤나? 피곤하거든 더 쉬었다 가도 좋다.”
“아, 아니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폐하.”
사절단의 우두머리가 머리를 조아렸다. 다른 이들도 엉거주춤 허리를 숙였다.
어제 식사 자리에서 황제는 그들에게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카를이 황제에게 제의한 것으로, 제국의 입장에서 시나리오의 공략을 위해 필요한 사항이었다.
어디까지나 제국의 입장을 생각했기에 마족들의 입장에선 터무니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면 다행이로고. 짐이 한 말을 잘 전달해야 할 것이네.”
“…예, 폐하.”
하지만 황제의 암살을 모의한 마족들이 현장에서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과 함께 붙잡힌 이상 그 요구 사항들을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귀국하게 되면 그 요구 사항을 마왕에게 전달해야 하니, 그들이 초상집 분위기인 것은 당연했다.
“짐의 탄신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먼 길을 와 주어 고맙네. 내년에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
형식적인 인사말과 함께 황제는 몸을 돌렸다.
응접실을 나가던 그녀는 흘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잘들 가시게나.”
가면을 벗은 황제는 사절단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살기를 띤 목소리였다.
사절단이 공포에 벌벌 떠는 사이 응접실의 문이 닫혔다.
황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가지, 공작. 짐이 직접 그대를 배웅해 주마.”
“망극하옵니다. 폐하.”
“망극은 무슨. 고마웠네, 공작.”
조금 전의 살기 띤 목소리는 연기였다는 것처럼 그녀는 온화하게 말했다.
“잘 가시게. 앞으로도 짐의 강직한 신하로 남아 주기를 바라네.”
“…예, 폐하.”
카를은 다만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깊이 숙이고 황궁에서 빠져나왔다.
대문을 나갈 때까지 황제는 궁궐의 입구에 서서 카를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제도에서 카를의 모든 공식적인 일정은 끝을 맺었다.
유리아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고, 졸업할 때까지는 카를의 제안에 답변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리고.
‘결혼이라….’
아나스타시아에게서는 유리아와 마찬가지로 졸업을 하면 본격적으로 일정을 잡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일정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한 건 없지만, 맥락상으론 하나뿐이었다.
카를과 그녀의 결혼. 10년도 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펠하임 가문과 크로우 가문 사이의 정략결혼.
“…….”
생각만 했을 뿐인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본 정현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마냥 어렵게 느껴질 뿐이었다.
“…일정을, 최대한 미뤄 보자.”
최소한, 지금 나와 있는 퀘스트를 해결할 때까지만이라도.
카를은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제도의 슬럼가에 있는 한 마법 공방이었다.
“………어?”
낡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른 팔들을 숨겨 놓고 책을 읽는 거미가 보였다.
거미 또한 그를 흘깃 보았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뒤편의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어때? 일은 잘 해결됐지? 돈은? 가져왔어?”
카를은 카운터에 묵직한 주머니를 올렸다.
거미의 팔 네 개가 움직이면서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거미는 황금빛 미소를 지으면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잘 해결됐나 보네? 이런 거금을 들고 오고?”
“그대 덕분이다.”
“내 덕분은 무슨. 당신 씀씀이가 좋아서 신께서 보답해 주신 거지. 아. 맞다. 내가 희귀한 차 씨를 구했는데 마셔 볼래?”
거미가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서 내밀었다.
카를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언젠가 맡아 본 특유의 향기였다.
“…커피.”
“아, 커피라고 불러? 어쨌든, 씨를 갈아서 물에 타 마시는 차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더라. 향은 좋은데 너무 써.”
“마시겠다.”
“음? 쓴 거 좋아하나 봐?”
카를은 카운터 주변을 살폈다. 그라인더와, 필터 역할을 하는 종이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거미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받으면서 두 잔 치의 커피를 만든 카를은,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
“뭐야, 되게 맛있나 보네? 취향도 독특하다.”
“마시고 싶어도 못 구하는 물건이다. 이건, 어디서 났지?”
“남쪽에서 온 손님이 줬어. 제국 말고, 더 남쪽에 있는 나라에서 온 손님.”
제도에서 칼리테가 내온 커피를 마시고 카를은 직접 구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칼리테를 제외하면 커피를 아는 사람 자체도 없었고, 게임 내에서도 언급이 없었기에 구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제국이 아닌,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이었다.
‘그래서 칼리테는 알고 있었던 건가.’
외국 사절들도 많이 만났을 테니,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으리라.
사소한 이야기도 잊지 못하니 에스프레소 같은 단어도 알고 있었던 것이고.
한동안 커피를 음미하며 그런 생각을 하던 카를은 온기가 식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본론을 꺼냈다.
“…물건은 어떻게 하고 있나?”
“아직 계획을 짜고 있지. 어떻게 해야 최고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고.”
“그러면 계획서 같은 것이라도 보여 줄 수 있나?”
카를의 물음에 거미는 환하게 웃으면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 안에 있어서 보여 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
“너무 급한 거 아냐? 이런 영혼석은 일차적인 가공만 몇 주가 걸리는데? 며칠 만에 찾아와서 그러면 나도 곤란해. 그 영감탱이 제자면 다 알 텐데 왜 그럴까.”
“이 분야에 있어서는 셰르핀보다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얌전히 카를이 타 준 커피를 마시던 거미가 흡, 하는 소리와 함께 토끼처럼 눈을 떴다.
공방은 겨우 촛불 몇 개가 전부였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렇지! 맞아,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아직인가?”
“아무리 그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또 당신이 주문이 애매하게 한 것도 있어. 형태는 상관없으니까 효율을 끌어내라고 했잖아? 근데 내가 이런 영혼석을 만져 본 적이 있어야 효율을 끌어내지 처음 보는 건데 어떻게 해.”
거미가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최소한으로 잡아도… 반년?”
“반년이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대는 거미였다. 음지에서 신분과 이름, 게다가 외모까지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반년 후에 다시 이곳에 온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녀가 마음을 바꿔서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 어렵다. 팔란 수정 같은 물건은 또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불안하군.”
“뭐가 불안한데? 뭐, 내가 설마 돈이랑 영혼석만 먹고 도망칠까 봐?”
“그래.”
“나 이래 뵈도 장사꾼이야. 상인은 신뢰로 먹고산다는 말도 몰라?”
“신뢰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상인은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긴 한데… 불안하면, 당신이 뭐 어떡하려고? 내 옆에 계속 붙어 있게? 어머, 설마 나 같은 여자가 취향이야?”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카를이 물었다.
“다시 마탑에서 마법사들을 가르쳐 볼 생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