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아카데미 (4)
“이건 수업 신청한 아이들 목록이야. 이건… 강의할 때 쓰면 되는 자료고.”
입학식이 끝난 직후, 시아나는 카를을 따로 불러서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해서 건넸다.
마탑이 아카데미와 통합된 지금, 그녀의 직책은 ‘총장’이었다.
본인은 사양했지만 카를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총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원래 탑주니까 총장이 맞긴 한데….’
아카데미는 교복을 제외하면 대학에 가까웠다. 탑주인 그녀가 총장을 맡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정현이 아는 대학교 총장과는 상당히 달랐다.
신입생들에게 직접 강의를 하는 총장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니까.
“카를, 듣고 있지?”
“네, 선배님.”
“잘 들어야 해. 솔직히 카를, 너 애들 가르치는 건 잘 못하잖니?”
“…….”
카를은 입을 다물었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에 반해 시아나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한다.
어느 정도 실력 있는 제자들만 가르치는 다른 탑주들과 달리 어제 들어온 신입도 직접 가르칠 정도다.
“네가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한테 알려 주려고 만든 강의야. 애들이 답답해도 화내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그건 알지?”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카를이 그녀 대신 수업을 맡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시아나가 다른 탑주들에게 승격 시험 일정을 물어보고 오는 며칠, 딱 그 기간 동안만 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기본만 하자.’
어차피 자신에게 가르치는 재능 따위는 없으니, 괜히 잘 가르치려고 하다가 이해만 시킨다는 정도로 접근하면 될 터이다.
그런 카를의 의중을 읽은 것이지 시아나는 빙그레 웃고는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러면 카를, 나 가 볼게.”
“예, 선배님. 다녀오시지요.”
시아나는 활짝 웃으면서 공간을 비틀어 열었다.
그 너머로 그녀가 넘어가자마자 쪼개졌던 균열이 다시 닫혔다.
몇 번을 봐도 감탄이 나오는 깔끔한 마법이었다.
“……흠.”
카를은 시아나가 준 수강생 명단을 확인했다.
익숙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리아 프라헨과 플레어 아셸.
원래라면 이곳에 없었을 캐릭터들.
“이것 때문에, 이변이 생기진 않겠지.”
아카데미에 머무르는 동안, 카를은 가능한 많은 방법으로 두 사람을 비롯한 네임드들의 성장을 도울 요량이었다.
문제는 다른 네임드들과 달리 두 사람은 검사다.
카리아는 그 모티브가 된 인물처럼 검과 깃발을 무기로 쓰고, 플레어는 ‘황금의 검사’라는 이명에서 알 수 있듯 검을 쓴다.
이 두 사람에게 검이 아닌 마법을 가르쳐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검은 따로 가르쳐야겠군.”
영지 곳곳에서 불러온 용병 검사들이나 검을 잘 쓰는 집행관들이 아카데미에 있다.
가르칠 수단은 많고, 기회도 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요소였다.
마법사가 되기를 희망했으니,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자신의 몫이었다.
“…삼 일 남았나.”
시아나를 대신해서 들어가는 월요일의 첫 강의.
약 60여 명의 학생들이 마법에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수업.
카를은 시아나가 남기고 간 자료를 읽으며 강의를 준비했다.
* * *
“하….”
한숨 소리와 함께 금실로 수놓인 두루마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두루마리의 구석에는 누군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본디, 햇볕이 내리쬐는 태양을 상징하던 직인이 다시 백여 년 전에 쓰이던 용을 상징하는 직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딴 걸….”
직인의 모양이 바뀐 것은 중요하지 않다.
금실이 놓인 두루마리는 제국의 외교 문서 중에서 최고 등급을 의미한다.
최고 등급의 문서는, 오직 황제만이 보낼 수 있었다.
“잘도 내게 가져왔구나.”
마왕, 이시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순간 마력이 준동하며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엎드려 있었던 사절단들은 바닥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박았다.
“눈깔이 없어서 내용을 보지 못한 거냐? 아니면 대가리를 장식으로 달고 있는 거냐?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분노에서 비롯된 열기가 알현실을 가득 채웠다.
“이딴 걸 나한테 보여 주진 않았을 텐데.”
마왕은 바닥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주워 들었다.
다시 보아도 내용이 가관이었다.
국경선에서 10km를 무조건 후퇴할 것.
암살 모의범과 연관 있는 자들을 엄중히 처벌할 것.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귀족 자제들을 포로로 보낼 것.
여기에, 막대한 배상금까지.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하는 요구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저, 저, 저희를 죽여 주십시오….”
“진짜로 죽여 버리기 전에 닥쳐라.”
“…….”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옥좌가 위치한 알현실의 바닥에는 지워지지 않는 피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승천자인 그녀는 남의 눈을 개의치 않는다. 마음을 먹으면 그걸 행동으로 옮겼다.
“……하.”
마왕은 한숨을 내쉬고서 옥좌로 돌아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가 가라앉았다.
곧 싸늘할 정도로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승천자인 그녀의 기분에 따라 대기가 멋대로 요동치는 것이었다.
“잘못도 없는 자네들에게 짜증을 내서 미안하군.”
“……아, 아니옵니다. 전하.”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 보지. 어차피 국경 지대에 거주하는 백성은 얼마 없으니 국경선은 포기할 만하다. 그리고… 네놈.”
그녀는 사절단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황제와 크로우 공작의 암살을 모의한 놈.
순혈 귀족들 중에서도 특히 지위가 높은 가문 출신이라 그녀도 잘 아는 자였다.
“네놈의 동생도 그렇고 네놈도 그렇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을 저지를 걸 알면서도 만류하지 않은 네놈의 아비의 목을 베어야겠느냐, 아니면 네놈의 모가지를 베어야겠느냐.”
“아, 아버님께서는 소인의 행동에 대해 전혀, 전혀 모르셨습니다….”
“네놈의 모가지를 베어야 된다는 소리구나.”
조곤조곤한 목소리였지만 그 살벌한 내용 때문에 남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일단, 이 건은 보류하지. 무가치한 모가지를 베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그리 말한 마왕은 몸을 옥좌에 기댔다.
인간과 내통해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인간들에게 모가지가 날아간 그의 동생은 몰라도.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 그를 처형하면 저들의 아비가 분노할 것이다.
“빌어 처먹을….”
나라가 사실상 둘로 쪼개져 있다.
이미 서쪽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연합 놈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대귀족의 분노를 사서 지지를 잃는 건 치명적이다.
그렇다고 죽이지 않으면, 제국에 꼬투리를 잡힌다.
“그다음은….”
귀족 자제들을 포로로 보내는 것.
굴욕은 둘째 치고 포로를 보내야 하는 귀족들은 대부분이 마왕을 지지하는 순혈들이다.
부모인 그들이 자식을 잃어버리고도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이건… 그 애송이 황제가 떠올린 것이 아니군.”
제 목소리 한번 내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황제가 이쪽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
조력자가 있다는 뜻이다.
“자네들, 황제 옆에 누가 있었는지 보았나?”
“예, 예. 전하.”
“대답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게 누구인지 지껄이라는 뜻이었다.”
“아, 그, 그것이… 펠하임 가문의 공자와….”
“공자‘와’라고 했나? 또 누가 있었다는 뜻이겠군?”
“예, 예. 전하. 크로우 공작이, 공작 까마귀가 그 옆에 있었습니다.”
마족들은 크로우 공작을 공작 까마귀라 불렀다.
까마귀 깃발을 사용해서 혹은 공작이 나타난 전장에는 까마귀밖에 남지 않아서 굳어진, 오래된 호칭이었다.
이시엘은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제야 사정이 대강 이해가 되었다.
“공작 까마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아덴 크로우라는 놈은 고위 마족 한 명을 끌어들였다. 지금 눈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놈의 동생이었다.
공을 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놈은 아덴 크로우와 결탁해 원래 크로우 공작을 죽였고, 둘째 공자도 죽이려고 했다.
전자는 성공했지만 후자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 대가로 놈은 목숨을 잃었다.
“내 실책이군.”
아마 그 둘째 공자, 카를로스 크로우는 그 과정에서 심문이든 회유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이쪽의 사정을 알아냈을 것이고.
그 상태로 황제에게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공작이 되었으니, 지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이를 빠득 간 그녀가 말했다.
“부하 관리를 똑바로 못 한 내 실책이겠지. 그렇지 않나?”
탄식과 함께 중얼거린 그 말에 다른 이들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정을 알면 이걸 전부 이행하라고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제 형이랑 달리 머리를 잘 쓰는 영악한 놈이로군.”
그리 중얼거린 마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루마리를 대충 말아서 사절단 중 한 명에게 툭 던져 주었다.
“그 공작 놈이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나?”
“……예, 전하.”
“직접 찾아오라는 건가. 건방진 놈 같으니.”
쯧. 혀를 찬 그녀가 신하들을 향해 물었다.
“강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대비도 되어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워도 문제는 없으렸다?”
“예, 전하.”
“그럼 다녀오마.”
고개를 조아리는 신하들 사이를 걸어 마왕은 알현실에서 걸어 나왔다.
새로운 공작 까마귀, 카를로스 크로우.
놈의 얼굴을 직접 보아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 * *
클레멘트 아카데미 마법학부 제1관.
월요일 첫 번째 강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건물은 점점 학생들로 채워져 갔다.
그걸 본 카리아는 입학식 날을 떠올렸다. 그만큼 사람이 많았다.
“카리아! 여기!”
학생들 틈에서 높이 팔을 뻗은 플레어가 그녀를 불렀다.
입학식 때 옆자리에 앉은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카리아는 플레어와 함께 강의실로 들어갔다.
“…사람 진짜 많다.”
기초 마법학 강의가 진행되는 1―A 강의실. 그 안으로 들어간 카리아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강의실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다 자신과 똑같은 학생이었다.
“이 수업이 총장님… 아니, 마탑 탑주님 수업이라잖아. 당연히 사람이 많지.”
“진짜?”
“입학식 끝나고 강의 신청할 때 못 들었어?”
“……기억 안 나. 그냥, 플레어 너 따라서 신청한 거라서.”
“아휴, 얘가 정말. 일단 앉자.”
앞쪽 자리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했지만, 뒤쪽 자리는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카리아와 플레어는 강의실 뒤편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진짜 탑주님이 수업하시는 거야?”
“나는 그렇게 들었어. 여기 보면 담당 교수님 성함이 시아나잖아. 이게, 탑주님 성함이래.”
“탑주님이 수업을… 헐.”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카리아도 마탑의 이야기는 몇 번 들어 보았다.
탑주는 곧 대마법사이며, 그 대마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재능 있는 마법사들이 돈을 싸 들고 탑으로 찾아간다고.
돈을 내지도 않고 공짜로 입학한 아카데미에서, 그런 대마법사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여기가 원래 대학이었다가 마탑이랑 합치면서 아카데미가 된 거잖아? 마탑에서는 원래 탑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다고 하더라고. 아마 그래서 직접 수업을 하시는 거 아닐까?”
“마탑이랑 합쳐진 거였어?”
“…카리아, 너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입학한 거야?”
“설명을 듣긴 들었는데… 까먹은 것 같아.”
플레어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쩔 수 없다. 자기가 잘 챙기는 수밖에.
이곳에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를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때,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탑주가 아니었다.
스스로를 이사장이라고 소개한 크로우 가문의 공작이었다.
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라는 공작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원래 오늘 있을 기초 마법학 강의는 시아나 총장님께서 진행하는 수업이지만,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은 제가 맡아서 진행할 것 같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신분은 한참 낮다.
그런 자신들에게 거리낌 없이 존댓말을 써서 말하는 카를을 보는 학생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카를은 자신이 준비한 대로 침착하게 강의를 이어 나갔다.
“기초 마법학 강의는 말 그대로 마법의 기초를 배우는 과목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마법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뭘까요?”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마력입니다!”
“정답입니다. 마력이 필요하죠. 그런데 마력이 있으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이번에도 가장 앞에 앉은 남학생이었다. 카를은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면, 어떤 마법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강의를 통해, 한 학기 동안 마력에 익숙해지고 그걸 다루는 방법을 배울 겁니다.”
카를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그 손에서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다룰 수 있을 만큼 유연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이 교실을 제 마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네?”
“여러분이 마력을 써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시도해 보세요.”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