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08)
오빠는 널 좋아하는데도 화를 냈어. 신경질을 냈단 말이야…….
***
엉엉 울던 공녀는 어른이 자기보다 더 엉엉엉 우는 걸 보고 마음이 식었다. 아주 간단히 용서한 것이다.
“근데 왜 눈이 빨개? 피 아니야?”
아차. 보이고 말았다.
레리온이 수습하려는 순간, 페리안이 한 발짝 다가온다.
“이 공녀님이 호 해 주마!”
그리고 열심히 불어 주는 호오호오 바람.
“…….”
페리안은 멀뚱멀뚱 서서 씨익 웃었다.
오빠의 수하가 좋아하는 것 같다! 역시 자긴 착한 공녀님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역시 한 번 쭉 울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 페리안은 레리온을 조그마한 손으로 밀어 눕히고 다시 팔베개를 시켰다.
“근데 나 낮잠 시간이야.”
“……주무시겠어요?”
“응. 그리고 토닥토닥해도 돼.”
토닥토닥은 오빠와 페리만의 추억이었다.
레리온은 악기 연습하는 시간을 일부러 페리안이 낮잠 잘 시간에 맞춰 배정받곤 했었다.
아기는 졸려지면 꾸물거리며 오빠를 찾아 돌아다녔다. 항상 바깥에서 칼싸움하는 오빠도 좋지만, 잠들기 전에는 큰오빠가 더 쓸 만하다!
그리고 연주 소리가 들리는 방을 향해 돌격하고 나면 오빠가 하던 연습도 중단하고 웃으며 맞아 주는 것이었다.
그 후는 항상 같다.
페리안은 당당히 토닥토닥을 요구했다.
오빠는 페리안이 잠들 때까지 도닥여 주곤 했다. 아기가 신생아일 무렵부터 토닥여 주던 박자 그대로.
이제 오빠의 손은 작지 않다.
아기 배를 다 덮을 정도로 큰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배에다가도 해 줘도 돼.”
사실 본인이 배에 받고 싶으면서, 그렇게 겸양을 떠는 공녀님이셨다.
레리온은 눈을 감고 한참이나 동생을 도닥여 줬다.
어느새, 품 안에 아기가 자리하던 위치엔 깨끗하게 부서진 모래들이 곱게 깔려 있었다.
레리온은 사라짐을 알면서도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아주 한참 동안이나.
같은 시각 15층.
“아빠다!”
조그마한 아기가 끼야악 소리 질렀다.
레리온과는 달리, 레서는 그때 그 시절과 비교해서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그렇기에 아기 페리안도 낯가릴 시간 없이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 그렇게 좋아하던 페리안이 바로 몸을 숙이고 엉엉 울었다.
모르는 아저씨라고 생각한 레리온 앞에선 공녀님 체면을 지켰다.
하지만 아빠 앞에선 속상함을 감출 필요가 없다. 딸이니까.
페리안이 바로 뿌애앵 울면서 아빠에게 안겼다.
***
아기 살 냄새.
품 안에서 들려주는 어린 숨소리. 들어 올리자마자 목을 감아 오는 양팔. 어른 품속에서 균형을 잡는 그 자그마한 움직임까지.
꿈속에서 수천 번도 더 겪었던 일들이다.
그러나 그 어떤 생생했던 꿈도 현실만 못 했다.
한참 아빠 품에 안겨서 서럽게 울던 페리안이 눈물을 뚝 그치고 고개를 들어 아빠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빠 표정이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페리가 단풍잎 같은 손바닥으로 아빠 팔을 통 쳤다.
레서가 어색하게 웃었다. 숨 쉬는 시간도 아깝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레서는 눈물 흘리진 않았다.
아빠였기 때문이다. 적게 슬프고 적게 괴로워서가 아니라 그냥 그래야 했기 때문에.
대신 그는 그만큼 환하게 웃었다.
아기와 강아지는 보호자의 표정을 따라 하곤 한다.
그래서 지금 와서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였던 것이다.
웃기만 하다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페리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웬일로 드러누울 때까지 놀아 주는 아빠 옆에서 헥헥 숨이 차도록 웃었다.
떨어져 있던 세월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상봉이었다.
아기가 죽기 전에 마지막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레서는 그 답을 몰랐다. 사실 그 어떤 부모도 모를 것이다.
아기를 아빠 다리 위에 앉혀 놓고 같은 방향을 보며, 부녀가 종알종알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엄마 닮았잖아.”
“아니야, 아빠 닮았어.”
순 억지였다. 그러나 레서 눈에 지금껏 한 번도 발견해 본 적 없는 것들이 들어왔다.
선입견이란!
어떻게 그땐 이런 것들이 하나도 안 보일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끼고 살았는데도.
그렇게 입히고, 먹이고, 놀아 주는 동안 단 한 번도 눈에 들어온 적이 없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레서가 둘 사이의 닮은 부위를 하나하나 꼽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부위마다 말하고 보는 수준이었지만.
“손가락도 그렇고, 발가락도 그렇고. 봐봐. 코끝도 닮았네.”
페리가 아주 심각한 얼굴로 자기 손가락 사이를 벌렸다 오므렸다 했다.
제 단풍잎 같은 손이 정말 아빠 닮았나 진지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냉철한 눈으로 제 손을 검사한 아기 공녀님이 수긍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해. ……얍!”
하지만 그보다 아빠를 찌르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렇게 서로 장난치며 옆구리를 찌르던 부녀에게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엄마 얘기가 나왔다.
“난 내일은 엄마랑 잘 거야. 아빠는 페녹스랑 자.”
“……엄마가 늦게 오면?”
“그럼 아빠랑 같이 자 줄게.”
“……이 녀석이.”
레서가 턱으로 딸의 말랑한 등짝을 꼭꼭 눌러 주자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페리가 헥헥 웃다 외쳤다.
“하지만 혼자 자면 외롭쨚아!”
그 말에 잠깐 레서가 멈췄다.
페리를 가끔 혼자 재워야 할 때가 있곤 했다. 육아 슬라임이 있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혼자 자는 게 외로웠어?”
“무섭지는 않은데, 으응, 근데에…….”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주 도도한 공녀님께서 선심 써 준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럼 아빠 걱정 마. 앞으론 페리가 같이 자 줄게.”
겁쟁이인 건 자기면서, 남도 자기처럼 무서운 줄 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빠는 오빠한테 치워 놓고 자기는 엄마랑 자려고 한 주제에.
아빠 핑계로 같이 자 준다고 말하는 아기 얼굴을 보는데, 레서는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페리는 정말 본인이 아니라 아빠를 위해 선심을 쓰고 있던 것이다.
감동을 주려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아비를 빤히 보는 그 눈동자엔 오히려 ‘고마워해도 좋아’라는 듯한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감사는 사양 않고 받겠다는 듯.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하나, 반대 방향에서 오는 것은 대가도 없으면서 그 크기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외롭지 않게 해 주겠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레서는 턱으로 딸을 꾹꾹 눌렀다.
그러고 보니 딸을 놀릴 때도 아닌 것 같다.
아내가 죽고, 딸이 가 버리고.
항상 혼자인 침상은 무섭고 외로운 것도 몰랐다. 그걸 지금에서야 배웠다.
***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다. 설명 없이 온 것은 레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이젠 정말로 금방이라는 사실을.
이젠 이 어리고 미숙한 딸을 보내 줘야 한다.
이제 이 아이는 죽기도 하고, 서러워하며 자랄 것이다. 아빠도 가족도 없는 인생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레서는 없다.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다. 조금의 영향력도 끼칠 수 없고, 한 점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게 제일 한스러웠다.
이제 너를 떠나보내야 한다.
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 아비가 그때 조금만이라도 더 절박했으면 어땠을까. 너를 찾아가 봤다면.
네가 살아가는 모습, 어른이 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부녀가 될 수 있었을지.
아빠는 네 삶에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옆을 지켜 주지도 못했구나.
그때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
레서는 아기를 품 안에 앉혀 놨다. 그리고 두서없어도 사랑을 담아 속삭이기 시작했다.
부녀가 같은 방향을 보고 앉은 채 대화를 시작했다. 아빠가 아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