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04)
어쩌다 구원했지만, 책임은 안 집니다 15화(4권 완결)(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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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성녀 수여식이 성국 관계자들만 참여한 비공개 행사랍시고 두 시간 만에 얼렁뚱땅 끝났다.
‘이게 뭐야!’
이제 와서 갑자기 성녀가 된다는 것은 낭만보다는 추악함이 가득한 소소한 급전 수급 계획이었지만, 사실 나쁠 것은 없었다.
일단 성녀가 되고 나면 성국이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혹시 모를 엑저 측에서의 요구를 묵살할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와 멜로는 이 좋은 핑곗거리를 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는지 서로를 탓할 지경이었다.
성녀란 게 너무 오래된 시스템이라 그랬나?
어쨌든 나는 성녀 즉위 기념 퍼레이드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처음엔 놀라웠지만, 이젠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다들 흰 옷을 입고 나를 축하하러 나온 것이다.
“축하드려요!”
내게 축하해 주는 어떤 어린애를 껴안아 주고,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성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내가 폐하께 폐를 끼치지 않을까 무서워할 때.
모망 폐하께서 그런 걸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너는 진짜 이름을 쓰지 못할 거라고. 평생을 가짜 신분으로, 명예롭다는 지위에도 본명으로 오르지 못할 거라고.
내가 인생을 살다 힘들어 고꾸라질 때를 대비해 걱정해 주시며 해 주셨던 말.
하긴.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앞으로 계속 본명을 숨기고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지.
성녀란 것이 사실은 세속적인 지위라는 사실은 제쳐 두고서라도, 나는 지금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성녀가 됐다고 공표받았다.
탑의 시체 미스터리나 출생의 비밀 등에 대한 사실은 ‘성녀’라는 사실에 묻혀 다들 알아서 납득하는 분위기이기까지 했다.
‘이래도 되나?’
마침 퍼레이드의 마지막은 성왕 폐하의 포옹으로 끝난다.
멜로 놈이 막 정한 순서였으나, 뭐 어쨌든 나쁘지 않았다.
모망 폐하는, 우리 엄마는 딱 한 마디 하셨다.
“축하한다.”
아니! 축하가 뭐길래!
그 말 한마디에 이 세상 최강 스파이인 내가 모두의 앞에서 잉잉 울 뻔했다!
마약을 먹어도 이런 기분은 아닐 거야! 그 뒤는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헤롱헤롱 기분이 너무 좋았다.
너무 들떠서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침대에 누워서도 말똥말똥.
다음 날.
혹시나 싶었던 내가 멜로에게 물어보러 갔다.
“야. 너…… 혹시…… 내게 공식적인 성국의 지위를 주고 싶어서…….”
“……? 참 나, 똑똑하기는. 맞아. 내 의도가 그거였지.”
그냥 돈 때문이었구나?
난 멜로를 때려 줬다. 근데 그러면서도 둘 다 낄낄 웃었다.
모든 게 다 잘 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
모망 폐하께서는 이번에도 또 우리보다 먼저 동제국을 떠나셔야 했다.
‘으어어어엉.’
‘…….’
그리고 우리는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폐하가 이렇게 매번 온 세계를 돌아다니던 것은, 단지 우리 성국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대륙을 위한 마물의 조사와 토벌 목적도 있었단 사실을.
우리 일도 아닌데 왜 남의 나라 일들도 도와주시냐고 물었더니, 폐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너 같은 애들이 생길까 봐 그러지.’
폐하께서는 예전에 당신께서 저지르실 뻔한 죄의 대가를 아직도 그런 방식으로 치르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도 충분했다. 우리는 뭐 이제 붙어 있어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 따위를 넘어섰으니까!
나는 모망 폐하의 통신기 고유 번호를 ‘엄망’이라고 저장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칙하다.’
모든 사건들이 결국 다 마물과 나로 연결되는 듯했다.
마물들을 죽일 수 있는 나의 피 하며.
이 나이 먹고 ‘나는 뭐지?’ 같은 사춘기스러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 힘이 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는 이 와중, 되찾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용들을 직접 만나 보는 것뿐.
그리고 남은 것은 엑저 놈들의 항해 준비를 기다리면서 동제국에 세워진 우리 임시 본부에 머무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방 환기를 시키다 십 분이 지나자마자 창문을 닫았다.
드르륵-
툭!
그런데, 그 사이를 틈타 방바닥에 꽃이 떨어졌다.
이 본부 천장에서 꽃이 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내가 있는 방 안으로 던진 것이다.
“…….”
그리고 창밖에선 아쉬움의 한탄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멜로도 나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
그건 바로…… 몇십 년 만에 부활한 성녀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성녀니이이임! 사랑합니다아아악!”
이 주 전, 판데르니안은 이렇게 말했다.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야 있지만, 항해란 것은 워낙 위험한 것이라 말이지요. 특히나 귀한 몸인 성녀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저 위험해도 상관없어요. 혹시 나머지 세 명이 그렇게 공작님을 괴롭히던가요?’
‘셋은 그렇다 쳐도 성녀님이 다치면 대중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놀리지 말아 주세요…… 그럼 그 준비에 얼마나 걸릴까요……?’
‘한 달은 여기 동제국에서 머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항해를 위해서 강제로 여기서 한 달은 머물러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가 예상했던 소소한 금전적 이득을 넘어서 폭발적인 광기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 주 전만 해도 판데르니안의 저 소리는 반쯤 농담이었다.
‘성녀님이 다치면 대중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는…….
그러나 지금은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성녀님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아악-!”
“저놈 잡아!”
지금 성국 임시 본부 바깥은 엑저에서 보내온 특별 친위대가 교대로 경비를 서고 있어야 할 판이었다.
특별히 범죄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닌데, 사람이 워낙 복작복작해서.
‘사실 그것도 모자라서, 공녀 사랑 협회가 자경단을 만들어서 치안을 유지한다지…….’
덕분에 멜로의 사업은 순항이었다.
내 숙소 바깥에 건물을 임대해 카페와 제휴를 맺어 외부인들에게 성녀 상품을 판다는데, 그걸로 지금 우리 경비가 충당될 정도라 한다.
그 과정도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성녀 카페]라는 간판이 떡 하니 붙은 좋은 건물.
이 카페의 주인장 아저씨 얼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왜냐?
[엑저와 웬덤이 동시 방문! 맛집]이라는 현수막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맨몸으로 동제국에 와, 공작가 주역들이 동시 방문한 맛집이라는 마케팅으로 성공한 자영업자 아저씨!
멜로는 그의 마케팅 실력을 눈여겨보고 공식 제휴를 제의한 것이다.
나도 그 카페에 가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냥 평범한 스파이들처럼 인조 인피를 뒤집어쓴 변장을 하고서.’
일단 그 카페 내에 들어가면 잔잔한 음악이 손님들을 반겨 준다.
여기서 이 음악이 뭐냐면, 성국의 국가를 편곡한 것이다. 근데 사람들은 그냥 으하하 웃고 넘어가는 것이다. 마치 테마 카페를 즐기러 온 사람들처럼!
그리고 사람들은 원가의 십오 배는 되는 커피를 시켜 마신다.
그럼 카페 아저씨와 성국 알바생 일동들이 쟁반에 담아 와 커피를 내오는데, 사람들은 커피를 보자마자 요란하게 좋아하는 것이다.
“우와!”
“어머나. 귀여워라.”
사실 커피는 별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입체 라떼 아트로 곰돌이만 그려 넣었을 뿐.
이게 과연 성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좋다고 그걸 다 마시고, 나갈 땐 굿즈를 집어 갔다.
참고로 그 카페는 내가 직접 설치해 놓은 도청기들이 가득한데, 들어 봤자 별로 소용은 없다.
왜냐면 보통 거기서 이뤄지는 대화들은 다 이런 것이라.
“여기가 공식 지점이래.”
“내 동료도 필요하댔어. 가족들 줘야 한대. 세 개만 더 사 가자.”
“인당 두 개씩밖에 안 된대잖나…….”
그들이 사 가려는 것은 곰돌이 티스푼이었다.
이 티스푼의 역사가 또 황당하다.
전전대 성왕이 실수로 발주를 잘못 넣어 성국 창고에 쌓여 있던 악성 재고라는 것이었다!
‘멜로 이 사기꾼 자식!’
아니, 근데 그 전전대 성왕 폐하의 취향은 왜 그 모양이시래?
아무튼.
모델 입장으로선 몇십 년 묵은 티스푼 세트를 팔아먹는 것이 난감하기 짝이 없으나, 나는 뒤이은 설명에 대충 납득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화제와 세척제, 성수 등등을 같이 판매하는데, 그것들도 메이드 인 성국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화제나 성수를 재미 삼아 뿌렸다가 같이 기념품으로 몇 박스씩 사 가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