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66)
“왜 슬퍼해? 너 때문인걸.”
어떻게 그럴 수 있니!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다니…… 으헝.
속으로 삐지려는 와중, 유리스가 말을 이었다.
“잘 들어. 과하게 예쁜 건 잘못이야.”
그러면서 설명하는 것이다. 예쁜 실력파 가수는 실력이 묻히지만, 못생긴 실력파 가수는 얼굴을 보이는 순간 실력을 인정받는다면서.
“그러니 넌 얼굴을 내보인 순간…… 능력 없는데 남자 후려 챈 나쁜년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
나쁜년이라니!
“난 그 얼굴 자체가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으쓱거리며 덧붙이는 유리스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난 유리스의 등짝을 때리면서 요구했다.
“쓸데없는 말 말고, 그런 마법 있으면 그거 실체화나 해 줘!”
“완전 야한 드레스 입는다고 약속하면.”
유리스가 흐흐 웃었다. 아주 비열한 웃음이었다.
“이 주 뒤에 큰 연회 있잖아. 거기서 이미지 변신이나 보여 주자.”
-찰싹
난 또 등짝을 때렸지만, 혼테인보다 더 흑막 같은 중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 완전 화끈한 드레스가 있지…….”
난 미디엄 기장의 노란색 드레스와, 하얀색 레이스 재질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루프탑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외쳤다.
“야- 호-!”
이곳은 가장 최근에 연결된 최후방 차량에 설치되어 있는 탑.
물론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열차에 탑이란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풍경이긴 하다.
그러나 마법과 과학, 그리고 웬덤이 보유한 신에너지가 힘을 합치면 이런 동화 같은 풍경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기술 빼 가고 싶다!’
여기서 크루즈 열차의 풍경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마치 옆으로 긴 성이 움직이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면 감탄만 나왔다. 중간중간 수영장에, 파티장에, 야외 시설에…….
– 휘이잉
그때, 바람이 불며 모자가 벗겨졌다.
모자가 팔랑팔랑,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하지만 모자의 탈출 시도는 시작도 못 해 보고 끝나 버렸다. 뒤쪽에서 나타나신 세이비어 님의 손에 붙잡혔으니까.
“와!”
“……넌 무엇이 좋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이야. 방정맞고 야단스럽긴.”
난 바로 웃으며 세이비어 님께 달려갔다.
***
중증의 무기력증 증후를 보이는 환자를 치료할 때, 약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답은 ‘아니다!’
물론 환자의 증상을 고려한 약물 처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긴 하지.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바로, 몸을 움직이는 것!
운동이 우울감이나 불안감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알려진 사실.
……하지만 말이지,
우울증 환자에게 “가볍게라도 매일 운동하세요.”라고 처방해 보자.
그 말을 듣고 환자가 자기 의지로 움직인다면, 그 사람은 이미 중증이 아닐 거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세이비어 님이 산책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있다!
세이비어 님은 고아하고 품격 있지만, 한편으론 선민의식과 우월감에 가득 차 상대를 무시하고 보는 사람.
그런 분이 다른 사람과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외부 시설에 자의로 가려 할 리가 없다.
게다가 이분이 누구신가?
서제국 사람이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엄청난 유명 인사이기까지 하다!
한번 바깥에 얼굴을 비추면 온 사람들이 가뜩이나 화제인 세이비어 님의 이름을 올릴 텐데, 이분 성정에 감히 그따위 일이 생길 겨를조차 주지 않을 거란 말이지.
이 열차에, 탑승자들의 체력 유지와 건강을 위해 만들어 둔 호화 레져 시설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굉장히 아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난 크루즈 열차의 내부 구조는 환풍구 통로 설계까지 완벽히 꿰고 있는 몸.
‘머릿속에 층별로 도면을 그리고…….’
나는 세이비어 님이 유일하게 시간을 보내는 장소인 온실 정원과 환풍구 통로가 연결되는 모든 루트를 정리해 냈다.
그리고, 금방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다음은 쉬웠다.
‘세이비어 님과 데이트하고 싶어요. 나가서 같이 바람 쐬어요~’
‘너나 가라.’
‘잉.’
그렇게 싸늘한 냉대를 당한 뒤 나는 온실을 나갔다. 그리고 두 칸 옆 차량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욕하는 여자 둘을 만났다. 환풍기 밑에서 수다를 떠는.
‘새 신부 말이야. 벌써 며칠째 모든 공식 일정에 얼굴도 안 비추는 것 좀 봐. 혼테인 님도 마음이 뜨신 것이 분명해.’
‘그런 거겠지. 얼마나 철이 없는 부인이셔? 그 대단한 혼테인 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하루 종일 놀러 다닌다질 않나. 분수에 맞지 않게 귀한 자리를 받아 가지곤…… 쯧.’
‘요새 이혼은 흠도 아니니, 혼테인 공이 빨리 성국 여자를…….’
이 대화는, 아주 우연히 세이비어 님의 귀에 똑똑히 들렸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렇게나 거대한 열차에서, 두 칸이나 떨어져 있는데 목소리 같은 게 전해질 리 없다.
그렇기에 난 몇 가지 우연을 준비해 놨다.
‘환풍구 점검을 위해, 귀한 분들의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첫 번째. 성인 남성의 형태를 한 가체를 만들고, 기술자인 척 들어가 환풍구에서 뚱땅뚱땅거리며 무언가 수리하는 척을 해 놨다.
두 번째.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세이비어 님의 온실까지 정확히 소리가 전달되도록 만들어야지! 그래서 통로 내에 이것저것을 붙여 놓았다. 소리를 증폭시키고 반사시키는 금속들을, 미리 계산해 놓은 완벽한 각도들로.
세 번째. 아주 우연스럽게도 준비해 둔 자리에서, 준비된 듯한 험담을 꺼내는 여자 둘.
당연히 내가 만든 가체들끼리의 인형극 아니겠는가?
‘에헴.’
그리고 나는 가체 두 개가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수도관을 열어 손을 닦고, 나가게까지 만들었다.
가체 둘은 화장실 문을 닫고 멀리 걸어갔다. 그리고 알아서 흙으로 분해되어, 다른 환풍구로 빨려 들어가듯 숨었다.
그리고 나는.
-끼익
세 번째 칸에서 문을 열며 나왔다. 훌쩍이면서.
난 세면대의 수도관을 열고, 쏴아아아- 하고 물을 계속 흘려보냈다.
연출이었다.
우는 소리가 안 들리게 물을 틀어 놓고 우는…….
어렸을 때 감명 깊게 본 신파 연극에서 나온 장면을 오마주 하는 것으로 마무리!
그리고 난, 이십 분 뒤에 다시 정원으로 돌아갔다.
‘간다며 왜 오지.’
‘그냥요!’
그리고 평소보다 다소곳하게 웃었다. 물론 눈가는 아직 울긋불긋한 상태로.
‘저는 그냥 세이비어 님 옆에서 놀래요.’
끝.
그 뒤로 세이비어 님은 내가 구경 가자고 하는 곳마다 귀찮아 죽겠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시면서도, 잠자코 따라오시게 된 것이다!
***
우리는 루프탑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쉬기로 했다.
세이비어 님의 등장에 여기를 이용하고 있던 귀족들은 다 아래로 피신한 지 오래.
내가 세이비어 님과 붙어다니는 걸 보며 욕하는 놈들이 있단 건 알고 있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여기서 팔고 있던 젤리를 사 와 세이비어 님께 내밀었다.
나중에 내가 사라져도, 혼자서도 챙겨 드시길.
“이거 보세요, 세이비어 님. 단 맛 나는 곰돌이 젤리인데 비타민이래요. 귀엽죠?”
“너나 먹어라.”
“아이 참. 빨간색? 주황색? 뭐가 좋으세요? 아니다. 노란색 드세요. 제가 오늘 노란색 입었으니까.”
세이비어 님은 곰 젤리를 굉장히 하찮게 보시면서도 내가 드리는 노란 젤리는 입에 넣으셨다.
그리고 그때.
세이비어 님의 기사가 와서 어떤 얘기를 귓속말로 전달했다.
내게 들리지 않게 속삭였지만 다 들린다.
“탑 아래에 황제와 황녀가 들렀다고 합니다.”
세이비어 님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둘을 불러오도록.”
“예.”
기사가 떠나고 난 뒤, 나는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사실 오늘 황제와 황녀가 여기에 올 예정이란 걸 알고 동선을 겹치게 짠 게 나지만.
또, 세이비어 님의 호위기사 근무 일정표를 조작하여 선황제 우호파 기사가 붙어 있도록 한 것도 나지만.
“황제가 왔다는구나. 너는 인사하지 못했으니 여기서라도 만나야지.”
“어머나.”
동석자인 내 의사를 물어본다는 선택지의 여지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동석시키는 것이지만, 세이비어 님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말마따나 나는 그날 섭정 록사르를 보고 꼴사납게 기절하느라, 그날 탑승한 주요 귀족들과는 아직 한 번도 인사하지 못한 채였으니.
마침 탑 아래에 설치해 둔 흙사람이 황녀를 비췄다.
“무슨 용건이냐?”
“웬덤 공작 부인께서 황제폐하와 황녀님을 호출하셨습니다.”
“…….”
황녀는 잠시 굴욕적인 얼굴을 했다가 수긍했다.
***
이윽고, 루프탑 정원에 올라온 황녀는 이곳의 풍경을 보자마자 아주 살벌한 기색을 띠었다.
‘나 때문이군.’
본인들의 평생의 원수, 웬덤의 새 신부가 될 여자. 그게 나 아니던가.
내게 적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황제폐하와 황녀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그리고, 넷이 앉아 있는 어색한 자리가 형성됐다.
황제는 아직 아기였고, 황녀도 차림새가 좋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