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96)
이제 어떻게 될까.
하하하 웃으며 달리면서도 실패는 예견된 상황이었다.
진공이라는 단서와 이 탑의 건축 용도, 그리고 헬릭 경의 탑 설명 덕분에 내 몸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
답은 아마 이 탑의 꼭대기.
하지만 내가 거기까지 도망을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의 나는 힘도 없고, 약하고, 우리나라는 너무 작아서 남들 앞에선 날 돕는 티조차 낼 수 없고.
그래도 허허허.
어쩌면 이게, 마지막 질주가 될지 모른다. 엑저 가족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세월의 마지막 달리기일지도…….
그렇게 감성에 젖은 순간이었다.
“뭐 하는 짓들이야, 지금!”
뒤에서 누가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바닥을 밟으며 도약했다. 안 봐도 페녹스지만, 진짜 안 봤다간 뇌가 터질 것 같아서 흘깃 보니.
역시. 이런 수작으로는 일 초 남짓 버는 것도 힘들구나.
페녹스의 구둣발이 내 눈알을 걷어차려는 순간이었다. 아마 차여서 나동그라지자마자 머리통이 뚫리는 결말이 예상된다.
연극의 슬로우 연출이 현실이 된 것처럼 그의 구두 밑창이 내 얼굴을 박살 낼 기세로 흉흉하게 날아오는 그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죽은 척하는 게 더 낫지 않나?’까지 생각이 미칠 때.
천장이 부서지며 옐베리가 나타났다.
***
-콰과과광
천장이 부서지고 누군가가 우리 사이로 뛰어내렸다. 검을 내리찍으면서.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리자마자 바로 깨달아 놀라 소리쳤다.
“옐베리?!”
내 분홍분홍 친구.
가녀려 보이는 몸으로 사람 수백 명을 한 번에 채썰기 할 수 있는 옐베리가 맞았으니까!
대체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도 왜?
하지만 옐베리는 쑥스럽게 웃어 주고 자신의 종아리로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날 차려던 페녹스의 종아리 뼈를 검으로 찍더라.
정말 이 모든 것이 단 한 순간에 연속으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근데 옐베리야. 이러면…… 내 머리통이 위에 부딪혀 깨지지 않겠니?
“으악!”
하지만 붕 뜨고 나니 보이는 광경은 예상과는 달랐다.
누가 잘라 놓은 듯, 한 층 위에서부터 지상층까지의 바닥이 도넛 구멍처럼 깨끗이 절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난 몸이 부유하는 감각을 느끼며 옆을 돌아봤다.
허공을 부유하는 감각 속, 내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그 모습을 보고 눈이 정말 네모낳게 떠지는 기분이었다. 바깥이 녹은 건 그렇다 쳐도, 갈색 머리카락에 은은한 검은 빛이 돌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층 표시가 보였다.
[5층]……나 지금 지하 5층에서 5층으로 차여 올라온 거야?
그뿐만이 아니다. 흔들거리며 균형을 잡는 와중, 아래를 쳐다보니 또 예상치 못한 친구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탑 입구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유리스가.
‘이게 뭐야!’
얘네가 내 정체를 알고 돕는 건지 아닌 건지도 의문인 상황.
그때, 저 밑에서 레리온이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아직도 목 근처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그놈이.
그리고 내게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그러자…….
중력이 나에게만 이상하게 작용하는 듯, 갑자기 주변 공기가 질척하게 달라붙어 나를 한순간에 끌어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느낌만이 아니야! 정말로 달라지고 있었다.
탑 천장에 처박히고도 남을 기세로 부유하던 내가 갑자기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자 유리스가 기합을 질렀다.
“이야아아압!”
그리고 손에서 쟁반 크기 타원형의 무언가를 만들어 양손으로 아래에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건 아마…….
-퍼어어어어엉!
“폭발이다!”
“꽤애액!”
폭발이라 외친 것은 불쌍하게 휘말린 기자들이었고, 꽤애액은 내 비명이었다.
그렇다. 과격한 유리스는 레리온이 멀리서 간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와 그 사이 중간 허공에 큰 폭발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강풍이 밑에서부터 쏘아올려졌다. 으앙.
난 확신할 수 있다. 안전장치 없는 치사율 구십구 퍼센트 놀이기구가 이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느새 나는 맨 위층 꼭대기에 가까이 부상하고 있었다.
***
축구공처럼 빙글빙글 날아가면서 내가 한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옐베리. 스핀 넣고 차면 어떡해.’였고.
다른 하나는,
‘구는 무사한가?’였다.
후자보다 전자가 조금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탑 맨 꼭대기. 누군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데도 아무도 열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애초에 열 수가 없는 구조였으니까.
몇백 년 전엔 마물 연구용으로 쓰였던 이 탑.
그러나 이 탑이 건축된 것은 마물 연구 때문이 아니었다.
‘마물 연구를 왜 총알 만드는 탑에서 했을까요?’
우리 해체팀 막내가 가졌던 의문.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놈들이 내가 육신을 빚어내는 힘이 있단 것도 모르면서 나를 노렸던 이유까지.
나를 사용해서…….
그때였다.
내 몸이 들어 있을 것이 분명한 금속구가, 아래에서 누군가가 쏘아 보낸 검기의 영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안 돼-!”
그리고 레리온의 절망 가득한 외침이 들렸다.
정말로 저게 맞았구나!
탄환 용액을 잘 섞기 위해 중간에 셰이커처럼 기능하는 저 금속 통.
‘입구와 출구의 구멍이 너무 작아서 환기 자체가 안 되는 곳이니, 능력의 유지력도 보완이 됐을 거야.’
만약 구를 통째로 자른다면, 작은 어린애는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그런데 소란 통에 진공 상태가 풀렸는지.
계속 굳게 다물려 있던 구에 사악 실선이 생기더니, 그 선을 중심으로 벌려지기 시작했다.
난 나도 모르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손이 닿자마자 셰이커가 완전히 열려 버렸다.
그다음의 순간은 침묵이었다.
안에서 아주 작은 아기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내가 봐도 정말, 정말 예쁘게 생긴 아기였다. 뺨은 또 얼마나 귀엽게 봉긋한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기들 특유의 달콤한 살 냄새가 느껴질 것 같은 어린애.
시무룩하게 잠들어 있는 얼굴이었지만, 웃는 얼굴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정말 소중했을 거다.
이런 아기를 두고 간 친어머니께선 무슨 심정이셨을까? 어떤 마음으로 돌아서야 하셨을까.
순간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난 나를 향해 추락하는 나를 두 팔 벌려 끌어안았다.
시간이 멈추고, 허공에서 나풀거리고 있던 내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며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