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94
94화 거수 토벌전 (1)
태양이 산 너머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오르멜 평원은 암흑으로 물들었다.
막 떠오른 달이 내뿜는 희미한 빛이 발아래에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는 본래 크기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하지만 작아야 하는 그림자마저 거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거체가 어둠 너머에 있다.
“…….”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그 존재를 깨닫게 만드는 압도적인 질량이었다.
희미한 달빛이 군데군데 돋아난 가시 같은 것을 드러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거대한 괴물이 가진 눈알. 야행성 짐승처럼 어둠 속에서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인간, 마족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긴장감으로 고조된 숨을 내뱉었다.
감이 좋은 마물 몇 마리는 자세를 낮추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어둠 너머의 두 눈알에 대한 경계였다.
“…….”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일동의 시선은 가운데로 이동했다.
지휘를 내릴 수 있는 두 사령관은 함께 있다. 토벌대는 그들의 명령을 기다렸다.
“공작 까마귀.”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이시엘은 자신의 등 뒤에 탄 카를을 부르며 고삐를 꽉 잡았다.
두 사람을 태운 마물, 랩터는 무릎을 좁히며 언제라도 달려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영하에서 비롯된 투명한 창이여.”
카를의 입에서 처음 흘러나온 목소리는 명령이 아니었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로 시의 한 구절 같은 문장을 노래했다.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로 나직했으나, 그것으로 자아낸 마법은 아니었다.
“꿰뚫어라.”
쩌적. 사방이 얼어붙는 소리가 울리고, 기둥만 한 크기의 두 개의 얼음 창이 공중에 떠올랐다.
날카롭게 만들어진 창은 카를이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에 따라 어둠 너머의 붉은 두 눈을 향해 날아갔다.
파공음과 함께 어둠을 가른 두 갈래 빙창이 거수의 몸뚱이에 적중하고, 분노에 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전원!”
평원에 울려 퍼지는 거수의 포효를 이시엘의 목소리가 뒤덮었다.
마왕 친위대는 넋을 놓고 있다가 금세 군기를 되찾고 자세를 갖추었다.
“토벌을 개시한다!”
각자가 검을 뽑아 들고, 방패를 들고 마력을 끌어 올린다.
순식간에 전열이 갖춰진 것을 확인한 이시엘은 그녀가 올라탄 마물에게 명령을 내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쿠구구궁.
갑자기 나타난 거체가 산의 가운데에서 그 몸뚱이를 일으켰다.
“공작 까마귀, 한 번 더.”
어둠 너머를 꿰뚫어 본 이시엘이 말했다. 카를은 똑같은 영창을 반복해 얼음 창을 만들어 냈다.
단, 이번에는 두 자루가 아니라 네 자루였다. 하드라이누스의 관심을 확실히 끌기 위해서였다.
새롭게 만들어 낸 얼음 창에 소용돌이치는 바람을 덧댄다. 날아가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그리고 회전하게 만든 카를은 자신의 마법을 눈으로 좇았다.
“……!”
세 자루는 등껍질로 날아갔지만 다른 한 자루의 창이 연약한 살갗에 닿아서, 꿰뚫었다.
원체 살가죽이 두꺼워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드라이누스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쩌렁쩌렁한 굉음을 토해 냈다.
“관심을 끌어도 너무 끌었군.”
거수가 토해 내는 비명을 들으며 이시엘이 중얼거렸다. 어둠 너머를 바라본 그녀는 토벌대가 진영을 펼치고 있는 곳으로 기수를 돌렸다.
멀리서 보면 작은 산으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괴물이 네 다리로 지탱하고 있는 몸뚱이를 일으켰다.
앞다리를 내뻗은 순간 쿵, 하고 땅이 울렸다. 거수의 육중한 몸뚱이 때문이었다.
“공작 까마귀!”
“알고 있다.”
키파산의 기슭에서 나온 하드라이누스가 오르멜 평원 안으로 들어섰다.
밀밭을 문자 그대로 갈아엎어 버리면서 달려오는 거수의 위치를 확인한 카를은 미리 마력을 모았다.
‘조금만 더.’
몸뚱이의 절반 이상이 평원으로 들어왔다. 그는 미끼를 더 확실히 물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의 심정으로 기다렸다.
몸뚱이의 대부분이 평원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그가 영창을 시작했다.
“가장 위대한 천신 샤마쉬시여.”
기원의 문장을 읊으며 그는 마력을 퍼뜨렸다. 자신을 중심으로 둥글게, 거수를 감싸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르멜 평원 전체를 감쌀 수 있도록.
점으로 떨어져 있는 마력을 천천히 이으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이 어둠 속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괴물이 있나이다.”
베샤네는 심판관과 관련된 내용을 빼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충고했지만 문장을 거듭 고치는 과정에서 다시 추가했다.
신화의 재현을 위해서는 샤마쉬의 다른 모습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이방의 신을 섬기며, 망자를 이용해 산자를 사냥합니다. 언젠가 당신께서 길가메쉬를 위해 여덟 바람을 일으켰듯….”
카를은 바로 눈앞에서 마물의 고삐를 쥐고 거수를 피해 달리는 이시엘을 보았다.
미숙한 마왕. 그녀는 누군가에겐 독한 악인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포악한 군주일 터이나.
이곳에서 그녀는 영웅이 될 것이다.
카를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 땅에 서 있는 영웅을 위해, 서녘 산의 문을 열고 나와 당신의 빛을 내려 주소서.”
몸에서 마력이 뭉텅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옅은 빛이 카를의 손안에서 흘러나왔다.
촛불보다도 작은 그 빛은 일순간 공중으로 치솟아, 폭발을 일으켰다.
“윽?!”
앞서 나가던 이시엘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감은 눈꺼풀마저 뚫고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광량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을 태운 랩터 역시 갑작스러운 빛에 놀라 잠시 휘청였다.
“이게 무슨….”
당황한 이시엘이 눈을 조심스레 떴다. 폭발이 일으킨 불꽃이 하늘을 새하얗게 불사르고 있었다.
마법의 성공. 오르멜 평원은 다시 한번 낮의 모습을 되찾았다.
“……허.”
밤낮이 일순간에 뒤바뀌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이시엘은 경악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흘렸다.
인위적으로 창조된 태양.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지금의 오르멜 평원을 보면 그냥 낮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감히 신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좋은 마법이었다.
……신을 믿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지껄인 주제에, 왜 기도를 올리는 건가 싶었는데.
위대한 신이고 어쩌고를 중얼거린 건 이것을 위해서였나.
그녀가 경악 섞인 감탄을 뱉어 낸 직후, 막대한 굉음이 평원에 울려 퍼졌다.
하드라이누스의 분노한 포효였다
“큭….”
고막을 넘어 머릿속까지 뒤흔드는 괴성에 카를은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카를을 쫓아오던 다리는 멈추었고, 붉게 빛나는 눈도 카를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태양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수는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원통함이 느껴지는 포효를 터뜨렸다.
“후우….”
괴성이 잦아들자 카를은 겨우 숨을 돌렸다. 한숨을 내뱉은 그는 고개를 돌려 거수를 육안으로 살폈다.
등딱지에는 섬뜩할 정도로 흉흉한 가시가 잔뜩 돋아나 있고 부리는 독수리가 떠오를 정도로 날카로웠다.
전반적인 생김새는 영락없는 악어거북이었다.
“…뭐가 저렇게 큰 거냐.”
현실의 악어거북은 아무리 커도 2m를 넘지 않았지만, 평원에 서 있는 거수는 인공 태양 때문에 몸을 잔뜩 움츠린 상태임에도 20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사방으로 퍼져 진형을 갖추고 있는 집행관들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환영으로 보여 주었으나,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데다가 살아 숨쉬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어둠 속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이미 수많은 사도를 사냥해 온 승천자, 이시엘 역시 당황한 목소리를 흘렸다.
밤의 어둠 속에서 이런 괴물을 상대하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그 불합리함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이시엘은 등 뒤의 카를로스를 보았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어둠 속에서 저 거수를 상대해야 했다면.
고개를 돌리자 진을 치고 있는 부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 속이었다면 저들의 얼굴 위에 절망이 떠올라 있었을 것이다.
“잘했다. 공작 까마귀. 신세를 졌군.”
칭찬에 인색한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카를의 얼굴을 보았으나, 무시한 이시엘은 마물을 몰고 진영으로 돌아가 랩터의 등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그대가 전장을 뒤집어 놓았으니, 나도 내 몫을 다해야겠지.”
그리 말하고서 이시엘은 돌아섰다. 저 멀리서 갑옷 입은 촉수 괴물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손, 아니 두 촉수로 한 자루 장창을 들고 온 그는 창을 이시엘에게 내밀었다.
“저것의 등껍질을 깨부숴야 한다고 하였지.”
“…그래.”
“알겠다.”
밤낮이 바뀌어 울부짖던 거수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포효하는 것을 멈추었다.
몸뚱이를 천천히 들어 올린 거수가 대가리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윽고, 거수의 붉은 두 눈이 정확히 카를이 서 있는 곳을 향했다.
“……큭.”
하드라이누스의 포효가 다시 한번 오르멜 평원을 뒤흔들었다.
태양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쏟던 카를은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아무렇게나 질러 대는 포효 소리마저도 뇌를 뒤흔들 정도였다.
“나의 병사들이여.”
장창을 집어 든 이시엘이 하늘 높이 창을 들어 올렸다.
친위대의 시선이 창끝을 향했다. 이윽고 그녀는 창을 내려 그 창끝을 거수를 향해 겨누었다.
“쏴라.”
한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명령.
그 직후 백이 넘는 각기 다른 마력이 마법으로 승화했다.
불과 번개 그리고 얼음 덩어리가 거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날카로운 창의 형태를 띤 번개가 먼저, 그 뒤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구체가 잇고 마지막으로 묵직한 얼음덩어리가 날아갔다.
‘정석 중의 정석이잖아… 훈련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 거야.’
뇌전―화염―빙결로 이어지는 공격은 튜토리얼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연계였다.
투사체가 빠르고 일정 확률로 ‘마비’를 거는 뇌전 계열로 시작해 파괴력이 강한 화염 계열 마법으로 피해를 입히고,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기 좋은 빙결 마법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플레이어가 일일이 컨트롤하지 않으면 순서 따위 개의치 않고 마법을 쏟아 내는 제국의 마법사 부대와는 달랐다.
“…잠깐만.”
마법사라면 웅장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화려한 현장을 본 카를은 문득 거수를 보았다.
거수의 피부에서 스파크가 튀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얼음덩어리가 살갗을 짓이겨, 검은 피를 흘리게 만들었지만.
아주 약간에 그쳤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군.”
카를의 옆에 서 있었던 이시엘이 그가 속으로 하고 있었던 생각과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분명 마왕 친위대의 마법은 화려하고, 강력했다. 하지만 상대는 사도, 그들 중에서도 거수라 불리는 존재였다.
아예 체급 자체가 달랐다. 마법사들이 아무리 마법을 쏟아 내도 하드라이누스의 입장에선 벌레들이 거슬리게 윙윙 대는 것이었다.
“…공작 까마귀.”
“왜 그러지?”
“마력에, 여유가 있나?”
잠시 고민하던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 태양은 한 시간이면 카를의 마력을 몽땅 잡아먹을 정도로 소모가 크지만, 마력 치환을 이용하면 다른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여유가 있다니 다행이군. 잠깐이라도 좋으니 저놈의 시선을 끌어 다오.”
“…알겠다.”
“잠시 내 부하들을 부탁하겠다.”
그의 대답을 들은 이시엘은 손가락 휘슬을 불어 랩터를 불렀다.
그것의 등에 다시 올라탄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카를은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거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 지능이 낮은 짐승이라면 절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거울.
“치켜뜬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라.”
또 한 마리의 하드라이누스가 오르멜 평원에 모습을 드러내고.
똑같이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노려본 괴물이 포효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