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07)
운 것이 티 나지 않게 눈가를 멀끔히 정리하고 놓아주자, 페리안이 오빠의 얼굴 앞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익숙한 얼굴이라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같다.
레리온은 눈물을 참고 오빠라 말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우리 오빠는 애긴데!”
믿지 않았다.
세 살 페리안에게 큰오빠는 열두 살 어린이였으니까.
레리온은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했으나, 아기 페리안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거짓말!”
그러고 꺅꺅 웃고 빨리 말해 달라 애교도 피우고, 두 눈썹도 찌푸려 보고, 솜방망이 주먹으로 상대의 허벅지를 꾹꾹 누르기도 한다.
공녀는 언뜻 들어도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서도 장난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지금이 자신이 생각하는 현재로부터 이십 년도 넘게 지난 순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이 장난치는 거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 아기에게, 그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자신은 엑저의 친척 어른 중 하나이며, 그와 동시에 레리온의 직속 수하인 루리라고.
얄팍한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은 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쉬웠다. 그 긴 세월에 얽힌 진실을 다 설명하기에는 그의 마음도 타들어 가는 것 같았으니까.
이름은 헛나온 것이었으나 페리안이 ‘귀여워!’라고 말해 주자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한참 레리온에게 장난을 걸던 아기 공녀가 으흠, 하고 당당히 서서 물었다.
“레리온이가 보낸 거지?”
“……예.”
“좋아! 그럼 나랑 같이 기다려!”
페리안이 씩씩하게 웃었다.
***
“나는 지금 여기 혼자 있다요.”
아기 특유의 이 목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르는 아저씨들이랑 왔는데 다 먼저 갔나 봐. 그래서 혼자 있는 거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너는 알까. 레리온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때, 아기 페리안이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말을 했다.
“근데 내가 왜 온 거냐면…… 엄마가 혼자 놀러 가서! 그래서 온 거야.”
페리안은 그때 그 시절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본인 입으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레리온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도 모르고 페리안은 한참 재잘거렸다. 귀여운 자기 자랑이었다.
“나는 착해서 잘 참을 수 있는데, 다들 애기야! 그리고 나는 어른이야!”
“……왜 모두 애기예요?”
“엄마가 늦게 온다고 다들 잉잉거려서. 나는 착해서 잘 참는데.”
키가 구십 센티도 안 되는 아기가 당당하고 뿌듯하게 자랑했다.
자기가 착하고, 잘 참는다고 두 번씩이나 강조하는 공녀님은 그 시절의 그 불안한 집안 분위기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다.
레리온이 착잡한 마음으로 아무 대답도 못 하는데, 그사이 페리안은 본인한텐 가신들도 많다는 자랑까지 덧붙였다.
공녀님은 본인이 너무 대단해서 주체할 수 없는 듯, ‘에헴’하고 어디서 배운 헛기침 소리를 삐약거리는 육성으로 내며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착잡한 와중에도 레리온의 시선이 동그란 배로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큰 손이 저도 모르게 통통한 공녀 배를 쓰다듬듯 만졌다.
‘어릴 때 그렇게 많이 두드려 줬는데.’
그러자, 당당하게 ‘에헴!’하던 아기가 부끄러운 듯 헤헤 웃으며 뒷걸음질로 도망쳤다.
어른들은 자기 배를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단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들과는 달리 조금 동그란 제 배가 아주 약간은 부끄러울 나이였다.
쪼끄마한 게 자기 배를 두 팔로 가리면서 살짝 무릎을 굽히고 부끄러워하기까지.
“헤헤헤…….”
레리온이 아차 싶어 몸을 함부로 만진 무례를 사과했다. ‘레리온’ 시절엔 배든 어디든 다 마음대로 건드리며 장난칠 수 있었으니 저도 모르게 방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페리안은 쿨하게 넘어갔다.
“알겠어. 루리도 비밀로 해 줄게.”
“저도요?”
레리온은 과거엔 몰랐던 진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항상 예쁨 받던 아기였다. 주변엔 참다 못해 이성을 잃고 배를 톡 만져 보고 용서받은 충신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착하기는 또 얼마나 착한지. 사랑만 받아서 모날 구석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본인을 너무 귀여워해서 실수한다는 사실을 알고 넘어가 주는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레리온은 동생을 꽉 안아 주었다. 페리안은 배를 내밀었다.
***
오빠의 부하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아기는 계속 탑 밖으로 나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절대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인 설명도 없이 불리어 이 상황에 당면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아기 페리안이 그대로 사라질 것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는 한참이나 어린 동생을 달래야 했다.
결국 페리안이 삐졌다. 통통한 볼은 조금씩 더 부풀려지고, 눈가는 금세 글썽글썽해졌다.
그걸 보는 건 그에게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었다.
“죄송해요, 공녀님.”
“나빴어.”
“……죄송해요.”
“내가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레리도 좋아할 건데.”
“……아니에요.”
이렇게 혼자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았으면 그냥 기쁠 수가 없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야.
사실 바깥에 나간다고 페리안이 바로 사라지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리온에겐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페리안이 바깥에 나가서 기다려도, 아이가 기다리는 오빠는 영원히 오지 못한다는 사실.
그 시절의 오빠는 이미 변하고 망가진 지 오래다. 동생이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레리온은 동생이 자신을 기다리게 놔둘 수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실망감이 쌓이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그때 페리안이 꽥꽥, 베개를 가져와 달라고 졸랐다.
“베개는 어디에다 쓰시게요?”
“창문 앞에서 누워서 볼 거야…… 오빠 오나 안 오나.”
하지만 베개를 또 어디서 가져오랴.
혹시나 잠깐이라도 나갔다가, 이 마법 같은 순간이 끝나고 사라져 있으면 그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레리온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동생 앞에서 그는 계속 무력한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아기 공녀님은 한숨을 쉬고 타협해 줬다.
“그럼 팔베개!”
***
올 수 없는 오빠를 기다리며.
아기는 오빠의 부하라는 남자의 팔베개를 하고 창문 바로 앞에 누웠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직면했다.
“……!”
누우면 창문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몸 크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페리안이 충격받은 얼굴로 속삭였다.
“오빠 오는 거 보이면 말해 조야 해.”
“예. 그럴게요.”
이 시각은 원래 낮잠 시간이었고, 레리온은 페리안이 잠들 때까지 배를 토닥여 주곤 했었다.
오빠라곤 믿지도 않으면서, 그때의 따뜻함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걸까?
페리안은 오빠의 수하가 제 뒤에 누워서 팔베개 해 주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용기 없는 그가 그 시절처럼 토닥여 주지는 못하고 한참.
잠든 것인지. 이 행복한 순간도 이젠 끝인 것인지 고민스럽던 순간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레리 오빠도 화 풀렸을까?”
“…….”
대답할 수가 없었다.
페리안은 다시 씩씩하게 물었다.
“응? 이제 화 풀렸을까?”
레리온은 동생을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참고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웅얼거리듯 사과하기 시작했다.
“다 풀렸어. 페리한테 화낸 거 아니야.”
“…….”
“오빠 스스로가 무능력하고 미워서……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야.”
그래서 그랬어. 오빠가 미안해.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야. 오빠만 아니었더라도, 너는…….
그러나 그때였다.
페리안이 꽤액, 허공에 성을 냈다! 그리고 바로 온몸을 바둥거리며 레리온에게 화를 냈다.
우리 오빠를 욕하다니!
“바보라고 하지 마아…… 우리 오빠는 똑똑해. 레리한테 이를 거야!”
뒤에서 제압당하듯 껴안긴 상태라 때리지도 못하면서, 솜방망이 같은 손발을 붕붕 허공에 휘두르며 제 오빠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아기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남매는 동시에 울고 있었다.
“레리를 욕하지 마!”
레리온은 아기 동생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중얼거렸다.
“오빠가 돌아오면 혼내 주자. 마음껏 화내고, 때려도 돼.”
“나는 레리한테 화 안 내!”
아기가 계속 발로 바닥을 팡팡 차며 울먹였다.
“왜, 왜 화를 안 내…….”
“나는 레리를! 좋아하니까…….”
그 말로 끝이었다.
레리온은 오열하면서 동생을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