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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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레리온은 육아 방에 들어갔다.
어두운 밤이었다.
육아 슬라임은 레리온을 보자마자 멈췄다. 엑저의 혈통임을 바로 알아차리고서.
그리고 처음으로 페리안 공녀를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생이란 인식조차 없었다.
‘생긴 건 귀엽긴 하네.’
찹쌀 반죽을 뭉쳐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아마 현재의 지능도 찹쌀 반죽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말랑한 것은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아기들 특유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다.
“…….”
레리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잘 자고 있는 애를 들어 올렸다.
흐물흐물하게 축 처진 아기가 정신 못 차리고 눈을 뜨다 또 감는다.
그때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
마치 자신보다 잠이 더 중요한 것 같은 아기를 괴롭히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그냥 껴안아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레리온은 애를 제 몸 위에 올려놓고 누웠다. 아기의 얼굴은 오빠의 명치에 폭 묻혔다.
몸과 몸이 닿으니, 마냥 반죽 덩어리 같은 이것도 살아 있단 게 느껴졌다.
작은 강아지 정도의 무게감과, 따끈따끈한 체온.
말랑한 몸은 색색거리며 숨을 내쉴 때마다 등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성인과 비교하면 확실히 빠른 심장 박동이 작지만 분주히 뛰고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이란 것이 피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애는 그제야 잠이 조금 깼는지, 조금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참 미약하고 하찮기 짝이 없는 몸짓이었다.
레리온이 그저 몸 위에 올려놨을 뿐인데, 이 반죽 같은 것은 싫다고 버둥거리지도 못했다.
딱히 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고작 오빠의 몸 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한다.
그냥 올려놓으면 올려놓는 대로.
내려놓으면 내려놓는 대로.
페리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
레리온이 그 무력한 생명체를 보며 회의감에 젖어 들던 참이었다.
아기 특유의 애앵, 하는 기합과 함께 페리안이 몸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말랑이 주제에, 벗어나려고 하는 건가?
레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동생의 저항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목격한 것은…….
“애앵…….”
터미타임이었다.
고작, 엎어진 자세로 목을 가누는 운동.
애는 오빠 품에서 벗어날 저항 같은 걸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목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쪼끄만 것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봤다고 활짝, 보들보들한 것이 방긋 웃는다. 이빨 하나 안 난 잇몸 웃음이었다.
아기는 낑낑거리다가 결국 힘에 부쳐 고개를 오빠에게 기댔고, 레리온은 동생과 사랑에 빠졌다.
***
막내가 정말로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페리안은 정해진 시간마다 제 방으로 쫓겨났다.
“이잉!”
“화 내지 마. 오빠가 놀아 줄게.”
“이이잉!”
어머니는 계속해서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계시고, 아버지가 공작으로 있는 한 현실적으로 완전히 육아 공백을 메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다른 보모들을 들이면 될 일이었으나, 레리온은 두 부모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빠 둘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페녹스도 레리온도 할 일이 웬만한 성인보다 많다.
그러니 페리안이 슬라임에게만 맡겨지는 공백의 시간이 생기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레리온은 정말 열심히 돌봤다. 없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 가면서도 계속.
***
레리온이 이유식 수저를 아기 얼굴에 들이밀었다.
페리안은 온 얼굴을 귀엽게 찌푸리며 입을 꾹 다물고 거부했다.
“안 먹을 거야?”
이유식 수저가 앙다문 조그만 입술을 콕콕 찔렀다. 어린 동생은 코를 찡긋거리며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레리온은 페리안의 것과 똑같은 이유식을, 본인 식사량만큼 더 준비해 왔다.
그리고 냠냠, 일부러 소리 내서 먹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오빠가 하는 건 다 따라해 보고 싶은 페리안이 보행기를 죽죽 밀고 와서 기웃거리다 입을 벌렸다.
“잘 먹으니까 아이 예뻐라.”
“아.”
조그만 입 주변에 묻은 이유식을 익숙하게 수저로 긁어 모아 다시 입에 쏙 넣어주던 레리온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마어마한 발견이었다.
“페리안!”
“?”
“아랫니 났잖아?!”
레리온이 페리를 들어 올려 껴안고, 기특하다고 계속해서 칭찬해 줬다.
“기특해, 예뻐! 우리 아기!”
본인이 이쁨받는다는 건 아는 아기가 기분 좋아서 베실베실 웃었다.
***
또 어느 날.
페녹스가 진지하게 형을 데려와 속삭였다.
“이거를 주먹고기 먹는다고 한 대.”
아기들은 비율상 몸에 비해 주먹이 매우 작다.
덕분에 아기들이 주먹 어딘가를 빨고 있으면, 마치 동글동글한 주먹을 고기 먹듯 입에 넣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페리안은 자기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주먹을 먹으며 오빠들을 쳐다봤다.
“계속 빨면 치아에도 나쁘댔어. 우리가 어떻게든 해야 해!”
‘정말 기특한 동생이야…….’
페녹스는 온갖 육아서적을 찾아 살펴보더니, 인체엔 무해하지만 쓴맛이 나는 약재를 만들기 위한 약초들을 정리해서 자료화했다.
그리고 그걸 모으는 것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보다 빨랐다.
“다 만들었다!”
페녹스는 뿌듯한 얼굴로 페리가 유난히 깨물거리는 부분에 약재를 발라 주고, 검술 훈련 시간이 되어 형에게 동생을 맡기고 나갔다.
그리고…….
레리온은 페리안의 손에 묻은 약재를 씻겨 주었다.
그사이 이미 한 번 손을 핥아 본 페리안은 놀라서 더 이상 손을 입에 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레리온은 또 고민하다, 단내가 나는 과일즙을 주먹에 발라 주었다.
아기 공녀님은 다시 신나게 주먹고기를 잡수시기 시작했다. 냠냠.
‘구강기 아이들은 손을 빠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낀다고 하지.’
이 별거 아닌 행위가, 페리안에게는 최고로 재미있는 놀이인 것이다.
레리온은 페리안이 한 번의 좌절감도 느끼지 않고 자라길 바랬다.
어리광도 뭐든지 받아 주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애는 자라면 자랄수록, 세간의 시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크면 클수록 점점 더 불행해질 아이였다.
그러니, 지금만이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만이라도 단 한 번의 실망감도 느끼지 말고 만족만 했으면 좋겠다.
“……그게 오빠의 바람이야. 알아?”
왕냠냠냠, 주먹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던 페리안이 활짝 웃었다.
***
무릎 위에 동생을 올려놓은 레리온이 조곤조곤 속삭였다.
“아기는 한 단어를 만 번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 단어를 말하는 법을 배운대.”
사랑이 담뿍 담긴 애정 어린 목소리.
“기존에 그 사람에게 없었던 새로운 개념에 대해 가르친다는 건 그런 거야. 그만큼 어려운 거야.”
오빠의 옷자락을 쭙쭙 입으로 물고 잡아당기던 공녀님은, 오빠가 자길 보고 웃어 주자 꺄앙 하고 웃었다.
레리온은 사랑한다고 속삭여 준 후,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 너에게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보송보송한 두 뺨에 키스하고 또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때, 페리안의 시선은 오빠의 입 모양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한 레리온이 또 ‘사랑해’ 라며 뽀뽀해 주고.
그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목소리가 옹알거렸다.
“쨔앙애?”
레리온은 살면서 그만큼 놀란 적이 없었다. 허억,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쉴 정도였다.
“페리안? 방금…… 방금…….”
레리온이 놀람과 경악, 그리고 그 모든 걸 뛰어넘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간절히 부탁했다. 말도 안 통하는 어린 것에게.
“사랑해! 해 봐. 다시. 사랑해!”
뭔지 몰라도 제 행동이 오빠를 기쁘게 했단 걸 안 페리안은, 이번엔 좀 더 당당하게 말했다.
“쨔앙해!”
레리온은 페리안을 그대로 꽈악 껴안았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다정한 말들을 퍼부어 주었다.
신난 페리안이 계속 쫑알거렸다.
“쨩해!”
“맞아, 사랑해.”
“쨩해!”
레리온은 이걸 당장 누구에게 보여 주고 자랑할 생각에 동생을 안아 들고 출발했다.
그러나 아빠의 집무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발음하기 편한 대로 바뀐 지 오래였다.
“썅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