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26)
페녹스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의 페녹스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
그리고 반대편 서제국, 웬덤 성.
금욕적인 얼굴의 미남이 잠들어 있었다. 혼테인은 그냥 눈을 감고 누워 있을 뿐인데도 단어로 묘사할 수 없이 대단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옆에 내복 입은 아기가 살포시 나타났다.
“잉?”
두리번두리번.
인기척에 눈을 설핏 뜬 미남의 눈에 작은 아기가 큼지막한 눈을 동글동글 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쯤 잠에 취한 혼테인은 생각했다. 꿈이구나.
그리고 아기를 끌어당겨 베개 안듯 품에 넣고 다시 눈을 감았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것을 품으니 다시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기 쪽은 갑자기 이불에 넣어진 채 그냥 멀뚱멀뚱 고개를 돌리다가, 이불과 체온이 따뜻해서 따라 자고 말았다.
잠든 아기 특유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한참이나 침실에 울려 퍼지고, 한 시간 뒤.
혼테인이 드디어 이상함을 느끼고 눈을 떴다.
“……?”
새근새근.
“……페리야?”
이게 무슨 장난인가.
귀엽긴 하지만, 아기 페리보단 어른 페리여야지.
그렇지 않아도 나이 차를 신경 쓰고 있는 요즘, 상대가 더 어려지면 곤란하다.
혼테인이 자고 있는 아기의 배를 톡톡 건드리며 다시 불러 보았다.
“페리야.”
“…….”
“왜 안 하던 귀여운 짓을 할까.”
곧이어 배를 톡톡 두드리던 손길에 잠에서 깬 페리가 칭얼거렸다.
눈을 비비고, 애앵 소리를 내면서 몸을 안겨 온다.
어른 페리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 행동 단 한 번으로 그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다.
모망 님, 혹은 앨리스 님의 장난이다.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는 잠투정에 칭얼거리다가, 곧이어 방긋 웃으면서 침대 위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활발하고 까불거리는 것이 옛날 그 시절 그대로다.
순진한 아기가 매트리스의 탄성에 잔뜩 신나 있는 그때.
혼테인은 음습한 생각을 했다.
이 시기의 아기 페리라면…….
데리고 가서 오냐오냐해 주며, 나밖에 모르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안 그래도 계속 그 생각을 하던 차였다.
록사르만 아니었더라면, 페리안과 정당하게 맺어질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 하찮은 것이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페리안은 정말 혼테인밖에 모르고 컸을 것이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해맑기만 한 아기는 점프할 때마다 뺨도 탱글탱글 움직였다.
탱글탱글.
그렇게 뺨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혼테인이 페리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리야. 우리 숨어 버릴까? 어디 아무도 모르는 외지로 가서.”
혼테인도 신들에게 예쁨 받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앨리스 님께 부탁한다면 페리가 다시 다 자랄 때까지 자신도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신나서 계속 뛰던 아기가 소리쳤다.
“눈이다!”
“응?”
‘눈’ 소리는 점프하면서 외쳐서, 마치 ‘뉴니’처럼 들렸다.
혼테인에겐 아기 발음을 해석하는 재주가 없었으므로, 그는 친절하게 페리에게 되물었다.
“뉴니가 뭐니?”
“눈!”
그제야 혼테인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잔뜩 내리고 있다. 서제국은 한창 겨울이었으니까.
***
애기 페리는 혼자서도 잘 놀았다. 낮은 테이블을 붙잡고 뒤뚱뒤뚱 걷다가 쪼그려 앉아 자기 발가락을 만지기도 했고, 다시 일어서서 짝짝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동안 혼테인은 뭘 하고 있었느냐.
그는 아기 페리를 아무에게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 페리에게 입힐 옷을 스스로 골라 가져왔다.
혼테인은 열심히 페리를 껴입혔다.
애 추울라.
“팔 들어 볼래?”
“녜.”
내복 입은 통통한 몸에 내복을 한 겹 더 입히고, 부드러운 털 조끼를 껴입히고, 그 위에 또 보온 마법이 걸린 외투를 두 겹이나 입혔다.
얼마나 빵빵한 것들만 입혔는지, 여러 옷으로 완성된 페리는 마치 밥을 많이 먹은 아기 펭귄처럼 옆으로 통통해진 상태였다.
그는 그러고도 참지 못하고 벽난로 앞에 페리를 내려놓았다.
결국 양 볼이 불그스레해진 페리가 한마디 했다.
“뜨거.”
그 말에 다시 입힌 걸 벗기고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난리 통에 둘은 타협점을 발견했다.
페리는 내복만 입고 침대에 들어가 있기를 원했다.
“여기가 조아요.”
“좋아?”
“녜.”
평소에 페리의 가체가 눕는 곳에 아기 페리를 눕히고, 혼테인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안절부절못한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 이불이 아기한테 무겁지는 않을까. 애가 땀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왜 자꾸 이불을 걷어차는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오 분에 한 번씩 이불 모양새를 고쳐 주는 통에, 페리는 잠도 못 자고 눈만 땡글땡글 떴다.
사실 이불을 걷어차는 것도, 혼테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이불을 덮어 주는 것이 보기에 재밌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결국 다섯 번째 이불을 걷어차던 페리안이 참지 못하고 꺄르륵 웃고 말았다. 그제야 혼테인은 자신이 2살 아기에게 농락당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 어째야 하나.
성국에 다시 돌려주는 것은 당연히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
엑저 측에 연락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둘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페리와 자신의 나이 차를 신경 쓰고 있던 와중이었으니까.
그런데 상대가 더 어려지다 못해 아기가 되어 나타났으니…….
방법은 정말, 이대로 페리를 들고 도망가는 방법뿐인가.
혼테인의 삐뚤어진 애정이 다시 치밀었다.
그러나……
-팡!
여섯 번째 이불을 걷어차며 웃는 페리안을 보자, 음습하게 요동치던 욕심도 가라앉았다.
너무 순수한 아이였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하긴. 어른이 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뒤에도 그렇게 착하고 귀엽기만 하던 앤데, 아기 때도 그런 것은 당연하겠지.
혼테인은 지금 아기에게 농락당하면서도 이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착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아이의 발그레한 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욕심을 숨기자. 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독점하고 싶은 욕망도, 너를 꺾어서 내 옆에 두고 싶은 음심도.
더러운 욕심들을 억누르는 것조차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함께하고 싶다. 네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단다.
너는 그 시기부터 내 유일한 사랑이었단다.
그러니 내가 참으마. 빛나는 너를 위해. 그러니 너는 어른이 되어 다시 와 주렴.
여덟 번째로 이불을 걷어찬 페리가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또 한 번 사라졌다.
***
그리고 페리가 사라진 지 십 분 후.
페리 탈환 원정대가 숨을 몰아쉬며 혼테인 공작에게 알현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이 성사되고,
혼테인은 대수롭지 않은 척 대답했다.
“페리라면 이미 갔습니다.”
“으윽!”
페녹스가 심장 부근을 움켜쥐었다. 혈중 페리 농도가 부족하다!
아기 페리를 일 초라도 보지 않으면 정신이 위험했다.
혼테인이 한심하게 보든 말든 무시하고, 페리 탈환 원정대는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어디지?”
지금까지의 페리의 행적을 정리하면 이렇다.
아기는 아빠의 집무실로 놀러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마주친 것은 일하던 판데르니안.
어쩌다 판데르니안과 놀게 된 아기 페리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혼테인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래서 서제국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럼 다음은 어딜까?
이번에 답을 내놓은 것은 멜로였다.
“페리는 육아방에서 자랐다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실컷 놀았으니 이제 쉬러 방에 들어가지는 않았을까요.”
그 말에 모두 벌떡 일어섰다.
다시 엑저 공작가 본성의 특수 육아방으로!
페리 탈환 원정대가 육아방에 도착한 그때.
“페리야!”
“찾았다!”
갈색머리 단발 아기는 낑낑거리며 육아 슬라임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애애앵!”
엑저 공작가 직계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 도움을 주는 육아 슬라임.
그것은 방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기 침입자를 재우기 위해 눕히려 하고 있었고, 아기 쪽은 절대 안 자려고 계속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눕히고, 일어나고, 눕히고, 일어나고, 눕히고, 또 일어나고!
“……페, 페리야! 슬라임, 멈춰!”
페녹스가 육아 슬라임의 작동을 정지시키자, 아기가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작은 상체가 숨을 몰아쉬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표현할 방법이 없다.
페녹스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작게 비명을 질렀다. 세계 최강 기사치곤 너무 연약한 비명이었다.
“페리야아아아아…….”
혹여나 큰 소리를 내면 아가가 놀라기라도 할까 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페녹스는 생각했다.
이건 꿈인가.
힘겹게 살아온 보상을 받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 와중에 페리는 개구쟁이같이 씨익 웃으며 또 사고를 칠 준비를 하는데, 몹시 깜찍하여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그리고 한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 페리는, 다 큰 어른 오빠를 마주하자마자 어흥, 소리를 내며 두 손을 구부려 머리 위에 붙이고 위협하며 말했다.
“나는 몬스터다!”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소리지만, 애기들의 발언은 원래 대개 그런 식이다.
어쨌거나 그 뜬금없는 소리는 그렇게 페녹스의 가슴 속에 길이길이 명대사로 남게 되었다. 인생 최고의 명대사가 ‘나는 몬스터다!’라고 각인된 것이다.
“으헉.”
페녹스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페리는 문에 매달려서 웃었다. 애가 웃을 때마다 ‘꺄항’ 하는 소리가 났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귀여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페녹스는 페리가 자기 품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굴었다.
그가 아기 페리를 껴안고 둥가둥가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를 제외한 페리 탈환 원정대는 침묵하며 그 꼴을 구경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
“…….”
그때 당시 페리의 시신이었던 그 육체도 소중히 보관하고 사랑하던 그다.
살아 있는 어린 페리의 존재에 껌뻑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페리 탈환 원정대의 나머지 셋. 멜로와 옐베리, 그리고 유리스는 일단 그를 봐주기로 했다. 오빠긴 하니까.
페녹스가 페리를 꾸욱 안으며 이 볼 저 볼에 뽀뽀했다.
유리스가 뒤에서 친구에게 소곤거렸다.
“페리가 다시 되돌아오면 난리 칠 것 같은데.”
옐베리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페녹스 경이 페리한테 혼나면 좋겠다.”
“쉿. 들리겠다.”
페녹스는 물론 그 대화를 다 듣고 있었으나, 두 여자의 사담에 신경 쓸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페녹스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우쭈쭈했다.
“페리는 오빠 꺼지요~?”
“아니야.”
아기 페리가 귀찮아서 통통한 팔로 페녹스를 주욱 밀어냈다. 페녹스는 그 하찮은 팔 힘으로 밀릴 사람도 아니면서 ‘으아악’ 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밀려 주었다.
“우리 페리는 얼마나 귀엽고 깜찍하고, 응?”
“…….”
“오빠. 오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