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76)
어쩌다 구원했지만, 책임은 안 집니다 11화(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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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건…… 그 페리안 공녀가 갇혀서 고문당했다는 탑에서 일했던 놈들이니까.”
잉?
잠깐. 그거…… 아마…….
***
“난 그놈들 모두 찾아서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역시 록사르의 비호 아래에서 완전히 신분 세탁을 끝낸 건지, 그 누구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어. 어디로 숨었을 지에 대한 단서 하나 남아 있지 않고…….”
“…….”
내 침묵을 무슨 의미로 이해한 건지, 유리스가 자신의 초조함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놈들을 찾아내는 데에 너도 협력하겠다고 약속해.”
“…….”
유리스에겐 절박한 기회였다.
그들의 실물을 직접 본 사람이 처음 나타난 것이니까.
지금까지는 전혀 단서를 얻지 못했던 유리스.
그런 그 애에게, 놈들과 같이 생활한 적 있는 나는 마지막 희망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거…….
내가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유리스가 초조한지 또 다른 조건을 내세웠다.
“만약, 정말로 놈들 중 누구라도 찾아낸다면…….”
유리스의 목소리가 한껏 진지해졌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 인생을 너에게 주지.”
“그걸 어디다 써…….”
“어떤 더러운 방식으로 사용해도 좋아. 암살이든, 테러든. 무슨 쓰레기 짓이라도 협력해 주마.”
“너…….”
날 도대체 무슨 짓 하고 다니는 애로 보는 거니?
난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찾아야 되는 그 인간들,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아?”
“외모나 신체적인 특징들은 다 기록되어 있어.”
“예를 들면?”
내 질문에, 유리스가 또박또박 특징을 읊었다.
혹시 내가 뭐라도 알까 싶은 간절한 마음인 것 같았다.
“……대머리에, 키는 2미터가 넘고, 정수리에서 귀, 그리고 턱 아래까지 곡선으로 이어지는 긴 흉터가 있는 남자. 흉터는 붉은색이고, 유난히 귀가 크고 두꺼워.”
그 생김새론 세상에서 잠적하기도 어렵겠다!
그러나 유리스가 찾지 못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왜냐?
그놈은, 이미 우리 성국에서 사로잡은 지 십 년도 넘은 놈이었으니까!
우리 모망 폐하는 나를 그 탑에서 빼내면서, 아이였던 나를 괴롭히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혹은 방치했던 쓰레기들의 존재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특히나 성국과 페리안 공녀의 연관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명도 남김 없이 처리해야 했으니.
덕분에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지금도 성국의 비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 이 말이다.
그리고 그 대머리?
난 걔가 몇 호에 갇혀 있는지도 알고 있다. 오늘은 밥 안 주는 날이라는 것도.
“…….”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 고민하다 말했다.
“그 사람은…… 어, 록사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리 비밀 조직에서 이미 생포한 남자야.”
“뭐? 잠…… 잠깐만. 자세히…….”
“이따가 한 번에 설명해 줄게. 또 누구 있는지 말해 봐.”
유리스는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다른 놈의 생김새를 읊었다.
빨간 머리에, 머리카락에 가려 안 보이지만 머리 뒤쪽에 문신이 있고 등등등.
“……걘 내가 칠 년 전에 붙잡은 놈이야.”
유리스는 참지 못하고 꽥 소리 지르듯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사기꾼!”
“아냐, 진짜거든!”
난 그 둘 말고 다른 놈들의 생김새도 읊어 보며, 이미 우리 조직에서 다 확보한 놈들이라고 말해 줬다.
“굳이 네 인생을 준다면 받기야 받겠지만…… 어쨌든 죽은 놈들 빼곤 이미 다 사로잡았어.”
“…….”
“한 놈도 놓칠 일 없으니 크게 걱정하진 마. 마음 느긋하게 가져도 돼.”
“…….”
“……서비스로 고문할 시간도 보장해 줄게.”
내 말이 끝나자, 계속 불만 가득했던 유리스의 눈동자가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난 유리스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채 토닥거렸다.
아주 오랜 시간 혼자 싸워 온 친구를.
***
유리스를 달래고, 고문 시간도 약속하고.
그리고 유지하고 있던 가체 대부분을 흙으로 변환시켜 환풍구로 흘려보내고, 딱 한 줌만 유리스에게 방으로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작아졌네?”
“어흠!”
유리스의 방에서 인형 크기로 만들어진 나는 당당히 가슴을 폈다.
한 줌 흙으로 만든 만큼, 다시 만든 임시 가체도 그만큼 작을 수밖에.
“잠깐. 그전에.”
“응?”
“맹세해. 나는 내가 보유한 기록들을 하나도 숨김 없이 보여 줄게. 하지만 너도 네가 말한 게 진실이어야 해.”
유리스가 말하는 것은 맹약을 맺자는 것이다.
의외로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마법이다. 빚 보증이라든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 자식들을 데리고 있고, 내가 사적으로 복수를 할 기회를 준다면, 내 남은 인생을 바치지.”
간단하게 맹약의 마법이 끝났다.
나는 우리 성국에 멀쩡하고 젊고 뛰어난 마법사가 한 명 더 생길 거란 사실에 그저 흐뭇하게 웃었다.
어쨌든, 나는 바로 유리스의 부모님이 남겼던 자료들을 확인하기로 했다.
그것들은 서류 같은 물질적인 매체로 보관된 것이 아니었다.
유리스가 손을 젓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문자들이 떠올랐다.
나는 유리스의 방에서 허공에 떠오른 문자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이 회계 장부, 운송 내역서긴 한데…….”
자료의 출처는 크게 두 가지 종류였다.
록사르의 영지에서 일어난 포괄적인 실험과 더불어 인체실험에 대한 자료들, 그리고 마물 연구용 탑에서 나온 자료들.
아무래도 후자보다는 전자의 자료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질도 좋았다.
특히 전자에서 혼테인의 처음 상태를 설명할 많은 증거들이 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하나하나가 명백히 중요한 단서들이었다.
그렇게 기록들을 샅샅이 읽으며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도중.
갑자기 깜짝 놀랄 질문이 옆에서 툭 튀어나왔다.
“너 사실 페리안 공녀 아니야?”
엄청난 기습!
눈도 입도 동그래진 채 경악하는데, 유리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덧붙였다.
“뭘 그렇게까지 바보 보듯 봐? ……아니, 그냥…… 물론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건 아는데, 진짜 그냥 해 본 말일 뿐이거든?”
유리스는 내가 자길 놀린다고 생각하는지, 괜히 더 툴툴거리면서 진지하게 한 말이 아니라고 계속 강조했다.
나는 쭈구리처럼 속삭였다.
“……맞아.”
***
그 다음 날.
세이비어 님과 유리스, 그리고 내가 한자리에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미묘한 둘의 인사가 끝나고,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나는 세이비어 님껜 유리스에게 얻은 정보를, 그리고 반대로 유리스에겐 세이비어 님께 얻은 정보를 간략히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은 몇 시간씩 이어졌다. 일단은 지금까지 확정된 사실들만.
혼테인 탄생부터가 완벽한 군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실험이었다는 것.
바쁜 공작을 대신하여 임신한 세이비어 님을 도우며, 남편보다도 더 접촉이 많았던 록사르가 일을 벌인 것.
그리고 유리스의 부모님이 남긴 정보에서, 감정이 절제된 인간을 연성하는 연구는 록사르가 젊은 시절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그리고 이야기는, 어떻게 록사르를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느냐에 대한 작전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중요한 이야기가 다 끝나고.
“…….”
난 의외의 사실을 깨달았다.
세이비어 님과 유리스.
이 둘은, 의외로…….
“네 오빠들은 널 못 알아본 거야?”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 않느냐.”
“쓰레기다 못해 버러지 같은 놈들이죠.”
……이런 식으로 죽이 잘 맞았다.
‘남 욕만큼 쉽게 친해지는 방법도 없지만…….’
그리고 그렇게 남들 욕하는 잡담이 잔잔히 이어지던 와중.
나는 혼테인을 욕하면서 그 얘기를 꺼내 버렸다.
“아니 글쎄. 나보고 폐막 연회에 혼자 가라는 거야! 자기는 딴 여자랑 간대. 어이없어서.”
“…….”
“…….”
내 푸념에, 둘이 뚝 굳었다.
사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혼테인이 조금 짜증 날 뿐, 지금 앞으로 역사에 남을 사건이 벌어지려는 와중 파트너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나.
신랑 될 사람과 감히 함께 입장조차 못 하는 신부.
그게 이틀 뒤 내가 맡을 역이긴 하다.
그래도, 그런 역할이래두 딱히 상관없었다. 진짜로! 내가 그런 거에 우울해할 나이도 아니고.
그러나 유리스와 세이비어 님의 의견은 달랐나 보다.
둘은 이제껏 없던 가장 진지하고 험악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급하게 둘 사이에 끼어들어 수습하려 했다.
“아니…… 그냥 혼자 들어가도 되니까…….”
“절대 안 돼.”
“택도 없는 소리 말거라.”
“하지만, 이제 와서 같이 들어갈 남자를 찾을 방법도 없고…….”
고작 이틀 남았는걸.
그리고 상대역을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찾으려면 당연히 찾을 수 있겠지. 지나가는 시종이라도 남자긴 하니까.
그러나 이래 봬도 예비 신부인 몸.
혼테인에게 바람맞았다고 다른 남자랑 들어가면 그것대로 문제다!
무언가 음험하게 세이비어 님께 쑥덕대던 유리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젠 진짜 야한 드레스 작전밖에 없어.”
“…….”
무슨 소리야, 진짜!
“그때. 보온 사탕을 만들어 준 뒤부터……, 열차가 지상에 정차할 때마다 바깥에서 사 온 게 있어.”
유리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서 잔뜩 뻗어져 나온 마력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뭐 하는 거지? 하고 잠자코 기다리고 난 뒤.
저 멀리에서부터 살랑살랑. 온갖 드레스들이 줄지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예뻐서 더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한 벌씩 자세히 보면 다 굉장한 디자인들이라 더 어이없다!
곧이어 드레스들이 우리 셋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회전했다.
“그만 좀 해!”
내가 유리스의 어깨를 붙들고 탈탈 흔드는데도 소용없었다!
유리스는 ‘이거다!’라며 가슴골이 명치까지 파인 붉은 드레스 하나를 잽싸게 잡아챘다.
“이거는 무슨!”
세이비어 님은 조용히, 거의 모든 곳이 반투명한 재질로 된 풍성한 드레스를 손으로 집으셨다.
“난 이게 좋겠군.”
“그런 거 입으면 몸 실루엣이 다 보인단 말이에요!”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하고 한참 후.
드레스들은 풀 죽은 것처럼 흔들리며 마력길을 따라 줄지어 날아 퇴장했다.
세이비어 님이 조용히 입을 여셨다.
“그래. 젊은 마법사의 방안도 제법 일리가 있지만 그걸론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렇지요. 저건 그냥 부가적인 요소밖에 못 되니까요.”
누가 보면 국정 의논하는 줄 알겠다.
둘의 표정은 그만큼이나 진지했다.
“그렇다고 구색 맞추기용 파트너를 찾아 봤자 웃음거리만 될 뿐. 멍청이 혼테인만큼의 유명세는 있어야 해.”
“역시 그 사람뿐이겠네요.”
난 둘의 대화를 들으며 푹 시든 시금치처럼 시무룩해졌다.
레리온 말하는 거겠지.
……확실히, 말이 되긴 해.
레리온과 동반한다면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짝을 지어 나온 것이라고 보여질 테니까.
하지만, 그 남자한테 부탁해서 그러는 건 싫은데.
요즘은 더 거북하단 말이야.
둘 다 너무해!
그렇게 우울해지려는 그 때.
둘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같은 사람을 지목했다.
‘판데르니안 공작.’이라며.
난 고개로, 팔로, 다리로. 온몸을 사용해 가며 절레절레 흔들고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왜 뜬금없이 말도 안 되는 상대가 튀어나와?
그러나 둘은 냉혹한 얼굴로 웃었다.
이런 말이 있다.
강한 사람은 눈치 같은 거 없다고.
“하하하- 오래간만이야.”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반짝반짝. 오늘따라 남자의 머리카락 별빛이 유난히 크게 광채를 발하고 있다.
최강이기에 남들 눈치 볼 필요 없는 기사.
페녹스가 날 포옹하러 두 팔을 벌리고 걸어오고 있었다.
***
한 시간 전.
“결혼이 한 달 남았는데 따로?”
“어머나…….”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열린 연회.
사람들의 관심은 혼테인과 그 신부에게 쏠려 있었다.
새신랑인 혼테인 공이 전 연인이자 한때는 약혼녀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던 어느 후작가의 여식과 입장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상한 경우였다.
혼인은 한 달조차 채 남지 않은 상황. 무슨 변명을 가져다 붙여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웬덤 공작과 들어오겠지.’라고.
그러나…….
불쌍한 새신부는 혼자 입장했다.
“페리 양 드십니다-!”
그렇게 소리친 시종은 본인의 낯까지 홧홧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명단엔 별다른 미사여구조차 없이, 뒤에 웬덤 성도 붙여 주지 않고 페리라는 이름만 쓰여 있던 것이다.
그 시종은 경력이 사십 년도 넘는 베테랑이었으나, 그런 그에게도 이렇게나 중요한 자리에서 이 정도로 유치하게 망신 주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당연히 다른 귀족들도 이 난해한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망신 주겠다는 의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