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45)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45화(145/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45)
쓸고 닦기 (5)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도련님.”
필스 할아범의 허리는 거의 90도로 휘어 있었다. 그건 주로 농사일을 오래 한 노인들에게 나오는 증상인데, 필스 할아범은 집사였다.
“쿨럭쿨럭.”
거기에 주기적으로 기침을 하는데, 그 소리가 쉭쉭 거리는 것이 폐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체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베니오는 필스 할아범의 목에 난 흉터를 보고서는 짐작했다.
‘고문의 흔적이구나.’
반역 혐의로 멸문당한 가문의 집사인 필스 할아범이다. 그가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 과정에서 지독한 고문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드르륵.
“여, 여기 앉으십시오, 도련님.”
필스 할아범은 어디서 힘이 난 것인지 의자를 끌고 와서는 헉헉거리면서도 베니오를 보며 빙긋 웃었다. 베니오는 주름진 필스 할아범의 웃는 낯에서 느껴지는 숙연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집사. 필스 집사라 불러 주십시오, 도련님. 비록 더 이상 집사 일을 할 순 없지만….”
필스 할아범의 주름진 눈이 호선을 그렸다.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스 할아범은 그런 베니오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하였나?”
“아닙니다. 아주 헌앙하십니다. 클로에 아가씨를 꼭 닮으셨구요. 특히 눈매와 입가가 닮으셨습니다.”
베니오는 다 쓰러져 가는 자신의 저택에서 보았던 가족사진을 떠올렸다. 그 안의 클로에 부인과 자신이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필스 집사의 눈에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드릴 것이라고는 따뜻한 물밖에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도련님.”
그는 어느새 물을 끓여 와 나무잔에 물을 따랐다. 필스 집사의 집은 그의 말대로 대단히 누추했다. 헐거워진 벽 사이로 외풍이 계속해서 불어왔고 방열이나 방한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거동도 불편한 필스 집사는 청소를 자주 할 수 없어 집안 곳곳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집이 많이 지저분하지요?”
“그렇군.”
“손님이 오실 줄 알았다면 미리 치워 놓았을 겁니다.”
베니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온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핑귀스 마을은 카사케플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 않습니까. 최근에야 다시 케플러 공작령이 되었으니 그곳의 소식이 빠를 리가요. 대공자가 새로 탄생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그것이 설마 베니오일 줄은 몰랐다는 소리다. 필스 집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힘드셨을 텐데 이리 어엿이 장성하셔서 대공자가 되시다니. 클로에 아가씨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그대는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지? 유페르 가문의 식솔은 모두가 처형당했다고 들었는데.”
베니오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노인의 눈물을 계속 보니 마음 한편이 복잡하고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자 필스 집사가 허허, 하며 웃었다.
“이 노인네의 이야기는 도련님께 별로 재미도 없으실 겁니다.”
“아니, 그래도 듣고 싶어.”
유페르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다. 베니오가 관심을 보이자 필스 집사의 눈이 허공을 짚었다.
“아가씨의 마지막 소원이셨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이 못난 집사를 살려 달라고 공작 각하께 빌고 또 비셨습니다.”
“그대를?”
“아마.”
필스 집사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클로에 아가씨께서는 도련님을 위해 저라도 살기를 바라셨던 모양입니다.”
“나를 위해.”
“예.”
베니오의 가슴이 한 번 더 쿡하고 아파 왔다. 베니오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홀로 남겨진 베니오가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남겨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게 집사였고.
“저야 그냥 일개 집사였으니, 반역 혐의에 대한 건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고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이 이렇게 망가졌지만요. 쿨럭쿨럭.”
필스 집사가 가쁜 기침을 토해 냈다. 베니오는 그런 필스 집사의 기혈 곳곳이 막혀 있는 것을 보았다.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그런데 왜 핑귀스 마을에 있었지?”
“도련님 곁으로 가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갈턴 자작을 비롯한 다른 팔신가의 귀족들이 번갈아 가며 사람을 보내 저를 감시했습니다.”
“감시?”
“예.”
필스 집사는 쓰게 웃었다. 귀족들의 견제는 심했다.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미 반역 혐의로 한 번 찍혀 모진 고문까지 당한 필스 집사는 핑귀스 마을에서도 따돌림당했다.
그 결과 그는 핑귀스 마을이 아닌 마을 바깥에 이렇게 집을 짓고 살아가야만 했다.
“쫓겨났다고?”
“전 이해합니다, 도련님. 사실 핑귀스 마을이 유페르 자작령이었지만 아마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페르 자작령의 주민이었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어째서지?”
베니오는 의아했다. 분명 세금을 내고 마을을 감사하기 위해 감찰관이 내려오고, 촌장이 새로 임명되며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유페르 자작님, 그러니까 도련님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분은 덕망이 높으신 분이셔서, 힘겹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런 작은 마을의 주민들이 영주인 자신에 대해 모르고 사는 것이 좋은 세상이라 여기셨으니까요.”
‘요순시대?’
베니오의 눈이 커졌다. 유페르 자작이 추구하던 궁극적인 이상은 중원에서 유림의 유자들이 말하는 요순시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요순시대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중원의 위정자들이 태평성대를 이를 때 태평성대의 대표적인 예로 요순시대를 들었다.
백성들의 삶은 풍요롭고 여유로워 심지어는 군주의 존재 자체도 잊었던 시대.
백성은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자신들의 삶을 개선해 줄 존재로 군주를 찾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풍요롭고 여유로운 태평성대가 바로 요순시대였다는 뜻이다.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한가.’
유교도, 유자도 없는 아모리아 제국에 요순의 이상을 꿈꾸는 영주가 있었다니.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외할아버지였다니.
베니오로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어쨌거나 그런 곳인데 갑자기 반역자가 들어와서 산다고 하니 주민들이 반길 리 없지 않습니까.”
“하긴,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이니까.”
“예.”
다른 사람의 사정을, 그것도 외지인의 사정을 봐줄 정도로 평민의 삶은 녹록지 않다. 베니오가 그들을 이해하는 듯 보이자 필스 집사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집사.”
“예, 도련님.”
“내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예서 그냥 죽을 생각이었나?”
베니오가 필스 집사의 눈을 직시했다. 그러자 필스 집사의 표정이 균열이 일어났다. 클로에 아가씨와의 약속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필스 집사였기 때문이다.
“많이 스스로를 괴롭힌 모양이야.”
베니오는 먼지가 곳곳에 쌓인 집안을 둘러보면서 필스에게 말했다. 귀족가의 집사인 필스가 지저분할 리 없다. 귀족은 지저분해도 그걸 치우는 것이 집사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스는 그가 집사였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그건 단순히 몸이 힘들고 괴롭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의지를 놓아 버렸다는 뜻이다.
“집사.”
“….”
“그동안 고생 많았어.”
베니오는 필스를 위로했다. 그는 우직한 충신이다. 자신이 모시던 아가씨, 반역으로 몰려 죄 없는 집사나 식솔, 하인까지 전부 처형당했지만 그럼에도 아가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은 충신.
뚝, 뚝.
필스 집사는 말없이 눈물을 떨궜다. 그의 어깨에 잔떨림이 일어났다. 베니오의 말 한마디가 필스는 자신의 마음을 이토록 어루만질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집사.”
“예, 도련님.”
“날 도와줘.”
“예?”
필스는 손등으로 눈물을 슥 닦아 냈다. 일흔이 넘었는데 주책이지, 라고 생각한 필스가 눈가를 훔치고는 베니오를 쳐다봤다.
“이 노인네가 도련님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전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집사.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거야?”
“예?”
베니오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필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베니오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집사, 사람이 아니었어?”
“…!!!!”
“난 집사에게서 마력이 느껴지는데, 집사는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야. 그런 경우를 들은 적이 있었어.”
램블도어 학부장에게서 마법에 대해 배우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마법사처럼 마력을 다루지만, 마법사와는 다른 것에 대해서.
“그게 정령인 모양이지?”
“도련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딱 한 종족밖에 없다고 하더군.”
정령은 세계의 의지가 깃들어 탄생한 영적인 생명체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의 의지가 자연에 깃들어 탄생한 정령을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있고, 어느 때가 되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하는 종족이 있었다.
“엘프. 집사는 엘프야. 맞지?”
베니오는 그걸 필스의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확신했다. 필스의 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오러를 살짝 불어넣은 순간 인간과 다른 혈도와 혈맥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엘프.
천상의 미(美)를 가졌다는 자연의 종족.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지극히 희귀한 일이었다. 엘프는 기본적으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존재인지라, 인간들이 사는 환경에서 오랜 기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인간보다 수명이 길어 천년을 살아가며, 선천적으로 뛰어난 정령 친화력으로 인해 타고난 정령사들이었다.
그런 엘프가 필스 집사였다.
“그걸 어떻게, 도련님.”
“그리고 집사가 살아난 이유는 하나야.”
클로에 부인이 집사의 목숨을 구해 달라며 케플러 공작 앞에서 그렇게 빈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필스가 바로 엘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케플러 공작도 알고 있었다.
“엘프이기 때문이지.”
엘프를 죽이면 엘프 종족과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케플러 공작가 입장에서는 엘프는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아마 베니오의 어머니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필스를 남기면 그가 홀로 남을 베니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죽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미처 그녀가 고려하지 못한 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필스가 입을 정신적인 충격이었다. 모진 고문과 더불어 들려온 비보에 필스는 무너졌다.
“그 상처들, 내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함이겠지? 엘프는 천년을 살아가는 존재니까.”
“….”
필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엘프다. 일흔이 넘었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스는 인간처럼 고문의 흔적을 남겼고 인간처럼 늙었다.
클로에 아가씨를 기리기 위해서,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거.”
베니오는 품속에서 클로에 부인이 남긴 유일한 유품, 황금색 구를 꺼내 들었다. 어딘가에 끼워 넣으면 딱 맞을 열쇠인 그것을 베니오가 꺼내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집사가 어머니께 드린 것이겠지?”
“그, 그건. 그걸 아가씨가 남겨 놓으셨군요.”
“유품이라고 하시더군.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아….”
필스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베니오는 그의 손에 황금색 구를 건네주었다. 그냥 열쇠 모양이 아니라 황금구가 어떻게 열쇠가 될지 궁금했는데, 필스의 손에 들어간 순간 베니오는 깨달았다.
‘클로에 부인이 남겼다는 것이 집사를 위한 것이었어.’
파앗―!
필스의 손끝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황금빛이 필스의 손끝을 따라 필스의 전신을 휘감았다. 위험해 보이는 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따뜻하고, 슬퍼 보이는 빛이랄까.
그와 동시에 주변의 마나가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 마나는 필스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베니오는 순간 필스의 주변에 형형색색의 희뿌연 덩어리 같은 것이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정령!’
그건 정령이다. 본래 정령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저곳에는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일지도 모르는 정령이 몰려 있었다.
화륵, 화르륵!
그때 베니오의 어깨 위로 작은 불꽃이 모여들었다. 그걸 본 베니오의 눈이 커졌다. 베니오가 불꽃을 인지한 순간 구양신공이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니오의 귀에 어깨 위의 불똥이 내는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베니오는 홀린 듯 그 불똥을 쳐다보고, 필스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이거, 설마.’
베니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클로에 부인의 유품. 그건 아무래도 필스 집사에게만 좋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파아아앗―!
화르르륵!
황금빛에 휘감긴 필스가 뿜어내는 빛과 베니오의 구양신공이 피어오르면서 내는 기화가 낡은 목조 집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