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이방인 (3)
하트의 퀸.
하얀 테이블 보 위에 널려 있었던 카드들.
그리고 한 명 씩 돌아가면서 카드를 뽑던 상황.
“…….”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이변을 눈치챈 칼리가 입을 여는 것과 함께 다른 이들의 시선이 움직인다.
의자도 없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카드를 하고 있었던 이방인이 히죽, 미소를 짓는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얼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이방인의 손에 들려 있는 카드가 떨어진다.
활짝 웃고 있는 ‘도둑’ 카드.
“……으.”
그러고서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허깨비를 본 것으로 치부하려고 했지만, 카드가 떨어지면서 난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렸다.
그 기억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히죽 웃던 미소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들었을 땐, 꿈에서 그것이 나와 제대로 잠을 망쳤다.
“혹시….”
그 사람은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기억을 옮겨 놓는 마법이라던가.
마탑의 마법사들은, 중요하고 잊어선 안 되는 기억을 따로 보관하기도 한다는데.
“…….”
끼이익.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열었더니 괜히 더 큰 소리가 났다.
칼리는 살금살금 저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저택은 고요해진다.
원래도 그랬지만 그 ‘괴물’이 밤에만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더더욱 그랬다.
탁.
“윽?”
칼리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 벌레가 창문에 부딪혀서 난 소리였다.
그녀는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중간에 하인을 마주쳤지만 하인은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제 갈 길을 갔다.
똑똑.
문 앞에서 고민하던 칼리는 크게 마음을 먹고 노크를 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문이 열렸다.
“칼리?”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은 그녀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다크 서클이 진했다.
거의 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는데.”
“…일단 들어오지.”
잠옷 차림인 탓에 잠깐 고민했지만 카를은 그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에서 비켜 주었다.
문을 닫은 후 카를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칼리는 가만히 서 있었다.
테이블보를 덮은 천이 똑같은 것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그녀의 상태를 대강 파악한 카를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여럿이서 지내도 될 정도로 널찍하고 가구도 많아서 앉을 곳은 많았다.
책장 앞의 의자에 앉아 자리를 권하자, 그녀는 그제야 앉았다.
“응. 기억에 관한 건데… 괜찮을까?”
“기억?”
“잊고 싶은데,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어서.”
“그 ‘괴물’ 이야기인가?”
칼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떻게 알았어?”
“하인들이 그 이야기밖에 안 하더군. 내 저택에,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그대가 처음으로 보았다지?”
“맞아.”
마물은 물론이고 마수, 심지어 사도까지 두 눈으로 목격한 테나마저도 ‘수명이 깎일 정도’라면서 두려워했다.
그런 괴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주했다면 충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기억을 덜어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들었어.”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럼 나한테 그 방법을 알려 주면 안 돼?”
카를은 잠시 고민했다.
원래의 카를로스가 창안한 이론은 회랑에서 지워 내어 자신의 머릿속에만 남았다.
설령 회랑을 보여 주더라도, 문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
카를은 금고에서 크리스탈 해골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가진 지식과, 그것을 관리하는 사념 정령 에멘탈이 있는 곳.
“탑의 마법사들은 이런 물건을 써서 기억을 보관한다.”
“……다른 사람의 두개골에?”
“모양이 이럴 뿐, 뼈가 아니라 마석이다.”
“아… 미안해. 그래서 이게 뭔데?”
“기억의 회랑. 자신의 기억을 분리해서 따로 담아 놓을 수 있는 물건. 보통 마법사들은 자신의 지식을 담아 놓는다.”
“그러면 거기에, 내 기억을 담을 수도 있어?”
카를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불가능하다.”
“왜?”
“소유자의 마력을 구분해서 그의 기억만을 받아들이는 물건이다. 그대의 기억을 담으려면 그대만의 회랑이 필요하지.”
“그, 그럼 그 회랑이라는 건… 쉽게 구할 수 있어?”
“구하는 건 가능하지만… 아마 오래 걸릴 거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 제작하는 물건이거든.”
“아.”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언뜻 무덤덤해 보일 정도로 표정이 굳은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약이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게 아닌 것 같군.”
“벌써 2주나 지났는데, 기억이 너무 생생해. 방금 있었던 일처럼.”
“아마 감정 때문일 거다.”
“무슨, 감정?”
칼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그나마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기억으로부터 편해졌다.
“공포, 놀람, 혐오 등등… 그 순간에 느꼈던 강렬한 감정들.”
“그게 기억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기억이 아니라, 마법과 관련이 있다. 혈마법은 감정을 소모하는 마법이거든.”
카를의 말을 들은 칼리는 자신의 마법에 대해 떠올렸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자신이 마법을 사용할 때는 어떤 감정에 휩쓸려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목에 쇠사슬이 차여 있을 때는, 대부분 분노였다.
“감정을 소모하는 마법에 익숙해지면, 이성이 감정을 이끌어 내기 전에 몸이 먼저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러면 부작용이 생기지.”
“…부작용? 그럼 내가 지금 이런 것도… 그 부작용이야?”
“그런 셈이다.”
칼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송곳니로 엄지를 깨물었다.
피가 터져 흘렀다. 입 안에서 감도는 비릿함과 함께, 그녀는 마력을 느꼈다.
확실히 마력이 민감했다.
지금 마법을 쓴다면, 평상시보다 훨씬 강한 마법이 되지 않을까.
“부작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데?”
“몸이 먼저 감정을 잊지 못하도록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 두지. 그 감정이 특히 그것이 처음 맛보는 감정이라면 더더욱.”
“…처음 맛보는 감정.”
“미지에 대한 공포.”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 기억. 확실히 그런 괴물은 칼리가 처음 보는 종류의 괴물이었다.
마물이나 마수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척도 없이 다가와, 사람처럼 카드 게임을 했고, 알아차리자 여유롭게 사라졌다.
불쾌했고, 끔찍했다.
“나 같은 혈마법사들은 다 이런 거야?”
“일종의 성장통이지. 정말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감정이 닳아 없어진 사람이 아니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감정을 무기로 쓰는 혈마법사들은 자신의 트라우마조차 강한 감정이라는 이유로 무기로 삼는다.
그 설정집의 내용을 떠올린 카를이 말을 이었다.
“혈마법사와 서클에 마력을 쌓는 흑마법사들 중에 광인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다. 항상 새로운 감정을 찾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미쳐 버리거든.”
“……아하.”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자기 세 명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근데, 말이야.”
하지만 여전히 저택 안에는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러 사람이 있을 때만 나온다지만, 괴물이 마음을 바꿔서 혼자 있을 때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괜히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서클에 마력을 쌓는 흑마법사는, 왜 감정을 소모해?”
“감정을 소모해서 마법을 쓰기 때문이지.”
그는 다리를 꼬아 앉으면서 답했다.
질문을 그대로 대답으로 들려준 것과 다름없는 대답.
의문을 느낀 칼리가 물었고.
“응?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그 순간, 카를은 손 안에서 얼음을 만들어 내어 휘둘렀다.
쾅!
짧은 단검 형태의 얼음이 책장을 때렸다. 그 충격의 여파로 책 몇 권이 바닥에 떨어졌다.
“쯧.”
카를이 혀를 차는 것과 동시에 사람의 형체는 눈이 녹는 것처럼 사르륵 흘러서 허물어졌다.
“으흐으.”
기이한 웃음소리를 흘린 그것이 씨익, 미소 지은 뒤 모습을 감추었다.
단 한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보고 말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것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약 카를이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카드 게임을 했을 때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을 게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군.”
카를은 떨어진 책들을 다시 꽂아 넣으며 중얼거렸다.
어떤 징조도 없이 나타났고, 마력의 뒤틀림도 감지하지 못했다.
사라지는 순간에야 약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령이었다.
“칼리.”
“…….”
“칼리.”
“아, 응.”
“많이 놀랐나?”
카를의 물음에 그녀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저런 괴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자기는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실상은 누군가 지금 자신을 본다면,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정도였다.
“조금.”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자존심과 최대한 타협한 대답이었다.
“다행이군.”
“……뭐가, 다행인데?”
약간 불만이 묻어 나오는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카를은 자신이 아는 설정의 일부를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감정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경우가 간혹 있거든.”
“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한 것이다.
카를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기억의 회랑을 칼리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문득 해골의 눈구멍을 들여다보았다.
텅 비어 있었으나, 어쩐지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이제 이 괴물이 뭔지 알아낼 차례군.”
“…당신도 모르는 게 있어?”
“많지. 하지만 이 회랑 안에 담아 놓은 지식을 찾다 보면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순수한 유령은 아니니, 무언가의 사역마거나… 아니면 그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
이면 세계를 들락거리는, 괴물.
“혼자보다는 둘이서 찾는 쪽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렇겠지?”
“함께 들어가 보겠나?”
“…들어간다고?”
그냥 기억만 담아 두는 물건이 아니었어?
칼리는 속으로 놀라움을 삼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카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이 남자는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혼자 있지 말라고 배려를 해 주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걸까.
“그래.”
진정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피해 다니지 말고 직접 마주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 문장의 출처는 이 이 저택의 서재에서 읽은 책이었다.
그걸 이 남자가 모를 리가 없다. 지금 그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극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당신을 따라갈게.”
그녀는 카를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