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Family Is Not My Problem RAW novel - Chapter (99)
하지만, 제가 본 연극에서는 서로 마음을 감추기만 하다 오해만 쌓여서 헤어지곤 한단 말이에요.
‘사랑해!’ 한마디면 될 걸 체면 차리고 숨기며 가슴속에서 삭이다 슬픈 엔딩으로 끝나는 게 인생 아니던가.
난 폐하랑 그렇게 되긴 싫었다.
약소국의 왕이 어떻게 극비에 감춰져 있는 비밀스러운 실험장에 혼자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그건 그 왕이 대단해서가 아니고, 처음엔 협조자의 역할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성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물이 생겨난 이유를 면밀하게 분석해 오고 있었고, 덕분에 성왕 폐하이신 폐하께서도 마물에 대해 잘 알고 계셨었다.
그리고 내 힘을 어떻게 더 응용할 수 없을까 연구하던 무리는 그런 폐하의 능력을 알아보고 제의했다.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시는 폐하의 눈빛이 담담했다.
“……나는 그걸 승낙했단다.”
폐하는 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항상 절박한 사람이셨다.
그래서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의 비밀스러운 계약을.
그렇게 폐하가 들어오신 것은 내가 열 살 때였다고 한다.
하지만 웬 아이를 납치해 하는 실험이 있단 것도 모르고 오셨으며, 이미 발을 들인 이후엔 섣불리 빠져나갈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뒤에는 나라가 있었으니까.
“……나도, 그래서 널 못 본 체하려고 했단다.”
나는 일부러 어릴 때도 안 부리던 응석을 잔뜩 부리며 폐하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디든 도망치시지 못하게.
“……나중에 나오고 나서 넌 정말 하나도 기억을 못 하더구나. 우린 널 빼낼 때 처음 만난 게 아니었는데.”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럼 어떻게 만났는데요?”
“철창에 갇혀 있는 널 못 본 체하고 있는데, 네가 먼저 다가왔지.”
“……왜 그랬을까요?”
“글쎄다. 금발이 네 친모와 똑같아서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설득력 있는 추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하고 물으니 폐하께서 간단하게 답변해 주셨다.
“네가 손을 빼꼼 들고 흔들었어.”
“그게 끝이에요?”
“그럼.”
당시의 간수들은 여럿이었고 폐하는 새로 충당된 사람이셨다.
폐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연히 주위 사람 보는 눈도 있으니 그땐 내게 반응하지도 않으셨다고.
그리고 그 첫 만남 이후 한 달간, 자신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다고.
“그런데, 만나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에. 갑자기 문득 결심이 들지 뭐니. 그리고 준비만 일 년이 걸렸지. 물론 그사이 널 본 적은 없다.”
일 년?
“일 년에 걸쳐서 준비한 독과 함정으로 모두 죽이고 널 데리고 나왔단다.”
그게 그렇게 특별히 강하지 않은 폐하가 탑의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던 이유였던 것이다.
난 충격적인 진실에 입을 뻐끔 벌렸다.
드디어 미스터리가 풀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어렸을 때 알았다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항상 깨끗하고 올바른 방식으로만 일하는 엄마라고 생각하고, 그분이 걷는 길을 모두 동경했으니까.
그리고 좀 더 나이를 먹은 뒤부터 엊그제까지의 나는 어렴풋이 답을 추측하게 되었는데도 무서워서 감추고 있었다.
‘폐하는 어떻게 날 구했지?’라는 의문을.
그걸 수면 위에 올려놓고 나면 우리 사이가 그 전과 달라질까 봐 무서워서.
하지만 그게 무서웠던 것은 나만이 아닌 것이었다.
나는 폐하를 꽉 끌어안았다.
폐하에게도 무서운 것이 있었구나.
“근데 사실, 그냥 착한 사람 맞잖아요. 실수 한 번 하고 나쁜 사람들 다 죽인 게 뭐 어때요!”
“그래. 결국 내가 해결했으니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그렇다만…… 하긴. 너 말고 남들한텐 당당히 말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폐하께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마치 진짜 어린애 대하듯.
“하지만 너한테만은 예외였어. ……네 기억엔 착오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네 기억이 언제 돌아올까, 언제 날 보는 그 눈빛이 실망으로 뒤덮일까. 항상 고뇌했단다.”
“제가 왜 실망을 해요!”
내가 꽥꽥 소리 질렀다. 내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싫어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앨리스 님이랑, 폐하뿐이에요. 저한테 대가 없이 사랑만 주시는 분들은.”
심지어 멜로 놈조차 처음부터 대가 없이 날 좋아해 준 것이 아니었다.
전혀 갚을 수 없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주신 건 단 두 분뿐.
엄마란 사람들은 원래 대가 없이 딸을 사랑해야 하는 건지. 내가 억울할 지경이다!
오늘따라 앨리스 님도 어찌나 뵙고 싶은지.
난 나 때문에 돌아가시기만 한 친어머니 앨리스 님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대체 얼마만큼 우는 건지 모르겠네.
“전 맨날 다른 사람 도와준다고 착한 척하면서 막상 제일 고마운 두 분껜 아무것도 못 해 드렸어요.”
그런데 폐하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씀하셨다.
“아직도 전혀 모르는구나.”
“네?”
“대가 없이 사랑해 줬다니. 앨리스 경이 들었으면 기가 막힐 소리야.”
폐하가 날 껴안으셨다.
“대가? 너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다 했다. 딸은 엄마에게 존재만으로도 구원이란다.”
난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엄마 소리를 부르면서 울었다. 근데 의외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한텐 엄마가 필요한가 봐.
그리고 폐하를 껴안고 꽥꽥 울고 있는데, 폐하가 조심스럽게 미소 지으시더니 말했다.
“우리, 멜로도 끼워 줄까?”
“헛!”
멜로 따위가 내 등 뒤를 잡다니! 이건 스파이의 수치다.
놀란 내가 뒤를 돌아보니, 멜로가 글썽글썽하며 문가에 서 있었다.
“폐하. 그런 거였으면 저한테는 미리 말해 주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쟤는 그렇다 쳐도요.”
난 멜로 놈이 사춘기 즈음부터 폐하에게 데면데면하게 굴기 시작하던 것을 기억해 냈다.
‘역시 남자애는 키워 봤자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쟤도 그동안 똑같이 마음고생해 왔었겠지.
나는 계속 꽥꽥 울면서 수긍했다.
“그럽시다! 끼워 줍시다!”
우리는 셋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실 폐하는 안 우셨지만 운 걸로 치자.
이상하게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 같았다.
***
어흐어어으엉으엉.
“그만 좀 징징대.”
어으어어엉.
“좀 그만 좀 해라.”
멜로가 나한테 핀잔을 줬다. 난 가짜울음을 멈추고 놈을 째려봤다.
지금은 폐하가 급하게 나가 보시고 한 시간 뒤.
금방 오신다던 폐하가 오시지 않길래 초조해하고 있는데, 멜로가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엑저 놈들과 회담 중이시래.’
그건 내 시녀 시절의 출신 국가가 성국이라는 일 때문이었다.
“단서를 찾아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대신 수사를 위해 성국을 개방해 달라고 금력으로 밀고 들어오겠지.”
“지금이라도 폭탄 들고 레서한테 뛰어들까?”
“아서라.”
난 씩씩거리며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내가 힘만 돌아와 봐라. 아주 그냥!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의자에 푹 눌러앉아 있던 멜로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다 물었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애초에 실험 주동자들은 네 피가 마물한테 효과가 있단 걸 어떻게 안 건데?”
“…….”
난 허공을 더 팍팍 세게 때리며 고뇌에 잠겨 들었다.
멜로가 날 복싱하는 물고기 보듯 하든 말든.
내가 애기 때 일이다.
젊었던 록사르 웬덤 옆에 한 남자가 있었다.
내가 그놈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
그 남자 뒤에 까만 날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충 답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멍청이 의견도 들어 볼까 싶어서 운을 터 보기로 했다.
“멜로야. 날개 있는 종족이 뭐뭐 있을까?”
“닭.”
난 닭처럼 날아가서 멜로의 턱을 때렸다.
한참 옥신각신 설명 후, 멜로는 한층 진지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뭘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치? 용밖에 없지?”
나는 주먹질을 멈추고 멜로를 쳐다봤다. 그놈은 고개를 저었다. 난 또 분위기를 망치는 멜로를 때렸다.
***
용. 물론 실존하는 것이 확인된 종족은 아니다. 동화 속 종족이긴 하지.
엑저 가문의 상징이자, 직계 혈통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 머리색의 원인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그리고 용에 대한 신화나 전설은 많지만, 그 모든 것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용은 검은 날개 달린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이란 것은 어릴 때부터 연극만 줄곧 봐 온 내게도 꿈과 동경의 대상인 종족이었다.
그런 걸 봤다는 중요하고 강렬한 이 기억을 어떻게 잊었을까 놀라울 정도긴 했지만.
근데 멜로가 또 딴지를 걸었다.
“진짜 용족이 있다 쳐. 그걸 어떻게 찾을 건데? 집 주소 아냐?”
놀랍게도…….
“왜 고개를 끄덕여?”
멜로가 걱정스럽게 내가 미쳤는지 아닌지 확인했지만, 난 미치지 않았다.
정말로. 용족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어.”
지금의 내 힘으론 찾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근데 해결할 순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방법이 있긴 했다.
“너, 설마…….”
멜로가 경악했다.
엑저 가문을 이용하려는 내 속셈을 눈치채고서.
물론 멜로의 걱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앨리스 님의 복수와, 내 목표를 위해서 그놈들을 이용 좀 해야 할 때였다.
난 찬찬히 그놈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살아난 줄 알고 눈물 흘리던 레서.
어린 동생과의 추억에 젖어 현재는 외면하던 페녹스.
가족을 위한답시고 동생 시체를 숨겨 놓는 짓을 하고, 죄책감에 앓다가 미친 레리온까지.
지금까지 난 그놈들이랑 얽히는 것을 피해 왔었다.
겉으로만 보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위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나서기만 하면 사랑받을 위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도 피했던 것은 어쩌면, 내가 겁이 많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토록 절절하게 구는 그들의 마음이 식는 것이 겁이 나서.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해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페녹스 그놈에게도 그랬다.
걘 항상 내게 잘해 주는 위치였지만, 속으로 난 계속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동생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면 어떡하지.
갑자기 멀쩡하게 살아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냉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 초라해지기만 할까 봐 무서워서.
그러나 이젠 그런 두려움 같은 것은 싹 사라졌다.
용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든가 하는 대단한 마음 변화나 감정이 아니었다.
그냥 이젠 두렵지 않았다.
페녹스든 레리온이든,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고 뭐고 다 버리고 자기 인생 살아가도 상관없어진 것이다.
난 어제보다 더 강해졌으니까.
애정이 언제 다 떨어질까, 죄책감이 언제쯤에야 소모될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어.
둘의 관심이나 애정이 더 떨어졌는지 겁먹을 필요도 없었다.
난 그런 게 없어도 이미 멋지고 행복하니까!
난 멜로를 보고 에헴, 헛기침하고 입을 열었다.
“나한테 계획이 있어. 폐하한테 가자.”
걱정 마라. 먹고 버리는 게 아니야.
숙녀답게 이용해 주마.
***
회담장 앞.
사람들은 멜로에게 에스코트를 받아 앞으로 나서는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 어, 어…….”
이 기회를 틈타 잘 보이고 싶어 내게 말을 걸려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한 가족 상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눈치에 강제로 뒤로 빠져야 했다.
결국 그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며 아주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마침 회담장에서 먼저 나오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신나 하는 것이 느껴지는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