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09)
아가야. 자기 몫을 챙기는 것만큼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
“난 착해!”
그럼. 페리가 착한 건 다 알지.
네가 크는 동안 바로 곁에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단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빠가 옆에서 돕고 이끌어 주고 싶었어.
아기는 귀에 닿는 바람이 간지럽고 그냥 장난 같아 꺅꺅거렸지만, 레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 신분이 높다고 남한테 너무 함부로 하면 못 써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되어 있어.
“난 아빠보다 착해.”
맞는 말이라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네가 다 커서도 의지할 수 있기를 바라서였어.
오빠랑 아빠는 네가 다 커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응석을 부려도 되는 사람이야.
“아빠는 메롱돼지.”
누구보다 널 먼저 돌봐야 한다.
마음이 울적하면, 바깥을 걷고 나면 기분이 나아져 있을 거다.
“응.”
기분에 따라 행동이 좌지우지되어선 안 돼.
“응, 메롱돼지.”
레서가 또 턱으로 딸의 말랑한 등을 꾹꾹 눌러 줬다.
“끼약!”
이 즈음엔 이 응징을 당하고 싶어서 유난히 까불거리던 페리안이었다.
흐트러진 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해 정리해 주고, 레서가 제 다리 사이에 딸을 끼워 넣었다. 못 도망가게 꽉 끌어안기 위해.
항상 당당하게 살아야 한단다. 아빠가 옆에 없어도.
한 사람의 인간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훌륭한 군주로 널리 칭송받기 위해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생활 전반적인 조언을 하기도 했다.
여자라고 무시하는 놈들은 상대도 하지 말아라,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놈은 부하로도 두면 안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에 공통점은 하나였다.
딸아이가 어디 가서 사랑과 존경만 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다 말할 즈음에 깨달았다.
자신은 딸의 인생에 한 점 영향 끼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이미 너무나도 과분한 딸이었다고.
페리는 본인도 모르고 있는 듯했지만, 점차 말수가 줄고 더 말랑해지고 있었다.
아빠는 딸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때 페리가 에헴에헴 하는 헛기침 소리를 냈다.
레서가 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그 소리는 왜 자꾸 내?”
아기 목으로 하는 크흠, 에헴 소리는 연약하고 하찮기 짝이 없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도 어느 순간부터 헛기침하는 소리를 흉내 내곤 했었는데…….
‘아가, 감기 걸렸어?’
‘크흥!’
이번에도 그렇다.
대답은 않고 에헴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에헴!”
“목에 안 좋을라.”
우리 페리는 능력도 좋아서 다른 몸을 쓰면 되겠지만.
아니 애초에 금방 사라질 버릇이겠군.
그러나 페리는 비밀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아빠가 오래간만에 행복할 만큼 놀아 줘서 기분이 너무 좋아진 탓이었다.
아기가 양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며 말했다.
“이거는 아빠를 따라 하는 거야.”
아기가 에헴 하고 웃었다. 아주 행복한 얼굴이었다.
페리가 페녹스의 안색을 보며 살짝 눈치를 봤다.
아기 몸 두 개가 아빠와 오빠랑 화해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설명시켜 준 뒤 번득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얘야말로 내 아기 시절에 미쳐 있는 놈이었잖아!’
아기 시절의 나는 페녹스나 레리온이나 상관없었다.
그러나 근래 셋 중에선 페녹스가 제일 정상적인 편이라 생각하고 다른 둘한테 보내 줬던 거였다.
하지만 칼 들고 설치던 걸 생각하면 또 그것도 아니지 않던가!
페리의 머리가 시녀 시절을 떠올리며 핑핑 돌아갔다.
아기 페리는 베개보다 어쩌고저쩌고. 아기 페리랑 손을 잡고 마구간에 가면 어쩌고저쩌고.
그 시절에 들었던 아기 페리 자랑이 얼마나 많은지, 수많은 이야기가 바로 떠올랐다. 거의 세뇌 교육에 가까울 정도로 들었던 탓이다.
‘왜 자기는 아기 시절이랑 안 만나게 해 주냐고 삐지면 어떡하지…….’
게다가 얘는 미치면 칼 들고 날뛰는 놈! 제일 무서운 놈!
‘으앙.’
페리가 허둥지둥 급하게 변명하다 다른 화제로 넘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근데 아까 그건 제가 아니고 아기 시절의 저고요. 아기가 그 둘이 보고 싶다고 해서 지금의 저도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왜 그렇게 허둥대니, 페리야?”
네가 또 네 형 찌를까 봐!
아니! 네 형은 찔러도 되는데 나는 찌르면 안 돼!
나는 아파!
페리는 속마음을 삼켰다.
‘흉기를 허리에 차고 있는 놈이다! 방심하지 마!’
그런데 페녹스가 수려한 얼굴로 방긋 웃었다.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내가 그 둘 질투할까 봐 그러는구나. 아기 페리랑 시간을 보낸다고.”
“…….”
“아니지, 오히려 형님과 아버지가 나를 부러워해야지. 내가 왜 그 둘을 질시하겠어.”
“……왜요?”
페녹스가 천만 대군을 혼자 상대하는 고고한 기사 같은 얼굴로 엄숙하고 근엄하게 말했다.
이럴 때만 분위기를 잡는 인간이었다.
“페리 너는 아기라서 귀여운 게 아니야. 그냥 페리라서 귀여운 거지.”
‘또 미친 소리 한다.’
“그리고 옛날보다 지금의 네가 더 중요한 건 당연한 일이잖아. 제일 중요한 페리가 나와 놀아 주고 있으니 오히려 그 둘이 나를 부러워해야지.”
페리는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오빠의 정강이를 찰까 말까 고민했다. 페녹스는 자기 종아리를 동생 쪽으로 뻗어 줬다. 차기 편하라고.
***
“치워요.”
뾰로통하게 말했지만, 그래도 페녹스가 예전보다는 많이 성장한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얘, 조금 인간이 되었구나…….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흙사람과의 연동이 끊길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애기 둘이 재밌게 놀다, 이제 정말 가 버린 것이다. 영원히.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볼주머니에 조금 담겨 있던 힘이 내게로 돌아왔다.
알 수 있었다.
삼신기의 마지막인 신상(神像)이 내게 방금 완전히 동화되었다고.
“…….”
사실 페녹스에겐 내색 않고 있었지만, 나는 아기 둘이 뭘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레리온이 내 배를 토닥이며 재운 것이나, 레서가 아빠로서 딸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계속 속삭여 주던 것이며…….
‘말버릇에 대한 것은 충격적이었지만…….’
멜로가 맨날 넌 배워 와도 어디서 그런 걸 배워 오냐고 타박했는데.
‘그래도 이젠 나만 하는 거니까 내 거야!’
어쨌든 각각 레리온과 레서에게 간 둘은 재밌게 놀다가 헤어졌으니 이제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 지금의 어른인 내가 두 부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내가 탑을 나가기 전에 그 둘이 돌아왔었다면?
저렇게 그냥 만남만으로 앙금을 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가족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로 완성될 때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일을 겪지 않았나.
이번 사건 하나로 꽁냥꽁냥 아빠 오빠 하면서 잘 지낼 수 있을 리가.
마침 페녹스는 혼자 신났는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냥 나랑 같이 앉아 있을 뿐인데 이게 재밌나 보다.
난 그놈을 가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제 가 볼게요.”
페녹스가 순식간에 우울한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며 묻는다.
“……누구한테?”
내 소속으로 알려져 있는 성국에 돌아갈지, 아니면 그 둘에게 갈지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계속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겠지.
눈치는 빨라 가지고!
나는 가만히 서서 페녹스를 내려다보았다.
“…….”
사실 이대로 성국 임시 본부로 가 버려도 상관없다.
아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 본 둘은 한동안 내게 빌빌 길 테고, 그럼 나는 계약서 조항대로 그냥 원하는 것만 요구하면 될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바랐던 갑 노릇만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