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94)
“형님이 그냥 페리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은닉하기만 한 게 아닐 거라고.”
무슨 소리냐 그게.
페녹스는 지금 형이 숨기기만 한 게 아니고, 제 형이 동생을 죽이기까지 했다고 믿는 듯했다.
그리고 내 가설을 증명하듯, 페녹스가 쐐기를 박듯 중얼거렸다.
“형님이 죽인 거 아냐?”
그제야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멜로가 ‘네 오빠들 다 미쳤다’라고 날 탓하던 것이 떠올랐다.
시녀였던 페리가 죽은 뒤로 다 눈에 띄게 이상해졌다고.
정말…… 정말로 내 죽음이 페녹스를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을 만한 대사건이었나?
페녹스 너 임마. 너랑 나랑은 까짓거 그냥 친한 친구 관계 수준 아니었어?
‘그리고…….’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일단 다른 누구도 아닌 어린 시절의 내게 정말 다행인 일이지만, 난 친오빠에게 죽은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페녹스가 레리온이 ‘페리’를 죽이고 숨긴 것이라고까지 의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극비로 숨길 일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페리안이 죽었다는 사실은 레서 공작가 빼고 다 인정하는 사실인데.’
레리온은 그냥, 말만 하면 되는 거였다.
탑 안에서 막내를 봤다고.
막내가 죽어 있었다고.
근데 그걸 왜 기어코 숨겨서 일을 이렇게까지 만드냐.
근데, 여기 있는 게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진짜 내가 아니고 평범한 철거업자 용역 아저씨였으면, 이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황당하면서 동시에 민망할까…….
이 형제 싸움에서 빠지고 싶다.
-퍽.
“아이코!”
그때 내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페녹스가 날 강하게 밀쳤다.
-우당탕.
난 정말 십 미터는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척추가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강한 충격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아마 싸우는 데에 방해되지 않게 치운 듯한데.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세상아.
사람을 지금 마차로 치는 수준으로 날려 보낸 기사가 제 형에게 따졌다.
“형님이 뭘 잘했다고 울어? 막내를 죽인 게 이제 와서 후회돼?”
너도 뭘 잘했다고!
그때 세상이 핑 돌았다.
이상하게 땅 위에서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순간 머리에 피가 잘 돌지 않았는데, 난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게 레리온의 능력과 관련 있단 것을 깨달았다.
아마 산소 농도를 희박하게 만든 것일 테다. 순간적으로 뇌에까지 영향이 끼칠 정도로.
어쩐지 아무리 페녹스가 개 같은 놈 모드로 변했다 하더라도 날 강하게 밀쳐 떨어뜨려 놓은 이유가 있었다.
평소대로의 내 몸 상태였다면 이렇게 일반인처럼 영향받진 않았을 텐데, 독가스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쉬익!
그리고 눈을 깜빡이자, 페녹스가 레리온을 죽이려고 달려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벌어진 전투를 관람할 시간도 없었다.
잠깐 콜록콜록한 사이에 서로의 검이 상대 목을 베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다시 보면 둘 다 멀쩡히 살아서 머리를 반으로 갈라 버릴 작정으로 검을 내리긋고 있질 않나.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둘 중 아무도 이 불쌍한 아저씨의 안위엔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 인심 야박하네.
아저씨한테 공기 하나 안 주고.
“콜록!”
‘잠깐만.’
시체는 진공이면 안 썩지 않던가?
불현듯 그것이 떠올랐다. 내 몸이 진공 포장된 듯한 상태가 되니 바로 나온 답변이었다.
아이고, 페녹스야. 네 동생 몸, 일단 멀쩡히 있는 것 같다…….
이걸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
나는 몸을 늘어뜨렸다.
***
휘말린 민간인은 불쌍할 정도로 크게 추욱 늘어졌다.
그의 등 뒤를 바라본 레리온의 눈은 마치 죽은 사람의 눈처럼 생기를 잃은 상태였다.
이 상황에 끼어든 민간인도 정신을 잃었으니, 레리온은 체념하고 질문했다.
“내가 죽였을까?”
그 말에 페녹스가 이를 갈았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레리온의 그 목소리엔 울고 난 뒤의 사람들 특유의 먹먹함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페녹스는 생각했다. 제 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라고.
마지막 자비가 바로 자신이 베어 주는 것이라고.
동생의 검이 형의 목을 향해 쇄도하고, 레리온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비 없는 검날이 형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
죽이고 자수할 생각이었다.
세상엔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 있다.
처음부터 아이가 죽었단 걸 밝혀야 했을까.
그러나 이제 와선 다 부질없는 후회일 뿐.
어떤 더러운 거짓을 숨기기 위해선 그 크기에 상응하는 거짓이 필요하다.
처음엔 어쩔 수 없었다. 페리안의 진짜 결말을 숨기기 위해서는.
분명히 수습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남은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방향에까지 몰리고 말았다.
탑을 모조리 부수면 아이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가족들이 몰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여기서 죄가 있다면 처음 진실을 마주하고도 대면할 용기가 나지 않아 사실 자체를 덮어 버린 그 자신에게 있지 않던가.
한 번 가족을 잃은 그에게 나머지 가족들은 그에게 남은 전부였고, 자신은 이 탑에서 그 아이를 발견한 몇 년 전부터 이미 버린 몸이 아니었던가.
페리안을 찾을 수도 있었던 단서를 죽이고, 뭔지 모를 더러운 꿍꿍이를 보이다 남은 가족들의 원망을 받아 내며 살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페리안이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믿는 가족들의 원망을 평생 받아 가면서.
그러나,
“…….”
이젠 다 틀렸다.
이젠 오빠가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페리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던 건지.
할 수 있는 거라곤 네가 죽은 곳에서 눈을 감는 것 외엔 없어.
그리고 그때, 반쯤 베인 목에서의 출혈로 서서히 정신을 잃어 가는 레리온의 시야 한구석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웬 아저씨가 그의 목을 누르며 지혈해 주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은 줄 알았던 낯선 아저씨가.
몇 년 전.
레리온이 탑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의 일이다.
으리으리하게 꾸며 놓은 방 안에 선 두 형제가 얼굴에 서린 웃음기와 기대를 감추지도 않고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막내가 오면 내어줄 이 방이 오빠들 극성에 몇 번의 대개조를 거쳤는지, 얼마나 구석구석 뜯어고쳤는지는 페리안에게 비밀로 하기로 협정이 내려진 지 오래였다.
다 큰 오빠들이 할 일 없는 것처럼 매번 와서 감시하고 변경을 요청한 덕분에, 방 안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두 형제의 눈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걸 알면 페리가 기겁하기라도 할까봐 내려진 평화 조약이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부족해 보인다.
페녹스가 옷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몸에…… 몸에 딱 붙는 드레스는 없나?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노출 많고 추워 보이는 그런 디자인 말이야. 왜 그런 게 유행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동생인데 입고 안 입고를 차치하더라도 웬만한 건 다 구비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자상한 첫째 형은 놀림을 반 섞은 웃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핀잔을 줬다.
“이럴 땐 바보 같기는. 붙는 옷은 미리 준비해 둘 필요 없어.”
“왜? 치수 때문에? 사이즈별로 사 두면 되잖아.”
물론 페녹스는 숙녀의 옷 사이즈가 얼마나 다양하게 나오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키 같은 체형에서도 손목 사이즈 하나로 달라지는 게 귀족 의상실의 법칙 아니던가.
다만 그는 한 디자인당 백 벌이라도 사 줄 수 있었을 뿐이다. 남으면 버리면 된다.
“형이 페리 입을 옷 아낄 줄은 몰랐군. 못된 오빠 대신 이 착한 오빠가 돈을 다 써서라도…….”
페녹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틈을 타 자기가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강조하며 견제하자, 레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놀렸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같이 외출하지. 치수 재러 간다는 핑계로.”
“……음흉하기는.”
동생이 본인을 아주 파렴치하고 후안무치한 변태 보듯 쳐다봄에도 불구하고, 레리온은 곧 올 막내와의 데이트를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결국 페녹스도 킬킬 웃고 말았다.
페리안이 오면, 못 해 준 만큼 오빠 노릇을 해 주자.
***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경우도 수없이 많지 않던가.
‘아빠와 오빠들의 그릇이 좀 더 커질 때까지.’
레리온은 페리를 유학을 보낸 셈 치기로 했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었다.
유학생이 본국을 떠나 가족과 오래 헤어져 있다 해서 그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떨어져 있기에 절절한 그들의 경우를 보면서 그렇게 자기 위안을 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망가진 관계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약 이십 년 헤어져 있었다 해도 남은 팔십 년을 함께 보내면 되니까.
어린 것 혼자 보내 놓은 것에 마음이 아려 올 때면, 혼자 끊임없이 변명을 하곤 했다.
세상에 정상적인 가족이 어딨고 비정상적인 가족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유년기에 분리된 경우일 뿐이다. 수습은 충분히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노력해야 할 것들이 많기도 하다.
아빠와 오빠들이 좀 더 그릇이 커지는 날이 올 때면 그제야 비로소 막내를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니까 기다려 주기를.
그리고 측근들도 그런 그들의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페리의 친부에 대한 수상한 점이 발견된 상황에서도 막상 공작가 요인들은 크게 분노한 기색이 아니었다.
‘남매분이 오래간만에 해후하는 것인데, 저희는 늦게 뒤이어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경도 참.’
측근들은 레리온에게 그렇게 장난을 던질 정도였다.
그들은 알고 있던 것이다.
두 형제와 공작이, 입양한 후계자인 판데르니안에게 미안한 마음에서 페리안을 제대로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있었단 걸.
그런데 이렇게 사건이 터져 주니 더 이상 덮어 두고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건 오히려 묵은 상처가 덮어질 기회가 아니던가.
-탕.
‘아이고, 얼마나 급하셨으면!’
‘하하하…….’
그렇기에 그들은 레리온이 문을 닫고 걸어 잠그고도 한참, 들뜬 분위기에 취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서로 그리워하던 가족들이 재결합하는 흐뭇한 광경을 상상하며 얼굴에 웃음기가 만연했다.
안에선 레리온이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고서.
***
아무리 긴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레리온에겐 동생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만남이 그러한 것이었다.
‘화내지 마…… 내가 미안해.’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은 그 어린 것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난장판인 사람들 속에서, 혼자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아기. 왜 사람들이 다 화난 분위기였는지도 모르던.
아기 페리가 흙덩어리를 데리고 오고, 다른 한편에선 본인이 친부라고 자처하는 남자가 나타난 날.
사람들이 배신감과 혼란스러움에 다들 어찌 행동해야 할지 몰랐던 소동 중 일어난 작은 사건이 있었다.
흙인형을 데리고 오던 페리안은 가짜 친부와 살짝 부딪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었다.
‘아야!’
그때 마침 아기 공녀가 넘어진 곳에 돌부리가 있던 것은 대단할 것도 없는 사소한 우연이었다.
여린 살이 바로 찢기고, 돌부리는 아기 공녀의 이마에 흔적을 남겼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아마 그 자리에서 넘어진 것이 어른이었다면 긁힌 자국만 남고 말았을 것이고, 반대로 아기이기 때문에 금방 나을 상처였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와중이라 당시에는 그 누구도 깊게 신경 써 주지 못하고 대충 붕대를 감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던 동생의 이마에 상처가 났는데도 깊게 신경 써 주지 못한 것은 레리온도 마찬가지였다.
열감과 비몽사몽한 정신에 화내지 말라고 투정 부리고 잠든 동생을 바라보며, 레리온은 막내를 껴안았다.
‘어머니만 죽이지 않았다면 너를 평생 귀여워했을 거야.’
그리고 그 아기를 그렇게 보냈다. 마지막 순간이 고작 그런 것이었다.
***
시체의 산을 헤집고, 또 헤집고.
레리온은 이미 자신을 흉내 낸 것 같은 인형들을 열댓 개도 넘게 본 와중이었다. 바보같이 동생을 보낸 미련한 그때 순간의 자신들이 수없이 많았다.
수많은 시체 산 속엔 한창 젊은 아버지들이 있었고, 눈 감기 전의 어머니들도 있었고, 한참 어렸던 페녹스들이 있었다.
아기가 기억했을 옛 가족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보고 싶어 했을까?
대체 얼마나 그리워했던 걸까?
보이는 시신들마다 헤집는 오빠의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이 수색이 어떻게 끝이 날지 머릿속에서 그 파국이 그려지고 있었기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빠니까 더더욱 놓지 말았어야 하는 끈이었는데. 계속 그렇게 후회만 반복하면서.
이렇게 극적으로 끝날 비극이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체 산 사이에서 반쯤 나간 정신으로 헤매던 그는 한 가족 덩어리를 발견했다.
지금껏 발견한 인형들보다 더 선명하고 실제 같은 질감이었다.
그림 같은 가족들의 모습. 손을 감싸고 안의 누군가를 껴안고 있는 형상.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울면서 ‘가족’을 쥐어 부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작은 시신을 발견했다.
아기는 차가웠다. 항상 따뜻하고 말랑하던 것이.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웃을 것같이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아기의 이마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마지막으로 본 상처가 그대로 남 아 있었다. 마치 어제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아기는 보내자마자 죽었던 것이다.
그 모든 기다림이 다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충격으로 눈이 일순간 멀어 버렸다는 건 한참 그 작은 몸에 고개를 파묻고 몇 시간이고 울고 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너무 작았다.
기억 속에서도 작은 동생이었는데, 다 큰 성인의 몸으로 안아 보는 세 살짜리 동생은 너무 작고 연약했다.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작은 몸을 껴안고. 그는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왔다는 사실을.
페리안이 기다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크나큰 오만이었다. 동생은 가족들의 성장을 기다리긴커녕, 저 혼자 자라지도 못하고 가장 외로운 곳에서 죽었으니까.
앞을 헤아릴 수 없는 까마득한 절망 앞에서 그가 결심했다.
숨겨야 한다고.
그는 가슴에 묻기로 한 것이다. 작은 시신과 끔찍한 비극 그 모두를 없는 일로 만드는 것이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서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버린 뒤 바로 죽은 것 같다고. 이미 죽은 아이의 원망인지 모를 것이 가족들을 계속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말을.
세상엔 당시 그 초라한 죽음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이 본인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페리안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아이는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진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