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95)
그러나 새로운 몸으로 다시 소생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자신이 죽었었단 것도 모르는 채, 감금되어 계속해서 흙인형을 만드는 무언가로서 살아갈 뿐.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더 이상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까?
다시 태어난 공녀는 자기 몸을 무의식적으로 감췄다.
그리고 땅 밑에 감춰졌던 작은 주검은 페리가 새로운 어머니에게 안겨 빠져나올 때가 돼서야 지상으로 올라와, 새로 만들어진 가족 인형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마지막으로 남았던 미련을 실체화시키고 버리듯.
그리고 십 년도 더 늦게 찾아온 오빠가 그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너무 작아서, 정말 어디에나 숨길 수 있을 그 작은 시신을.
***
시신은 없애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지금껏 그 누구도 존재조차 몰랐던 주검이고, 아무도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죽은 아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제 태워 없애 편히 보내야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그럴 수 없었다.
동생의 주검과는 이미 아빠와 딸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 차가 있었다.
그만큼이나 오래 내버려 방치해 둔 시신이었다. 그걸 제 손으로 어떻게 태워 없앨 수 있겠는가.
감히 어디 찬 바닥에 묻을 수도 없었다. 아직 너무 생생히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서.
지금까지도 썩지 않은 시신이었지만, 그래도 여태껏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데에나 둘 순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도 다 받칠 수 있는 작은 몸을 품에 안고 탑을 올랐다.
아무도 관심 없을 허름한 곳에 너를 숨겨야 하는 오빠를 용서하지 말거라.
그리고 그렇게 되뇌던 남자의 눈에, 하나의 금속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
그리고 현재.
웬 아저씨가 지혈을 해 주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축 늘어져 있던 아저씨가 스스로 일어나서.
누구라도 황당해서 방심할 순간이었지만, 페녹스는 그 어처구니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아군이 아니라는 것은 적이란 뜻이다. 같이 베어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아주 짧은 찰나에 결정을 내린 페녹스가 아저씨를 덤으로 형의 목을 갈라 버리려 하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 아저씨가 호령하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당당함이었다.
“……어허!”
페녹스가 잠시 멈췄다.
“떽!”
물론 페녹스가 이름 모를 아저씨의 기합에 놀라 멈춘 것은 아니었다.
페리안은 몰랐지만, 어허! 와 떽! 으로 이어지는 2연타는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이 당하던 것이었다.
간식의 초과분을 와구와구 주워 먹을 때마다 아빠에게 들어 올려지며 혼나던 소리.
그리고 당사자는 기억도 못 하는 그 어허떽은 오빠들에겐 그리움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둘에게도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
아빠가 자기를 그리워한 것보다도 수백 배, 수천 배 더 부모를 그리워하던 아기는 커서 하나의 버릇을 가지게 된다.
변신을 할 때마다 보고 싶은 사람을 흉내 내는 버릇.
그것은 페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마치 지금처럼.
페리가 아저씨로 변할 때마다 성대의 구조가 종종 제 아빠와 비슷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한 낯선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목소리와 닮은 상황.
그 꺼림칙한 상황에선 페녹스도 잠깐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르륵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아주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아내린 그의 몸 겉꺼풀이 아래로 흘러내려 가는 것이 아닌가.
고체와 액체 사이의 알 수 없는 것이 레리온의 목을 지혈하는 손을 타고 그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미 마법의 영역에서도 소생할 수 없어 보였던 상처였다.
그러나 그 상처 내부, 뿜어져 나오는 피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던 근육에 점차 살이 돋아나고, 살점이 촘촘하게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
형의 목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아예 검기를 날리려던 페녹스의 말문이 막혔다.
이번엔 순전히 당황해서였다.
녹아내리는 아저씨의 벗겨진 대머리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까맣고 은하수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이.
‘아닌가?’
페녹스가 당황에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 머리카락은 가족들의 것과 똑같아 보이기도 했고, 눈을 깜빡이고 나면 갈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페리안은 그것도 모르고 우쭐해져서 외쳤다.
“아저씨가 멈추랬다!”
“…….”
페녹스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을 무렵. 페리는 생각했다.
‘내가 사람도 치료할 수도 있었어?’
모르겠다! 하지만.
‘나 대단하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페리안은 처음 해 보는 치료방식의 부작용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녹아내리는 감각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안의 뼈나 내장 등이 노출될 줄 알았다.
그래서 착각한 것이다.
자신의 아저씨 중의 아저씨다운 기합과, 무시무시한 몰골이 화난 상태의 세계 최강 기사를 멈추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페리안은 다음 일어날 상황만큼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숨기려야 숨겨질 수 없는 최강 스파이의 기백으로 페녹스도 멈춘 것 같지만, 떽과 어허만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곧바로 정신 차릴 페녹스가 공격하려 들면 자신도 순식간에 두 조각 날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제어할 마법의 소재는 단 하나뿐.
페리안이 기합과 함께 소리 질렀다.
“난 너희들 동생 시체가 어딨는지 안다!”
“뭐?”
다 죽어 가던 레리온까지 피를 토하며 눈을 떴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널 죽여 버릴 테다, 하는 심정으로 눈을 뜬 레리온도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막처럼 벗겨지는 아저씨의 이마 뒤로, 몰라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머리카락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목을 꺾어 죽이려고 했던 아저씨의 눈동자를 멍하니 쳐다보던 레리온의 동공이 쉴 새 없이 떨렸다.
녹아내리는 아저씨의 모습은 의외로 징그러운 형상을 하고 있진 않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조부께서도 돌아가신 지 오래인 데다, 살아 계시다 하더라도 이 낯선 아저씨의 안에서 튀어나오는 장난 따위를 치실 분은 아니시다.
여기서 나올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레서 엑저. 딸을 버린 아버지뿐.
그러나…….
그분도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일 수도 없었다.
마침 아까 사파이어 기사단의 단장인 헬릭 경이 올라갔던 계단을 통해,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소란인가.”
“선공작님, 얼른 들어가 봅시다.”
자칫했다간 둘째가 첫째를 죽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람할 뻔한 아버지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온갖 나라에서 파견된 중요인사들이며 기자들까지.
헬릭 경이 핑계를 대며 지상으로 올라갔던 것은 예상치 못했던 선대 공작과 그들의 깜짝 방문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보다 앞에 서 있던 것은 레서 엑저였다.
어디 가서 당황해 본 적이 없는 그들 모두가 동시에 멈췄다.
물론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또 한 꺼풀 벗겨지는 것은 누구나 다 놀랄 일이긴 했지만, 그 안에서 언뜻 보이는 머리카락 탓이 컸으리라.
페리안이 아주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당신들도 가만있어! 아들 죽이기 싫으면! 어? ……어?”
그리고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보고 있을 때도 더 보고 싶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닌가!
그녀의 영원한 영웅인 모망 폐하가. 그것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제야 페리도 이상한 걸 깨달았다. 아저씨에게서 조금 귀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잉?”
상황을 눈치챈 페리안이 그녀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눈두덩이까지 녹아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줄줄 녹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어쩐지. 레리온의 몸을 치료할 에너지원이 어디서 났을까 싶었는데 내 몸을 기반으로 한 거였냐?’
그리고 또, 안에는 만든 적도 없는 진짜 육신의 모양이 만져지고 있었다.
페리의 머릿속에서, 안에 장난감이 들어 있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이 떠올랐다.
‘이거 뭐야! 끼약.’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페리의 정체는 모망을 제외한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이었다.
녹아내리는 아저씨가 사실 죽은 공녀라는 답보다는, 그냥 이상한 괴물이나 마물이라는 해석이 더 간단하기 때문에.
그때 누군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 사람의 눈만큼은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스무 해를 넘게 후회하며 기다린 아버지였다.
레서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더니, 눈가를 타고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레서가 한 걸음 다가온 순간, 나도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젠 정말로 들켰구나.
인생 최악의 실패를 해 버렸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잡히면? 나머지는?
페녹스가 레리온을 죽이려 할 때도 여유로웠었다. 나도 모르게 지혈하려 들긴 했지만, 그건 그 자리에 있는 게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고.
하지만 정체가 들켰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목구멍에서 허파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역겨웠다.
남들도 내 동요를 다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걱정스러울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고.
살아생전 이만큼 평정을 잃어 본 적이 없었는데. 목이 썰릴 때에도 이만큼 긴장한 적이 없었는데.
한때는 가장 바라 왔던. 그러나 지금은 제일 바라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까불거리듯 잠입했던 일들도 갑자기 한순간에 확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쟤네가 보기엔, 내가 저들한테 미련을 가지고 구질구질하게 계속 왔던 걸로 보일 거 아니야!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예 그런 감정이 없다고도 말 못 하기 때문에 죽을 만큼 부끄럽고…….
그러다 순간적으로, 예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연극 내용이 생각났다.
모종의 이유로 버려졌다가, 오해라는 것이 풀리고 다시 사랑받는 공녀 이야기들.
그걸 맨날맨날 봤었다. 하나도 안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해가 질 때까지 연극을 보다가 초라하게 집에 돌아갔던 날들까지.
내가 그런 것을 지금도 바라고 있었나?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건지.
다시 진공 상태가 된 것도 아닌데 숨이 확 막혀 왔다.
그때 사람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는지. 연출을 하라 해도 난 그렇겐 못 하겠다!
폐하는 딱 그때 같은 옷차림이셨다.
색 없는 챙 넓은 모자에, 바람도 안 부는데 주름 한 점 없이 펼쳐져 있는 흰색 망토. 그리고 성국의 예복 정장 차림까지.
폐하께서 우뚝, 내 시야 중심에 서 계셨다.
……사실은 폐하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고, 내 눈이 그분을 쫓다가 가운데 두고 멈췄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지만.
하지만 기적같이, 그분의 시선을 마주하자 모든 동요가 깔끔하게 사라졌다.
난 지금 혼자가 아니야. 폐하가 내 옆에 계시다! 우리 엄마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지금 해야 할 것은 눈물의 가족 상봉이 아니야.
폐하께선 항상 말씀하셨다.
인생이 힘들수록 유쾌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마침 레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의 목표는…… 맞아. 그거다.
난 크게 외쳤다. 일부러 크하하하 웃으면서.
그리고 악당처럼 소리쳤다.
“맞아! 보이냐! 이건 네 놈의 딸 머리카락이다!”
오던 레서가 그 자세 그대로 멈췄다. 충격받은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다. 누가 뒤통수를 망치로 내려쳐도 그것보다 당황하진 못하리라.
그 뒤에 자리 잡고 계시던 모망 폐하의 눈빛은 어쩐지…….
‘페리야. 그러지 좀 말랬잖니.’
……라며 착잡한 목소리로 훈계하시는 것 같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내 목적은 내 몸을 탈환하는 것.
그러나 여기서 싸우면 바로 지고, 동시에 출발해도 바로 잡힐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 예. 사실 제가 딸인데요. 몸 좀 찾으러 왔는데요. 그리고 사실 제가 여기서 살긴 했는데요…….’로 시작하는 구구절절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
그러면 진짜 내가 구질구질해지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몸이 포기할 리가.
막다른 길에 몰려 있을 땐 헛소리로 정신을 빼 놓고 무조건 윽박부터 지르면 된다. 이건 멜로가 알려 줬다.
그리고 그러면, 어떻게든 해결책이 생기더라.
그 와중에 난 내 밑에 깔린 상태로 아련하게 날 쳐다보던 레리온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놈은 핏줄이 다 터져 온통 새빨개진 눈으로 날 노려보더니, 그리고…….
-쉭!
주먹이 날아왔다.
레리온이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깨부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난 그걸 뒤로 물러서 피했다. 내 머리통을 얼마나 세게 갈기려 했는지, 파공음이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내가 당당히 외쳤다.
“손끝 하나 건드려 봐! 공녀 시체가 무사할 줄 알아?”
그리고 크흐흐흐 하고 웃어 주니 반응이 가관이었다.
레서와 모망 폐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순식간에 탄식을 내뱉었다.
“어…… 어쩜 저런 쓰레기가!”
방금 그거 누구냐!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검을 뽑아 들던 놈들도 멈췄다. 엑저에게 책을 잡힐까 봐 두려운 모양이었다.
이때다!
-후다닥
난 으하하하. 웃으며 위층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을 향해 계단으로 달려갔다. 특히 기자들 위주로.
“으악!”
……그리고, 그 인파를 그대로 통과했다.
일단 포위망 하나는 뚫었다!
그러나 이런 얕은 잔재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