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대마법사들 (3)
멸지(滅地).
카를이 아한 수정을 발견한 곳과 비슷한, 마법적 작용이 발생해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
하지만 웬만한 경지에 이른 마법사에게 멸지는 그리 위험한 땅이 아니다.
“확실히 일라이트는 일전에도 몇 번 멸지에 간 적이 있었지.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군.”
특히 멸지에는 마법사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온갖 진귀한 물건이 많다.
은빛 거미는 멸지의 아한 수정에 넘어가 아카데미 교수직 제안을 수락했을 정도다.
일라이트가 이끄는 중앙 마탑의 고유 마법은 매개 마법이다.
매개로 마법을 펼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재료는 마력석이며, 사시사철 마법 작용이 발생하는 멸지만큼 마력석을 구하기 쉬운 곳이 또 없다.
“일단 멸지는 방문 자체가 범법이니 말을 하지 않고 간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법을 신경 쓰긴 했나.”
마법사들은 주로 마탑의 규율을 따른다. 제국법에 따르면 멸지 방문은 불법이지만 마탑의 규율을 어기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말을 하지 않고 갈 이유로는 충분한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사라지신 겁니까?”
“그렇네. 자네 전 탑주가 떠올라서 식겁했지. 또 평소에도 말없이 사라지는 놈이긴 하니 더 그랬고. 그래도 자네 말대로 멸지에 간 게 아닐까 싶지만.”
마냥 가볍게 여길 만한 사안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은 어디론가 사라졌겠거니, 하고 여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시아나 탑주님의 심사는, 그럼 진행하고 가신 겁니까?”
“안 하고 갔으니 그놈을 찾은 것이네. 싸가지는 없어도 개념은 있는 놈이니 심사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오긴 하겠지.”
가벼운 말투로 중얼거린 베샤네는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려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들의 마차가 이곳에 없고, 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허어.”
“왜 그러십니까?”
“여기 올 때는 자네 탑주 마법을 빌려서 왔는데 당장은 불가능할 것 같군. 우리로선 돌아갈 방법이 없네.”
탑주 정도 되면 자신의 주력 마법 외에도 여러 마법을 두루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특히 서부 마탑의 경우 술식을 다루기에 거리만 대강 알고 있다면 마법을 구성해 이동하는 건 쉬운 일이다.
다만, 그 거리가 너무 멀 때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마차가 필요하시면 말씀하시지요.”
“됐네. 어차피 자네 탑주는 키시온 녀석을 만나고 돌아올 게야. 마차를 타고 가도 한 달은 걸릴 텐데 차라리 그걸 기다리겠네.”
“오늘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상하고 있었네. 자네 탑주의 마력도 한계는 있을 것 아닌가? 오늘 하루만 대륙을 몇 번이나 가로질렀으니 어렵겠지.”
베샤네가 짤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젊음이 부럽군. 나도 젊었을 때는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데.”
“베샤네 탑주님 정도면 젊으신 편이 아닙니까.”
“젊기는 무슨. 벌써 일흔이 다 되가는데. 나는 셰르핀 그 영감탱이처럼 200년을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닐세.”
카를 또한 동감한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셰르핀의 수명은 기이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종족의 혼혈도 아니고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며, 설정에도 어떤 설명도 없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 인간의 수명을 초월해 200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리 생각하니 자네 탑주가 사라진 이유도 이해가 되는군. 나이가 들어서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게야.”
“……그렇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 그렇긴 해도!”
베샤네는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제자들도 당황한 나머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늙었다고 징징대 봤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지. 마음만 더 늙어 버릴 뿐이니, 이제 이 소리는 그만하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자네 아카데미나 한 번 둘러보도록 하겠네. 괜찮겠나?”
대학이랑 병합해서 아카데미로 만든다고 했을 때는 격렬히 반대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강아지를 키우자고 하면 절대로 안 된다면서 반대하다가, 막상 데리고 오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그런 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예. 물론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카를은 잠시 고민하다가 예의상 말을 꺼냈다.
“나중에 제 수업이 있을 예정인데, 혹시 참관해 보시겠습니까?”
“자네 수업? 관심이 가는군. 어떤 수업인가?”
“시어 마법에 대한 수업입니다.”
술식을 다루는 서부 마탑의 마법사들은 비유하자면 이과생에 가까웠다.
효율을 중시하고 여러 공식과 계산을 거쳐 최고의 마법을 만들어 내는 공학자들.
그런 마법의 대가에게 효율에서 뒤떨어지는 마법에 대한 수업을 들어 보겠느냐고 권한 것이었다.
“들어 보겠네.”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권유였으나, 예상외로 베샤네는 단번에 수락했다.
“그래서 그 수업은 언제 하는가?”
심지어, 꽤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 * *
일반 학생들의 수업은 모두 끝난 오후 6시.
클레멘트 아카데미의 특수 강의동.
정말 오랜만에 시아나를 제외한 북부 마탑 소속 마법사들이 모였다.
“…선배.”
“왜?”
“저분, 혹시 제가 아는 그… 분 맞나요?”
반쯤 강제로 끌려 나와 자리에 앉아 있었던 사라에게 한 후배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특수 강의동의 제일 앞자리.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
“응.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 맞아.”
“……진짜요? 서부 마탑 탑주님이 왜 여기에….”
“설명하면 조금 복잡해. 카를 선배 수업 한번 보시려고 왔다고 생각해.”
카를의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사정은 알고 있으나.
정식 탑주 심사, 일라이트 탑주가 자취를 감춘 것 등을 설명해 주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라는 짧게 말해 주었다.
“카를로스 선배님 수업이 그 정도인가요?”
“글쎄.”
그렇게 묻는 마법사는 카를로스의 수업을 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사실 그의 수업을 들어 본 사라는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지식을 대충 늘어놓고 네가 알아서 이해해라, 식의 수업이었으니까.
다만, 신입생들 사이에서 “이사장님 완전 수업 잘하신다.” 같은 소문이 돌고 있었고.
이사장실까지 찾아온 학생을 일대일로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르긴 했다.
문제는.
“그렇게 수업 안 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마법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학생들은 친절하게 가르쳐도, 이미 마법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린 자신들에게는 그리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어쨌든 북부 마탑 내에서 카를로스의 위상은 대단히 높았으니까.
실력은 시아나의 바로 아래. 국경을 넘은 마족들을 눈보라로 쓸어버렸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고, 시아나가 결투에 대해 말해 주자 위상은 더더욱 높아졌다.
그런 마법사가 그냥 무뚝뚝하게 지식을 늘어놓고 “이해해라.”라는 식으로 수업을 하면.
카를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마법사들은 실망할 게 눈에 뻔했다.
벌컥.
문이 열리면서 카를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카데미가 개학한 이후 입고 다니는, 검은색의 정장 같은 차림이 아니라 마법사들이 입는 로브 복장을 한 채로 사과 한 알을 손에 들고 있었다.
탑이 아닌 아카데미였지만 오늘 수업은 탑주가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내리는 가르침이었다.
아카데미를 관리하는 이사장이 아닌 마탑의 선배라는 입장으로 임하는 것이었다.
“다들, 오랜만이군.”
그렇기에 카를은 가장 앞자리에 앉은, 베샤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탑주님이 아니라 내가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일 거야. 그렇지?”
몇몇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시어 마법에 대해서 처음부터 배울 거다. 이미 배운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에 있는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들어는 봤어도 아직 시어 마법에 대해서 배우지 않았을 거야.”
시아나 혼자서 마탑을 꾸려 오는 동안은 시어 마법은커녕 기본 마법을 가르치는 것도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각 마탑에서 고유 마법은 5년 이상 된 마법사에게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른 문제들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일단 실력이 안 되면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서부 마탑의 경우, 술식을 가르치기 전에 수학부터 가르칠 정도였다.
“시어 마법. 너희도 대충은 알고 있을 거야. 시를 읊조리고, 거기에 마력을 얹어서 발동하는 마법이지.”
북부 마탑의 고유 마법으로, 북부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마법사가 아니어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마법사들의 노래는 들판을 불태우고 강을 얼린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주문을 외우고 영창을 해서 쓰는 마법을, 우리는 언령 마법이라고 부른다. 시어 마법은 언령 마법의 일종이지.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을 거야.”
시어 마법의 진면목을 모르는 마법사들은 한 번씩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다.
“왜 하필이면 문장을 지어서 마법을 쓰는 걸까.”
그리 말한 카를은 손가락을 튕겼다.
허상 공간에서 마주했던 거대한 백색용. 그 모습을 떠올린 카를이 만들어 낸 환영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용들이 다루는 권능 또한 언령이다. 용들이 권능을 쓸 때 하는 말은 단순하지. 가령 예를 들면.”
그는 아까 들고 들어온 사과를 손에 들고 입을 열었다.
“부서져라.”
사과가 그의 손 안에서 잘게 부서졌다.
“불타라.”
남은 사과의 파편들이 활활 타올랐다. 그 자리에 앉은 모두가 아는, 기본적인 언령 마법이었다.
“이런 식으로 명령을 내리지. 인간이 사용하는 언령 마법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하나 혹은 둘, 만약에 거대한 마법을 쓰더라도 세 개의 단어면 충분해. 그런데 왜 문장일까.”
그리 말한 카를은 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외운다는 것 자체가 손해를 본다는 건 다들 알 거야. 긴박한 전투의 순간엔 한 단어면 끝날 마법을, 문장으로 풀어서 영창하다가 목이 날아갈 수도 있거든. 내가 그럴 뻔하기도 해서 잘 알고 있다.”
특수 강의동은 특별한 수업을 위해서 지어진, 1층짜리 건물이다.
대규모 마법 혹은 오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력석으로 만들어진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카를은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러 안전장치를 켰고, 그의 발아래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답은 간단해. 우리는 용이 아니거든. 그들의 언령은 세계의 법칙이 되어 작용할 정도로 강력하기에 한 단어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인간은 아무리 강해도 그 정도는 못 돼. 하지만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늘리면 더 많은 마력을 담을 수 있고, 기교를 더할 수 있지.”
그런데.
라는 말과 함께 카를은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냥 문장이 아니라 시일까? 꼭 시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왜 문학을 노래할까?”
술식을 가르치는 데 있어 수학이 필요한 건 술식이 정밀한 계산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령 마법은 ‘말’로 구성되는 마법이다. 꼭 시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발동할 수 있었다.
“번개를 내리게 하고 싶으면 그냥 ‘벼락이여, 내리쳐라’라는 문장이면 충분하지 않나? 왜 ‘검은 구름 속에서 비롯된 신의 분노가 내리꽂힌다.’ 따위의 문장이 필요할까? 왜 그냥 문장이 아니라, 하필이면 시일까?”
“위력을 키우기 위해서지.”
북부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수업을 듣던 베샤네가 대답했다.
언령 마법의 영창이 길어지는 이유는, 위력의 증강과 마법의 정밀한 제어 때문이다.
다만 정밀한 제어는 뭘 어떻게 해도 술식의 효율을 뛰어넘을 수 없다.
결국 위력을 강하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대답 감사합니다. 탑주님. 그러면 왜 평범한 문장이 아니라 시로 영창을 하면 위력이 강해질까요?”
“그건 모르네.”
“시에는, 나아가 문학에는 허구성이 있습니다.”
허구.
혹은 상상.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
“술식, 매개, 마법진 등 여러 형태로 마법은 쓸 수 있지만 언령만큼 허구성을 담기 쉬운 형태의 마법은 없지. 예시를 들어 볼까.”
카를은 머릿속에서 적당한 문장을 떠올렸다.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으로.
다 읊을 필요 없이 한 문단이면 충분해 보였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그러자 희뿌연 안개가 넓은 강의실을 드리웠다.
마법사들이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아는 얘기여서 턱을 괸 채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사라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어깨를 움찔 떨리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사라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개가 짙어지는 와중에, 다른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팔을 뻗으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
다른 목소리들이 사라진 그곳에서 어느 한 목소리는 여전히 남아 고막을 파고들었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자욱하게 낀 안개가 숨통까지 틀어막는 것 같았다.
이 마법을 쓰는 카를에게, 시어 마법을 선보인다는 것 외에 다른 의도는 없을 것인데.
짙은 안개 속에 영영 갇혀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옆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분명 후배가 앉아 있었을 터인데,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사람은 물론이고 의자도, 책상도.
“누구든 혼자에 불과하다.”
그저 시의 한 구절일 뿐인데.
듣는 마법사들은 그 말을 공포를 새겨 넣는 악령의 저주처럼 느꼈다.
시의 한 문단을 외운 카를은 손가락을 튕겨 마법을 해제했다.
“이게 뭐야….”
사라는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를 뱉어 냈다.
어떤 마법서에도 나오지 않는 마법.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마법을 겪는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
카를은 마법사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5분 정도가 지나자, 웅성이는 목소리가 차츰 줄어들었다.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유일한 마법사, 베샤네만이 담담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았다.
물에 젖은 생쥐처럼 마법사들의 기가 죽어 어깨가 내려갔지만 카를은 강의를 이어 나갔다.
“방금 너희가 본 안개는 뭐였을까? 단순히 ‘안개’라는 단어 혹은 ‘새벽의 거리를 채우는 자욱한 구름’ 따위의 문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안개일까?”
절대로 아니었다.
눈앞이 막막해지며 오감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걸 막연히 ‘안개’라고 칭하진 않으니까.
마법사들은 부정의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어 마법에는 분명히 단점이 존재하지. 술식만큼 정교한 제어는 불가능하고, 매개만큼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마법진만큼 확실한 방어를 장담할 수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 마법이 700여 년간 한 마탑의 고유 마법으로서 연구되어 온 이유.
다른 어떤 마법보다도 마법의 위력만큼에서는 절대적인 강점을 가지는 것이 시어 마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허무맹랑을 노래하여 현실로 만들고, 가장 허구적인 신화를 재현할 수 있다.”
그것이.
“너희가 시어 마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