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2)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2화(12/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2)
네, 관심 없습니다 (2)
“커헉!”
사자의 갈기처럼 풍성하게 기른 갈색 머리를 한 생도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쓰러졌다. 생도의 복부에 박힌 목검 때문이었는데, 그 목검을 차분한 눈으로 회수한 베니오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신의 짐을 챙긴 뒤 처트니 경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베니오, 승!”
처트니 경은 오늘도 어제처럼 베니오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런 처트니 경의 눈빛은 한 달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인정.
한 달 동안 베니오에 대해서 상세하게 관찰하고 파악한 처트니 경은 이제 베니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둔재에서, 천년 거목 같은 의지력을 가진 생도로 평가가 수직 상승한 것이다.
“일리야까지 졌어.”
“오늘로 서른 명이 진 거지?”
“또 누가 결투 신청을 할까?”
검술장은 아침부터 구름처럼 생도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검술 학부의 생도들만 있었던 반면, 오늘은 다른 학부의 생도들도 군데군데 껴 있었다.
베니오가 매일 아침마다 벌이는 결투가 아카데미 전체에 소문이 났고 그것을 보기 위해 생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것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베니오는 서른 번의 결투 신청을 받았고, 서른 명의 생도들을 꺾었다.
그리고 오늘은 검술 학부에서 100위권쯤 되는 재능 있는 상급 생도인 일리야가 꺾였다. 그렇다는 건 베니오의 실력이 검술 학부 내에서 100위 안에 든다는 뜻이다.
“베니오 케플러가 100위라니.”
“속임수를 쓴 것도 아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베니오를 바라보는 시선도 한 달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비겁자, 아카데미의 수치라며 혐오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중립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과거의 악명까지 지울 수는 없으나 적어도 과거의 베니오와 지금의 베니오가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한 셈이다.
‘한 달 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 놓았군.’
처트니 경은 그런 베니오를 보면서 오늘도 감탄했다. 그가 베니오를 인정하게 된 것은 비단 그가 한 달 동안 결투 신청을 받고 결투에서 승리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항상 더 나아지는군.’
늦게 시작했기 때문인지 베니오는 반드시 하루가 지나면 어제보다 아주 약간이라도 발전해 있었다.
그게 고작 한 달인데, 그게 일 년, 십 년씩 쌓이게 된다면 베니오는 과연 어떤 수준에 올라 있을지 새삼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때 베니오가 처트니 경에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처트니 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동안? 이제 더는 안 할 생각인가?”
“보시다시피 오늘은 제게 결투를 신청하는 생도들이 더 이상 없습니다.”
“아.”
처트니 경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베니오가 승리하고 난 뒤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도전자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제 베니오가 누구도 무시 못 할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 검술 학부의 생도들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렇군. 축하한다, 베니오 생도.”
“교수님 덕분입니다.”
처트니 경은 지난 한 달 내내 아침 일찍 검술장에 나와 기꺼이 결투의 공증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그건 처트니 경에게도 낭비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처트니 경도 알게 되었으니까.
“검술에 물이 올랐더구나.”
“그런가요?”
베니오는 새카맣게 손때가 탄 자신의 목검을 쳐다봤다. 원래 광이 나듯 반질거리고 새것 같던 목검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목검은 여기저기 상처가 새겨져 있었고 손잡이는 쥐는 모양 그대로 손자국이 나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베니오가 끊임없이 노력한 것의 반증이었다.
“제법 검술 학부 생도 같은 눈이 되었군.”
게다가 베니오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라드릿슈와 루멘에게 당한 매질 덕분에 철신공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자 자라지 않던 키가 조금씩 자랐고 군살이 빠졌으며 온몸에 유연하고 질긴 근육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베니오의 인상은 확 뒤바뀌었다.
살집이 붙어 둥글던 얼굴에 각이 지고 키가 자라며 어깨가 넓어지고 근육이 자리 잡기 시작하자 누가 봐도 검을 오래 쥔 검사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거기에 베니오의 눈은 예전처럼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늘 호수처럼 평온하고 맑은 거울 같은 눈빛으로 베니오는 달려드는 적을 상대했다.
“그러나 개선할 점은 있다.”
“새겨듣겠습니다.”
“검이 정직하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는 것은 중요하나 이제 네게 필요한 것은 실전을 병행하는 것이겠구나.”
처트니 경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는 지금 정확히 베니오의 상태를 가늠했다. 베니오는 속으로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2학기부터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검술 학부 생도들은 졸업하기 전 2학기부터 필드 트림이란 것을 나간다. 소위 말하면 현장 학습 같은 것으로 생도들의 실전 감각을 길러 주기 위해 현업에 투입되는 과정이었다.
그 때문에 마지막 학년의 성적은 그런 현장에서의 평가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도와 전쟁 이론을 빼먹지 말고 들어라. 제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중에 배우겠다고 해 봤자 힘들 뿐이니까.”
처트니 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조언을 몰아서 베니오에게 해 주었다. 베니오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참, 그리고.”
처트니 경은 베니오의 차분한 눈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조금 일찍 실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학교 시간이 끝난 후 내 교수실로 와라. 만약 용병 일도 괜찮다면 말이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베니오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검술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베니오가 가까이 오자 몰려 있던 인파가 좌우로 쭉 갈라졌고 그 사이로 베니오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처트니 경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헛.”
처트니 경이 손바닥에 맺힌 땀을 자신의 바지에 스윽 닦았다. 교수기에 베니오에게 기사로서 가져야 할 소양 등을 몇 가지 알려줬지만, 처트니 경은 알고 있었다.
“교수가 돼서 학생에게 호승심이라니.”
자신이 베니오에게 호승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처트니 경은 베니오가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일부러 기본 검술만을 사용했지만, 그걸로도 제법 재능이 있다는 생도들을 쉽게 꺾었다. 그런 베니오가 익히고 있는 검술은 대체 무엇일까.
자신이 정립한 검술로 검공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한때 검에 미쳐 있었던 처트니 경은 간만에 느껴 보는 투지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부채를 펼쳤다.
“추태다, 추태야.”
처트니 경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투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한참 동안 애를 써야만 했다.
* * *
“교수는 역시 교수인가?”
베니오는 턱을 긁적이며 토니에게 목검을 건넸다. 토니는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베니오를 쳐다봤다. 지난 한 달간 베니오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토니는 어느덧 베니오의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련님!”
베니오는 그런 토니를 지나쳤고 토니가 재빨리 베니오에게 따라붙었다. 약 두 달 전쯤 머리를 다치고 난 뒤 베니오는 바뀌었다.
예전처럼 난폭하지도 않았고 하인이라고 해서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요즘 토니는 귀족 나리를 모시는 것이 살맛 난다고 생각했다.
토니가 으쓱대면서 따라오건 말건 베니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검술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다 처트니 경이 생각이 난 베니오는 피식 웃었다.
‘투기.’
처트니 경은 베니오에게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베니오가 숨긴다고 숨겼지만 처트니 경은 베니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뜻이다.
무려 오러 유저인 처트니 경이 뿜어내는 투기는 살갗이 따가울 정도였다.
베니오는 그 투기에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식은땀을 손등으로 스윽 닦아 냈다.
“아직 부족하군.”
한 달 동안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다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제 막 생도들을 이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어린애들 상대로 몇 번 이긴 것은 베니오에게 아무런 감흥도 안겨 주지 못했다. 베니오는 목검을 쥐었던 손목을 슬슬 풀면서 중얼거렸다.
“기초는 다 쌓은 것 같은데.”
애초에 계획했던 기초는 이제 다 쌓였다. 오늘부터는 결투 신청자가 또 나왔어도 베니오가 거절했을 것이다.
굳이 코 묻은 검을 상대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오는군.”
그런데 그때 누군가 베니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앞길을 막은 사람을 본 베니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세베루스.”
“그래.”
세베루스 바넨카였다. 그는 베니오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달 전 베니오에게 진 세베루스는 그 충격 때문인지 잠시 아카데미를 떠나 남작가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실제로 한 달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오늘 갑자기 다시 나타난 것이다.
“아카데미에 있었나?”
“가문에 다녀왔다.”
평민에게는 어불성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귀족이라면 가능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카데미에서 나중에 시험 볼 때 편의를 봐주는 것은 아니니 알아서 노력해야 했지만 말이다.
베니오는 세베루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소문이 틀린 모양이군.”
자신에게 패배한 이후 충격 때문에 가문으로 돌아갔다더니, 세베루스의 눈빛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세베루스는 그 말에 쓰게 웃었다.
“헛소문이 도는 곳이 바로 아카데미지, 너처럼.”
비겁자, 최악의 둔재, 아카데미의 수치.
세베루스는 너도 마찬가지로 헛소문의 주인공이지 않았냐면서 말했기에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왜, 또 루멘의 시간을 뺏지 말라 할 생각인가?”
세베루스가 베니오에게 결투를 걸었던 것은 루멘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베루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루멘의 시간을 빼앗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섰다.”
베니오의 실력을 보고 인정했다는 뜻이다. 코흘리개 어린애한테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피식 웃은 베니오가 세베루스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하고 가라. 저녁 수련을 하러 가야 되니.”
“결투에서 이긴 보상이다.”
“보상?”
“그래.”
세베루스는 베니오에게 고급스러운 봉투를 내밀었다. 베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결투의 승패로 베니오는 세베루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초대장이다. 입장권이기도 하고.”
“로쉐 예술축제?”
베니오는 봉투 안에 든 초대장을 읽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아주 열렬하게 예술축제에 대해서 말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유명하다고 자부하는 바넨카 남작가의 자랑이다. 갖고 싶어도 못 갖는 초대장이니 잘 가지고 있다가 한 번 와 보도록.”
세베루스는 더 이상 베니오에게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가문에 다녀온 이유가 이 초대장을 가져오기 위해서라는 것을 베니오는 눈치챘다.
하지만 베니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초대장?”
“겨우 초대장이 아니….”
세베루스는 관심 없다는 베니오의 얼굴을 보고는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아무리 좋고 비싼 것이라고 해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길거리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똑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베니오 케플러. 특이한 놈이다, 너는.”
“그런 소리 많이 듣지.”
로쉐 예술축제는 전 세계의 귀족들이 오고 싶어 하는 그런 축제다. 먼 곳에 있는 귀족들은 대귀족이나 부유하지 않으면 여행비를 감당 못 해 평생 꿈으로 꿀 정도다.
그런데 그냥 예술축제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넨카 남작가의 이름으로 발행한 초대장까지 줬는데 저런 표정이라니.
베니오는 초대장을 앞뒤로 살펴보다가 세베루스에게 말했다.
“이거 비싼가? 내가 안 쓸 거면 팔아도 되지?”
세베루스는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오는 것 같은 분노가 무엇인지 그때 깨달았다. 세베루스가 그런 베니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