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18)
“아! 유리스, 혹시 너 그런 것도 할 수 있니? 고통은 그대로 남겨 두고 외양만 고치는 거야.”
“……어렵긴 하지만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해! 고마워.”
그때부터였다.
브라운은 매일 아침마다 페리안 공녀의 방으로 불려갔고, 두 시간 후에 접견실로 나왔다.
그럼 유리스가 적당한 시간에 그곳에 들러 외관만 치료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 한 달간, 페리안의 미친 짓을 매일같이 봐 온 유리스는 이미 회의감에 젖어 있는 상태였다.
가끔은 뼈가 부러져 있고, 혹은 피부가 벗겨져 있고…….
‘전쟁 포로를 대하는 것보다 더 가혹하잖아. 공녀는 일반 평민으로 살아왔다면서 이상하게 과하게 잔인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회상을 마친 유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성 사람들은 죄다 미친 것 같아. 내가 보기엔 아직도 버티는 너도 미쳤어. 알아?”
“며칠 안 남았어.”
브라운. 아니, 페리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유리스는 그것이 며칠 뒤 혼테인이 오고 공작성의 권력자들이 모일 때, 레서 선공작에게 허락을 받고서야 나가겠다는 소리이겠거니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
유리스는 치료 내내 퉁명스러운 얼굴로 계속 잔소리를 하다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갔다.
‘그래도 참 좋은 애야.’
‘옐베리가 널 걱정하니까 해 주는 거야.’라며 공녀의 명령을 어기고 고통까지 치료하고.
어릴 때 언젠가 내가 공작성에 돌아오게 되면 가족들에게 온갖 걱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건 여기서 사귄 친구들뿐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난 잠깐 시간 차를 둔 뒤 접견실에서 나왔다.
***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페녹스를 마주쳤다.
“브라운 양.”
“어?”
페녹스의 행색은 예전에 비해 아주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처음엔 진짜 술주정뱅이의 정점이더니, 지금은 그냥 기사 치곤 추레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랄까.
요새는 기사단 일도 조금씩 맡아서 처리하고 있더라.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면 자기 집 강아지가 제자리에서 잘 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처럼, 한가할 때마다 나한테 기웃대는 것이 그의 요즈음 일상이었다.
페녹스가 날 보고 내심 부러운 듯 물었다.
“브라운 양. 오늘도 페리랑 만났어?”
“그럼요.”
“……시간 나면 이 오빠도 좀 불러 주면 좋을 것을. 페리에게 운 좀 띄워 봐. 이 오라비가 바란다는 건 티 내지 말고.”
그렇다. 내가 처맞고 치료하고, 처맞고 치료하고를 반복하는 동안…… 페녹스는 내 치료된 상태만 보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었다.
제 동생이랑 매일 논다고! 어휴, 답답이.
날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에서 흡사 시무룩한 질시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환장하겠다.
“……둘이서 평소에 뭐 하고 놀아?“
“몰라요. 저리 가요.”
“에이…….”
워이워이, 난 손을 저어서 페녹스를 내쫓았다. 페녹스는 또 그런다고 내게 쫓겨났다.
***
밤 늦은 시간, 엑저 공작성 지하 무기보관소.
어두웠던 방 안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의 근원지는 방 중앙에 놓인 직경 2미터짜리 판판한 사각형 돌이었다.
광원은 돌의 모서리부터 밝히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중앙까지 완벽히 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위에서 한 남자가 거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백구십은 가볍게 넘는 장신에, 어찌 보면 화려할 수 있는 색감의 정장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눈부신 미남.
눈이 부시다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자체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남들보다 반사광이 크기라도 한 듯, 어둠 속에서도 아주 희미한 빛만 있으면 선명하게 그 색을 비추는 금발.
그리고 흡사 커팅된 보석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보석안.
이번 대 엑저 공작인 판데르니안이었다.
그는 상당히 언짢은 상태였다.
서제국 인물들과 협상하는 과정은 무척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고, 한동안 혼테인 웬덤이 자신의 엑저성에 머무를 것이란 사실도 짜증 났다.
무엇보다 역겨운 건 성에 있는 그 인면수심의 가짜였다.
오늘 당장이라도 없애 버리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 것이 구역질 날 뿐.
젊은 공작의 신경질 가득한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성의 그 누구도 그의 입성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
심지어 지금 그 누구보다도 내부 상황을 잘 아는 페리마저도 그랬다는 것.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 그와 혼테인은 며칠 뒤 함께 입성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면, 그건 혼테인과 판데르니안의 사이가 무척 나쁘다는 사실이었다.
판데르니안 혼자 엑저의 주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텔레포트로 먼저 올 줄 누가 알았으랴.
판데르니안은 본인의 목적지를 향해 망설임 없이 걸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의 시야에 익숙한 머리카락 색이 들어온 것은.
무심코 본 옆쪽 저 멀리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한 여자가 발코니에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빛 아래에서는 색상이 더 밝아지는 보송보송한 연갈색 머리카락.
그 눈에 익은 색을 본 순간 판데르니안의 입술이 비틀렸다.
순식간에 살심이 치솟은 그가 기척을 없애고 여자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
페리가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두 남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바보 같게도, 여자의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신음이 썩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머리채를 잡아서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양심 없는 생각이었지만.
“어…….”
물론 눈이 마주친 순간 실수했단 건 알았다.
그가 생각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생각이 멈췄다. 눈을 뗄 수 없었다.
가로로 길면서도 순한 곡선을 그리는 눈매가 어찌나 선한 인상인지.
빼곡히 나 있는 속눈썹은 또 얼마나 풍성하고, 또 어찌 그렇게 섬세하게 긴 건지.
한 올 한 올 부드럽게 올라간 각도까지 완벽했다.
속눈썹이란 건 과해도 답답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페리 특유의 색소 옅은 갈색 속눈썹은 그저 눈매를 순하면서도 우아하게 보이게 했다.
“…….”
그의 눈동자가 페리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눈꺼풀 안쪽에 새기는 게 목표라 해도 무방할 만큼 집요하고 끈덕진 시선이었다.
놀라서 아래로 추욱 시무룩하니 내려간 눈썹.
말랑해 보이는 입술은 어떤 색깔을 하고 있는지, 입꼬리는 어떤 곡선을 그리고 있는지.
관자놀이에서 뺨으로 내려가는 라인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귀엽다.
사실 이 순간, 판데르니안은 저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왜 예쁜지, 또 여기는 왜 귀여운지. 그런 것도 일단 뭘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재수 없으리만큼 잘생긴 사람들이 흔히들 남 얼굴에 관심 없듯이, 판데르니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여자고 남자고 할 거 없이 남 얼굴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아니, 가지기도 싫어했다.
천재지변만큼 파괴적으로 잘생긴 본인 얼굴 덕분이다.
자기애에 취한 것이 아니고, 현실이 그랬다. 눈이 너무 높은 탓이다.
심지어 너무 좋은 시력 탓에 남 얼굴을 보면 기분 나쁜 것도 잘 보였다.
그러니 그가 남의 얼굴에 이렇게 정신을 팔린 것은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저기…….”
……그래서 애석하게도, 그는 여태껏 페리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그는 미친놈이 맞았지만, 아무 여자에게나 위협을 가하는 종류의 미친놈은 아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편견이 한 겹 꼼꼼히 덧씌워지는 순간이었을 뿐.
페리는 황당했다.
***
“엑저 공작님이신가요?”
왜 남의 머리를 잡으세요? 뒷말은 삼키고 물었다. 머리채를 잡힌 채로.
이렇게 생긴 미남은 대륙에 단 한 명뿐일 테지만, 그래도 물어봐야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어처구니없지만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급작스러운 상황인데 눈앞의 풍경은 화려하다.
시큰둥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미남.
당장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게 맞는데, 가까이서 보게 된 그 얼굴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열리곤 날 면박 줬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봅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지가 잡아채 놓고선…….’
속으론 불평불만이 나왔지만, 내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다.
별빛을 박아 넣은 듯 화려하게 빛나는 눈동자.
분명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말도 안 되게 우아하고 품위 있어 보일 뿐.
따지고 보면 체격도 위압적일 수준으로 큰 남자인데도 우아하게 보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디 한 군데 화려하지 않은 곳이 없는 이 남자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실물을 본 건 처음이네.’
공작의 실물을 본 것이 처음이라니.
이건 최강 스파이의 명색에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폐하와 멜로는 내가 동제국 근처에 가는 것도 싫어했었으니…….’
아마 내가 심정적으로 동요할까 봐 걱정한 것이리라.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동제국에선 직접 현장을 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보내고, 특히나 엑저 공작가 사람들과 대면하지 않게 조심했었던 것이다.
“…….”
나는 슬쩍 그의 눈치를 봤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냐고 면박 준 것과는 달리, 본인도 날 열심히 노려보고 있다.
남자다우면서도 도톰한 입술은 기분 나쁜 듯 다물려 있었고, 내리깐 눈에는 불호의 감정이 숨겨지지 않고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마저 하나의 완벽한 작품 같았다. 사람이 뭐 이렇게 생길 수 있나 놀라울 지경이다.
혼테인 웬덤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충격이다.
‘혼테인이랑 같이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렇담, 제가 실례를 저지른 것이 있나요?”
판데르니안은 잠깐 시큰둥한 표정으로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근데 왜 이러는데?’
지금은 머리채를 잡는다기보단, 손 전체로 내 뒤통수를 감싸며 내 얼굴을 자기 방향으로 돌려 고정시킨 것에 가깝긴 한데…….
‘부담스럽게. 성정이 포악하단 건 들었지만 정말 미친놈인가.’
그렇게 속으로 불평하던 나는 금세 깨달았다.
내 얼굴 이곳저곳을 민망할 정도로 훑는 시선!
흙사람으로 조사할 때 들었던 게 있지 않던가.
판데르니안은 페리안 공녀를 대면하자마자 역겹다고 욕했댔다.
그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공작성 내부 사람들도 간간이 그 얘기를 하곤 했었다.
아무리 공작님이 미남이라도, 페리안 공녀님처럼 아름다우신 분이 그렇게 보일 수가 있느냐에 대한 토론이었다.
‘근데 난 페리안이랑 닮은 얼굴이잖아. 완전 똑같진 않아도…….’
그래. 이 남자는 지나가다가 역겨운 얼굴이 보이니까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그 이유 말곤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얼굴만으로도 혐오할 거란 건 예상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피할 겨를이 없었어. 정문을 통하지 않고 나타났으니 텔레포트로 들어온 건가? 이 부근에 내가 파악하지 못한 포탈이 또…….’
그러나 내가 수색할 때 놓친 포탈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난 긴장한 채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이 남자가 아랫것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도 고작 얼굴이 자기 기분 거슬렀다고 이렇게 위협하는데…….’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실례했습니다. 사람을 착각한지라.”
“어……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존댓말?
제 형한테도 빈정거리는 반말을 사용하는 남자일 텐데?
게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과였다.
공녀인 페리안이 자기 시녀를 때리고 짓밟아도 문제가 안 되는 형국인데, 공작이 성국 사람 머리채를 잡은 것 따위는 사실 문제 될 거리도 아니었으니까.
그의 손에서 힘이 풀리자 내 머리가 아래로 스르륵 풀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내 뒷머리를 본인 손으로 몇 번 손 빗질하며 대충이나마 정돈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본인 때문에 헝클어진 것이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
내 머리카락이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스치며 풀어졌다.
난 머쓱하게 서서 그를 올려다보며 침묵했다.
키는 왜 그렇게 큰지,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각도가 너무 불공평하다.
‘솔직히 난 눈치 없진 않지.’
다 큰 성인 남녀가 오밤중에 마주쳤다.
처음에 머리채를 잡힌 채 시작했어도 남자 쪽에서 머리를 손 빗질해 주는 상황.
난 이걸 ‘어머나, 공작님은…… 듣던 것보다 친절하셨어.’라고 부끄러워하며 넘어가는 부류는 아니다.
‘어쩌면, 처음엔 무례하게 대면한 뒤 성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 식으로 여자들을 꼬시는…….’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조금의 다정함도 섞이지 않은 뒷수습이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어디서 뛰어놀다 털 뭉쳐 온 상태로 나타난 애완견의 털을 손빗으로 빗어 주며 짜증 내는 느낌이었다.
“쯧.”
혀를 차는 것마저 그렇고…….
‘아니, 지가 그래 놓곤.’
어쨋건 간에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개차반 같은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습에 당황스러울 무렵.
그가 손을 뗀 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명령했다.
역시나 어울리지 않는 존댓말로.
“가 보세요.”
“옙.”
***
페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멀리 떨어졌다.
행동은 재빠른데 경박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호다닥 사라지는 뒷모습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