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32)
그러나 레서는 끝까지 본인도 대범한 척했다.
부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그에겐, 그녀의 죄를 추궁하다 헤어지는 일만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레서에게 앨리스는 공작 부인 지위 따위는 언제든 버리고 훌훌 날아갈 수 있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자신 사이에서 항상 약자인 건 자신인 줄로만 알았다. 그게 비극이었다.
앨리스는 정말로 레서만큼은 자신을 믿는 줄 알았고, 레서는 본인이 제일 불행하다고만 믿었다.
***
아이의 머리색에 관한 이야기는 산불보다 더 빨리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부인 앨리스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훌륭한 여인이었지만, 외간남자의 아이에게 공작가의 성을 주어 키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레리온은 막 열한 살이었으며, 사리판단을 너무 잘해서 문제인 꼬마였다.
첫째 아들은 동생의 탄생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셋째가 태어난 일이 아예 없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고작 다섯 살인 페녹스마저 우물쭈물, 무언가 눈치를 보며 풀 죽은 티를 냈다.
그리고 그 와중 태도가 변하지 않는 것은 한 명이었다.
앨리스 엑저.
레서는 항상 비범할 정도로 대담하고 시원시원한 부인을 사랑했지만.
“귀여운 우리 딸!”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변화 없이 태평한 그녀의 정신머리는 비범함의 수준이 아니라 생각했다.
아기란 건 너무 작고 연약하다.
신생아란 건 엎어 놓기만 해도 숨이 막혀 죽는 하찮고 무력한 존재였다.
포대기로 돌돌 말린 아기가 사악한 무언가로 보였다. 그와 그의 가족들 파멸시킬 괴물 같은 것으로.
이 아이가 살아서 세상에 얼굴을 비추는 매 순간마다, 사람들은 제 아내의 부도덕함에 대해 수군거릴 것이다.
두 아들의 명성에도 두고두고 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이대로 죽는다면 모든 걸 묻어 버릴 수 있다.
아예 없던 일로 하면 아내의 실수는 사라질 것이다.
그의 손이 아이를 향해 뻗었다.
아이를 뒤집기만 하면 된다. 뒤집기만.
그러나 그는 차마 끝까지 뒤집지 못했다.
그날, 그는 구름처럼 모여든 가신들 앞에 포대기를 들고 나갔다. 나가서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선언했다.
이 아이는 내 아이라고.
***
그 선언은 공작 부인의 치부를 완전히 감싸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페녹스는 어린 마음에 신이 났는지 동생을 보러 구경 갔고, 레리온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는 듯했다.
가신들도 아이를 바로 내쳐야 한다는 강경 주장을 그만두고, 공작의 눈치를 봤다.
부부간엔 항상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법이다.
고작 갓난애 한 명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많은 것들도 수없이 내쳤던 공작이다.
새삼 핏덩이 하나의 목숨이 가여워서 감싼 것이 아니었다. 그 결정은 순전히 아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아이에겐 한 점의 흠도 있어선 안 됐다.
누군가가 아이의 머리색을 지적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강경하게 사랑하는 척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그는 결심했다.
“애는 내가 키울게.”
“당신이?”
앨리스가 되물으면서도 피식 웃었다.
당연히 농담처럼 들렸던 것이다.
가문을 이어받을 레리온이나 페녹스도 손수 키우진 않았던 그다.
“갓난애 키우는 거 쉽지 않을 텐데.”
그러나 레서는 다른 마음이 있었다.
내 애도 아닌 걸 키우느라 희생하는 날 보라고.
그건 부부간의 기 싸움 같은 것이었다. 싸움에 참전한 사람이 그밖에 없었단 것이 문제였지만.
보란 듯 아이에게 귀물을 선물하고, 정말 귀여워 못 견디겠는 척 온갖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아내에 대한 원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피도 아닌 아인데, 내가 이렇게 생각해 주고 있다. 오직 너의 명예와 체면을 위해서.
그런 걸 제 부인이 알아줬으면 하는 유치한 마음으로.
***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유명한 레서 공작이 일반적인 아빠처럼 육아를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공작가에는 특이한 육아 방식이 잔재했다.
공작성엔 아이를 키우기 위한 방이 따로 존재했다.
방이라지만 사실 하나의 조그마한 좌식형 집 같은 것이었는데, 그 안의 것들은 예기에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금속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보모 슬라임이라는 고대 생명체가 있었다.
비상용으로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마법 생명체였다. 간단히 먹이고 씻기는 것부터, 기저귀 가는 것까지 가능한 무시무시한 마법 생물.
그런 이상한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예기 때문이었다.
엑저 공작가 직계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기를 다룰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그 갓난아기들이 무의식적으로 보모를 해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본인의 예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말도 통하지 않는 갓난아이들이란 것은 흡사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평범한 유모가 돌보지 못하니, 마찬가지로 그만큼 강해서 예기를 다룰 수 있는 기사나 친척 어른이 전담하여 육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마땅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보모 슬라임은 그런 비상시의 상황을 예상하고 조상 중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생명체였던 것이다.
레서는 그 보모 슬라임의 전원을 켜며 중얼거렸다.
“너한텐 과분한 거다.”
페리안은 예기를 사용하긴커녕, 아무것도 못하는 평범한 신생아였다.
평범한 유모를 데려와도 상관없고, 평범한 방에서 키워도 상관없는.
그러나 레서의 목적은 아내에게 부채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는 평생 관심도 가져 본 적 없는 육아를 시작하게 됐다.
보모 슬라임의 도움을 받아서.
***
처음은 새벽마다 우유를 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모 슬라임에게 맡기고 남는 시간에 보러 온 것뿐이지만.
애들은 위가 작아서 한 번에 백 밀리도 못 먹는다. 그는 새벽에 두 시간 간격으로 깨어 가며 그 쪼끄만 양을 주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재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물이 주제에, 배가 차면 혀로 젖병 꼭지를 밀어 낸다.
그는 그게 우습다고 생각했다.
“포대기로 몸을 꽉 동여매야 합니다.”
“너무 조이는 거 아닌가?”
“갓난아이들은 이래야 안정감을 느끼거든요. 본인 팔다리가 움직이면 그거에 놀란답니다.”
포대기로 몸을 꽉 동여매야 안정감을 느끼는, 말도 안 될 만큼 하찮고 연약한 생명체.
그런 주제에 재우려고 안아 들고 서성이다 내려놓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빼앵 울어 댄다.
아기의 선홍색 피부에 붉은기가 빠지고, 정말 밀가루 반죽 같은 아기가 되었을 무렵.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애는 그래도 잘못이 없고, 얘 애비야말로 개 같은 놈이라고.
그리고 어느 날 안아 들고 있는 이 무력한 것이 그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며 목을 가누기 시작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제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돌봐 주는 본인 얼굴을 기억하는지 뭐라 웅얼거리기 시작하고, 의미 없는 ‘뿌’ 소리를 낼 수 있게 되고.
그때쯤엔 슬슬 정이 들기 시작했다.
물려 놓은 쪽쪽이를 보면, 미세하지만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잘게 떨리고 있다.
머리카락은 가느다랗고 보드랍고, 씻길 때는 살이 밀가루 반죽처럼 물렁물렁하다.
그런 것들을 봐도 분노가 치미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평범히 애를 안아 든 날이었다.
레서는 자연스럽게 큼지막한 손으로 아이의 등을 몇 번 토닥여 줬다.
그런데 아주 작고 가벼운 무언가가 레서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레서는 아이를 안고 방을 세 바퀴쯤 돌았을 때야 알았다. 그게 아이가 자신을 토닥여 준 것이었다는 걸.
그날은 부인의 시녀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밤에 깰 필요도 없는 오래간만의 자유의 시간.
그러나 아기의 칭얼거림이 귀에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단지 아내의 명예를 감싸기 위해 시작했던 연극이었는데, 어느새 그 조그마한 것이 자신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었다.
레서는 몰랐다.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순간, 지게 되어 있는 싸움이란 걸.
‘분명, 부채감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요즘 아내는 첫째와 둘째는 자신이 키우느라 힘들었었다며, 이번만큼은 레서를 믿는다는 소리를 하면서 외출이 잦아졌다.
대체 바깥에서 뭘 하는 건지.
‘혹시 애 친애비를 만나고 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꾸욱 참았다.
믿지 않으면서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외도가 아니라고.
“자네 애는 며칠 만에 뒤집었나? 얘는 벌써 백일인데, 해도 해도 너무 늦는 거 아닌가.”
“글쎄요. 기억은 안 나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고, 애초에 관심 없던 거 아니고? 그나저나 얘는 너무 발달이 느리단 말이야. 목 가누기 시작한 것도 너무 늦더라고.”
“제가 멜링턴 백작 부인께 듣기론 평범하게 잘 자라고 계신다던데요.”
“그럴 리가. 첫째, 둘째는 막내보단 세 배는 빠르게 뒤집기를 했었어.”
그렇게 얘기하던 둘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엑저의 피를 이은 두 형제가 다른 이들보다 신체 발육 단계가 빨랐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가신인 림로드 자작이 태연하게 화제를 바꿨다.
“그보다 뒤집기를 시작하면 그때부터 더 힘들어질 겁니다.”
“왜?”
“애들이 뒤집고 고개를 처박은 채 목을 못 가눠서 질식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별 경우가 다 있군. 그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며칠 후, 페리안이 드디어 끙끙거리며 뒤집기에 성공했다.
각 지방에서 보내온 사절단의 수장들이 둘러싸서 응원했다. 그리고 아기 공녀가 뒤집기에 성공한 순간, 제일 기뻐한 사람은 레서였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레서는 일을 하다가도 번득 깜짝 놀라며 마법구로 아이의 요람 상태를 확인했다.
이 느린 것이 뒤집기 한 채로 숨을 못 쉬고 끙끙거리고 있으면 어쩌지?
그리고 시간이 나면 괜히 육아방으로 찾아가, 아기 공녀의 머리맡을 다시 매만져서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대비해 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무렵, 뒤집어 죽일지를 생각하던 공작은 백일 만에 변했다.
***
애는 쑥쑥 컸다.
레서가 무언가를 들고 있으면, 애가 언제부턴가 입을 참새처럼 쨕 벌리고 말똥말똥 쳐다본다.
제 입에 넣어 줄 것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서.
언제부턴가 배밀이를 시작했다. 잠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뭐라 웅얼거리고 바닥을 문대며 기어오는 것이 아닌가.
“애앵…….”
“가만히 있어.”
그리고 일하다 돌아온 날.
레서는 육아방에 들어가다 깜짝 놀랐다.
애가 현관에 내복을 문대며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페리안은 레서를 보자마자 애애앵 울기 시작했다. 서러워 죽겠다는 울음이었다.
“빼애애앵-”
“왜 여기 나와 있어?”
“뿌애애애애액-!”
애를 달래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보모 슬라임의 작동을 다시 검토했다.
‘고장 난 건 아닌데.’
장난감이 현관으로 굴러가기라도 했나?
그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음 날 애가 자는 사이에 방을 나섰다.
그러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밀면서 버둥거려서 바닥을 청소하며 움직이는 것밖에 못 하는 그 어린 것이, 현관에서 애애앵 울고 있지 않은가.
마침 아빠를 따라온 페녹스가 옆에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혼자 있어서 심심한가 봐…….”
“얘가 그럴 지능이나 되나? 슬라임도 있고, 장난감도 있는데…….”
“아빠랑 같이 있고 싶은가?”
레리온도 맞장구쳤다.
“외로운가 보죠. 집무실에 데리고 가는 건 어떠세요.”
“택도 없는 소릴…….”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페리안이 매번 현관에서 빼애애액 울고 있는 걸 본 그는 치욕스러운 얼굴로 집무실에 아기 의자를 설치했다.
밤이나 새벽에만 잠깐 돌봐 주던 것이, 어느새 일상에도 침입하다니.
“아주 건방진 놈이란 말이야…….”
***
‘남의 새끼이긴 하지만…….’
아기가 웃는 소리는 듣기 좋은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데 자지러지게 웃고.
‘키워 보니 별 희한한 걸 알게 되는군.’
애들은 꼭 신나면 앞으로 달려간다.
그걸 막으려고 양다리로 몸을 조여 놓으면 좋다고 꺄르륵 웃어 댄다.
평소에는 아무한테나 안겨서 애교 부리는 주제에, 울음만 터지면 바로 애애앵 하고 꼭 아빠를 찾아 댄다.
그러면 또 그렇게 뿌듯할 때가 없다.
“아빠가 최고지?”
“뿌애애애액-”
이빨도 몇 개 없는 게, 간식을 주면 챱챱 하고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그리고 ‘왜 더 안 주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머리를 말려 주려 하면 도망가고, 낮잠을 많이 자면 새벽에 일어나서 아빠 허벅지를 밟으며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