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80)
고립된 망루 옥상 위에서 차가운 공기를 마시다 보면 이 세상은 너무 더럽다 느껴져 분노가 끓어오르다, 마지막은 자신의 초라함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게 모두를 저주하며 살아가는 나날들이었었다.
그 시기를 떠올리던 알로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
잠시 고민하던 알로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몸이 나아가는 대로.
‘그러고 보면 그랬었지.’
예전 일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젠 진짜 아무것도 믿을 게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던 그 순간.
어느 순간부터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식수와 빵, 그리고 황제를 위한 분유 가루.
아침에 일어나면 눈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주는 분유 냄새. 그게 은은하게 풍기고 있으면 그가 왔다 간 날인 것이다.
알로의 영웅은 항상 분유 냄새와 함께 나타났다.
가끔은 단내도 같이 풍겼다.
아기는 못 먹는, 오로지 황녀를 위한 사탕에서 나는 달콤한…….
그렇게 추억에 젖어 있던 참이었다.
망루의 옥상. 그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끼익.
“…….”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이다. 그래.
약 이 년 전, 새벽에 인기척이 들렸던 그날.
그 정체불명의 괴한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
“…….”
알로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때도 옥상이었다.
알로는 바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이년 전 그날의 마음으로.
그때도 그랬다.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죽어라 뛰었다. 단 한 번이라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황제파 귀족들은 건재한 것인지. 그리고 사실, 그것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가지 마.
알로가 뛰어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 수상한 녀석도 바로 도망가려는 듯 움직이는 소리가 났었다. 알로는 이를 악물고 계단을 뛰어 오르며 외쳤었다.
‘멈춰봐-!’
‘…….’
‘잠깐만!’
그리고 알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봤다.
다리가 터질 듯 달려 옥상에 도착해서, 딱 마침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는 현재 알로의 눈앞.
알로는 순간 과거로 돌아왔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 사람은 그랬다.
난간 위에 서 있었다. 딱 지금처럼.
키는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좀 자란 지금 와서 보니 그렇지만은 않다. 그래도 중절모를 쓰고 코트를 걸치고 있는 것은 그때와 똑같다. 눈치도 없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도, 달빛이 그 사람 얼굴도 제대로 못 비추는 것도.
심지어 희미하게 분유 냄새가 나는 것까지.
날은 또 얼마나 어두웠는지. 그때도 알로는 그 사람이 무슨 색 코트를 입었는지, 머리는 무슨 색이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어두운 밤이었다.
더군다나 왜 쓰는 건지 모를 중절모.
그 덕에 얼굴 전체에 음영이 드리워지지 않았던가.
얼굴은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입매뿐.
그 중절모는 오늘도 착용 중이다. 환장할 것 같았다.
알로는 이 다음에 일어났던 대화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나왔었다. 해야 할 말이 잔뜩 있는 것치곤 굉장히 짧고, 어찌 보면 무례하게도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그 찰나의 풍경을 평생에 새겨 놓느라,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로는,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너. 정체가 뭐야?”
몇백 번 의미를 궁리해 봐도 조금도 해석하지 못했던 그 말을 다시 듣기 위해.
그 질문에, 상대는 곧게 등을 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살짝 내렸다. 그리고 팔짱을 꼈다.
그리고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내 정체가 궁금한가?”
“…….”
“내 이름은 레드.”
아무리 봐도 미친 것 같은 구원자가, 한 손으로 중절모를 푹 눌러썼다.
그리고, 다정하게 웃으며 이었다.
“어린이들을 구하러 왔다!”
앞으로 아무리 더 고민해 봐도 혼자서는 무슨 의미인지 절대 알 수 없을 소리였다.
그게 조그만 이웃나라 수도에서 상영하는 어린이 대상 연극의 명대사라는 건.
***
과거, 그 이상한 말을 한 괴한은 그 순간 사라졌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알로는 제 정신이 나약해져서 환각을 본 것이 아닌지,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우며 자신의 상태를 수백 번이고 의심했다.
서제국 황궁의 경비를 뚫고 망루에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먹었던 것은 뭘까.
남기고 간 미친 헛소리에 대해 한참 궁리하다가 답답해서 다시 옥상에 올라가 보고, 심란해서 또 내려오고.
‘정체를 알아내기만 하면, 내가 아주…….’
그러나 욕하며 내려오면서도 본인이 또다시 이곳에 올라올 것임을 알았다.
아무도 없는 난간 위에 올라서서, 환상인지 자객인지 모를 것이 왔는지 확인하게 될 거란 걸 알았다.
그래서 알로는 아직도 분유 냄새를 좋아했다.
기억이란 건 왜 향기도 전해 주는 건지.
아니면 향기가 기억을 불러오는 걸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어린이들을 구하러 왔다!”
그땐 엉겁결에 나온 대사였다.
폐하와 처음으로 같이 봤던 기념비적인 소연극.
그리고 무려 십 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끊기지 않고 달에 한 번은 상영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세기의 명작!
‘어린이들을 구하는 히어로, 레드와 블루’는 극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 그 자체!
중절모와 코트는 얼핏 보면 무례해 보여도 속은 다정한……,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레드가 애용하는 복장이었고.
……그러나 알로는 버럭 화부터 냈다.
“광인이냐!”
그리고 주먹을 꾹 쥐고, 몇 번 후우후 쉼호흡하다. 원망을 쏟아 내듯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불쌍한 황녀를 돕는다는 자기 자신의 선행에만 심취했던 거 아니냐고.
언젠가 상황이 반전될 순간에 대비해 도왔다는 시늉을 한 거였냐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정체를 알려 주지 않고 들락거리다가 방문을 끊으면 다냐고.
그러나 그 모든 역정들에서 투정의 감정이 느껴졌다.
투정 부릴 수 있을 만큼 속으론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로가 소리 지르듯 외쳤다.
“그러고서 왜 또 이런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 이 나를 기만하기 위해서겠지!”
“…….”
사실 그때도 의아했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후회했었다.
이렇게 멋지고 대단하고 수완 좋은 내가.
숨을 방법이 없던 것도 아니었던 내가.
왜 그때 황녀 앞에서 모습을 보였던 건지.
내 얼굴 하나 못 볼 거란 걸 알고 있었고, 황녀가 신고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못할 것임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내 모든 간첩 생활 중에서도 그날 알로에게 모습을 보였던 것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에잉…… 왜 그랬지.’
그 이후로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한참 생각했다.
왜 알로가 뛰어오는 소리를 들었으면서, 바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최강 스파이는커녕 경범죄자도 안 그러겠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왜 망설였는지.
나는 폐하를 보고 사랑을 배웠다. 폐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세상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건 다른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쨌든 네 쪽을 응원하는 사람이 실제한다는 걸 한 번만이라도 보여 주기 위해.
“나 레드는 네게 중요한 경고를 하러 왔다!”
“미친놈!”
“세상이 너무 혼란해졌다. 나 레드가 보기 힘들 만큼! 그래서 이번만큼은 네게 동맹을 제의하겠다.”
“두고 봐라. 네가 내 앞에서 스스로 본명을 밝히게…….”
“황제가 되어라!”
“만들 테다!”
***
섬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백 년 만에 가장 북적북적한 상황이었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암석 해안.
그리고 그 한참 위에 떠 있는 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에서도 한참 위에 떠 있는 크루즈 열차.
그리고 서제국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온갖 영수들까지 하늘을 날아다니고, 섬에서 몸을 비비고 있다.
그리고 가장 호화로운 건물에서 결혼식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
“혼테인 공에게 순종하십시오.”
“네.”
“혼테인 공에게 복종하십시오.”
“네.”
“혼테인 공에게 맹종하십시오.”
언제까지 더 할 거니?
그러나 나는 팔려 온 새 신부답게 저항 없이 네, 하고 대답했다.
주례 거의 모든 대사가 내게만 공격적이었다.
남편의 말을 잘 듣고, 예쁜 짓 하고, 항상 모셔야 하고…… 이런 걸 대체 얼마나 들은 건지.
이윽고 결혼식의 끝인 입맞춤 시간이었다.
주례는 심지어 내가 혼테인과 뽀뽀하는 것도 싫다는 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네가 결혼하냐?’
내가 속으로 어이없어 하던 참이었다.
입맞춤을 위해 가까이 다가온 혼테인이 갑자기 맥락 없는 질문을 속삭였다.
“……파니랑 하고 싶었어?”
“네?”
파니가 뭔데.
내가 의문스럽게 쳐다보는데, 그는 그냥 웃었다.
아마 사람들 보기에는 새신랑이 신부에게 완전 자상하게 대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혼테인은 내게 천천히 키스했다. 굉장히 집요한 접촉이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아플 정도로 깨물다, 윗 입술에는 그저 어린애 뽀뽀하듯이 쪽 하고.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그가 속삭였다.
“보렴. 결국 아무것도 못 했지?”
‘못 하긴, 무슨.’
“혼인이 성립되었습니다.”
서제국 외무대신이 마지막 주례를 읊고, 서 있던 기사들이 동시에 경례를 위해 팔을 뻗은 그 순간.
– 쿠루루루룽
세상이 기울어졌다.
***
결혼식 메인 홀에 있던 것은 다 기본 이상은 하는 인물들이었으므로, 크게 넘어지거나 부상을 당한 이는 없었다.
나는 으아앙 하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면서 자칭 혼례지도사의 바지 자락을 붙잡았지만.
“으아앙-”
오히려 기사들은 바로 균형을 잡고 검을 빼 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검이 소용없는 대상.
혼인지도사라며 거들먹거리던 남자의 다리 사이를 노리듯, 바닥이 부서짐과 동시에 그 균열로 미끄러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도 매우 거대한!
각자 알아서 날아다니던 영수들이 흥분하고, 꽤애액 소리를 질렀다.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촉수.
“크라켄이다아-!”
해양마물, 크라켄의 등장이었다.
나는 또 으아앙 비명을 질렀다.
이게 왜 여기서 나오냐?
당연히 내 짓이지.
간단했다. 그때 연회 때와 똑같은 수법이라 재미도 없었을 정도였고.
내 피엔 마물들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다.
당연히 해양마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찾느라 죽는 줄 알았어. 진짜 촉수에 빨려들 뻔했다니까?’
‘잘했다, 유리스!’
해양의 마물들은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워, 모든 사람들이 항해를 포기하게 만든 원인.
게다가 이번에 나타난 것은 크라켄 세계에 대장이 있다면 이 녀석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역대급 크기였다!
“으아아아아악!”
어렵게 모신 귀한 하객의 화려한 입장이었다.
황제의 요람은 하늘 위에 떠 있긴 하지만, 섬을 구성하는 유기물이나 무기물이 특별한 성분인 것은 아니다.
암석을 붙잡고 올라탄 크라켄이 다리를 치켜 올려 섬의 아래를 찍었다.
– 후두두두둑.
그와 동시에, 전설 속 명소인 황제의 요람이 일부 부서져 바다 밑으로 떨어졌다.
“으악-!”
섬의 부서진 구멍과 균열로 몇몇 기사들이 그대로 미끄러져 크라켄의 머리통에 떨어지고 있었다.
-쿠우우우웅.
크라켄의 공격은 유난히 한군데에 집중되고 있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던 메인홀에.
그로 인해 이곳 건물은 아예 바닥이 뻥뻥 뚫린 상태였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결혼식 내내 ‘혼테인 공이 저딴 여자랑 결혼하다니!’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던 놈들이 이미 섬 밑의 암초로 추락했다는 점이다.
물론 크라켄이 메인홀을 유난히 노리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뒷돈을 줘서 이곳만 집중적으로 공략해 주십시오, 하는 거래를 한 거라면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겠지만…….
그냥 내가 이 메인홀 여러 군데에 내 피를 묻혀 놨을 뿐이다.
내가 태평한 와중에도, 사람들은 난리법석이었다.
“검기로 빨판 먼저 잘라!”
그런데 물론, 당연한 사실이 있다.
메인홀에 있던 모두가 다 혼테인 휘하의 기사였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중립파 노약자 귀족도 있었고, 하하호호 가족끼리 나를 응원하는 백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왜 크라켄이 여기만 집중적으로 노리면서도, 메인홀에 있는 노약자들과 일반 귀족들은 위협받지 않는 걸까?
그것도 간단하다!
섬 밑, 크라켄의 촉수가 내게 적대적이었던 놈들을 향해 뻗을 때.
‘얍!’
난 놓치지 않고, 바로 그 부근의 땅 결합력을 흐물흐물하게 낮춘다.
그럼 와르르, 으아악! 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반대로 노약자나 전쟁 찬성파가 아닌 귀족들 밑은 더 단단하게 굳혀 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그냥 대단한 기사들도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황제의 요람엔 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영수 기사들, 공격!”
그때 영수 기사들이 출격을 시작했다. 정신 차린 놈들이 잽싸게 홀을 빠져나가, 영수를 타고 분대별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하게 나타난 든든한 지원군들의 모습에 모두가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