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92
92화 괴물 사냥 (2)
거수 토벌.
목적이 구체화되고 집행관 대다수가 참여 의사를 밝힌 직후 차례대로 토벌 준비가 시작되었다.
기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영지 곳곳으로 떠나 있었던 집행관들이 돌아오는 사이 웬만한 준비는 카를 본인이 끝마쳤으니.
“물자와 물자를 옮길 마차는 충분해 보입니다. 집행관들은 애초에 개인 장비를 사용하니 무구는 만일의 경우에 쓸 소수만 확보했습니다.”
실무를 맡은 행정관 아틸렌이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 형식의 문서를 카를에게 제출했다.
특성의 도움 없이도 한눈에 이해가 될 정도였다.
“잘했네. 확보하는 데 따로 문제는 없었나?”
“재정을 조금 갉아먹히긴 했지만… 그건 재정관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요. 저는 각하께서 명령하신 바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입니다.”
“나는 더 이상 공작이 아닌데도 말인가.”
“뭐, 그럼 유리아 각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둘러대지요.”
농담으로 던진 말에 마찬가지로 농담으로 대답한 아틸렌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뒤로 물러나 방을 나갔다.
저택 내부의 넓은 회의실에는 카를과 11명의 분대장 그리고 테나, 마지막으로 다섯 명의 용아귀 기사단 소속 기사만이 남았다.
“일단 작전 회의에 들어가야 하기 전에, 각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테나가 손을 들어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카를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만큼 거대한 괴물을, 저희끼리 토벌하는 게 가능… 하겠습니까?”
일단 환영으로 본 덩치부터가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게다가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큼 진짜 거북처럼 살가죽마저 질기다면 칼날로 베어서 상처를 입히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입혀 봐야 그만한 덩치라면 고작 생채기에 불과할 텐데, 라는 의문도 뒤따랐다.
“불가능하다.”
기를 죽게 만드는 말이었지만 카를은 사실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제국의 병법서에는 어려운 작전에 임할 때는 차라리 아무 것도 알려 주지 말고 명령에만 따르게 하라는 문장도 있다.
그러나 이번 토벌에선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공략하는 방법을 다들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드라이누스는 공략법만 알면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보스인 만큼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이 토벌해 본 경험이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가 창과 칼을 깊숙이 꽂아 넣어도 놈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아닐 거다. 개미가 온 힘을 다해 깨물어도 인간은 잠깐 따끔하고 마는 것처럼.”
“그, 그렇게 비유하셔서 여쭙는 것인데 그게, 개미가 사람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물어뜯는 개미만 있으면 불가능하겠지만, 얼음과 불 그리고 벼락을 내려치게 하는 개미만 있으면 사람도 죽일 수 있지 않겠나.”
살아 움직이는 전략 병기.
그게 이 세계의 마법사였다.
“허면 저희가 시간을 버는 동안 각하께서… 토벌하시는 겁니까?”
“약 150명 규모의 마법사들이 나중에 합류해서 토벌에 참여할 것이다.”
“…백, 오십.”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테나는 멍하니 그 숫자를 중얼거렸다.
일반 병졸 백 명에 마법사 한 명. 제국군의 기본적인 편제는 보통 그렇게 이루어진다.
한 번의 전투에서 150명에 달하는 마법사가 참여하려면 병졸이 일만 명 넘게 참여하는 대규모 전투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약 200여 년간, 제국에서 일만 명 넘는 병사들이 동원된 전투는 없었으니 단순히 마법사의 규모로만 따지면 200년 만에 발생하는 전례 없는 마법사들의 전투가 될 것이다.
“허면, 각하. 그 마법사들은 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인지요?”
“…….”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마탑이 아니라면 어디서 150명에 달하는 마법사를 동원한단 말인가?
그 장소의 모두가 그런 의문을 가진 순간, 카를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마족들이다.”
“…예?”
“마왕 본인과 그녀의 친위대. 그들이 이번 토벌전에 참여한다.”
한동안 소리가 사라졌다.
그것이 마왕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이었다.
“그대들은 마왕의 친위대를 호위한다.”
“으음….”
끼어든 목소리는 길쭉한 주둥이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삐뚤빼뚤하고 싯누런 이빨을 가진 갈색 피부의 도마뱀 기사가 입을 열었다.
“거, 단장님. 그 좀 아인 것 같습니다. 지는 그….”
옆에 서 있던 기사 한 명이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끼어들었다.
“알키온, 말 조심해라.”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지는 그 마왕한테서 겨우 도망쳤는데, 그, 그… 어쨌든 그 부하를 호위하라꼬요?”
“싫다면 빠져도 된다.”
“아니,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고요. 그냥, 단장님. 못 믿겠다는 거 아입니까? 마왕이라 카믄서 마족들 중에서도 순혈 아니믄 싹 다 벌레 취급하는 미친년이 제들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누가 압니까? 니들도 그렇게 생각하제?”
도마뱀 기사가 두 머리 오우거 기사에게 물었다.
“모르지.”
“모를 일이다.”
“아니, 이 씨방새들이 갑자기 왜 이라노? 니들도 나처럼 쫓겨나서 제국으로 온 거 아이가.”
“그렇긴 한데… 에라이 씨, 기억 안 난다. 겔라누스 네가 말해라.”
이고르가 툭 뱉어 냈고, 그 옆의 겔라누스가 허리춤에 찬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알키온, 기사는 명령에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아니, 내도 그게 기사 된 도리라는 건 아는데, 내키지가 않는다. 단장님! 그년이 저희 뒤통수 안 칠 거라는 보장 있습니까?”
“마왕은 나와 맹약을 맺었고.”
맹약의 상징인 하얀 고리가 손목에 떠올랐다.
마법사들이 나누는 맹약은 유명했다. 여러 신화와 동화에서 나와 있었기에 알키온을 비롯한 기사들도 알고 있었다.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따르지 않아도 좋다.”
“단장님은 믿겠는데, 그년은… 하.”
탁탁. 알키온의 꼬리가 바닥을 두드렸다.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고 알타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차석 집행관님.”
“…말하도록. 알타냐 집행관.”
“예전에 펠하임 가문 비밀정보부와 공조해서 조사한 결과 말인데요. 그때… 연합 쪽 마족들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정보가 나왔는데….”
확실한 보장이나 증거가 되진 못한다. 단순히 카를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에 꺼낸 말이었다.
그런 애매한 마음에 말을 꺼낸 알타냐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토해 내듯 입을 열었다.
“…연합은 마왕의 의지에 반(反)한다고 했으니까, 뒤집어서 생각하면 마왕은 전쟁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고…. 그러니까, 제국을 적대하지 않고 있다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요?”
정적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알키온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고, 카를은 그를 향해 말했다.
“그녀를 믿지 못하겠다면, 나를 믿어라.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면 지금 이 방에서 나가면 된다.”
“에이, 씨. 예! 단장님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그것들 150명이라 캤지예? 저희는 200명 좀 넘으니까, 그것들이 설마 뒤통수 쳐도 뭐 저희가 이기지 않겠습니까. 하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알키온은 다시 몸을 돌려 기사들 틈으로 돌아갔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테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일단… 마족들은 마법에 한정하면 저희보다 훨씬 뛰어난 건 맞습니다. 그것도 마왕의 친위대라면 수준이 아주 높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그 정도 마법사가 백오십이나 되면… 그만한 괴물이라도 토벌이 가능하겠군요. 이해했습니다. 각하.”
“하지만 그대들의 역할도 그 마법사들만큼 중요할 것이다.”
카를은 회의실의 지도 위에 올려져 있는 가지각색의 작은 조각상들 중 하나를 집었다.
그는 조각상에 마력을 불어 넣어 해골 모양으로 바꾸었다.
“놈은 언데드를 부린다. 차석 집행관 테나 그대는 리안에서 이미 한 번 보았겠지. 사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언데드를 부린다.”
언데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신의 사도조차도 언데드를 부린다.
가령 예를 들면, 풀과 나무의 신의 사도는 썩은 넝쿨로 골렘을 만들어서 조종하는 식으로.
“동방에서 내려오는 호랑이 전승을 들어 본 적 있나?”
“아, 예. 들어 본 적 있습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인간은 귀신이 되어 호랑이의 노예가 된다고 하지. 그것과 비슷하게 사도에게 죽은 삶은 언데드로 되살아난다.”
지도 위에 올라와 있었던 작고 뭉툭한 나무 조각들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호랑이, 곰, 코끼리 등의 짐승부터 시작해 앙상한 뼈만 남은 날개를 가진 새까지.
“하드라이누스가 섬기는 신은 허기와 굶주린의 신이다. 굶어 죽은 사람, 굶어 죽은 짐승, 그리고 하드라이누스가 잡아먹은 생명들이 모조리 언데드로 되살아난다는 뜻이고.”
꿀꺽. 누군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언데드들을 상대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저희 임무군요.”
“그렇지. 정확히는 마법사들이 하드라이누스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저 괴물한테 달려드는 게 아니었군요? 그럼 식은 죽 먹기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각하!”
가만히 듣고 있었던 카스가 앞으로 나서면서 쾌활한 목소리로 외쳤다.
테나가 고개를 휙 돌리면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카스, 다 좋은데 경박함을 조금 줄여라.”
“앗! 죄송합니다! 각하! 아무튼, 언데드 쓱싹 하는 건 쉽습니다! 저희가 누굽니까! 크로우 가문의 집행관 아니겠습니까!”
“그리 말해 주니 다행이군.”
카를은 책상 위의 나무 조각들을 염동으로 끌어모아 하나로 조립했다.
거북이 모습의 조각상이었다.
하드라이누스가 강림할 위치에 묵직한 조각상을 내려놓았다.
“하드라이누스가 강림하는 장소는 이곳, ‘키파’산의 기슭이다. 산을 올라가서 작전을 시행할 수는 없으니 놈을 이 아래의 오르멜 평원으로 유도해서… 미리 전개해 둔 토벌대의 마법으로 등껍질을 깨부순다.”
“그럼 끝이군요! 생각보다 더 쉬운 작전 아닙니까? 마법사가 150명이나 되면 등껍질이고 뭐고 가루로 만들 어버리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들어라. 그다음이 문제다.”
“예?”
하드라이누스의 등껍질은 페이즈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웬만한 게임의 보스 몬스터들이 체력이 떨어지면 다른 패턴을 보이는 것과 똑같았다.
“등껍질이 깨지면 거기에서 언데드가 나온다.”
“워 씨, 기괴한 놈이군요.”
“덩치가 큰 만큼 등껍질 속에 숨겨져 있는 언데드의 수도 많다. 한 번에 튀어나올 거고, 그러면 일시적으로 머릿수에서 밀린다.”
가시성 등 게임상의 문제로 하드라이누스가 뱉어 내는 언데드의 수는 백 마리가 채 안 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훨씬 더 규모가 클 것이다. 상상 이상으로.
“등껍질이 깨지면 하드라이누스가 포효를 내지를 것이다. 전열이 붕괴하더라도 퇴각한 뒤, 언데드가 나타나면 그걸 상대한다.”
“쉽네요! 한 번 튀었다가, 다시 달려들기만 하면 된다. 이거 아닙니까? 이해했습니다!”
테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해했습니다. 각하. 다른 집행관들에겐 이대로 브리핑하겠습니다. 여타 준비를 끝마치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게.”
테나는 고개를 깊이 숙인 뒤 분대장 역을 맡은 집행관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자연스럽게 회의실에는 여섯 명만 남게 되었다.
카를과 용아귀 기사단에 소속된 다섯 기사.
“…그대들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예, 단장. 어떤 것인지요?”
“폐하의 성은으로 과분하게도 단장직을 맡게 되었으나, 나는 기사에 대해 잘 모른다.”
갑옷을 입고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유닛. 카를이 아는 건 딱 그 정도였다.
“그대들이 말하는 기사 된 도리, 기사도에서도 잘 모른다. 미안하지만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도 어려울 듯 하다.”
“괜찮습니다. 기사 아닌 기사단장이 역사에 없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오갈 데 없었던 저희를 받아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용아귀 기사단에 속한 기사는 모두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기사였다.
겔라누스와 이고르는 쌍두 오우거. 알키온은 도마뱀 수인. 카를에게 방금 대답한 금발의 기사는 왼쪽 손목이 없었다.
‘이렇게 보여도 각자 실력이 되니까 아직 기사라는 신분을 유지하는 거겠지.’
제국에서는 1년에 한 번, 명예직 기사를 제외하고 무력을 시험한다.
최소한 그 기준에 통과했으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다만 카를이 아는 게임 속의 기사들과는 싸우는 방식이 사뭇 다를 것이다.
“…어쨌든, 그대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싸움에 임해도 좋다. 마법사들을 지키는 게 낫다고 여겨지면 그리하고, 직접 타격을 입히는 게 낫다고 여겨지면 그렇게 하도록.”
“예! 단장!”
“이상이다. 출발할 때까지 푹 쉬도록.”
“영광으로 받들겠습니다.”
기사 다섯 명이 동시에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그들은 차례대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덩치가 큰 겔라누스와 이고르는 맨 마지막 차례였다.
그들이 나가기 직전, 카를은 이고르의 이름을 불렀다.
“이고르.”
“부르셨습니까?”
“겔라누스, 그대가 아니다. 이고르.”
“…아, 예. 공작님.”
카를이 가진 카드들 중,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카드.
흑마법.
그 흑마법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가 이고르였다.
“따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
* * *
다음 날 아침.
서른 대의 마차와 백여 마리의 군마에 탄 집행관들의 앞에 선 카를은 나지막하게, 그러나 증폭 마법으로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출진한다. 장소는 오르멜 평원.”
용아귀 기사단장을 상징하는 검을 들어 올린 그가 말을 이었다.
“목표는 괴물 사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