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대마법사들 (4)
“……이쯤이면 왜 너희가 시어 마법을 배워야 하는지 이해는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강의.
원래 계획표에 따르면 세 시간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시어 마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번 주제로 잡은 까닭이었다.
“다음 수업부터는 원래대로 탑주님이 하실 거고… 질문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와라.”
이유에 대해서 더 할 이야기가 없었거니와, 세세한 강의로 들어가면 이해 못 할 이야기가 태반이었다.
가령 예를 들어 마법을 발동시켰던 ‘기이하여라’라는 문장에 마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기교를 얹고 제어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달리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해하고 자기 걸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모든 마법사가 가지는 마력의 성질이 다르다.
카를이 마력을 배분하는 방법을 알려 주더라도, 질문한 마법사에게는 맞는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노래를 부를 때 각자의 습관이 있는 것처럼, 마력을 부리는 기교에도 각자의 차이가 있을 터인데.
카를이 그걸 일일이 가르쳐 주며 교정하는 건 불가능했다.
‘한두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탑주가 사라진 동안 인원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80여 명의 마법사가 남아 있다.
구태여 찾아와서 질문하라고 말한 이유도 한 번에 한 명이면 어느 정도 맞춰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탑주도 사람이 할 만한 일은 아니네.’
시아나는 어떻게 저 많은 마법사들을 한 명씩 맞춰서 가르친 걸까.
당장 눈앞에 있는 베샤네도 말은 괴팍할지언정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이다. 책 많이 읽고, 저녁 맛있게 먹도록.”
강의를 마무리 지은 카를은 벽면의 스위치를 다시 끄고 특수 강의동을 나섰다.
그는 식당으로 향하면서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로 발동한 마법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위력이 대단하긴 하네.’
세 단어 영창으로 결계 마법을 펼치는 것도 물론 위력이 부족하진 않다.
하지만 방금 펼친 마법은 안전장치가 발동하는 중이었음에도 마법사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고작 한 문단만으로 마력이 왕창 소모되긴 했지만….
네 문단으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서’를 모두 외우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만약 안전장치도 없었고 시를 다 외웠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실전성이 있는 마법 같은데.’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긴 하다.
특수 강의동은 넓긴 하지만 실외와 비교하면 역시 밀실이었기에 안개의 밀도가 높아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쉬웠다.
외부였다면 안개가 널리 퍼져서 공포는커녕 시야를 조금 방해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실내나 안개가 이미 깔려 있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겠네.’
과연 대문호의 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다른 세계에서, 전혀 연관 없는 마법으로도 쓸 수 있을 정도라니.
자신의 최애 작가에 대한 충성심이 한층 깊어진 카를은 들뜬 마음을 품고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식당에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식당에서 나오던 학생들이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긴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유달리 허리를 깊이 숙이는 학생이 있어 얼굴을 보니, 카리아 프라헨이었다.
“…그래.”
그 짤막한 대답에도 학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어 제국을 이끌 영웅이 될 네임드.
시나리오에서부터 영웅으로 나오는 카리아는 당장은 한 명의 학생에 불과하다.
아직 시나리오가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 아담과 달리 카리아는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유닛으로 나온다.
그런 점 때문에 카리아는 개인 특성을 가진다. 카를 자신처럼.
그 특성 중 하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 중 하나가 사도를 직접 처치하는 것이다.
‘어떻게 빨리 습득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일종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만 하면 된다.
당연하게도 그 퀘스트는 빨리 클리어하면 할수록 도움이 된다.
일단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니까.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군.’
마법을 연마하고, 따로 검술을 가르치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도를 쓰러트리는 흐름으로 갈 수 있는 방법.
시나리오의 전개를 알고, 강력한 사도들 사이사이에 강림하는 나약한 사도를….
“아니지.”
필요한 건 이벤트였다.
역병 이벤트처럼 발생하는 원인이 불분명하다면, 사도가 개입한 탓일 가능성이 높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이벤트는 사도나 그것이 섬기는 신의 이능이 작용한 결과일 테니.
“자네, 뭘 그리 생각하나?”
오늘 식당의 저녁 메뉴인 미트로프를 받아 구석진 자리에 앉은 카를의 귀에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카를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백발을 뒤로 묶은 노인, 서부 마탑주 베샤네였다.
카를은 그의 물음에 대충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
“……다음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헌신적인 교육자로구먼. 오늘 강의 잘 봤네.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베샤네는 카를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데려온 세 명의 제자는 한 칸 자리를 띄워서 옆에 앉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시어 마법이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렇습니까?”
“인간은 숫자로 마법을 정복했네. 법칙을 발견해 정립했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인 마법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마(魔)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제국이 세워지기 전에는, 지금의 남부에 해당하는 곳까지가 마족의 영토였다.
그 이전에는 마족들의 압도적인 마법 능력에 저항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설정이 있다.
다만 베샤네의 말마따나 인간의 마법 능력이 비등해졌을 때 갑작스레 치고 올라왔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제국이 탄생했다.
“그래서 고향에 있는 탑이 아니라 구태여 다른 지방에 있는 탑까지 찾아가 마법사가 되었네.”
“고향을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북부였네. 아마 내가 탑에 들어갔으면 자네 전 탑주랑 동기였을 게야. 물론 성미가 안 맞아서 중간에 나왔겠지만.”
그리 말한 베샤네는 포크로 미트로프 한 조각을 집어 소스를 듬뿍 발라 입에 넣었다.
나이 70 먹은 노인이라기엔 당장 먹방을 찍어도 될 만한 식성이었다.
“근데 자네 강의를 들으니 뭔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게 있더군. 허무맹랑을 노래하여 현실로 만들고, 허구적인 신화를 재현한다고 했나? 음유시인들이 들려주는 모험담 같더군. 빠져드는 게 이해가 되네.”
미트로프를 먹어 치우던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있는 방향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느낀 그들은 몸을 움찔 떨었다.
“내 제자 놈들도 마찬가지일세. 자네 강의를 굉장히 감명 깊게 본 모양이더군.”
“…그랬군요.”
“자네랑 같은 트리플인데 기량은 천지 차이지. 자네는 자네 마탑의 고유 마법이 왜 아름답고, 왜 배워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강의를 할 정도인데 저 녀석들은 아직 숫자의 아름다움도 모른다네. 심지어 내 수제자라는 놈들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이 양반아.’
미트로프가 목에 걸렸는지 켁켁거리는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카를은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숫자의 아름다움이요? 어떤 건지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e의 iπ승+1=0이라는 식을 알고 있나?”
“……예?”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택한 그에게 숫자보다 문자가 많은 수식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흠흠, 자네는 모를 수밖에 없지. 아무래도 수학보다는 문학을 많이 접했을 테니. e는 자연로그의 밑이며 i는 허수이고, 또 π는 원주율일세.”
“거기까진 알고 있습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수학의 정석을 다시 폈을 때 본 기호들이었다.
그걸 떠올린 카를이 대충 아는 척을 하자 베샤네의 제자들은 상황을 눈치채고 빠르게 미트로프를 먹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원주율과, 허수와 자연로그가 만나서 더하기와 곱하기 그리고 거듭제곱을 거쳐 정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
“…예. 정말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그렇지! 자네는 이 아름다움을 이해할 줄 알았어! 어떤 마력석보다도 이 수식 하나가 나는 더 아름답다네! 아, 이 공식의 유도법은….”
‘잘못 건드렸다.’
그렇게 후회해도 달리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베샤네는 연이어 설명을 쏟아 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해도 「이해」와 「분석」이 제멋대로 그 수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어떤가.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예.”
본의 아니게 수학 공식을 술식에 대입하는 방법을 배운 카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식은 미트로프 조각을 포크로 집어서 입에 넣으려던 카를이 문득 물었다.
“그러면, 베샤네 탑주님.”
“왜 그러나?”
“마법을 하나 구상하고 있는데,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그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어떤 마법인가?”
“나중에 천천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일단 식사부터 마저 하지요.”
‘접대… 더럽게 빡세네.’
속으로만 우는 표정을 지으며 카를은 식사를 끝마쳤다.
* * *
“흐음.”
식사를 끝내고 깔끔하게 양치까지 한 저녁 9시.
카를은 베샤네와 함께 아카데미 부지 내의 넓은 연병장에 도착했다.
기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과 검을 택한 학생들이 아침 구보로 시작해 저녁까지 생활하는 교실 같은 장소였다.
“헌데 자네, 왜 자네 탑주가 아니라 내게 마법을 봐 달라 하는 겐가?”
언령으로 이루어지는 마법과 술식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성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는 효율을 무시하고 최대의 위력을, 후자는 효율을 중시한다. 상반되는 성질이었으니 베샤네가 의아해하는 게 정상이었다.
“위력보다는 효율이 중요한 마법이라 그렇습니다.”
“음, 그런가? 한번 보여 주게.”
“예.”
카를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어둠으로 물든 연병장을 바라보며 영창을 자아냈다.
“나는 서녘 산의 문을 열고 심판관을 이곳에 인도하리라. 샤마쉬여, 잠시나마 좋으니 오늘을 다시 열어 주소서!”
단순한 빛이 아닌 태양빛을, 밤에 재현하려면 그야말로 신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첫 문장에는 기원(冀願)의 뜻을 담는 것과 동시에 위치를 설정했다.
두 번째 문장에는 기도를 올리는 대상을 구체화한다.
가장 오래된 서사시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샤마쉬.
그에게 ‘오늘’이란 일출을 뜻했다.
“…….”
이미 한참 전에 해가 진 시각이었으나, 연병장에는 아침의 밝은 태양빛이 드리웠다.
다만 그것이 진짜 태양빛은 아니었다. 행성의 자전을 반대로 뒤집는 건 용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저 마력의 형태로 재현한 태양빛에 불과했다.
그렇게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 태양을 베샤네는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후우….”
마법이 지속된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가장 숙련도가 높은 결계 마법의 형태를 빌렸음에도 그게 한계였다.
리안에서 사용한 신성 결계는 며칠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마력의 소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자네.”
“예, 베샤네 탑주님.”
“이 마법은 단순히 밤을 밝히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고 여겨지는데, 내가 틀렸나?”
그의 말이 옳았다.
단순히 어둠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많았으니.
시어까지 갈 필요 없이 “광명이여.”라는 영창 한마디면 밝은 빛을 낼 수 있다.
“효율에 대해 논하기 전에, 구태여 햇빛을 재현하고 싶은 이유를 묻고 싶군.”
“베샤네 탑주님.”
“듣고 있네.”
“…혹시, 거수(巨獸)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거수?”
베샤네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자신이 들은 말을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다.
“거수라면… 설마 자네, 사도에 대해 말하는 건가? 허상 공간에 사는 그것들?”
“예. 거수라고 불리는 사도 중 하나가 조만간 강림할 것 같습니다.”
“……허.”
“그 거수를 토벌하려면, 이 마법이 필요합니다.”
카를은 베샤네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베샤네 탑주님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