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97)
어쩌다 구원했지만, 책임은 안 집니다 14화(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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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있던 사람들은 싸우던 것도 잊고 허공에서 나타나 떨어지는 공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레서였다.
아기 모습의 자신을 끌어안고 페리안이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다치지 않게 받아 낸 레서가 딸의 뺨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페리야!”
페리안은 눈을 뜨지 못했다.
***
이틀 뒤.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목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절망한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있었는데, 빨간 액체가 한두 방울씩 손목을 타고 흘러내려 소맷자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동생은 아직까진 제 형을 온전히 용서할 수 없었다. 페녹스는 부러 시야에 형이 들어오지 않는 각도로 섰다.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
“…….”
페리가 죽은 걸 발견하고 혼자 짊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했다.
듣고도 납득할 수 없었다.
왜 언제나 혼자서.
참을 수 없어졌다. 페녹스는 제 형에게 이죽거리며 핀잔을 줬다.
“형님이 뭘 잘했다고 울어. ……시체를…… 그딴. 그딴 곳에 이십 년간 처박아 놓고.”
시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
“그러고서 또 자칫하면 제 손으로 죽였겠어, 응? ……생각해 주는 척은 그렇게나 하더니. 참 대단한 오라비잖아, 정말.”
그러는 페녹스의 목소리도 물기가 서려 있었다.
항상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그 마음을 몰랐다.
억울하고 힘든 건 저 혼자 짊어지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지. 그럼 해결되는 줄 알고.
그때, 다 쉬어 가는 목소리가 비통하게 울렸다.
“……미안하다.”
동생의 모진 말에도 반박 하나 할 수 없었다.
단번에 꺾어 버리려고 목을 쥐었던 손의 그 감각이 아직도 생경했다.
만약, 그때 페녹스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소맷자락이 온통 붉게 물든 것을 본 페녹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이후 가족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나마 고맙게도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수습해 주는 판데르니안이 있었지만, 그 역시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격의 없이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그가 대면부터 빈정거렸다.
“이번엔 진짜 죽이게?”
판데르니안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이질적으로 보일 만큼 수려하고 조금도 바래지 않은 외관.
심지어 그의 얼굴엔 약간의 웃음기까지 서려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페녹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쪽이 슬픈 상황인데 공감해 주지 않느냐고 무어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건 너무나도 이상했다.
페리안의 작은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부터, 그 일련의 사건을 들을 때 동요하던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오히려 즐거워 보이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페녹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판데르니안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부르신다. 둘 중 아무나 들어가 봐.”
그 말에 둘 다 고개를 저었다.
그날. 철거업자의 몸속에서 나타난 페리안은 아기 시절의 본인 몸을 껴안고 추락하다, 그대로 잠들어 지금껏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몸은 그때 레리온이 그 자리에 숨긴 것이 맞다고 한다.
그럼 큰 쪽은 무엇이란 말인가?
페리안을 닮았던 갈색 머리 여자는 이제 완연한 엑저의 머리카락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본능이 확신하고 있었다. 시녀로 들어와서, 서제국 사람과 혼인까지 했던 이 여자도 페리안이 맞다고.
아기 페리안이 썩지 않고 있던 일,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살아 돌아온 일.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으니 페리안이 둘로 나뉜 것도 못 일어나랄 법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엑저 가문 사람들은 눈 감고 있는 두 명의 페리안을 모두 소중히 보관해 두고 있는 참이었다.
페리안들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분명 호흡을 하고 있고, 맥박이나 체온까지 정상이다. 하지만 그 어떤 외부 영양소 섭취 하나 없이도 그냥 잠든 것처럼 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계속 손을 잡아 주고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레서였다.
‘아가야, 제발, 제발…….’
두 아들들은 아버지가 그것들을 아직껏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그건 분명, 페리안을 내치면서 집무실에서 모조리 사라졌던 것들이었다.
좋아했던 인형들이 누워 있는 두 공녀의 옆에 산처럼 쌓였다.
그리고 옛 장난감들에 묻힌 동생과, 그 옆에서 반쯤 미친 듯한 아버지가 딸에게 보고 싶었다고 중얼거리는 모습.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둘에게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둘 다 며칠 전 각자 페리안을 죽일 뻔한 입장으로서, 마치 죽어 있는 듯 누워 있는 페리를 보는 것은 둘에게 본인을 죽이고 싶어질 정도로 혐오감이 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페녹스의 시선이 흘낏, 레리온의 손목으로 향했다.
저번에도 자결을 하려고 하는 것을 페녹스가 막은 참이었다.
레리온은 페리안을 제 손으로 몇 번이나 죽일 뻔했다며 페리안이 일어나기 전에 끝을 맺겠다는 둥 불안정한 상황이었고, 페녹스는 그런 제 형님을 감시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때였다.
판데르니안은 두 형제의 궁상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공감 능력 없는 셋째가, 아직까지 눈물 흘리고 있는 레리온을 발등으로 걷어찼다.
“궁상 좀 떨지 마.”
“……?”
황당한 두 남자의 눈이 판데르니안에게 쏠렸다.
“이제 와서 너네 동생이라 생각해? 웃기지 마. 처음 계약을 떠올려. 너넨 페리안의 시숙일 뿐이야.”
페녹스가 어이없어 외쳤다.
“우리 동생이……!”
그러나 판데르니안에게 바로 끊겼다.
“시숙이란 건 어떤 여자에게나 쓰레기야. 그러니까 너희가 쓰레기인 것도 딱히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고.”
미친 논리였다.
레리온이 욱해서 화내려 할 때, 그가 또 선수를 쳤다.
“혼테인이 찾아왔어.”
“…….”
“자기 부인이니까 자기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더군. 육신만이라도. 가족 장례라도 치르고 싶으신지.”
“그 미친 새끼가!”
페녹스가 벌떡 일어섰다. 그제야 판데르니안이 코웃음 치며 뒤돌아 중얼거렸다.
“저쪽에 시집보낼 거면 그렇게 계속 징징거리던가. 페리안이 와서 용서해 주길 바라면서.”
“…….”
“……그리고 별.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웬덤 부인이며, 서제국 황제까지 와서 얼굴 보여 달라던데…… 그쯤이야 보여 줬지. 혼인도 무효로 만들어 주신 분들이니.”
판데르니안이 씨익 웃었다.
레리온이 그 웃음을 보며 잠시 침묵하다 물었다.
“……네게는 항상 미안해해 왔었다.”
“?”
“의견을 들어 볼 필요도 없이, 우리는 물론이고 페리안까지 미워한다고…… 생각했었어.”
눈의 핏줄이 다 터진 남자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페리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답은 간단했다.
“네가 알 게 뭐야?”
페녹스는 또다시 레리온의 정강이를 차려는 판데르니안을 막아 내야 했다. 물론 자신도 차고 싶었지만.
“그건 그 여자랑 내가 결정할 일이야. 아버지나 찾아가, 이 쓰레기들아.”
“…….”
“어쩐지. 레리온 저 새끼, 죽은 게 틀림없다고 믿는 꼴부터 불안했어…….”
판데르니안은 본인도 진짜 페리안이 죽었다고 믿고 있었으면서, 그건 천연덕스럽게 비밀로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페녹스가 그런 그를 한숨을 내쉬면서 타이르려 했다.
“이건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고…….”
“된대도 내 부인이지, 너희 동생은 아니야.”
“…….”
페리안도 자신을 싫어하진 않았다. 서제국으로 결혼하러 가기 전, 몰래 자신을 찾아왔던 것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그 일도 두 형들에게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남녀지간 둘만의 일을 남들에게 나불대는 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득 그걸 생각하던 판데르니안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적어도 너네보단 날 좋아할걸.”
이번엔 페녹스와 레리온도 할 말을 잃었다.
그걸 본 판데르니안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죽었던 여자가 살아난 것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서제국 섬에서 떨어졌던 그 박살 난 시체도 진짜와 하등 다를 바 없었어. 지금 자고 있는 저 두 몸 다 가짜일 수도 있다고. 뭐, 레리온 저 새끼 얼굴 보기 싫어서 도망갈 만하지. 그치?”
꼭 끝에 꼬박꼬박 비아냥거리는 동생이었다.
그러나 레리온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판데르니안은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오늘치는 됐군.’
평소라면 택도 없었겠지만, 그는 이제 저 둘의 목숨 정도는 챙기기로 결정했다.
부인 될 사람의 친오빠들이니까.
그리고 오늘치는 훌륭히 완수한 것 같다고 판단한 판데르니안이 바로 방문을 꽝 닫고 나섰다.
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
그리고 또 다른 방.
취조받는 입장이면서 왠지 뿌듯해 보이는 옐베리가 앉아서 젊은 엑저 공작님을 맞이했다.
판데르니안이 짜증을 숨기고 숨기고, 또 억누르며 평온한 얼굴을 가장한 채 말했다.
“그래. 이번엔 말해 줘야겠어.”
취조는 그간 이틀간 계속 반복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험하게 대할 수 없어서 계속 발걸음했던 지난 날의 세월들이란.
당장 멱살부터 잡고 들어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옐베리와 페리가 친했던 것을 생각하면 손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정말이에요, 공작님. 사랑의 눈으로 보면 알게 됩니다!”
옐베리가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이죽거리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다시 묻겠다. 어떻게 그 애를 알아본 건지.”
아저씨 상태의 페리안을 알아본 이유.
그 진실은 멜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옐베리는 당당했다.
“정말 사랑의 힘 때문이에요!”
“……계속 허튼소리 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공작님은 페리를 사랑하는 게 맞으세요?”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
판데르니안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붕붕 저었다. 누가 봐도 어색할 만큼.
“제 사랑의 눈으로는 공작님의 마음도 보이는데요. 근데 왜 못 알아보시는 걸까요? 페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보다 부족하신 걸까요?”
깐족깐족.
가히 폭격 같은 공격이다.
‘이걸 때려, 말아?’
생긴 건 저래도 통나무로 머리를 때려 줘도 멀쩡한 여자다. 판데르니안은 심호흡을 했다. 레리온과 페녹스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듯, 옐베리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옐베리가 자신이 져 주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시작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인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서.
‘계속 비밀로 해 봤자 성국 사람과의 연결만 들통날 테니까…….’
그리고, 페리의 오빠라는 사람이 공인한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었기에.
“휴. 저는 그래도 공작님을 응원하니까 이쯤 해서 진실을 말해 드릴게요.”
“…….”
“이번에 확정시된 것이지만, 여러 몸으로 변신이 가능한 거잖아요. 밝혀지기 전에도 저는 조오금 눈치채고 있었지만! 어쨌든. 사람이라면 그 변신에도 습관이나 버릇이 녹아 있겠죠.”
“습관?”
“인체의 비율이나, 성대의 모양새라든가. 특수 분장사들이 뇌의 모양을 매번 세심하게 다르게 만들진 않듯이요.”
“…….”
“상완골과 하완골의 미세한 길이 차이, 얼굴과 어깨 길이의 비율…… 페리만의 특별한 취향이나 버릇이 다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옐베리는 자기는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레서 선공작과 비슷하길래 혹시나 싶어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덤으로 사랑의 눈을 뜨면 다 보인다면서.
사실 지금 옐베리가 말한 것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판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실제로 페리의 변신 영역은 사소한 취향이나 버릇을 알고 자로 재며 분석한다고 해도 알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러나 판데르니안은 조용히 침묵했다.
머릿속에서 그녀의 얼굴과 몸 하나하나를 그려 보면서.
성국 성기사단의 임시 거처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