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2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25화(12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25)
대공자 (5)
나이트 엘레강트, 고상한 학살자, 알렌 르텔리어.
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갈턴 자작의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신 중 죄가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찾아가는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반항한다?
죽는다.
그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그래도 죽는다.
그는 케플러 공작의 검이었고, 죄 있는 자들을 처단하는 심판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케플러 공작이 아닌 귀족을 찾는다는 건 그들에게 있어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그를 베니오가 입에 담았다는 건,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고상한 학살자를 보내도록 이번 일을 크게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아주 우아하고 고상한 방식의 협박.
갈턴 자작은 속으로 이를 으득 갈았지만, 겉으로 그것을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삽시간에 말 몇 마디로 30만 골드를 챙긴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돈이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베니오에게는 그 30만 골드를 적절히 굴려 줄 아주 적합한 인재가 있었다.
‘지오반니가 졸업하는 게 내년인가?’
베니오에게 빚을 진 지오반니를 불러들여 부려 먹는다면 30만 골드를 적절하게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시종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케플러 공작의 등장이었다.
끼이익.
저벅, 저벅, 저벅.
케플러 공작이 귀족들 사이를 오연하게 걸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케플러 공작이었다.
그런데 그런 케플러 공작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마지아 도련님?”
“함께 드셨다고?”
“이미 대공자가 정해진 게 아닌가?”
“오오오오.”
웅성웅성.
케플러 공작 뒤를 마지아가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귀족들이 웅성거리면서 자기네들끼리 작게 떠들었다.
그 소리는 케플러 공작의 귀에도 들렸다. 하지만 케플러 공작은 그에 답해 주는 대신 자신의 자리에 선 뒤 망토를 크게 젖히며 돌아섰다.
펄럭!
펄럭이는 케플러 공작의 망토를 그림자처럼 다가온 임플로 총관이 조심스럽게 받아 들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베니오, 올라오라.”
케플러 공작이 베니오를 호출했다. 마지아가 서 있는 곳의 바로 옆으로 베니오를 부른 것이다. 베니오는 묵묵히 귀족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서는 마지아 곁에 섰다.
꿈틀.
베니오의 복식을 본 케플러 공작의 눈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베니오의 복식이 예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호통을 치지 않았다.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의 칼날 같은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 내며 마지아를 힐끗 쳐다봤다.
‘함께 입장했다? 왜지?’
마지아가 왜 케플러 공작과 함께 입장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아는 건 마지아와 케플러 공작뿐이다.
‘아니, 한 명 더 있군.’
베니오는 갈턴 자작이 비릿하게 웃는 모습을 발견했다. 베니오에 대한 분노가 일렁이는 두 눈으로 갈턴 자작은 베니오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무언가가 오갔군.’
베니오는 갈턴 자작과 수잔나 부인이 무언가 술수를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꽤나 효과적이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베니오는 위축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베니오는 어깨를 쭉 폈다. 그러자 평민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 진상한 존경과 경애의 상징이 초라하게 빛을 발했다. 그때 케플러 공작이 입을 열었다.
“마지아부터, 고하라.”
이 자리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케플러 공작은 앞뒤를 다 생략했다. 괜히 치렁치렁하게 시간만 잡아먹는 미사여구를 생략한 극히 효율적인 케플러 공작의 태도였다.
“예, 각하.”
마지아는 그런 케플러 공작에게 예를 취한 뒤, 몸을 돌려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예법을 선보였다.
“먼저 공사가 다망하심에도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귀빈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 마지아 케플러는 토비아령에 있는 군량 일만 석을 갈턴과 유펄의 경계령까지 운송하는 임무를 맡아….”
변성기가 오지 않은 마지아의 미성이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듯 울려 퍼졌다. 그러면서도 마지아는 간결하게 자신의 성과에 대한 발표를 하였고 그럴 때마다 귀족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일만 석이라니. 그 많은 군량을 용케 제시간 안에 호송하셨군.”
“호송단의 구성이 아주 깔끔해. 낭비하는 인력과 시간 없이 딱 떨어지게 안배하신 티가 난다. 많은 준비를 하셨군.”
“토비아에서 경계령까지라. 그 사이에 늪지대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도 불과 닷새 만에 극복하셨다는 말인가?”
군량 수백 석이 아닌 무려 일만 석이나 되는 양이다. 일만 석이면 일반 군병 일만 명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양이기 때문에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 대규모 운송의 경우 고려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닌지라 하나만 틀어져도 군량이 소실, 혹은 인력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열두 살의 마지아가 하기에는 무리인 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마지아는 깔끔하게 임무에 성공했다.
상인 출신의 귀족들이 많은 케플러 공작령의 귀족들은 군량 운송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아의 발표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입니다.”
짝짝짝짝!
마지아의 깔끔한 발표가 끝났다. 마지아는 주어진 자원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운용하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적절한 곳에 적절한 만큼의 자원을 분배하여 낭비를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지를 다스려야 하는 군주의 필수 덕목 중 하나다.
영지 전체가 마치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딱딱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필요한 곳에 부족하지도, 넘침도 없이 고려하여 분배하고 배분하는 것.
마지아는 자신이 군주로서의 능력이 충분함을 어필한 셈이다.
“끝났군.”
“마지아 도련님께서 대공자에 오르시는 건가.”
“상대는 베니오 도련님이 아닌가. ‘그’ 베니오 도련님.”
“쉬잇! 들릴라. 레스 남작 꼴이 나고 싶은 겐가?”
그러자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베니오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 순간 케플러 공작의 무심한 시선이 베니오에게로 향했다.
“베니오, 고하라.”
“예.”
베니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공작을 향해 예를 표한 뒤 베니오는 뒤돌아섰다. 그러나 베니오는 마지아처럼 귀족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예를 표하지 않았다.
“저, 저….”
“역시. 마지아 님이 대공자를 하셔야.”
“쉬잇.”
뻣뻣한 베니오의 태도를 보며 귀족들이 재차 수군거렸다. 하지만 베니오는 가볍게 개소리를 씹은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루비 마을의 가죽상 톰이란 평민의 망토. 루비 마을 인근에서 나는 질 좋은 가죽을 직접 무두질하여 만든 상등품.”
“…?”
“8살 난 딸, 에바를 둔 이사벨라가 죽은 남편의 생환을 기원하며 직접 위험한 숲에 들어가 따온 메실푸르 잎을 엮어 만든 손목 아대.”
“지금 무슨….”
웅성웅성.
마지아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베니오는 대뜸 자신이 예법을 무시하고 걸치고 나온 허름한 복식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들을 무시하며 열 가지가 넘는 것을 하나씩 조목조목 짚어 나간 베니오의 눈빛이 순간 강렬해졌다.
“전부 루비 마을에서 일어난 상귀스 왕국의 음모를 저지하고, 실종된 10살 미만의 무고한 아이들을 구출해 각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제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해 준 것들입니다.”
“상귀스 왕국의 음모?”
“그게 무슨 소리….”
베니오는 지루해져 가던 것을 한 번에 뒤집겠다는 듯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곧바로 굵직한 사실을 터뜨렸다.
상귀스 왕국.
케플러 공작가에서 운영하는 그물이 여러 정보를 수집한 바, 대공자 크리토의 사망에 가장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고 판단한 상귀스 왕국이 베니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상귀스 왕국은 루비 마을에 은거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아이의 피를 확보하기 위한 끔찍한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쿠웅―!
베니오의 말에는 무게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귀족들은 무언가 거대하고 무거운 것이 어깨에 턱 얹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쉥 자작!”
베니오가 목소리를 높여 한쪽에서 얼굴색이 시퍼렇게 된 게쉥 자작을 쳐다봤다. 루비 마을은 게쉥 자작의 관할령이었기 때문이다.
“묻겠습니다. 루비 마을에 다섯 번이나 기사단이 파견되어 해당 사건을 조사했다고 들었습니다. 헌데 어찌하여 게쉥 자작령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누락되어 있었던 겁니까?”
“예? 그, 그것이….”
“6월 24일! 게쉥 자작령의 기사 두인만, 기사 체르빌! 루비 마을을 방문하였고!”
베니오의 두 눈에 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베니오의 입에서 차분히 흘러나오기 시작한 진실에 게쉥 자작의 다리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이상! 따라서 남은 결과로 추론한 바! 게쉥 자작이 파견한 기사는 무능하였으며 공작 각하의 백성이 슬픔과 고통을 호소를 무시하였다고 결론이 난 것이지요.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각하!”
털썩!
게쉥 자작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팔신가 중 하나인 게쉥 자작을 거침없이 몰아붙인 베니오는 차가운 눈으로 게쉥 자작을 쳐다봤다.
“그간 케플러 가문에 게쉥 가문이 봉신한 바를 고려, 각하께서는 자작을 믿고 게쉥 자작령을 맡겼습니다만 과연 그게 옳은 결정일지 다시금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군요.”
번쩍!
베니오의 말이 끝난 순간 연회장에 있는 귀족들의 눈이 반짝였다. 베니오의 말마따나 게쉥 자작은 적국의 첩자가 버젓이 자작령을 활보하여 은거지까지 건설하였는데도 그걸 알아채지 못한 무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쉥 자작가에 내려진 영지를 공작가가 다시 거둬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걸 다른 귀족에게 내려 주어 팔신가에 새로운 가문이 충원될 수 있음을 뜻했다.
작위는 있으나 영지는 없는 귀족들의 눈에 탐욕이 깃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헌데!”
그때 갈턴 자작이 치고 나왔다. 베니오가 당연히 루비 마을의 임무를 실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 당황할 새도 없었다.
베니오는 지금 팔신가의 위신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니 갈턴 자작이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베니오 따위가!’
반역 가문 출신인 베니오 따위가 팔신가의 위상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갈턴 자작이 베니오를 보며 말했다.
“베니오 이공자께서는 어찌 상귀스 왕국의 수작이란 걸 알아내셨는지요? 그런 증거가 있사옵니까? 상귀스가 아니라 사악한 데빌하트의 준동이라면 이는 게쉥 자작의 능력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 사료되는 바.”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갈턴 자작의 잔머리는 확실히 빨랐다. 동남동녀라는 소리를 듣고 상귀스가 아니라 데빌하트와 연관 지었기 때문이다.
“만일 데빌하트라면 이는 게쉥 자작이 아니라 공작령 전체가 합심하여야 할 때인 줄로 아룁니다!”
갈턴 자작은 베니오가 아니라 케플러 공작에게 호소했다. 그때 베니오가 갈턴 자작에게 말했다.
“재밌는 걸 보여 드리지요. 총관님.”
임플로 총관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옆에 눈짓하자 병사 두 명이 피떡이 된 남자를 끌고 와서는 발치에 내던졌다.
꺄악―!
짧은 소요가 터져 나왔다. 고문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남자, 루비 마을의 시발론이었기 때문이다.
“네놈의 죄를 만천하에 고하라!”
베니오의 목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그러자 시발론이 겨우 뜬 눈으로 베니오를 보고는 흠칫하고 떨더니 바들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미 베니오에게 처참하게 패하여 사로잡힌 뒤, 베니오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 시발론이었다. 그런 베니오가 눈앞에서 광망을 뿜어내면서 말하자 시발론은 덜덜 떨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시발론의 상세한 실토는 그것이 위조라거나 날조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갈턴 자작이 이를 으득 갈았다.
“또한.”
그러나 베니오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베니오가 손짓하자 임플로 총관이 누군가를 데려왔다. 바로 아메노였다.
“누군가 제 실패를 바라며 루비 마을에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더이다. 여기 있는 이 자가 바로 그 주동자이고. 누가 너에게 그런 짓을 시켰더냐?”
갈턴 자작의 안색이 변했다. 베니오의 말을 들은 순간 깅예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갈턴 자작이 다급하게 입을 열려는 순간 아메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 깅예르. 갈턴 자작령의 정보 길드장인 깅예르가 소인에게 명령을 내려 루비 마을에 소문을 퍼뜨리라 명령했습니다.”
술렁!
웅성웅성.
아메노의 말에 귀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갈턴 자작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갈턴 자작은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벌떡.
그때 케플러 공작이 몸을 일으켰다. 케플러 공작이 술렁이고 있는 연회장을 슥 둘러본 뒤 두 눈을 부릅뜬 마지아와 술렁거리는 귀족들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는 베니오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쿵!
그러자 나이트 엘레강트가 사바톤으로 바닥을 찧어 모두가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조용해진 연회장을 내려다보던 케플러 공작이 말했다.
“대공자는.”
꿀꺽.
케플러 공작의 말에 귀족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공작가의 미래이자 실세가 정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여실하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역 가문 출신으로 손가락질이나 받던 이공자가 어마어마한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베니오 케플러다. 이에 반발하는 자, 있는가?”
케플러 공작의 무심한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곳에 모인 모든 귀족은 느낄 수 있었다.
케플러 공작가에 새로운 작은 태양이 탄생했다는 것을.
그 누구도 기대도, 예상도 미처 하지 못했던 베니오 케플러, 혐오와 환멸의 대상이었던 베니오가 대공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