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61)
“다행이군요. 오는 길에 제가 어찌나 놀랐는지요. 신부가 죽은 뒤에 저쪽에서 난리를 칠까 봐…… 그냥 떠보기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에잉! 늙은이를 놀리니 괘씸합니다.”
하하하, 편안한 웃음소리가 응접실을 메웠다.
혼테인도 그냥 웃었다. 진심이 담긴 미소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짓는 표정들은 모두 가짜였으니.
그 여자애 앞에서 잠시 일렁였던 마음조차, 결국엔 이렇게나 덧없이 가벼웠다.
눈앞에서만 안 보이면 그것으로 끝.
수면 위 파동이 잦아들 듯, 무언가에게 흔들렸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혼테인은 그 애가 죽어도 상관없었다. 진심이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예전의 그 여자애랑 정말 똑같이 생겨서요. 혼테인 님께서 결정을 번복하시기라도 할까 봐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걱정이 너무 많군.”
그러나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혼테인을 위해 저의 평생을 바친 충신이자 숙부인 록사르.
그가 그 여자의 비밀에 대해 착각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록사르가 경계했던 그 여자아이가 맞다고, 굳이 그렇게 정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상황을 가만히 내버려 둘 뿐이다.
어차피 록사르가 이길 것이다.
가지고 있는 비장의 수단이래 봤자, 본인이 엑저 공녀라는 사실뿐인 여자가 무얼 더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걸 밝히지도 못하는 소인배에, 감정적이기만 한 여자.
시대의 흐름은 이미 자신들을 중심으로 고이기 시작했다.
권력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는 여자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폭풍 같은 흐름에 휩쓸려 죽을 뿐.
혼테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서 페리가 눈을 떴다.
***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보라색 홍채였다.
쓰레기들 사이에서 정신을 놓았다가, 익숙한 얼굴을 보니까 서러울 지경이었다.
먼저 난 방에 누가 없는지부터 살펴봤다. 그리고 유리스밖에 없단 걸 확인한 뒤 말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
어이없어하는 유리스에게 덧붙였다.
세계 최강, 우주 최강, 세상에서 제일 멋진 간첩님인 이 몸치고는 꽤나 꼴사나운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러니까 내가 강해져야 해. 다 때려 부술 거야.”
***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그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난 손의 떨림을 감추기 위해서 깍지를 꼈다.
우울한 감성에 매몰되어 있으면 사람이 피폐해진다. 거기서 더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눈을 꾹 감고, 조각조각 부서져 있는 기억들의 윤곽을 이어 보는 거다.
물론 복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기억이란 건 일단 언어를 통해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인지능력이 발달하기도 전에 갇혔다. 일의 흐름이나 개요를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 물론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언어로 정리할 수도 없던 시기였다.
그러니 겪은 일들은 뇌에서 아무것도 정리되지 못하고 그저 쌓이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큰 충격과,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매몰된 것이었고.
하지만, 방금 록사르와 빌어먹을 레리온의 머리카락, 그리고 밤 풍경 덕분에 떠올렸다.
록사르 개인을 봤던 것은 여러 번이지만,
기억으로 가는 실마리를.
이제 남은 것은 시간과, 기억과 사고를 연관 지을 키워드뿐.
키워드가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시간만 있다면 완벽히 떠올려 낼 수 있을 것이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나는, 또 갑자기 치밀 듯 밀고 올라온 단편적인 기억에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
한숨 소리……?
어두운 와중에도, 저 혼자 자체 발광하듯 유난히 빛이 나던 남자애.
‘왕자님이야? 요?’
‘……아닙니다. 혹시 공녀님이십니까?’
‘빤짝거리는데?’
‘후우…….’
‘그 애, 판데르니안이었나?!’
아. 어쩐지!
판데르니안이 가짜 페리안이 진짜 ‘페리안’일 수 없다고 확신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 앞에서 한 번 죽었었으니까…….’
돌아 버리겠군.
‘그리고 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생각났다. 난 한 손으로 얼굴을 연거푸 쓸었다.
‘멜로가 이번에도 날 못 가게 했던 이유는…….’
세실 심문을 맡겨 놨으니, 그 여자에게서 알아낸 거겠지.
이번에도 멜로 그놈은 내게 진실을 숨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서해 주기로 하자. 말하기 난감한 일이긴 하니까.
‘그래. 매일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탑이 시체로 다 꽉 찼다고 해도 공간이 부족해.’
나의 이능력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정교한 육신.
그리고 마물 부산물을 가공하기 위해 필요한 신선한 육체들.
그래. 놈들은 내 인형들을 시체로 써서 마물을 가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두통이 올 정도로 기억을 짜냈다.
‘처음엔…… 그 녀석들도 놀랐었어.’
이게 무슨 괴물이냐며, 기괴한 풍경에 그들도 기겁했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마물 가공을 위해 날 데려온 건 아니야.’
어쩌다가 나를 유용하게 사용하는 법을 찾아낸 것이겠지.
그리고 놈들은 그 후부터 온갖 짓을 자행했다. 내게서 최대한 많은 시체들을 뽑아내기 위해서.
“…….”
그 사실을 떠올리니, 또 하나 묻혀져 있던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좋아하고 있었다. 다 같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나는 계단 위에서 몰래 내려다보고 있었고…….
위험하게 사람들을 납치하지 않아도 된댔다.
마을 연쇄 몰살 사건이 덜미를 잡히면 자신들만 버려지는 거 아니냐고 불안했는데, 이제부턴 안전하게 재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면서.
그리고 나는…… 뭔지 몰라도 내가 도움이 되는 줄 알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슴을 태울 것 같은 분노가 타올랐다. 하지만 난 주먹을 꽉 쥐고 마음을 다스렸다.
길게 우울해지면 안 된다.
이건 이미 일어난 일. 안쓰러운 나의 과거라고 깊게 파고 들어갈 필요 없어.
반대로 생각하는 거다.
걔넨 내 육신들이 없었으면 다른 데서 학살을 자행하며 계속 실험체를 공급했을 거다.
그러니 내 시체가 사람을 구한 거지.
내 몸은 세상을 지키고 있었던 거다.
그럼 됐다. 의미 없는 불행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쓸어 올려 넘겼다. 나는 시체로도 일인분씩은 하는 스파이! 최강 스파이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계속 그렇게 속으로 되뇌면서.
“어흠!”
폐하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진짜 멋있고 대단한 일인자에겐 강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이건 나 혼자서 얻은 교훈이다.
멋진 나를 존중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패 부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정의로운 폭력이 출발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