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28)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28화(128/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28)
크리토의 유산 (3)
“레길론 백작가를 알고 있느냐?”
핑귀스 마을에 대해서 설명한다더니 케플러 공작이 갑자기 다른 귀족 가문에 대해서 물었다. 베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릅니다.”
“대공자가 되었으니 공작령 주변의 정세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케플러 공작의 말에서 베니오는 레길론 백작가가 공작령과 마주한 백작가임을 눈치챘다. 베니오가 알아들은 눈치이자 케플러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턴 자작령과 맞닿아 있는 곳이 레길론 백작가다. 핑귀스 마을은 갈턴 자작령의 최북부,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지.”
“백작령과 맞닿아 있는 곳인 겁니까?”
“아니, 다르다.”
케플러 공작은 차를 호록 마셨다.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레길론 백작령 안에 있던 마을이다.”
“예?”
베니오의 얼굴에 순간 물음표가 떠올랐다. 크리토가 핑귀스 마을에 부임하기로 돼 있었다는 건 핑귀스 마을이 케플러 공작령에 속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원래 레길론 백작령 안에 있었던 마을이라니.
“원래 레길론 백작령에 있던 핑귀스 마을을 우리 공작가가 사들였다고 표현하면 이해가 쉽겠느냐?”
“마을을 사셨다구요?”
“그래, 그곳은.”
케플러 공작이 차를 마시고는 담담한 신색을 유지한 채 베니오에게 말했다.
“레길론 백작령에 핑귀스 마을이 편입되기 전, 그곳은 유페르 자작령이 소유했던 마을이다.”
“…!”
“지금은 갈턴 자작령이 된 곳이고. 내가 그곳에 널 보내는 이유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의외이기는 했다. 케플러 공작이 레길론 백작령으로부터 마을 하나를 사들였다는 것에는 단순 그 마을이 전 유페르 자작령이었다는 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섣불리 추측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 것이 낫다. 잘했다.”
“추측이라, 설마 제가 어머니와 연결 지을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케플러 공작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베니오는 고작 열일곱이다. 그리고 자신이 남긴 클로에의 일기를 읽었음이 확실했다.
그러나 그것을 읽었음에도 케플러 공작을 대하는 베니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저 나이 때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것이 당연한 법이거늘, 베니오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태연히 자신 앞에서 클로에의 이름을 꺼내는 저 담대함이라니.
다른 귀족들은 케플러 공작의 앞에서 유페르를 언급하는 것도 꺼렸다. 반역 가문으로 멸문당한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공작의 심기를 거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했다면 너를 내쫓았을 것이다.”
“다행이군요. 각하시라면 다른 이중, 삼중으로 된 의도가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 것뿐입니다.”
“나를 읽으려 하였더냐.”
“그리하시기를 원하시어 그리 한 것뿐입니다.”
케플러 공작의 입꼬리가 꿈틀했다. 한때 몹시 실망하여 쳐다보지도 않았던 차남이다. 클로에와 맺은 사랑의 결실이라고는 하나 반역 가문이란 것 때문에 베니오에게 애정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가 삐뚤어져 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이 보아온 그 어떠한 열일곱 중에서도 비범했다. 대체 무엇이 베니오를 이리 바뀌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아비로서의 뿌듯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케플러 공작이라고 해서 골렘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촤륵!
케플러 공작은 답을 바로 주는 대신 베니오를 조금 더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밥을 먹던 테이블에 지도를 펼쳤다.
공작령과 인접한 다른 영지까지 그려진 지도였고, 그곳에 핑귀스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다.
“레길론 백작령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군요.”
핑귀스 마을은 레길론 백작령 안에 있었다. 마치 물이 애먼 곳에 한 방울 떨어져 있는 듯한 모양새였던 것이다.
“어찌 보이느냐?”
케플러 공작이 베니오에게 물었다. 베니오는 입을 다문 채 지도를 가만히 살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지자 케플러 공작의 눈에 실망한 빛이 서렸다.
‘한 번에 가는 건 무리인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원숙함과 비범함을 보여 주기에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베니오가 기사 생도였음을 기억해 낸 케플러 공작은 애써 실망을 갈무리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터. 꾸준히 교육을 시켜야겠구나.’
대공자는 무거운 자리다.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대공자가 된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사실상 팔신가와 함께 공작령의 이익을 대표하고 그에 관한 논쟁을 벌이며 공작령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팔신가의 가주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되겠지.’
케플러 공작도 주요 가신들이 베니오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베니오를 대공자로 꼽은 건 그가 충분히 비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조기 졸업과 아카데미 대항전 우승은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대공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를 고까워하는 가신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작 위에 오르더라도 권력의 상당수를 양보해야만 할 것이다.
“되었다. 핑귀스 마을은….”
“요충지이군요. 상권이 발달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계속해 보아라.”
조금 늦기는 했지만 베니오가 제대로 짚었다. 케플러 공작은 베니오의 말을 들어 볼 참으로 베니오에게 말했다.
“서쪽과 북쪽으로 쭉 뻗은 관도가 국경까지 이어져 있군요. 서쪽으로는 크라구스 왕국이, 북쪽으로는 삼공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까지 봤더냐?”
일직선으로 난 관도. 그 관도를 이용할 수 있다면 상인들이 오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산이나 늪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지였기 때문에 길만 잘 나 있으면 오가는 데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핑귀스를 발전시키면 공작령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카사케플러에 집중된 시설을 분산시킬 수 있겠군요.”
“그리고?”
케플러 공작의 눈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베니오가 보여 주고 있는 혜안과 통찰력이 케플러 공작의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저 중요성만 인지해도 충분하거늘.’
베니오는 그냥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을 넘어 핑귀스 마을의 개발 방법과 그 방향성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레길론 백작이 이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무엇을 주셨습니까?”
“주지 않았다.”
“설마, 대출반환금으로 받으셨습니까?”
“정확하다.”
케플러 전장은 상대가 귀족이건 평민이건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중에서 VIP 고객은 영지가 있는 귀족이다.
영지는 훌륭한 담보가 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무엇으로요?”
“레길론 백작이 야망이 크더구나. 후작을 노리고 있어.”
“정치 자금으로 빌린 겁니까?”
“거기까지.”
케플러 공작은 선을 딱 그었다. 베니오가 알 수 있는 건 거기까지란 뜻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나머지는 베니오가 직접 알아보면 될 일이다.
“해야 할 일을 알겠느냐?”
“카사케플러로 들어오는 크라구스와 삼공국의 무역품의 질을 올리고 싶으신 것이군요.”
핑귀스 마을은 공작령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동시에 관문 역할을 하며 그곳에서 카사케플러로 들어오는 무역품을 걸러 낼 것이다.
그래서 상등품만 카사케플러로 들어오게 만들면 카사케플러로 상등품을 찾기 위한 이들이 더욱 몰려들 것이다.
선을 그은 케플러 공작이지만 베니오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베니오의 대답에 대단히 만족했을뿐더러, 놀란 것이리라.
‘타고났다는 말인가?’
거의 평생을 검을 쥔 베니오다. 하지만 베니오는 정세를 읽어 낼 줄 알았다. 그렇다는 건 베니오가 천부적이라는 뜻이다.
케플러 공작이 그런 착각을 하는 동안 베니오는 속으로 씩 웃었다.
‘역시 볼리토 선생.’
지금 베니오가 말한 건 전부 다 볼리토가 말해 준 것들이다. 주니오르가의 가주인 크리스를 통해 크리토가 핑귀스 마을에 부임하게 될 것이란 정보를 미리 입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걸 바탕으로 볼리토 선생은 베니오와 함께 핑귀스 마을에 대해서 분석했다. 대공자인 크리토를 그곳의 촌장으로 앉히려는 의도를 볼리토 선생이 정확하게 짚어 낸 것이다.
‘가신들이 인정할 만한 성과를 일궈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볼리토는 그렇게 유추해 냈고 핑귀스 마을에 대해 케플러 공작이 만족해할 만한 기출 답안을 미리 알려 주었다.
베니오가 한 건 그것을 외워 그대로 말한 것뿐이다. 그리고 케플러 공작의 눈치를 보건대, 볼리토의 답안지가 정확히 케플러 공작의 심중을 뒤흔든 모양이다.
‘조세핀 부인과 수잔나 부인이 움직일 터.’
베니오가 핑귀스 마을에 부임하게 될 것이란 건 케플러 공작의 입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니 베니오의 성공을 바라지 않을 두 부인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마을이 촌장이라.’
귀족이 다스릴 수 없는 곳에 귀족을 대신하여 마을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촌장이다. 졸지에 마을 하나를 맡게 된 베니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무엇이든 마중물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어찌 보면 기댈 곳 하나 없는 나에게 레길론 백작령에 둘러싸인 외딴 핑귀스 마을은 가장 좋은 마중물이 될 것이다.’
카사케플러에서 먼 곳에서, 견제하는 귀족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그곳이라면 힘을 키우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날 지지해 줄 가문이 없다면, 내가 힘을 키우면 되는 법.’
베니오는 레스 남작의 실언으로 자신에게 30만 골드라는 거금을 쾌척한 갈턴 자작이 고마워졌다. 가장 중요한 자금 문제가 해결된 셈이기 때문이다.
“병사 100인을 보태 주마. 그리고 핑귀스 마을의 지난 5년간의 지출을 검토하여 평균치를 계산, 6개월분의 지원을 해 주마.”
베니오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각하.”
“1년이다. 1년 뒤, 직접 본 공작이 핑귀스 마을을 점검할 것이다.”
그것 역시 베니오가 대공자이기 때문이다. 그 1년 동안 베니오는 대공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야 한다.
수많은 견제와 방해를 뚫고 베니오가 홀로 그곳에서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베니오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기대하겠습니다, 각하.”
* * *
“어서 오십시오, 대공자.”
이른 아침이었지만 라이노 기사단의 단장, 베르트랑 파통은 베니오를 반갑게 맞이했다. 베니오도 그런 베르트랑과 웃으며 악수했다.
“몸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기분이지. 대공자, 몸이 더 여위신 것 같소.”
울끈불끈.
베르트랑의 팔 근육이 터질 것처럼 꿈틀거렸다. 저 팔에서 나오는 거력은 검을 함부로 부딪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베르트랑 단장의 근력은 라이노 기사단에서도 단연 수위에 꼽혔다.
“앰블란 경, 루텐 경도 어서 오시게. 토니, 너도 왔구나.”
베니오의 루틴이 바뀐 것 중의 하나는 매일 저택에서 하던 새벽 수련을 이제는 각 기사단을 돌아가면서 한다는 점이었다.
라이노 기사단과 벼락 기사단, 그리고 노을 기사단과 돌아가면서 새벽 수련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원 거검!”
앰블란과 루텐, 그리고 토니는 익숙하게 라이노 기사단의 일원이 된 것처럼 베르트랑 단장의 구호에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베니오 역시 그들 사이에 평기사처럼 합류하여 검을 들어 올리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전우애를 느꼈다.
이처럼 각 기사단과 구르고 함께하면서 베니오는 다른 누구보다도 기사들의 신뢰를 가장 먼저 이끌어 냈다.
그들로서도 대공자가 된 베니오가 대대로 상인이었던 케플러 가문의 역대 가주들과는 달리 기사들을 중시하는 것을 거리낄 이유가 없기에 기꺼이 베니오와 검을 나눴다.
게다가 베니오는 케플러의 대공자이면서도 검술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천재라는 것이 이미 공작령 전체에 소문이 자자하게 났기에 함께 수련하면 기사들도 얻는 것이 있었다.
베니오는 자신을 친숙하게 대하는 기사들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지금의 이 유대감이 나중에 내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베니오가 투구를 벗고 땀을 닦고 있는데 베르트랑 단장이 다가왔다. 베니오가 그를 쳐다보자 베르트랑 단장이 베니오에게 말했다.
“대공자, 드디업니다.”
“드디어요?”
“예, 가시겠습니까?”
“가야지요.”
마치 암호처럼 주어가 생략된 대화를 나눈 베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플러 공작가의 대표 기사단 중 라이노와 벼락, 노을과는 같이 구르면서 유대감을 쌓은 베니오다.
하지만 딱 한 곳.
장미 기사단만큼은 공략할 수 없었는데, 베르트랑 단장으로부터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고 들은 것이다.
베르트랑 단장은 베니오가 장미 기사단장인 알란 르텔리어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마치 제 일처럼 도와주었다.
라이노 기사단과 동고동락하며 쌓은 유대감 때문에 베르트랑은 베니오와 베니오의 기사들을 마치 명예 라이노 기사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왜 그리 장미 기사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겁니까?”
베르트랑 단장이 뒤늦게 그게 궁금했는지 베니오에게 물었다. 베니오는 씩 웃었다.
“아버지를 지키는 검이 더 강해지면 좋으니까요.”
“예? 대공자께서 장미 기사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다는 겁니까?”
“네.”
베니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는 베르트랑 단장을 향해 말했다.
“내기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