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97
97화 거수 토벌전 (4)
전장의 뒤바뀐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거수가 포효를 터뜨렸다.
밤하늘로 인해 새카맣게 물든 평원이 더 짙은 어둠에 물들었다.
그것이 황천이라 불리는 마법이었다.
―끼아아아악!
수십의 언데드가 거수를 둘러싸고 다가오는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포착한 이시엘이 외쳤다.
“저들은 더 이상 너희의 동료가 아니다!”
오직 마족들만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가슴에 까마귀 배지를 단,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이들을 상대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죽어서 움직이는 것을 산 것이라 부르지 않는다! 저들은 너희의 동료가 아니고, 산 자는 더더욱 아니다! 망설이지 말고, 베어라!”
어느 언데드의 비명 소리가 길게 울렸다.
번쩍, 빛이 번뜩이더니 한 마족이 쏘아 낸 뇌격이 언데드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카를은 자신의 목소리를 마법으로 증폭시켰다.
“…집행관들은 들어라.”
어둠 속에서 수백 명의 이목이 그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망자가 되어 모욕당하고 있는 동료들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집행관들이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들은 하드라이누스에게 먹혀 언데드로 되살아난 이들을 베어 나갔다.
곳곳에서 절규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자들의 절규였고, 산 자들의 비명 소리였다.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황천.”
마(魔)의 피에 반응해 그들에게 힘과 광기를 선사하는 마법.
엘프는 마족과 척을 지게 된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그 핏줄은 인간보다 마에 가까웠다.
카를로스의 몸에 흐르는 피가 마법에 반응했다. 정현은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공작 까마귀, 황천을 겪어 보는 건 처음인가?”
카를은 고개를 돌렸다. 이시엘이 보였고, 그는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행동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주변을 가속시켰을 때와 달리, 인지가 빨라진 것을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 에너지 음료를 마셨을 때의 그 기분이었다.
몸에서 솟아나는 기운이 주체가 안 되었다.
“겪어 본 적도 없으면서 열자고 하자니….”
멍청한 건지, 이성적인 건지.
그런 중얼거림이 뒤이어 들렸으나 카를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마.”
이시엘이 말했다.
카를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를 보았다.
“네 녀석과 나는 앞으로 간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은 창을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창을 휘둘렀고, 카를은 얼음 창을 쏘아 냈다.
“앞으로 가서, 부하들이 뒤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연다.”
하드라이누스가 포효를 터뜨리며 또 한 무리의 언데드를 뱉어 냈다.
이번에는 수천 마리의 벌레 떼가 섞여 있었다.
“오늘처럼 어두운 전장에서 패색이 짙어지면 사람의 이성은 약해진다. 그리고 의존할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끼아아악!
이시엘은 얼굴이 완전히 썩은, 집행관의 정복을 입은 누군가에게 창을 찔러 넣었다.
카를은 마왕 친위대의 붉은 갑옷을 입은 언데드를 죽였다.
양옆에서 검은 피가 튀었고, 두 사람은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부하들에겐 그것이 나이고, 네 부하들에겐 그것이 네 녀석이다. 공작 까마귀.”
벌레 떼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퀴, 파리, 모기, 딱정벌레. 별의별 벌레들이 군데군데가 썩은 모습으로 혐오스러운 악취를 풍기며 날아들었다.
죽어서도 산자의 피와 살을 탐하고 취하려는 괴물들.
카를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마력을 실었다.
화르르륵!
순간 발아래서 타오른 화염이 벌레 떼를 삼켰다.
밤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불길. 언데드와 전선을 이루어 싸우던 이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거수가 그 거대한 몸뚱이를 돌려, 어느 승천자와 마법사를 보았다.
“더 앞으로!”
깨진 등껍질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방으로 퍼져 전장을 이루던 검은 연기들은 이내 카를과 이시엘의 앞에만 흘러내렸다.
“피가 끓는 그 감각을 똑똑히 기억해 둬라.”
카를은 창을 쏘아 냈고 이시엘은 창을 휘둘렀다.
몸이 꿰뚫린 사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고, 목이나 허리 따위를 잃은 사체들이 무수해졌다.
“태초에, 제국이 탄생하기 전 너희 인간들이 우리를 두려워했던 이유다.”
몸속에서 끓는 피를 토해 내는 심정으로 카를은 마력을 쏟아부었다.
마력은 조금의 낭비도 없이 마법이 되었다.
‘이게….’
정현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 인간보다 마족들이 훨씬 마법을 잘 사용하는지, 그 이유를.
수많은 마법사가 자신의 마력을 있는 그대로 마법으로 자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카를로스도 그랬고, 탑주 같은 마법사들도 그렇다.
허나 황천 속에서 인간보다 마족에 가까워진 카를의 마력은 있는 그대로 마법으로 화(化)했다.
“아.”
심장이 뛰었다.
삶과 죽음이 뒤섞이고, 거수의 포효에 흔들리는 어지러운 전장.
그 속에서 카를은 어째서인지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가라, 공작 까마귀. 방법을 찾아라.”
자세를 낮춘 이시엘이 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허리가 갈라진 언데드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부하들을 보고 오마.”
어째서 마족들이 힘과 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혈통을 숭앙하는지.
이따금씩 등장하는 마왕의 혈통이 비천하더라도 그 힘을 이유로 들어 그들의 왕으로 섬기는지 카를은 이해가 되었다.
‘이런 기분에 매일 휩싸여 있으면… 당연한 건가.’
―키에에에!
망자의 비명이 터져 흘렀다.
카를은 가쁜 숨을 흘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오르멜 평원에 길게 자라난 밀밭 사이사이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던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그는 영창조차 생략하고 마법을 사용했다. 수십 개의 고드름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세워져, 달려드는 마물들을 꿰뚫었다.
카아아악!
거수의 포효 소리에, 카를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새 언데드들을 뚫어 내고 하드라이누스의 바로 앞까지 당도한 것이다.
거수가 붉은 두 눈을 이글거리며 카를을 노려보았다.
“…결판을 내자.”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거수가 답하듯 또 한 번 포효를 터뜨렸다.
쿠웅!
거수가 앞다리를 움직여 카를을 그대로 짓뭉개려 했다.
“발현, 보호.”
그는 주위로 방어막을 펼쳤다. 거수의 육중한 앞다리가 그대로 막혔다.
당황한 듯, 거수가 그 거체를 떨었다.
하드라이누스의 포효가 또 한 번 터져 나오고 목숨을 잃은 짐승들이 카를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다만 마법을 펼쳤다.
계열이나 숙련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키이, 기기긱!
거수의 권능에 조종당하는 언데드들도 생전의 공포를 되찾은 것처럼 카를을 향해 달려들기를 주저했다.
하드라이누스가 포효를 터뜨렸다. 위협하는 포효였지만 이전과 같은 당당함이 없었다.
카를은 거수의 눈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을까.’
황천의 영향을 받아 기량이 만개한 지금이라도 웬만한 마법은 살가죽을 뚫지 못할 것이다.
두터운 표면을 뚫고 심장을 꿰뚫어 죽일 방법.
그것을 강구하던 카를의 귀에 다시 한번 거수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허?”
카아아아아!
아가리를 쩍 벌린 하드라이누스가 사납게 돌변해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언가를 본 짐승처럼 포악함이 드세어졌다. 어떻게든 카를을 죽이겠다는 것처럼 다가왔다.
‘다시 개입하기 시작한 건가.’
놈의 신이.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날뛸 이유가 없다.
카를은 방어막에 마력을 낭비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비행 마법으로 날아서 도망쳤음에도 하드라이누스는 끝까지 카를을 쫓았다.
“역시.”
그의 신이 개입한 것이다. 그렇게 확신을 내린 카를은 손안에 마력을 모았다.
마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모이기 시작했다. 황천 내부에서만 가능한 활용이었다.
닭 쫓던 개처럼 날아오른 카를을 올려다보던 거수의 붉은 눈에 서린 살의가 옅어진다.
‘하드라이누스는 몰라도, 놈이 섬기는 신은 공포를 느낀다.’
이 세계의 신은 필멸의 존재였으므로.
아무리 신이라도 자신의 사도에게 빙의할 때는 의식이 완전히 사도의 육체에 매몰되므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드라이누스가 아닌, 저 신을 노린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마법을 영창했다.
“밤하늘의 차가운 냉기가 땅에 응어리지고.”
카를은 자신의 마력을 땅바닥에 때려 박았다.
새파란 빛을 띠는 마력이 응집되어 원형을 이루었다.
“곧 저주가 되어 너의 발을 묶으리라.”
서리 고리. 에르딘 칼렉의 저서에 나와 있었던, 결계 마법의 응용. 그 마법이었다.
냉기가 폭발하며 거대한 네 다리가 얼어붙었다.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는 포효가 거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드라이누스가 아닌, 신이 내지르는 비명.
카를은 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마력을 모았다.
“영하에서 비롯된 투명한 창이여.”
시간을 들이고 영창을 더해 마법을 한층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그 결과 카를이 만들어 낸 것은 창이 아니라 기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크기의 고드름이었다.
“꿰뚫어라.”
두 자루 고드름이 거수의 두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그 두 자루 얼음 창을 본 거체가 휘청였다.
네 다리를 묶은 얼음을 억지로 깨뜨리고 움직인 탓에 얼음 창은 눈이 아닌 모가지에 내다 꽂혔다.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시엘!”
부하들을 이끌고 언데드 군단을 소탕하던 이시엘이 카를의 외침에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눈앞에 있는 거수로 시선을 옮겼다.
살아 움직이는 산과 같은 짐승이 놀라 휘청거리는 모습을 본 마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아, 그래.”
카를의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원래의 하드라이누스라면 고작 커다란 고드름 따위를 두려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짐승이, 창의 크기가 커졌다고 두려워할 리 없으므로.
지금 거수가 느끼는 공포는 그 신이 느끼는 공포였다.
“훌륭하다. 공작 까마귀.”
마왕이 창을 들었다.
주위가 기이한 정적으로 물들었다. 가을밤의 서늘함이 깔려 있었던 오르멜 평원이 한여름의 낮이 된 것처럼 후덥지근해졌다.
승천자의 영향이었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창을 든 승천자가 거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하드라이누스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는 다른 것들과 궤가 달랐다.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창끝에 새까만 마력이 실렸다.
“네놈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낱 짐승에 불과했던 게야.”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드는 승천자를 보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거수가 한순간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붉은 눈을 다시 뜨고, 하드라이누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눈앞까지 다가온 승천자를 향해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를 내질렀다.
“이미 늦었다.”
포효하는 거수의 앞에 창을 쥔 승천자가 달려들었다.
부리처럼 날카로운 아가리를 쩍 벌려 거기에 대항하려 했으나, 공중을 한 바퀴 돈 창이 거수의 아가리를 그대로 베었다.
창이 화려하게 회전하고 바닥을 박차 거수의 몸뚱이 위에 올라탄 승천자가 다시금 창을 휘둘렀다.
콰득. 창끝이 새빨간 눈알을 꿰뚫고, 거수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시 한번 창이 은빛 원을 그리고 창끝이 거수의 살가죽을 베어 냈다.
“…여기서 나자빠져 죽어라.”
이윽고, 승천자의 창이 하드라이누스의 미간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