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1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15화(11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15)
실종된 아이들 (5)
“후우우우. 됐다.”
루비 마을로부터 걸어서 약 30분가량 떨어진 작은 언덕. 이름 없는 작은 언덕은 그냥 그곳에 지난 수백 년간 있어 왔지만, 그 내부에 무려 여섯 달 동안 수백 명의 부모와 케플러 공작령의 기사들이 찾아다닌 아이들이 있었다는 건 극소수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지?”
죽은 것처럼 파리한 안색으로 누운 아이들이 죽지 않도록 영양공급을 마친 남자가 후드를 벗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 냈다.
“벌써 반년째인데.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남자는 아이들이 숨 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이들은 네모반듯하게 자른 돌 위에 한 명씩 누워 있었는데 마치 가사 상태에 빠져든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새끼들 똥 수발하고, 밥이나 먹이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남자, 시발론은 노예 출신이다. 아모리아 제국이나 대륙의 각국은 노예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에 지나지 않았다.
왕이나 황제가 각 귀족에게 땅을 나눠 주고 그곳에서 왕처럼 군림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 주었으니,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 제 영지 안에서 노예 매매를 하건 말건 간섭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발론은 횡행하는 그 불법 속에서 태어난 노예 2세다. 그의 부모는 평범한 소작농이었으나 몇 번의 가뭄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불어나며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노예로 태어난 시발론은 그가 열다섯 살이 되는 해까지 두 다리의 족쇄를 풀어 본 적이 없었다.
열다섯 살, 양친이 병으로 죽고 다른 노예상에게 팔려나간 시발론은 불법 검투장의 검투노예가 되었다.
그때 시발론은 잘 먹고 자란 또래보다 15센티가 더 작았고, 몸무게도 열 살에 불과할 정도로 바싹 말랐지만 오히려 그렇게 검투노예로 더 인기가 많았다.
보는 이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몰골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발론은 검투노예로 팔려 온 그날, 작은 쇼트 소드 한 자루만으로 다른 검투노예들과 함께 오크와 검투장에 내던져졌다.
열흘을 굶어 흉포해질 대로 흉포해진 오크에게 노예가 학살당하는 건 검투장에 온 귀족들에게 그들의 흥을 돋워 줄 사전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크가 노예들을 다 잡아먹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고 기적적으로 노예가 살아남으면 귀족들을 열광하게 할 것이니 잃을 것이 없는 셈이다.
단지 그 안에 던져진 운명들만이 기구할 뿐.
시발론, 고대어로 ‘똥’이라는 이름을 노예상으로부터 받은 그는 그곳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작고 마른 몸은 오크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오크들은 그보다 더 크고 먹을 것이 많은 인간을 원했기 때문이다.
푸욱―!
그리고 시발론은 그곳에서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
시발론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외면한 채 살점이 많은 남자를 붙잡아 팔을 뜯어먹고 있던 오크의 약점을 꼬챙이 같은 검 한 자루로 찔러 즉사시킨다.
그저 그곳을 찔러야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시발론은 다른 인간을 잡아먹는 데 정신이 팔린 오크들을 죽이고 홀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그 직후 시발론은 검투장의 주인으로부터 귀한 노예 취급을 받는다. 보는 이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외형과는 달리 오크를 일검에 죽이는 무시무시한 칼솜씨를 가진 노예.
상품성이 매우 높은 노예가 된 시발론은 질 좋은 식사와 한 번 개안한 재능으로 무시무시한 승리를 쌓으며 검투장의 최강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시발론은 검투장의 주인까지 잡아먹게 된다.
무언가를 죽이는 재능은 탁월한 것이어서, 구속된 시발론을 앞에 두고 방심하던 검투장 주인, 정확히는 귀족이었던 그의 목을 물어뜯어 죽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인간병기인 기사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깨와 다리, 배에 칼침을 한 방씩 맞은 시발론이 죽어 가고 있을 때 시발론은 그를 만났다.
왕.
자신을 따르겠냐며 손을 내민 왕을 만난 순간 시발론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상귀스란 신생 왕국의 왕이란 것을 깨닫고는 더욱더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시발론은 재능을 인정받아 그에게 움브라를 사사받는다.
스슥, 스윽.
시발론의 기척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지더니 그가 얼마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를 죽이는 재능과 이 세상에서 잠시간 사라지게 만드는 움브라는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래서 시발론은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동남동녀 100인의 신선한 피를 모아 오라는 것. 그는 자신의 움브라의 원천을 알고 있었다. 오러라는 축복받은 재능 대신 누구나 가지고 있는 피가 바로 그 원천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움브라를 얻은 대가로 주기적으로 피를 마셔야 하지만 동물 피로도 대체가 가능했기에 시발론은 꺼리지 않았다.
어차피 시발론은 검투장에서도 남의 피를 마시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차라리 이렇게 왕을 위해 사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남동녀 100명을 모아 오라는 임무를 받고 곧바로 나섰다. 하지만 이 임무가 무려 육 개월이나 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루비 마을을 그 대상지로 낙점한 건 영주성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움브라라면 기사에게도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인 시발론이지만 59명을 채운 후로 더 이상의 아이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열 살 미만이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몇 살인지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는 아이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이를 철저하게 보호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잠입한 뒤 아이만 납치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피를 봐야겠군.”
이대로 더 시간을 끌 수는 없다. 특별히 왕께서 알려 주신 대법을 펼쳐 외부에서 이곳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둔 것도 이제 슬슬 효력이 다해 가고 있었다.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마나석을 보충해 주어야 하는데 마나석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업이 엎어지기 전에 피를 봐서라도 모자란 동남동녀를 구해야만 했다.
두근, 두근.
피를 본다는 생각을 하자 시발론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넓어지면서 호흡이 거칠어진 것이다.
‘말 피도 질리는군.’
그동안 피에 대한 욕구를 말의 피를 이용해 참았다. 그러나 이제 신선한 피가 필요했다. 그렇게 다짐한 시발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자.”
가장 먼저 잡아 온 아이가 육 개월이 넘게 잠들어 있었다. 어차피 숨만 붙어 있으면 되기 때문에 대법을 이용해 가사 상태에 빠뜨린 뒤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하는 정도로만 숨을 붙여 두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라고 하더라도 이제 위험한 수준이다. 저러다 아이들이 죽어 나가면 그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시발론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먼저 그 말 상인 놈부터.’
시발론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피를 보게 되면 자신을 쫓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말 상인부터 처리해야만 한다. 그래야 저들의 추격을 흩어놓을 수 있었다.
스으으윽!
어둠 속에 스며든 시발론은 루비 마을의 목책을 넘었다. 어둠 속에 동화된 시발론은 오러를 익힌 기사들도 쉽게 찾아내지 못할 정도다.
시발론이 어둠을 영양분 삼아 말 상인이 있는 마시장으로 향했다.
자박.
시발론이 짚단을 밟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러자 몇몇 말이 자다가 고개를 들고 투레질을 푸르륵 해댔다.
자박, 자박.
말은 인간보다 예민하다. 그러나 시발론은 개의치 않고 한 발자국씩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말 상인에게 접근하기 전에 이미 그의 동선을 파악해 두었기 때문에 그가 안쪽의 숙소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턱, 턱.
시발론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기 위해 문 경첩에 두툼한 천을 꽂았다. 그리고 문을 열자 끼익하는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스르륵.
시발론은 어둠이 된 것처럼 방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시발론의 눈에 침상 위에 이불을 덮고 입을 벌린 채 자고 있는 말 상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죽어라.’
시발론의 눈에 말 상인의 급소가 들어왔다. 저곳을 찌르면 즉사다. 시발론이 짧은 소검인 망고슈를 말 상인의 급소에 대고 천천히 눌렀다.
망고슈가 말 상인의 살을 파고들려던 바로 그 순간.
달칵.
시발론은 예민한 청력으로 발소리를 들었다.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신발 밑창이 나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다.
‘기사.’
기사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은 밑창이 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시발론이 몸을 뒤집으며 품속에서 단검을 뒤로 날렸다.
캉―! 캉―!
어둠 속에서 스파크가 두 번 튀었다. 시발론은 기사가 방패로 자신의 단검을 막아 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복!’
기사가 방패까지 준비했다는 건 자신이 이곳에 오리란 것을 짐작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크고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가지고 다니는 기사는 없다.
타다닥!
후웅!
그때 기사의 방패가 시발론의 눈앞에 확대되듯 가까워졌다. 방패를 앞에 내세운 기사가 차지를 감행한 것이다.
그 순간 시발론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기사가 방패를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시발론은 그곳에 없었다.
타다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지붕 위에서 났다. 시발론은 움브라로 창문을 통해 빠져나온 뒤 곧바로 마시장의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다.
‘들켰다? 어째서지?’
시발론은 자신이 들켰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미 지난 반년 동안 다섯 번이나 공작가의 기사가 조사를 위해 루비 마을에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발론은 자신이 거의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가 매복한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돌아간다.’
시발론이 마을 밖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깥으로 가려던 시발론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내가 어디로 갈지 미리 대기하고 있었어. 그러면 지금 놈들의 허를 찌르려면.’
언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 내부에 숨어들어야 한다. 마을 내부에 숨으면 삼천 명이나 되는 주민들 중에 움브라를 사용하는 시발론을 추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자란 아이들을 더 챙길 기회다.’
시발론은 이 위기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위기란 곧 고 있는 그다. 그렇기에 자신의 뒤를 쫓는 이들에게 한 방을 먹이기 가장 좋은기회의 다른 이름이란 걸 알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는 씨익 웃었다.
‘정육점으로부터 네 개 떨어진 곳. 노란 대문.’
파바밧!
움브라를 쓴 시발론의 몸이 밤하늘을 갈랐다. 시발론의 두 눈에 핏발이 쫙 섰다. 뭉클거리며 흘러나오려는 살기를 움브라에 실어 흩어 냈다.
시발론의 눈에 노란 대문이 들어왔다. 그가 활동한 이후 저녁만 되면 사람들이 길거리에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에 휘감은 그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윽.
시발론이 노란 대문 앞에 섰다. 그가 청력을 돋워 안을 살폈다. 그러자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시발론이 씩 웃었다.
“찾았다.”
자박!
그런데 그때 시발론의 뒤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시발론의 뒷골이 뻣뻣해졌다. 마시장에서 느꼈던 그것과 비슷한 인기척이었다.
‘이곳에도?’
기사 특유의 오러가 물씬 풍겨 나왔다. 움브라를 사용하면 오감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시발론은 쇠냄새를 느끼고는 그대로 몸을 뒤틀었다.
스걱―!
은빛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시발론의 머리카락이 몇 올 흩날렸다. 시발론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
‘여기에도 기사를 깔아 뒀다고?’
시발론의 예상이 빗나갔다. 하지만 시발론은 이렇게 되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어디까지 날 예측했나 보자. 기사가 더 많을지 내가 찾아가는 곳이 더 많을지!’
파바밧!
시발론이 다시 담벼락을 밟고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