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88)
멜로는 삽 등으로 흙을 팡팡 다져 대면서 나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못 나오게 꽉꽉 다져 버릴 거야.’
‘흙 세게 때리지 마!’
그리고 또 투닥투닥 다투는 우리를, 모망 폐하께서 떼어 놓으셨고…….
그리고 그 추억 속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내 사무실은 얼핏 보면 그냥 모래사장 놀이터처럼 생긴 곳.
그러나 모래와 흙을 다 걷어 내고 나면, 아주 작은 규모의 싱크홀처럼 생긴 점판암 구멍이 나타난다.
그 구멍을 여기저기서 가져온 흙으로 메워 지금의 놀이터 같은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 있는 흙들은 내가 어릴 때 연극을 보고 난 뒤 그 근처에서 주섬주섬 한 웅큼씩 가져온 것이기도 했고, 혹은 내가 작전을 수행하고 올 때마다 가져온 것이기도 했다.
모래가 구덩이에 쌓일 때마다, 내 자존감도 그만큼 높아졌다.
그리고 이 방의 존재 자체가 극비이지만, 사실 또 더 중요한 비밀이 있었다.
흙으로 꽁꽁 메워진 점판암 동굴 가장 깊은 곳.
멜로가 다졌던 그 밑.
내 본체는 거기에 있다.
다른 가체들은 여러 번 죽어 봤지만, 이 본체만큼은 달랐다.
이 신체는 굳이 신경 써 주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혹사당하는 가체들과 달리 단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다.
난, 당연히…….
당연히 본체라고 생각했지. 탑에서 나올 때의 몸이었으니까.
그래서 본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겁을 먹었었다.
내 몸은 가체에서도 가체를 빚어낼 수 있고, 어디든 옮겨 갈 수 있지만…….
어쨌든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인 이상, 근본이 되는 시작점이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이 본체고, 이 본체가 있어서 가능한 걸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걸 멜로와 폐하와 함께 소중하게 묻어 놨었다.
나는 몸에 힘을 풀고, 점판암 동굴 저 아래 깊은 곳으로 녹아들 듯이 내려갔다.
잠들어 있는 본체가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건 내 본체가…….
“…….”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드득.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안았다.
저쪽 육체에서 아픔이 전해져 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다 착각일까? 그냥 신경 과민이었나?
이게 본체가 맞는 걸까.
그러나 내 기대가 무색하게, 내가 본체라고 생각했던 그 몸뚱아리는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것이 흙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나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도 본체가 아니었구나.
내 몸은 어디 다른 곳에 있구나.
‘…….’
어…….
음…….
이게 본체가 아니면…….
내가 인간이긴 한가?
다른 곳에라도 있긴 한 거야?
아니, 내 몸 그럼 어디 갔어?
그렇게 스스로 반문하자마자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탑?’
내가 팔 년 동안 갇혔던 그곳.
그곳에 나의 진짜 본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증거 하나 없음에도 마치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생각해 보면…….’
논리적으로 추측해 봐도 그렇다. 가장 먼저 살펴볼 곳은 거기뿐이다.
예컨대, 우산이 사라졌으면 그날 외출 동선을 되짚어 보며 ‘언제부터 내 손이 텅 비어 있었더라?’ 하고 추리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진짜 육신의 행방을 찾으려면 탑에서 나오기 전으로 수색망이 좁혀지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탑에 가서 찾아봐도 몸이 없다면?
내 자아를 유지시켜 주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위쪽으로 내질렀다. 얍.
사실 탑에서 나온 뒤로 그곳에 다시 찾아가 본 적은 없다.
과거의 참담한 기억이 되살아날까 봐 겁먹었던 것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출소한 전과자들이 수감됐던 교도소에 가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거다.
‘그래. 이 김에 한번 그동안 미뤄 뒀던 일을 직시하는 것도 좋겠지.’
물론 아무리 떨쳐 보려 해도 억울한 점이 하나 있긴 했다.
‘네 몸…… 욕창에는 안 걸릴까?’
‘욕창……?’
욕창 걱정에 혹시나 싶어 정기적으로 돌돌 굴려 가며 본체의 자세를 바꿔 줬던 그동안의 정성들.
타지로 장기 임무를 갈 때면 일부러 좀 얕은 곳에 올려놓기까지 했었다.
멜로한테 가끔 꺼내서 꼬박꼬박 굴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억울해!’
난 분한 마음을 열심히 억누르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성국에도 그런 동화가 있지 않던가.
돌멩이를 보물인 줄 알고 애지중지 아끼던 아가씨가 망신당하는 이야기.
동화의 내용 자체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관점을 다르게 보면…….
그 아가씨, 그냥 행복 가성비가 좋은 거 아닌가?
돌멩이 하나를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간직하던 순간만큼은 행복한 여자였던 거 아닌가. 동화에선 남들이 망신을 주고 끝나서 그렇지.
나도 그렇다.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체 하나를 애지중지한 셈이지만, 다르게 보면 그동안 없던 기쁨을 만들어 누릴 수 있었던 거다
우리만 아는 비밀스러운 보물을 관리하는 재미까지!
그 순간 지금까진 나의 근원이자 본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흙으로 부스러져 버린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난 조금 슬퍼질 뻔했다.
하지만 예전에 폐하께서 해 주신 말이 있다.
내 삶은 남들보다 무겁고 진지하니까, 그 생을 임하는 내 태도만큼은 그 이상으로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올 거라고.
그 말은 내 심장 깊숙한 곳을 영원히 건드렸고, 내 모든 태도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 나는 성국 본성에서도 지하, 점판암 동굴의 깊고 어두운 땅 속에 묻혀 있다.
그것도 내가 내 진짜 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허망하게 부스러진 그 앞에서.
그러나 내 몸뚱아리가 땅 밑 깊은 곳에 묻혀 있어도, 내 마음도 같이 아래에 처박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엉금엉금 지상으로 기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멜로가 소리 지르며 들어왔다.
흡사 깡패가 돈 회수하러 쳐들어온 것 같은 느낌으로.
-쾅
“오빠 왔다!”
“미쳤어?”
“어?”
어는 무슨 어냐. 근데 놈은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라며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일단 등 뒤에 메고 있는 삽.
그리고 삽질할 때 눈에 모래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한 고글.
진흙이 튀는 걸 막아 주는 전신 방호복 같은 비닐 옷까지.
“……또 두더지처럼 밑에서 잉잉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 말에 멜로의 머리를 또 한 번 쥐어뜯고, 황제의 검을 만지고 난 뒤부터의 일과 내가 세운 가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
간단히 요약해서…….
‘삼신기의 신상과 내 본체가 관련있는 것 같아. 근데 이유는 없고! 그리고 탑에 내 본체가 있는 것 같아! 증거는 없지만 내 심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라는 억지 궤변이 끝난 후.
멜로의 첫마디는
“삼신기 얘기는 집어치우자.”
였다.
일단 성국 말고 다른 나라의 전설에 나오는 삼신기에서도 검과 방패는 흔하게 등장하는 요소이며, 그 두 개가 무언가의 상징이자 개념으로 취급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내 본체와 신상의 관련성은 끼워 맞추기에 가깝지 않냐는 지적까지.
물론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혼자 씩씩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멜로는 다른 하나의 주제만큼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중요한 건 네 본체의 실존 유무야. 어쨌든 네가 직접 탑에 가 봐야겠어.”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멜로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충고했다.
“탑에 본체가 없을 수도 있어. ……너 그냥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니까 크게 기대는 하지 말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생각난 걸 말했다.
“혹시 나 마물 같은 거 아닐까?”
본인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망상하는 것은 사춘기 시절에 졸업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라지만…….
이번엔 진지했다.
마물들이란 게 다 그렇지 않던가.
세상의 기본적인 법칙과 상식을 거스르는 이질적인 존재.
내가 아는 나처럼 이상한 것은 마물 따위밖에 없긴 했다.
게다가…….
“어쩌면, 마물의 탑에서 사고로 마물과 내가 섞인 걸지도 몰라.”
애초에 그 탑이 마물 연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니까.
내 추측은 제법 말이 되는 소리였는데, 놈이 듣기엔 아니었나 보다. 멜로는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답이 마물이라고 나오면 조금 곤란하기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