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58)
우리는 열차를 타고 같이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흘깃 그를 쳐다봤다.
이른 아침부터 정장은 물론이고 항상 끼는 장갑까지 갖춰 입은 완벽한 옷차림.
신문을 보고 있던 그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웃음을 보내 온다.
‘굳이 자리도 많은데 왜 내 앞에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가 환하게 웃으며 본인이 읽고 있던 신문의 첫 면을 들어 올렸다. 나 보란 듯.
[혼테인 웬덤, 가짜의 시녀와 결혼 결정. 세뇌인가 함정인가.]“…….”
그리고 혼테인은 또 빙긋 웃으며 보란 듯 신문을 차례대로 넘겨 보였다.
[가짜 시녀의 과거 특집 –1] [예비 공작을 홀린 그녀의 화장과 패션 따라잡기 스페셜!]“……별게 다 있네요.”
[국보 3호, 특급 크루즈 열차 운행 시작. 시녀는 그만한 가치가 있나?]“아, 그만 좀 해요!”
내가 왁왁거려도 혼테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놀리듯 온갖 신문들을 다 펼쳐 놨다.
이 인간, 나를 욕하는 기사들이 어디에 있는지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듯하다.
펼쳐서 보여 주는 데에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난 이제 숫제 신문 뭉치를 나 보라고 내 쪽으로 미는 혼테인을 무시하고 팔짱을 낀 채 바깥에 시선을 고정했다.
***
세상은 난리가 났다.
제국이고 왕국이고 할 것 없이 온 대륙이 가십거리에 흥분한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페리안 공녀가 살아 있단 얘기에 만나 보러 갔다는 공작 후계. 막상 가 보니 공녀는 가짜.
근데 공작 후계가 그 가짜의 시녀와 결혼한단다!
말도 안 되는 전개였다.
자연스럽게 내 출신인 성국이나, 그 전에 일했던 동제국에서의 행적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상식을 부정하는 이 청혼. 이건 애초에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 성국민으로 알려진 내가 계속 저 남자의 청혼을 거절할 방법은 절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죽음을 위장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음모론이 생기거나 꼬투리가 잡힐 것이 분명했고.
어떤 여자가, 혼테인이 청혼하자마자 죽는다?
정말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인 일 아닌가.
두 제국은 서로가 시녀를 암살했을 거라고 주장했겠지.
그런 상황도 싫을뿐더러…….
‘웬덤에겐 내 친어머니의 사망에 대한 단서가 있고…… 그리고, 잠입만 하면 무조건 이득이니까.’
혼테인이 내가 페리안 공녀인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그건 어차피 증거도 없는 혼자만의 추측일 뿐.
혼테인은 반쯤 확신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지만, 증거가 없을 것이란 건 확실했다.
혼테인의 측근들조차 페리안 공녀에 대한 제대로 된 단서 하나 없단 건 이미 다 확인해 놓은 상태니까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며칠 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며 추욱 늘어졌다.
***
우리가 지금 이렇게 열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은, 이동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황송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이 열차는 앞으로 서제국 전역을 돌 것이다.
그리고 각 지방에 있는 오등작 귀족들은 물론 웬덤 치하의 인재들까지 차례로 태울 예정이었다.
왜냐?
나를 그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여자가 제국을 상징하는 남자와 혼인할 예정이다.
혼인 전에 가신들이나 서제국 귀족들에게도 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혼테인은 저런 발상을 해낸 것이다.
나쁘고 성격 더럽고 시커먼 것만 입고 다니는 놈은 네가 해 볼 수 있냐는 듯 말했다.
‘널 평가하러 오는 거야. 실망시키지 마렴.’
‘…….’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 우아하고 고상하게 보이되, 그들 앞에서 본인과 정말 사랑하는 사이처럼 보여야 하며, 그런 와중에서도 정숙하게 굴라니.
판데르니안의 앞에선 사랑하는 척 속삭인 것과는 명백히 다른 태도였다.
‘정숙과 사랑의 주먹을 갈겨 주고 싶었어……!’
물론 열차라지만 일반 시민들이 타고 다니는 열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서제국에서 신열차 산업의 개막을 연 사람은 바로 저 진상 혼테인의 고조할아버지인 인물이다.
그전엔 증기기관이나 전자기관을 사용한 평범한 열차들뿐이었지만, 혼테인의 고조할아버지인 머스크 공은 마법과 기를 혼용한 신에너지 사업을 시작했고, 그것을 기존 열차 산업에 도입했다.
‘결과는 당연히 성공이었고.’
그 사업은 웬덤가에 막대한 부와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기술을 빼돌리고 싶어서 한때 열심히 잠입했었지만…….’
구동 장치 설계 구조나 핵심 마법진, 사용된 재료 등을 다 알아내었어도…….
‘자금력이 없어서 그걸로 사업 시도는 꿈도 못 꿨었지.’
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우…….”
“왜 자꾸 한숨이니.”
혼테인이 앞에서 싱글거리며 물었지만 난 무시했다.
그의 말을 무시하니 그가 구둣발로 내 구두코를 콕, 건드린다. 물론 난 그것도 무시했다.
어쨌든 이야기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괴물 같은 효율의 에너지원 덕분에 열차의 개념은 그전과 완벽하게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선로는 지형의 한계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던 경로와 설계를 완전히 극복하게 되었고, 철도의 규격에 따라 매번 변화가 가능한 덕분에 수백 가지 규격의 열차들이 선로의 크기 제한을 받지 않고 운행되었다.
게다가 공사 필요 없이 방향을 달리해서 전진할 수도 있기까지!
기존과는 궤를 달리하는 신 교통수단이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제한을 초월한 에너지원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운행이 가능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는 가로 폭이 웬만한 건물의 높이에 비견할 수 있지만 굉장한 속도로 전진하고 있으며, 심지어 호수 위 상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교통망.
이 교통망이 생긴 서제국이 온갖 분야에서 성장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이야기었다.
‘부럽다, 부러워…….’
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까 전의 기사 타이틀을 떠올렸다.
[국보 3호, 특급 크루즈 열차 운행 시작. 시녀는 그만한 가치가 있나?]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열차를 크루즈 열차라고 부른다.
먼 과거. 해양 마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 몇몇 사람들이 오직 관광만을 위해 항해하기도 했던 시절.
특히 금전적인 여유가 넉넉한 부자들은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온갖 호화로운 시설이 다 구비된 거대한 선박을 만들어 그 안에서 파티를 즐기고 먹고 마시며 해상 위에서 몇 달간 계속되는 여행을 즐기는 행위였다.
그 선박을 ‘크루즈’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리고, 과거의 영광스러운 일을 흉내 내고 싶은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이 크루즈 열차이다.
수영장이 몇 개씩 건설되어 있고, 파티장과 레스토랑까지!
오로지 여행을 즐기기 위한 호사스러운 열차인 것이다.
‘첫날, 우리 둘의 지정실이랍시고 차량 몇십 개를 넘으며 구조 설명을 들었을 때의 내 심정이란…….’
차량 하나를 통째로 실내 수영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아직도 그 필요성을 모르겠단 말이지.
사실 여행 자체는 호강하는 기분이긴 했다.
‘그런데 이놈의 열등감이.’
마냥 좋은 걸 좋다고 넘길 수가 없더라.
우리나라는 두 제국에 비하면 개발도상국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눈에 보여서.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거나, 아니면 예의상으로도 ‘멋지다’라고 감탄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비웃음이 쏟아지던지!
“혼테인 공께서 대체…….”
“저런 여자가 공작 부인이 된다니, 정말…… 정말…….”
객실 온갖 곳에 배치해 둔 흙사람들이 내 뒷담을 들려 주기나 하고.
내가 그렇게 상념에 잠긴 채 늘어져 있는데, 혼테인이 읽고 있던 서류로 내 다리를 톡 건드렸다.
기품 있는 자세로 앉아 있으라고 눈치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난 또 무시했다.
혼테인은 철없는 동생 달래듯 입을 열었다.
“……한 달 내내 남부만 돌 건데, 어디 들르고 싶은 관광지가 따로 있니?”
대놓고 달래는 투다.
진짜 가끔 나를 완전 어린애 취급하듯 대하는 때가 있는데, 왜 저러는 건지.
“있어도 어차피 안 가 주실 거면서…….”
놈은 부정은 안 하고 웃음만 지어 보이다, 난처한 척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무 서운해하진 말고. 모든 게 다 끝난 뒤에 데려가줄 수도 있잖아. ……근데 이걸 어쩌나.”
“?”
“새 신부 얼굴이 빵떡이 되었는걸.”
“빵떡 주먹으로 맞아 보실래요?”
웃네. 농담으로 들리시나?
나는 저놈과 근 삼 일간 같은 객실, 같은 침대를 쓰면서 확신한 것이 있다.
날 하찮게 취급하면서도 은근히 봐주고 있더라.
그래서 난 요즘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아보기 위해 적당 선에서 계속 깐족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혼테인은 조금의 경고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가식적으로 걱정해 주는 척 그 헛소리를 이어 갔다.
“이런…… 일찍 깨울걸.”
그리고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오늘 웬덤 공작 부부를 만날 건데. 어쩌면 좋을까.”
“……?”
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정색한 채 따져 물었다.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지금 말해 주셨어요?”
내 질문에, 혼테인은 모든 며느리들이 듣기 싫어할 개소리를 내뱉었다.
“뭐 어떻니. 가족이 될 사이인데.”
싱글싱글, 일부러 약 올리는 게 즐거운 얼굴.
난 참지 못하고 빵떡 주먹을 날렸으나, 혼테인은 가볍게 피하면서 내 몸을 끌어당겨 제 옆에 앉혔다.
“아, 진짜!”
이 일만 끝나면 어떻게 해서든 죽을 거야.
난 씩씩거리며 그렇게 다짐했다.
며칠 전, 서제국의 한 백작가.
그들은 갑작스레 전해진 전보를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백작 부인의 손에서 백작의 손으로, 이어서 어린 딸의 손으로 공문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한껏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크루즈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두 달간 제국 전역을 돌며 호화 열차에서 매일 밤 파티를 즐긴다니.
“사랑이 좋긴 좋아!”
“어머나, 신부를 소개하려고 국보까지? 하긴, 혼테인 공자가 그렇게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그 수다의 당사자인 혼테인 웬덤이 들었으면 말없이 부정의 웃음을 지었을 내용이었다.
서제국의 자존심이 있건만, 고작 동제국에서 공녀 시녀를 자처하던 약소국 여자에게 청혼했다는 혼테인 공.
그의 결정에 대한 불평은 곧바로 이웃나라에서 왔다는 신부를 향한 욕으로 번지곤 했다. 만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우 없는 경우가 어디 있나.’
‘웬덤의 안주인 자리를 무슨,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여자에게…….’
그리고 그렇게 불평하던 이들에게 공문이 온 것이다.
특별한 이번 결혼식을 위해 일회성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그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성국 사람인 신부는 서제국 사교계에 편입할 의욕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신부가 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기 위해 크루즈 열차를 운행하며 전국을 돌 것이라고.
그러니 이웃나라에서 온 새 신부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이 열리기 전까지 초호화 여행에 함께 해 주시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문은 두 젊은이의 사랑을 축복하면서, 내심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안내까지 덧붙였다.
열차 탑승이나 파티에 소요되는 기본적인 금액 모두 웬덤 공작가에서 부담하겠다는 안내였다.
심지어 지역마다 정차할 예정이기에, 사정이 생기면 언제든 하차할 수 있기까지!
파티를 즐기는 사람이면 계속 붙박이로 지내도 되고, 아닌 사람은 하루만 얼굴을 비추고 내리면 된다.
답 없을 정도로 철없는 이미지의 새신부에 대한 평판은 순식간에 수직 상승했다.
경우를 아는 여자이자, 공작가에서 예쁨받는 귀한 신부라고.
올해 열 살 되는 백작의 딸이 부러운 마음으로 질문했다.
“아버님. 이런 건 돈이 많이 들겠지요?”
“그렇지.”
백작이 딸아이 귀에 소근거렸다. 대략 이 정도는 들 거라는 예상 액수였다.
예상액을 들은 소백작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결혼식을 위해 제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군요. 그 재력이 부럽습니다. 웬덤 공작가는 이만한 지출도 아무렇지 않을 걸까요?”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지. 초대 인원이 몇인데. 혹시 새 신부가 무시라도 당할까 봐 귀족들 모두에게 경고하고 시작하는 거란다.”
백작의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 시작되었다.
혼테인이 들으면 불쾌함의 웃음을 지었을 추리였으나, 문제는 그 추론이 굉장히 개연성 있었다는 점이다.
공문을 받아 든 사람들은 모두 각각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혼테인이 사랑에 빠진 것인가?
대체 그 신부는 어떤 인물인 것인가!
백작의 얼굴에 느물느물한 흐뭇함이 서렸다.
“혼테인 공자도 결국 사람인 거지. 사랑에 빠지면 변하는…… 아가, 남자는 다 그렇단다. 아빠 젊었을 적도 말이지…….”
대륙 전체를 휩쓸 오해의 씨앗은 그렇게 던져졌다. 달큰한 분홍빛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
이미 열차라고 볼 수 없는 규모의 커다란 무언가가 미끄러지듯 웬덤성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열차 진행 경로 덕분에 가장 먼저 타게 된 귀족들은 흐뭇한 속내를 감추며 정숙한 얼굴로 일어섰다.
그것은 곧 보게 될 성국 신부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이곳에 있는 한 부부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슬쩍 현 웬덤 공작 부부에게 향했다.
갑작스럽게 새 사람을 가족으로 맞게 된 저 공작 부부가, 새 신부에게 어떻게 나올지.
과연 가족으로 인정하기나 할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젊은 남녀가 승강장으로 걸어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바로 여자에게 쏠렸다.
‘예쁘긴…… 하군.’
그러나 호의적인 시선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은 감히 이 문화에 발을 디딘 여자에게 얼마든지 냉정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지역 근방에 있는 귀족들은 정치에서든 상업에서든 자리 잡은 위치의 인물들이었기에, 페리안 공녀의 정체가 밝혀졌던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던 것이다.
혼테인이 환대를 가득 담아 방문한 이들 모두를 향한 감사를 말한 뒤, 차례대로 입장이 시작됐다.
당연히 처음은 웬덤 공작 부부.
세이비어 공작 부인은 아들과는 달리 표정에 웃음기 하나 없는 낯으로 며느리 될 아이 앞에 섰다.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세이비어 님.”
살짝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성국 여자가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무시였다.
그녀는 그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사를 올린 여자를 쳐다도 보지 않고서.
현 웬덤 공작은 “반갑다”라는 짧은 말만 뱉은 뒤 부인을 따라 서둘러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