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25)
“……미안하게 됐다니까요, 페녹스 경.”
“너무하십니다! 정말……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설명을 들은 페녹스는 땅을 치며 셋을 원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페녹스 경.”
“…….”
“페리를 찾아야지요.”
사실 페리는 가만 놔둬도 두 어머니 신 덕분에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겠지만.
페녹스가 지원하는 물자가 사라질라!
멜로는 흑심을 품고 서둘러 페녹스를 대충 달랬다.
“페리 탈환 원정대를 결성합시다.”
구성원은 멜로와 페녹스, 그리고 옐베리와 유리스!
위대한 ‘페리 찾기 원정대’가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페리 탈환 원정대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유리스의 증언에 따르면, 아기가 사라질 때 흙이 휘몰아쳤다고 한다.
그 말은 이동에 페리의 의지가 섞여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아기 페리는 그때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원정대가 고민하던 그때.
페녹스가 벌떡 일어섰다.
“아기가 이동한 곳은, 본인에게 익숙한 장소일 겁니다.”
“그렇겠지요.”
“페리가 아기 시절엔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놀곤 했었죠.”
“……!”
“그리고 그 집무실은 지금 셋째가 쓰고 있습니다!”
***
동제국 엑저 본성의 공작 집무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홀로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화려한 남자가 편하게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보석안은 빛 한 점 없어도 서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그게 그가 어두운 방 안에서도 개의치 않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가 그 보석안으로 읽는 서류는 바로 신대륙에 파견 보낸 부하들에게 받은 보고서였다.
부하들은 한결같이 외교의 어려움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저쪽 대륙을 신대륙이라 부른다. 그전까지 저쪽 대륙의 존재를 몰랐을 뿐, 그곳이 갑자기 솟아난 ‘신’대륙도 아닌데.
그리고 반대로 저쪽에서도 이쪽을 신대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배척했다. 서로를 미지의 신대륙, 미개한 신대륙으로 여기면서.
사람들 간의 인식이 그런 상황에서 판데르니안의 역할은 매우 막중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몰라도 페리의 어머니인 앨리스 경이 먼저 홀로 대륙을 오가긴 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두 대륙 간 교류의 물꼬를 튼 사람이 그였다.
그리고 그쪽 대륙에서도 칭송하는 그 대단한 성녀님이 판데르니안과 막역한 관계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보니, 상대편 사람들은 판데르니안의 호감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태도나 결정 하나하나가 대륙 간의 관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판데르니안은 대륙 간의 무역 다툼 건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줘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는 회상에 빠졌다.
성가신 고민이 생기면 옛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페리안 공녀가 살아 있단 걸 알게 된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사실 그녀가 죽은 줄 알고 있었을 때는 옛날을 회상하는 태평한 버릇이 생길 여유도 없었다. 떠올릴수록 심장이 아팠기 때문에.
***
보육원에서 판데르니안은 튀어나온 못 같은 존재였다.
그 화려한 존재감은 꾸질꾸질하던 어린 시절에도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었고, 결핍이 가득한 아이들 사이에서 빛나는 꼬맹이는 시기와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앨리스 경이 옆구리에 아기를 끼고 방문했고…….
‘웅야.’
반짝이는 판데르니안의 보석안을 보고, 아기가 손을 뻗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판데르니안은 가끔, 페리안에게 짓궂게 고백하고 싶었다.
‘먼저 손을 뻗은 쪽은 공녀님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처음에 관심을 준 쪽은 그쪽이었다. 그게 판데르니안이 아직껏 비밀로 하고 있는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비밀로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추억이라서.
그때, 이름을 알려 주고 나니 우물우물거리면서 따라 부르는 그 얼굴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파니. 파니.’
당시 페리안 공녀가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라곤 ‘엄마’, ‘아빠’, ‘오빠’, ‘안아’, ‘내려’ 정도였다고 한다.
대답도 ‘응’과 ‘잉’ 사이의 발음으로 귀엽게 대답하는 것밖에 못 할 정도였으니.
그러니 그 후로 보육원에서 판데르니안의 위치가 크게 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페리안은 그 어린 나이에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던 것이다.
***
그리고 그때였다.
엑저 본성의 집무실. 어두운 곳도 훤히 보이는 보석안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그 시절의 아기 페리안이었다.
아기 부스러기 같은 쪼끄맣고 어린 것이 두리번두리번, 어두운 방 안을 요리조리 둘러봤다.
곧이어 빛나는 판데르니안을 발견하고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귀여운 얼굴은 점점 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어두운 방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었다.
판데르니안이 황급히 아기에게 다가가 안아 올렸다.
“힝.”
“페리?”
그가 불러 보았지만, 페리안은 츄욱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져 폭 안겨서 ‘힝’ 소리만 냈다.
“페리 님, 무슨 일입니까?”
“잉.”
그리고 몇 번 더 재차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아기는 포옥 안겨서 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판데르니안은 지금 이 상황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쉽게 알아차렸다.
신 두 명을 어머니로 둔 여자는 고생깨나 하는 법이다. 두 분 중 어느 분이 장난을 치는 중인 거겠지.
그리고 그 추측에 확신을 더하듯, 페리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본인의 의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곧이어 페리가 힝힝거리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어두운 방 때문이다. 혹시나 싶었던 그가 방 안을 환하게 밝히자, 힝 소리도 멎었다.
‘귀엽군.’
밝은 빛 아래에서 말간 얼굴을 마주한 그의 머릿속에서, 예전에 있었던 일이 또 떠올랐다.
***
앨리스 님이 판데르니안에게 아기 페리를 맡겨 놓고 어딘가로 훌쩍 외출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 귀한 공녀님을 자신이 돌봐도 되는 건지, 어째서 공작 부인께서는 이렇게 자유분방하신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에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당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였다.
아기 공녀를 돌보는 것.
‘이빨이 몇 개이십니까?’
애기 페리는 용케 이빨 소리를 알아듣고 입을 앙 벌렸었다. 아랫니 두 개가 보이자마자 판데르니안은 저도 모르게 심장 쪽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래. 두 개시군요. 장합니다. 대단합니다.’
‘앙.’
‘그래도 공녀님은…….’
어렸던 판데르니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속삭였다.
‘저한테 안 됩니다. 전 이빨이 몇 배나 많습니다.’
‘앙.’
‘윗니도 없으시면서.’
‘앙?’
귀여워 죽겠다는 듯, 토실토실한 뺨에서 손을 못 떼는 주제에 허세였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허세는 페리안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왜냐면 처음 본 순간부터 이분께 사로잡혔으니까.
회상을 끝마친 판데르니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빨이 몇 개이십니까?”
“왕!”
잠깐 입을 와앙 벌렸다 다무는 그 작은 입술 사이로, 아랫니 두 개가 보였다.
판데르니안은 심장을 붙잡았다.
***
아기 공녀님을 침실로 데려가는 사이, 페리안은 조금 더 자라서 문장형으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방금보다 조금 더 자라셨네요. 지금은 몇 개월 정도일지.”
“나는 페리안이야.”
“그러십니까.”
그리고 침실에 도착하자, 아기 페리는 희한한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 여자는 페리안 본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테인과 판데르니안에게 공평하게 하나씩 나눠준 가체였던 것이다.
사실 순전히 판데르니안만을 위해 이 가체를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니었다. 동제국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벌떡벌떡 나타나기 위해 빚어 둔 것이다. 판데르니안은 그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어쨌든 판데르니안은 그걸 소중히 침실에 눕혀 놓고 있었으므로 아기와 성인의 마주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기는 순수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예뻐.”
“예쁩니까?”
“응. 네.”
판데르니안은 아기의 반응을 지켜보다,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보기에도 본인이 예뻐 보였나 보다. 하기야, 누워 있는 페리안은 판데르니안의 눈에도 천사 같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안아 들고 있던 아기를 내려 주 니, 아기가 쪼르르 자신의 몸으로 달려갔다.
고사리손이 이불자락을 잡고, 커다란 눈을 판데르니안을 올려다본다.
“이불 더퍼 주자.”
“예. 덮어 드리겠습니다.”
추워 보였나 보다.
판데르니안이 이불을 덮어 주려 하자, 아기가 손을 번쩍 들고 자기주장까지 했다.
“내가! 내가! 내가 할래!”
결국 아기 공녀님을 안아 들고, 가체에 이불 덮어 드리는 것을 도와줘야 했다.
***
뭘 먹여야 하나.
판데르니안은 급한 대로 집무실에 놓여 있던 흰 빵을 가져와 내밀었다.
조그만 손이 그가 내민 빵을 덥석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페리는 와앙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물고 다시 그의 입에 돌려줬다.
물론 돌려줬다기보단, 자기 한 입 먹었으니 이젠 너 먹으라고 입에 꾸욱 뭉갰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젊은 공작은 저에게 다시 돌아온 빵을 떨리는 눈으로 살폈다.
아주 조그만 잇자국이 빵에 남아 있다.
다 먹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입을 벌려 놓고, 이 작고 귀여운 자국은 뭐란 말인가. 뱁새가 한 입 먹고 간 것 같았다.
귀여워서 죽을 것만 같다.
충동적인 마음으로, 이대로 데리고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세요. 어른이 된 모습으로 저를 반겨 주십시오.”
“잉?”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졌는데, 반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잉?”
판데르니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아기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까.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그대로의 모습이 제일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 페리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판데르니안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기 페리의 퇴장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
페리 탈환 원정대는 페리가 다시 사라지고 난 이후에야 판데르니안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페녹스가 세상에서 제일 험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귀여운 아기 페리를 아직 못 본 상태라는 것이 그를 분노케 했다.
“셋째야. 페리 혹시 못 보았니?”
“왔다 갔는데.”
“어디로?”
“공녀님 마음을 내가 어찌 아나.”
성인 상태일 때도 남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여자다. 아기 상태는 오죽하랴.
그래도 판데르니안은 걱정하진 않았다. 갑자기 사라지긴 했어도, 두 신 덕분에 안전할 것을 아니까.
이제 이 세상에 페리를 해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
그러나 지금 페리 탈환 원정대에서 유일하게 아기 페리를 못 만나 본 페녹스의 입장은 달랐다.
페녹스가 으어억 하고 통곡했다.
페리 탈환 원정대가 또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했다.
이동엔 두 어머니 신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페리의 의지도 조금 섞여 있을 것이다.
이번에 번뜩 아이디어를 낸 것은 유리스였다.
“이번엔 혼테인 공작이 분명합니다.”
혼테인은 이제 아버지에게 공작위를 승계받아 공작님이 된 상태였다.
죽여서 승계받으려던 과거에 비하면 매우 다행히도, 평범한 방식의 승계가 이루어졌다.
옐베리도 ‘아하!’ 소리를 내며 동의했다.
“페리는 무의식적으로, 판데르니안 공작님과 혼테인 공작님을 공평하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아기 페리는 지금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중.
그러니 이번엔 혼테인 공작에게 이동했을 것이다!
“혼테인 공작에게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