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81)
그러나, 내 피는 마물들을 흉폭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강화까지 시킨다.
“뀌이이익-!”
크라켄의 빨판은 날아다니는 영수 몇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노련한 기사들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지만, 별 공격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윽고, 섬 가운데에 쿵, 철퍽. 쿵, 철퍽 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섬 중앙이 마치 융기하듯, 가운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섬이 갈라져서 나눠지기 직전인 것이다. 두 쪽으로!
그 이후 상황은 다들 예상할 수 있다.
화려한 결혼식을 위해 온갖 지방에서 다 모여든 지체 높은 귀족들.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이들이, 이대로 바다로 추락하겠지.
모두가 겁에 질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한 소녀가 달려 나갔다.
크라켄이 움직일 때마다 저 밑의 바다가 인공 파도 발생 장치를 가동하기라도 한 것처럼 출렁이며, 하늘 위에 떠 있는 섬에까지 바닷물이 폭포 쏟아지듯 부어지는 와중이었다.
그 물벼락에 미끄러지며 기울어진 섬을 미끄럼틀 타듯 추락한 기사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바닥은 온갖 곳에 금이 가고, 섬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두 군데로 나눠지려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자길 지켜 주는 사람이 없단 걸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딘 거야.’
난 곧 황제가 될 여자애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
뒤늦게서야 황녀가 뛰쳐나갔단 것을 눈치챈 놈들이 생겨났다.
“황녀님-!”
그들은 황녀가 그 검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탄식을 내뱉었다.
“아니, 저, 저, 바보 같기는!”
정통성 있는 황제만이 뽑을 수 있다는 검. 그 검에 실린 힘으로 마물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건 흔한 건국설화다.
실제론 혈통에 이상 없던 선황제들도 뽑지 못했던 것이었고.
마물들을 물리치고, 정상으로 돌린다는 것은 그저 어린이용 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헛된 이야기였다.
-쿠웅.
-푸와아아악.
마침 누군가의 공격으로 크라켄이 다시 물에 처박혔는지, 그 여파로 엄청난 양의 물이 아래에서 치솟았다.
하늘로 흩뿌려진 바닷물. 그건 찰나의 순간 동안 비상하다, 물방울이 되어 사방에 흩뿌려진다.
모두들 그 광경을 봤다.
뒤로 파도가 휘몰아치며, 수해 수준의 물벼락이 섬에 내려꽂히는 현장.
황녀는 그 순간에 검을 뽑았다.
-스르릉.
사람들은 들릴 리가 없는 거리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에서 뽑는 거라곤 말도 안 될 정도로 날카로운 마찰음.
황녀. 아니, 새로운 황제가 하늘 높이 검을 치켜들었다.
폭풍처럼 물방울이 몰아치는 한가운데에서. 얼굴과 보라색 단발머리가 잔뜩 젖은 채로.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밀리던 영수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어, 어?”
영수들 하나하나가 갑자기 방금과는 다른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형편없이 밀리던 것들이 갑자기 크라켄을 압도하듯 강해진 것이다.
물론 이것도 나의 아주 재미없는 트릭이었다.
‘영수들은 내 피가 있으면 굉장히 강해지고 예민해지니까.’
그래서 미리 응고된 피를 준비해 놓고 영수의 깃털 사이사이에 넣어 뒀다가 터트린 것이다. 응고와 터트리는 것은 유리스가 맡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굳은 사이. 최종적으로 어떤 기사가 마지막으로 크라켄의 미간을 다섯 조각으로 썰어 버렸다.
“하아아아앗-!”
그러나, 그의 활약이 화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다 망가진 섬, 난리 법석이 된 초라한 귀족들 사이.
새 황제가 나타났으니까.
“…….”
“…….”
모두가 할 말을 잊고 침묵했다.
크라켄을 마무리했다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올린 기사조차도 조용히 눈치껏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불쌍해라.
그리고, 이번에는 세이비어 님 차례였다.
갑작스러운 인명 피해와 재해, 그리고 거기에 휘말린 상태에서 정신없는 와중 나타난 새 황제…….
그러나 사람들은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모른다.
‘그때 세이비어 님이 나서는 거지.’
핏줄로는 누구보다 고귀하고, 그 어떤 모욕적인 일을 당해도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며, 서제국에서 가장 높은 여인이.
세이비어 웬덤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세이비어의 무릎이 땅에 닿는 것이 신호였다.
그냥 놀라서 얼떨떨하다가 전설적인 광경을 보게 되어 감동받은 귀족들, 과거 친황제파였다는 이유로 견제당하는 것이 불만인 귀족들, 섭정하는 짓이 꼴 보기 싫었던 귀족들…….
그들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무릎을 땅에 대고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웬만한 인간은 무릎을 안 꿇을 수가 없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꼿꼿하게 버럭 댈 인성 파탄 난 귀족들도 있겠지만.’
하지만 안심하렴!
그분들은 지금 크라켄 촉수에 달라붙어 정신없을 테니까.
밑에서 아련하게 ‘으아아악’ 하는 비명들이 아직도 들리고 있다.
역시 세심한 나의 컨트롤!
아 참!
난 혼테인을 바라봤다. 이놈은 이 역사적인 순간에도 멀뚱멀뚱 서 있다.
“이리 와 봐요.”
“…….”
나는 혼테인까지 덥썩 잡고 눌러서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나도 바로 꿇어 앉았다.
‘혼테인의 다리는 가려져서 안 보일 테니까…….’
그러나 그 순간.
역시 이런 순간 하면 빠질 수 없는 쓰레기가 기어 나왔다. 록사르였다.
“황녀님, 위험하십니다. 검을 내려놓으시지요. 섬이 부서지며 검이 튀어나온 듯한데, 역사적인 보물을 그렇게 함부로 휘두르면 아니 되는 법입니다.”
그 말에, 몇몇 귀족들이 속으로 수긍하는 것이 보였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소리였다. 꽉 박혀 있던 검이 크라켄의 섬 뿌셔뿌셔 공격에 느슨해졌다는 건 말이 되는 이야기니까.
록사르는 한술 더 떴다.
“황제님의 큰 누이 되시는 분이, 황제님께서 어리다는 이유로 정권을 찬탈하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이때다 싶어 록사르 파벌에 가까웠던 놈들이 웅성웅성, 갑자기 의견 있는 척 사방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데…….
저 멀리서, 황제님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은 알로 웨스트의 눈이 이쪽으로 향한 걸 혼테인의 표정을 확인하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애가 보는 건 나였다.
‘……역시, 이번엔 나란 걸 알아봤구나.’
눈치가 빠르고 기민하니, 이번 만남에선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니 알로가 외친 말은…….
‘두고 봐라. 네가 내 앞에서 스스로 본명을 밝히게 만들 테다!’
오기나 분한 마음만 담긴 것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레드’를 추궁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흐뭇한 마음에 속으로 계속 어흠, 어흠, 헛기침했다.
그리고 알로의 시선. 그것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에게 도와달라는 요청.
그렇다. 꼭 애들이 직접 모든 고난을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른한테 도움을 청하면 되지.
난 크게 씨익 웃어 보였다. 저 멀리서도 다 보이게.
내 표정을 본 알로가 바로 록사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검을 들어, 록사르의 얼굴을 겨눴다.
“황제가 되고 나니 다 보이는 군. 네놈 얼굴에 더럽고 역한 것이 가득하다.”
……아차.
이 황제님은, 고된 황녀 시절에 입이 매우 험해지셨지……?
“나는 황제의 검에게 선택받은 몸! 감히 제국과 짐을 기만하고 주인인 척 행세한 죄를 물겠노라!”
알로는 자기가 검을 땅에 넣는 것도 가능하다고 깨달았나 보다.
“하아!”
그 말과 동시에, 땅에 검을 꽂았다.
물론 내가 허겁지겁, 그 땅 부위를 무르게 만들어서 푹 들어가게 했지만.
그리고 그것이 신호인 듯, 또다시 섬이 요동쳤다.
크라켄의 공격으로 산산이 부서지며 아래로 떨어졌던 섬의 잔해들.
바다에 떨어졌던 흙들이 저 밑에서 서서히 올라오며, 빈 구멍들을 메우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
모두가 경이로운 것을 목격하고 소리를 죽였다.
물론 그것들을 움직이는 나는 속으로 헥헥거렸지만…….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난 상공 저 높은 곳에 정차되어있는 크루즈 열차의 문을 열었다.
작은 흙사람들로 낑낑거리며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해서…… 아니, 이건 생략하고.
어쨌든 문이 열렸다.
-기이익.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처박혀도 다치지도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흙에 감쪽같이 흡수된다.
사람들은 기괴한 모습에 입을 벌렸다.
그들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오래전에 행방불명되었거나 죽어 버린.
그들은 그 시체들의 공통점을 알기 시작한 이부터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모두가 록사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 황제의 첫 공식 황명은 이랬다.
“혼테인 공의 혼인은 무효다!”
역사에 기록될 첫 명령이었다.
***
섬에서 일어난 정권 교체 사건은 의외로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하늘에서 시신들이 떨어지자, 누구도 록사르를 비호하지 못했다. 제일가는 권력자였던 그는 바로 체포당했다.
아무리 야욕 없고 정쟁에 관심 없는 귀족들이라 해도, 정말로 백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선한 이미지의 섭정, 그 세력이 너무 컸기에 미심쩍은 일에도 눈을 감은 것일 뿐.
“그 친구가 사라진 것도 그놈과 연관이 있을 줄이야…….”
“우리 모두가 외면한 탓 아니겠어요.”
섬 전역에 뿌려진 흙사람들은 밤새 귀족들의 한탄과, 과거에 대한 자책을 내게 전해다 주었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웬덤 쪽 세력까지 입 다물게 만든 그 정체불명의 시신들.
열차에서 떨어졌던 그것들은 그동안 섭정에게 제거되었던 인물들이었다.
몇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천히 제거되었던 정적들 말이다.
‘외관만 본떠서 만들어 낸 흙인형이긴 했지만.’
그리고 거기엔 귀족뿐만 아니라 이름 날리던 기사나 언론인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그들이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며, 오랜 옛날에 죽어 버린 그들의 공통점을 바로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모두가 한순간에 록사르에게 등을 돌린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 뒤에 평소처럼 태평하게 잠드는 이는 없었다.
‘혼테인 빼고.’
달이 지고 해가 동터 오를 때까지, 섬의 모든 곳에서 미래에 대한 수많은 근심 어린 걱정들이 오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두가 기대하는 황제의 첫 명령이, 고작 혼테인 공의 혼인을 무효화하라는 것에 사람들이 잠시 술렁이는 사건이 생기고…….
‘황제님…….’
당장 영지의 일이 급한 이들은 출발해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졌지만, 그러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으니까.
원래는 결혼식을 위해 급히 건축되었던 화려한 건물이 약식 재판소가 되었다.
요 근래 이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끈 재판이 없을 거다!
그러나, 재판은 아주 싱겁게 끝났다.
“모든 죄를 인정합니다.”
재판이라기보단 고해성사에 가까운 과정이었다.
록사르는 혼테인에게 조금의 누도 끼치지 않기 위해 작정한 듯 모든 죄를 자신의 몫으로 돌렸는데, 그것에 트집 잡을 수도 없었다.
왜냐면 그게 다 진실이었으니까.
록사르는 오로지 혼테인을 위해 모든 더러운 일을 처음부터 본인이 다 맡은 것이다.
선량하게 생긴 전 섭정은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저의 부도덕함이 혼테인 공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모두 불민한 저의 탓입니다.”
그리고 록사르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군에게 한 번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달라 청했다.
그리고 요청이 수락되자, 그는 혼테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저는 혼테인 님을 섬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공작님은 부디 영광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누리시기를.”
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혼테인의 구둣발에 입을 맞추었다.
‘아우, 징그러워.’
세상을 가지고 놀았던 섭정의 마지막은 초라했다.
그는 그렇게 감옥으로 이송됐다.
***
특수한 감옥에 갇힌 록사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의 끝은 이렇게 마무리되어도, 우리의 이념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군께선 모두의 꿈을 완성시켜 주실 테니.
방금의 입맞춤은 그의 인생 최대 업적이 서려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전송했으니, 이제 그분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그렇게 록사르가 혼자 만족감에 빠져 있는 와중이었다.
그가 기대어 있는 벽에서 웬 손이 튀어나와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그리고 그의 목뒤를 잡아끌어 그대로 벽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잠시 후, 록사르가 있던 자리엔 그의 모습과 똑 닮은 무언가가 생겨 있었다.
***
나는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그리고 완전한 마무리를 위해 크루즈 열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혼테인과 지냈던 방.
문을 여니, 놈이 편안하게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록사르가 죄를 다 뒤집어썼다 해도 본인도 타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
혼테인은 그저 평소와 똑같은 멀쑥한 낯이었다.
난 일부러 놀리듯 불렀다.
“여보?”
그리고 혼테인이 날 쳐다보자마자 정정했다.
“아, 맞다. 이제 남이지?”
나 혼자 그렇게 시시덕거리는데 혼테인은 무표정이다.
더 시비 걸어야겠군.
나는 게슴츠레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소감이 어때요?”
“그저.”
“그저가 뭡니까? 그저가. 세력이 반토막이 나셨으면서.”
“너도 알잖니. 내겐 록사르나 너나 다를 바 없어. 네가 이겨도 딱히 감흥 없단다.”
계속 고고한 척하는 모습이 재수 없다! 난 말꼬리를 늘이면서 비웃어 줬다.
“아니면서. 내가 좋으면서.”
이쯤 되니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 우쭐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어쩌면 내 앞에선 불량품이 된다는 사실에 열등감이라도 있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