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7)
심지어 가공법도 기괴했다.
일반 축산물과 비교해 볼까.
짐승 가죽이라도, 사냥하고 벗겼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죽 표면에 붙은 지방을 긁어내며 썩지 않게 후처리도 필요하고, 여러 복잡한 무두질 과정을 거쳐야 하지.
그러고 난 뒤에야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공된 가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마물 가죽에 적용되면 어떻게 되는가.
답은 무식하면서도 기이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생가죽 그대로인 그것이, 사람 뼈를 도구로 긁어내면 지방 찌꺼기가 긁어내진 후 평범히 가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얘길 처음 들었을 때, 난 멜로가 날 놀리는 줄 알았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괴담을 지어내 들려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마물 가공이란 건 이치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같은 부위라도 마물의 종류가 다르다면 각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말은, 새롭게 실험해 볼 때마다 인간 시체가 수없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렇기에 마물 가공이 최악의 범죄로 여겨지는 것이다.
마물 부산물을 사용하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 한 번만으로 끝날 리가.
규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끔찍하고 더러운 짓이다.
‘……페리안은 연고를 사용했었지.’
무슨 마물의 어떤 부위를 사용한 걸까.
마냥 가련하게 생겨 가지고, 비위도 좋다.
난 페리안이 자신의 눈에 연고를 발라 대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걸 어떻게 눈에 집어넣냐…… 으으.’
어쨌든. 저 미친 사기꾼은 최소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고를 사용했다.
이쯤 되면 눈동자만 의심할 게 아니다. 다른 부위도 다 가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비밀리에 사람을 죽여 만든 마물 가공품을 사용해 가면서.
“…….”
게다가 그렇게 만든 가공품을 무효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뭐, 물론 내가 아닐 경우에 한해서지만.’
난 혼자 우쭐거리며, 어릴 적 멜로에게 배웠던 상식을 떠올렸다.
***
내가 일반 생활에 필요한 상식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
멜로가 팔짱을 끼고 설명했다.
그 녀석의 발밑엔 햄스터 케이지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은 흰색 햄스터처럼 보여도 마물의 일종이었다.
“가공품을 탐지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어.”
“햄스터 키우고 싶다…….”
“……집중해! 첫 번째는 서제국에서만 살 수 있는 영수들을 사용하는 거야. 걔넨 마물 냄새를 잘 맡거든.”
영수란 것은 신령스러운 동물들을 말했다.
그러나 서제국 황실이 독점하며 배타적으로 관리하는 희귀한 짐승들이라, 일반인은 보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동제국에서 자라는 신목을 사용하는 거야.”
신목도 마찬가지로 신령스러운 고목을 말하는 것인데, 이 역시 너무 귀한 것이라 귀족들도 보기 힘든 것이었다.
멜로는 계속 설명을 이었다.
내가 하얗고 작고 등에 세로로 검은 줄이 그어져 있는 그 깜찍한 것에 정신이 팔려 있어도 꿋꿋하게.
“그래서 두 제국이 기세등등한 거지. 두 제국의 협조가 없으면 마물 가공품을 탐지할 방법이 전혀 없거든. 일단 탐지하지 못하면 자극하지도 못하고. 두 제국이 성장한 데에는 그런 뒷사정이 있는 거야.”
그리고 그때,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반박했다.
햄스터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닌데?”
“뭐가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뭘?”
“탐지하는 거.”
“또 멍청이 같은 소리 하기는!”
나랑 멜로는 한참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로 싸우다가 폐하에게 달려갔다.
한창 일하는 도중에 산만한 두 녀석이 들어와 까불대고 난리가 났으니 걷어차 쫓아낼 법도 했다.
하지만 폐하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더니 어떤 판을 꺼내 주셨다.
철판보다 단단한데 종이보다 얇은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거기다가 침을 뱉었다.
“퉤!”
“뭐 하는 거야?! 폐하! 얘 좀 보래요! 행동이 건방지기 이를 데 없습…….”
후에 멜로가 말하길, 내가 나쁜 버릇을 배워 온 줄 알았다고 하더라.
어쨌거나 그 이후에 벌어진 것은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어?”
종이처럼 보였던 그것이 바로 제 본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랬다. 내 체액은 가공된 마물 상품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
‘이미 가공이 완료된 마물 부산물을 냄새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나만 가능한 일이지.’
특히 침보다 강한 것은 피.
내 피가 뿌려지면, 일정 범위 안의 부산물은 기능을 잃고 폭주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우습게도, 가짜 페리안의 가장 큰 천적은 나였던 것이다.
‘에헴!’
나는 눈을 감고 미리 보내 두었던 흙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봤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갈색의 볼록한 배가 보인다.
나의 비밀 흙요원은 오늘도 열심히 임무 수행 중이었다.
배가 빵빵한 조그마한 녀석이 꾸물거리며 목적지를 향해 잘 나아가는 중이다.
녀석은 주변을 잘 살피고 페리안의 연고 통에 도착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배 안에 담아 뒀던 내 피를 떨어뜨렸다.
‘연고를 바르는 주기는 앞으로 한 달.’
딱 그때쯤, 페리안이 바라 마지않던 혼테인과 판데르니안이 온다.
그런 말이 있다.
스파이의 일은 삼십 퍼센트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며, 칠십 퍼센트는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아마 그 한 달간 우리 페리안이 더 날뛸 것 같지만.’
***
페리안이 날 뒷조사했던 자료를 시녀들 앞에서 읊으며 밟고 때리고 모욕 준 그날.
그때 걔가 그랬었지.
“하지만 그런 너라도 관리하는 것은 내 책임이겠지. 난 이런 너조차도 사랑할 거야. 매일 한 번씩 나한테 얼굴 보이러 오렴.”
……라고.
그날 페리안이 시킨 대로 나는 매일 그녀의 방에 찾아가야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유치하고 어이없는 폭거가 이어졌다.
체벌은 이런 식이었다.
나를 제 앞에 앉혀 두고 조곤조곤 의미 없는 수다를 떨기 시작하더니, 맥락 없이 손을 들어 내 뺨을 때린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짝-
“……?”
휘청인 내가 뺨을 감싸 쥐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쳐다봤다.
하지만 페리안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곤 했다.
마치 자기가 날 때린 방금 일은 일어난 적도 없다는 것처럼.
‘뭐 이런 애가 다 있담.’
페리안의 교육이란 건 그런 것이다.
주인인 자신의 태도가 겉으로 친절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다.
그저 내가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모욕을 주며 짐승 가르치듯 가르치는 것.
그렇게 한 달 내내 맥락 없는 처벌이 계속됐다.
“응, 난 이 티가 마음에 들더라.”
그렇게 말하면서 내 찻잔에 있는 찻물을 내 발등 위로 붓고.
“나도 성국에 가 보고 싶었어.”
또 그렇게 말하며 내 발을 하이힐 굽으로 꾸욱 밟고.
내게 주어진 것은 약 한 시간 동안 주인의 훈육을 거스르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다가 밖으로 나가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공녀의 방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접견실로 들어가, 나를 치료해 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
덕분에 한 달 동안 매일 날 치료해 주러 오는 애를 보며 꽤 친해졌다만…….
‘연고 때문에 진짜 정신이 나갔나. 체벌 수위가 너무하잖아.’
물론 난 괜찮았다. 몸을 보호해서 그런 것뿐만이 아니고, 사실 난 꽤 튼튼하니까.
하지만 내가 정말 평범한 기사학과 졸업생 수준이었다면, 이미 치료 마법으로 손쓸 수 없이 실려 나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착하고 자애로운 공녀 연기가 바깥에 다 들통났을 거라고.
‘이미 그 정도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진 건가.’
그러고 보니, 내가 공녀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치료 마법사 말고 한 명 더 있다.
바로 레리온이었다.
언제였던가. 훌쩍이면서 접견실로 가려는 참이었다.
난 의외의 인물을 마주치고 멈춰 섰다.
동생 방으로 들어가려는 레리온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뺨과 행색을.
누가 봐도 험한 꼴을 당한 모양새였다.
그날은 또 팔이 부러져서 한 두 배쯤 퉁퉁 부어 있었으니, 아무리 눈썰미 없는 인간이라도 눈치챌 만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난 내심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연 뭐라고 말을 걸려나?’
레리온은 처음에 날 마주쳤을 땐 무시했지만, 페녹스와 함께했던 식사 자리에서는 그래도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았던가.
난 은근히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그는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고 휙 지나쳐 방 안으로 사라졌다.
“……?”
남겨진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저번엔 친한 척했잖아?
왜 저러나, 잠깐 의문에 잠겼던 난 바로 정답을 알아차렸다.
‘진짜 이놈의 집구석은 멀쩡한 인간이 아무도 없구먼.’
저 미친놈의 첫째가 그때 날 대화에 끼워 줬던 것은 오로지 페녹스 때문이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아끼는 동생, 페녹스. 그 앞에선 내게 친절한 척한다!
왜냐? 페녹스에게 정상적인 형으로 보이기 위해.
그러나 접견실 안에선 페녹스도 없고, 페녹스에게 이야기가 새어 나갈 겨를도 없다.
그러니 나완 상종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날 난 방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공작성에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정신과 의사라고.
인당 한 명씩의 전담 의사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쟤네한텐 주당 52시간쯤의 상담이 반드시 절실하다고.
공작성은 좋은 소식에 들떠 있는 상태였다.
서제국의 혼테인 공을 초빙하러 간 공작 일행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성에 보고를 위해 들린 지방 사무관들이 들뜬 얼굴로 수군거렸다.
“공녀님이 정말 좋아하시겠군.”
“……정말 이대로 두 분이 맺어지기라도 한다면, 두 제국 정세가 우리 공녀님 한 분 덕분에 평화로워지는 셈 아닌가? 정말로 기적 같으신 분이야.”
“설레발 좀 치지 말아. 아직 아무것도 진행된 것 없잖나.”
“에이. 자네도 뻔히 기대하고 있으면서!”
존재 자체가 기적이고 축복인 사랑스러운 공녀님.
그 존귀한 분에 대한 선망이 성 곳곳에서 커졌다.
어딜 가든 들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모두가 신이 나서 분주히 일했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징그럽게 여기는 한 여자가 있었다.
“…….”
페리안 공녀에겐 총 여덟 명의 시녀가 있다. 그녀는 그중 하나였다.
그녀의 이름은 유리스.
서제국 출신의 유능한 마법사인 그녀는, 당시만 해도 단교 상태였던 동제국으로 건너와 일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그건 버려진 공녀에 대한 동경 같은 것 때문이 아니다.
이주를 결심했던 것은 오직 어마어마한 보수 때문.
그리고 그녀는 당연히, 동제국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기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유리스는 신나서 떠드는 인물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공녀의 접견실.
‘거의 한 달째인가. 못 해 먹겠네.’
사람들에게 기적의 공녀라고 불리는 엑저 공녀.
그녀가 시녀들을 불러 놓고 반항하지도 못하는 성국 여자의 뺨을 내려치며 망신을 준 것이 벌써 한 달 전.
유리스는 접견실의 문을 열었다.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여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얼굴이고 뭐고 퉁퉁 부어 있는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브라운이었다.
한 달 전, 모욕의 그날부터 오늘까지 브라운은 매일같이 맞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공작성 내부에서도 극소수뿐.
브라운 퉁퉁 부은 얼굴로 웃으면서 인사했다.
“어서 와.”
“어서 와는 무슨.”
유리스가 질색을 하며 투덜거렸다.
아무리 돈 때문에 왔더라도 공녀의 시녀였던 유리스다.
그런 그녀가 정말로 엑저 공녀를 싫어하게 된 것은, 한 달 전부터의 일 때문이었다.
‘너는 벌레 같은 브라운이야.’
여자 한 명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걸 본 그날.
유리스는 속으로 기괴하다 생각했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았다.
값싼 동정을 베풀어서 달라질 건 없지 않던가. 유리스에겐 앞으로 받아야 할 돈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
유리스가 가지고 있던 음성 전달구가 공녀의 음성을 전달해 주었다.
-“유리스. 브라운의 상처를 없애 줄 수 있니?”
“그럼요.”
‘어제 루시안이 치료하고 나가는 걸 봤는데.’
의아한 마음이었지만, 유리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찾아갔다.
그리고 충격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양 뺨이 무서울 정도로 부풀고 멍들어 있는 가엾은 여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페리안 공녀.
바보라도 무슨 사정인지 뻔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