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07)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07화(107/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07)
공작가의 고질병 (2)
베니오가 멈칫했다. 장미 문양을 새긴 저 기사는 베니오를 못 알아본 것처럼 대뜸 공격적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이내 베니오는 피식하고 웃었다.
‘수잔나 부인.’
마지아의 어미인 수잔나 삼부인의 계략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단한 수완이기는 했다. 가주의 친위를 전담하는 장미 기사를 포섭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모를 리 없지.’
기사는 분명 베니오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연기하고 있었다. 베니오를 모르는 척, 대신 연회장에 검을 차고 온 무뢰한으로 베니오를 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 내가 베니오라는 걸 알게 되면 이공자가 되어 예법도 몰랐다고 나무라겠지.’
그들이 모시는 주군의 아들이나 기사인 그들에게는 이공자에게 그 정도 교육 정도는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공작의 분노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연회장에 검을 차고 오면 안 된다는 건 귀족 사회에서 당연하게 통하는 규칙이기 때문에, 그걸 모른 베니오의 잘못이 더 크기 때문이다.
수군수군.
“뭐야? 칼을 차고 왔다고?”
“어느 가문의 누군데?”
그때 입구에서 장미 기사에게 신분을 검사받고 있던 귀족과 그 영애가 뒤를 돌아보면서 수군거렸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이곳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 베니오는 피식 웃었다.
‘잘 짜인 연극이야.’
장미 기사를 무슨 수로 포섭하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곳에 서 있는 귀족도 수잔나 부인의 사람이다. 정확히는 갈턴 자작의 사주를 받은 귀족인 것이다.
‘예법을 모르는 무지렁이로 내 평판을 떨어뜨릴 셈이군.’
귀족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요소 하나가 때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는 한다. 수잔나 부인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면, 꽤나 제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베니오의 평판은 바닥이니까. 와전된 소문이 퍼지면 얼마든지 갈턴 자작이나 그를 따르는 귀족으로 하여금 나를 탄핵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겠지.’
귀족은 명분에 살고 명분에 죽는다.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가 때로 엄청난 명분이 되어 한 가문의 멸문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성세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베니오는 갈턴 자작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베니오가 대공자감이 아니라는 작은 명분. 그것이 진짜건 조작된 사실이건 간에 베니오에게 흠집 낼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그것을 명분으로 베니오의 평판을 깎겠다는 뜻이다.
‘아르마다 님 때문에 나에게 추잡한 짓은 하지 못하니,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나를 사람들에게서 잊히게 만들겠다는 수작이군.’
베니오는 장미 기사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장미 기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하는 거지? 내놓으라고 했을 텐데.”
베니오는 그런 장미 기사의 모습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갈턴 자작도, 장미 기사도 베니오가 황제에게서 검을 하사받았다는 사실은 몰랐다는 것을.
황제의 하사품은 황제의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걸 황제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손댄다?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베니오는 빙긋 웃었다.
“드려야지요. 여기.”
베니오는 검대에 있던 검을 풀러 장미 기사에게 건넸다. 그러자 장미 기사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베니오를 힐끗 바라보고는 검을 받았다.
우우웅!
그때 장미 기사의 손에 들린 화령이 웅웅거리며 진동했다. 검이 스스로 진동하는 것을 겪어 보지 못한 장미 기사가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 이게 뭐지? 설마 사악한 마검인가?”
베니오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미 기사는 베니오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베니오에게 마검이라니.
“그거, 떨어뜨리면 경이 책임져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검을, 경의 핍박으로 내가 건네주었으니 말입니다.”
“뭐, 뭐!”
기사가 크게 놀라며 검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검의 범상치 않은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갔다. 그러자 기사가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 그것이….”
황제의 검이다. 그리고 눈앞에는 공작의 직계인 베니오가 서 있었다. 그 순간 기사는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이공자.”
그리고 기사의 태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베니오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본래 기사란 자존심이 센 것으로 유명한데, 순식간에 스탠스를 바꾸는 장미 기사는 그런 것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경의 이름은?”
“장미 기사, 루텐 스베크라고 합니다, 이공자.”
장미 기사의 얼굴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귀족 사회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가 명분으로 이어진다.
황제의 검을 강압적으로 베니오에게 내놓으라 윽박질러 손을 댄 루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감히 황제가 하사한 검을 만지다니. 황제의 검을 하사한 이는 황제 앞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서건 검을 떼어 놓을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물론 베니오가 그것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작할 만한 부분이 생기는 법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루텐에게 있을 리 없었다.
“루텐 경.”
“예, 이공자.”
베니오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검이라는 걸 내 먼저 말하지 않았으니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베니오가 그렇게 말하자 루텐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베니오는 그냥 그렇게 루텐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허나, 경이 갈턴 자작에게 포섭되었다는 걸 제가 각하께 말씀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허, 허억!”
루텐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만약 그게 밝혀진다면 그의 말로는 하나뿐이었다.
댕강.
루텐은 자신의 목이 분노한 공작의 검에 떨어져 나가는 것을 상상하고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루텐은 떨리는 목소리로 베니오에게 말했다.
“하, 한 번만 자비를….”
“그러니까 앞으로.”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매일 아침마다 내 방으로 오세요. 수련을 도와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루텐의 눈에 갈등이 서렸다. 그는 갈턴 자작에게서 꽤나 많은 돈을 받았다. 루텐은 기사로는 드물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에 갈턴 자작에게 포섭이 된 기사다.
그러나 욕심이 크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것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는 것이다.
루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릿속으로 베니오와 갈턴 자작을 저울에 올렸지만 이미 저울은 한쪽으로 지나치게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어.’
과거의 배고프고 굶주린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가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던가. 사생아로 무수히 많은 구박과 핍박을 견딘 끝에 기사가 된 루텐이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예, 말씀하신 대로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쯤에서 덮도록 하지요.”
베니오를 만만하게 봤던 루텐이다. 기껏해야 스무 살도 되지 않은, 그것도 가문에서 쫓겨나듯이 아카데미에만 붙어 있던 이공자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갈턴 자작처럼 그런 이공자에게 창피를 주는 것쯤은 조금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공자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그 이공자가 아니었다.
‘소문이 사실이구나.’
그러나 후회는 언제 하더라도 늘 늦은 법이다. 루텐은 자신을 도와주면 마지아가 가주가 되었을 때 그를 장미 기사단의 단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갈턴 자작의 약속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는 거에 땅을 치고 후회했다.
루텐은 보이지 않는 목줄이 채워진 것 같은 갑갑함을 느꼈다.
“경?”
“예?”
“검 주셔야지요. 그리고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루텐은 자신이 아직도 화령을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그 검을 베니오에게 건넸다. 스스로 자아를 가진 에고 소드를 봤음에도 황제의 검이라는 것에 밝혀진 이상 신기하기보다는 얼른 베니오에게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힘없이 외쳤다.
“토, 통과…!”
베니오가 그를 지나쳤다. 더 이상 베니오를 붙잡는 이는 없었다. 그때 베니오의 눈에 문 앞에서 갈턴의 사주를 받고 그릇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준비 중이던 귀족들이 들어왔다.
스윽.
그들은 갈턴 자작이 장담한 대로 일이 풀리기는커녕 베니오가 버젓하게 검을 차고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베니오는 그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문 앞에 섰다. 그러자 문을 열어 주며 누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시종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연회장 문이 열리고 안쪽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시종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공자 베, 베니오 케플러 님께서 드십니다!”
저벅.
베니오는 부드러운 융단 위에 발을 내디뎠다. 마법으로 밝힌 연회장 내부의 주황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와 베니오에게 쏟아졌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베니오는 화령을 찬 채로 쏟아지는 조명과 시선을 받으며 카펫 위에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 시선을 받으며 걸었다.
저벅.
수군수군.
저벅.
웅성웅성.
저벅.
베니오가 걷는 길을 따라 마치 꼬리를 남는 것처럼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웅성거림이 따랐다. 귀족들은 대놓고 베니오를 관찰했는데 그중 다수의 시선에 경멸과 의심이 섞여 있었다.
촤륵!
그때 베니오의 눈에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이 들어왔다. 그 둘은 베니오가 검을 차고 들어왔다는 것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계획이 어긋난 셈이다.
베니오는 그들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뜻대로 되는 일은 없을 거다.’
인생의 쓴맛을 그들에게 보여 줄 생각을 한 베니오는 천천히 중앙 카펫을 걸어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자 베니오 주변으로 귀족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듯 베니오 주변으로 귀족들이 물러났지만 베니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베니오는 태연하게 세팅된 음식을 그릇에 담고 지나가던 하인에게서 술잔 하나를 받아들었다.
“베니오 케플러? 그 이공자 맞아요? 조금 바뀐 것 같은데.”
“맞아요.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검술 학부라고 하더니 몰라보게 달라졌네요.”
귀족부인과 영애들이 달라진 베니오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 전의 베니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찐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면 위축되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베니오가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 내고 있었다.
“다 허장성세야.”
“오러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마법사 클리앙도 천재라고 하더니. 한물간 모양이군.”
베니오는 남자들의 질투와 시기, 불신이 섞인 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자신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뒤에서만 떠들어대는 소인배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귀족들이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갈턴 자작이었다. 베니오는 그가 베니오의 허리춤에 달린 화령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새 들은 모양이군.’
베니오가 찬 검이 황제가 하사한 검이란 것을 들은 모양이다. 베니오를 보며 고개를 숙이는 그의 눈에 섞인 불신에 베니오는 빙긋 웃어 보였다.
“이공자님.”
“갈턴 자작님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허헛, 예, 오랜만이지요. 그간… 많이 바뀌신 것 같습니다.”
자신을 향해 여유롭게 인사를 해 오는 베니오를 보며 갈턴 자작은 잠깐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베니오의 아래위를 살폈다.
그러자 베니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바뀌어야지요. 언제까지 그리 한심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한심하셨다라, 그간 좀 부족한 모습을 보이신 게 사실이지요. 이제라도 이공자께서 변화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베니오와 갈턴 자작이 짐짓 화기애애한 무드를 조성했다. 하지만 그 주변의 귀족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그때 시종의 목소리가 둘 사이의 긴장을 깼다.
“황금에 영광이 있으라! 케플러 공작께서 드십니다!”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그게 노인이건, 여인이건, 환자이건 상관없었다. 베니오 역시 그들처럼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케플러 공작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태양교!”
그런 케플러 공작의 옆에는 10인의 성호, 태양교의 태양심문관인 아르마다가 법복을 입은 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본 갈턴 자작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베니오는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며 빙긋 웃었다.
‘이 정도에 놀라면 섭섭한데.’
베니오가 준비한 하이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