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46)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46화(146/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46)
핑귀스 마을의 희망 (1)
필스는 그의 인생 513년 만에 자신의 입에서 흐르는 피를 난생처음 봤다.
쿨럭.
주르륵.
필스의 앞섶이 피로 물들었다. 필스의 피는 인간과 똑같은 붉은 색이었다. 어려서부터 필스는 인간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종족이라고 배워 왔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가 인간과 똑같은 붉은 피라는 것에 상황과 관계없이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크르륵. 퉤엣.”
웃는 순간 핏덩어리가 입안에 감겼다. 필스는 걸쭉한 덩어리를 뱉어 낸 다음 옆구리 지혈을 위해 붙였던 손바닥을 뗐다.
“하아, 하아. 빌어먹을.”
필스의 긴 머리가 비단으로 만든 커튼처럼 촤라락 흘러내렸다. 그 사이로 뾰족하게 솟은 귀가 보였다. 필스의 긴 머리카락은 비에 흠뻑 젖었음에도 기품 있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타다닥!
저기다!
이쪽으로 갔다!
추격자들의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필스는 이를 악물고 다시 발을 뗐다. 내리는 비와 옆구리의 상처 때문에 체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울컥.
필스는 자신이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500년 넘게 함께 해 왔던 친구이자 자신의 수호령을 찾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만약 부지불식간의 기습으로 인해 수호령이 역소환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추적을 피해 도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이 원한은….”
필스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하지만 필스의 각오와는 달리 필스의 발은 자꾸만 느려졌다. 흐르는 피가 많아지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쓰러진다는 건 추격자들에게 발각되지 않더라도 여기서 죽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필스는 죽을 수 없었다.
불타오르던 자신의 마을. 고작 스무 명의 동족이 살아가고 있던 작디작은 마을이었지만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정령의 수호를 뚫고 마을을 기습한 습격자들로 인해 필스는 수백 년을 의지하고 함께 살아온 이웃을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도망자의 목적은 단 하나.
무사히 살아남아 마을의 비사를 다른 동족에게 알릴 것.
엘프는 온화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선한 종족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으나 그 온화함 아래 격정적인 분노가 잠들어 있음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엘프를 건드리고 그 화를 피한 인간은 손에 꼽힐 정도다. 단지 정령을 제 몸처럼 다루는 엘프기에 엘프의 소행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필스의 목적은 동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복수자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엘프의 복수는 동족을 위한 신성한 행위. 필스는 신성한 복수자가 되어 쓰러져 간 이웃과 동족을 위해 활을 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번 한 번만 피하면 된다. 그러면 복수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퍽!
데구르르.
필스가 진창 위를 굴렀다. 필스의 어깨 위로 화살이 솟아올라 있었다. 필스는 그 화살이 자신의 이웃이던 녹턴의 화살이란 것을 발견하고는 두 눈에 시뻘겋게 핏줄이 돋았다.
“이 망할 놈의 엘프 새끼.”
이웃의 화살을 빼앗아 그걸로 필스를 쏜 습격자가 쓰러진 필스의 몸통을 걷어찼다. 철이 덧대어진 장화 앞코에 맞은 필스의 숨이 턱하고 막혔다.
우득.
갈비뼈에 금이 가며 폐가 쪼이는 듯한 고통과 함께 필스가 컥컥거리며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다. 그럼에도 필스를 걷어찬 습격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필스를 몇 번 더 걷어찼다.
퍽, 퍽, 퍽.
필스가 축 늘어지자 그제야 필스의 몸을 걷어차던 발길질이 멈췄다. 그러고는 습격자는 필스의 몸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들쳐 멨다.
‘도, 도망가야….’
꿈틀.
필스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 필스의 팔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스는 자신이 손에서 놓친 활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보며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촤악!
후두두둑!
습격자가 헤치고 나가는 수풀이 필스의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이제 필스는 추위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몸이 죽어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바로 그때.
다그닥.
“거기 앞에, 누구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누군가 빗속에서 습격자를 불러 세웠다. 잠시 습격자가 멈칫한 사이 필스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를 힘으로 겨드랑이로 습격자의 목을 붙잡고는 졸랐다.
“크허어어억!”
초인적인 힘으로 목이 졸린 습격자가 필스의 몸을 떼어 내려 했지만 필스는 거머리처럼 매달렸다. 그때 빗소리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렌 경!”
스팟!
그 순간 한줄기 은빛 섬광이 빗물을 갈랐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빗물이 검광에 갈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끝에 검광이 피워 올린 피보라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서걱!
“끄아아악!”
털썩.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습격자의 손이 잘렸다. 그러자 검을 쥔 손이 툭하고 떨어졌고 필스도 어깨에서 떨어졌다. 필스가 꿈틀거리고 있을 때 알렌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케플러 공작령이다. 각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밤중에 검을 쥐고 돌아다닐 수 없으니.”
알렌이 검을 늘어뜨렸다. 필스는 그런 인간 기사를 보며 어깨를 꿈틀거렸다. 도망가기 위해서다. 필스는 엘프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노예.
엘프는 탁월한 외모로 인간 사이에서 노예로 인기가 있었다. 노예제는 천지의 황제 이후 엄격하게 금지되었지만 사실상 영주가 왕이나 다름없는 영지에서는 은밀하게 노예 시장이 열리곤 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위험하다.
그런데 그때 필스의 목덜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크으, 크으, 크아아악!”
목덜미에 핏줄이 서는 것 같은 끔찍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필스는 그걸 본 순간 바짝 긴장했다. 눈에 핏발이 선 채 짐승처럼 포효를 질러대는 저 인간 습격자는 필스의 수호령은 간단히 찢어서 역소환 시켰다. 순간적으로 인간 이상의 힘을 내게 하는 무언가가 저 습격자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무슨, 사술이구나.”
알렌이 그런 습격자를 보고는 품에서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피리를 불자 주변 수풀이 들썩거리며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크라라…락?”
울부짖던 습격자가 움찔했다. 이성을 잃어 짐승이 된 것처럼 보여도 본능적으로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빛 갑옷을 입은 이들, 인간 기사가 수십 명이 이런 숲속에서 뛰쳐나올 줄은 습격자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사라락.
그때 필스는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의 얼굴에 부드러운 천이 닿는 것을 느꼈다. 비가 내려 불투명해진 필스의 시야에 자신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는 인간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공작부인! 위험합니다!”
그사이 습격자의 목을 떨군 알렌이 다가오자 공작부인이라 불린 여자가 뒤로 물러났다. 알렌이 비를 털어 내며 신경질적으로 필스를 쳐다봤지만 이내 그의 눈이 커졌다.
“에, 엘프?”
필스가 엘프인 것을 그제야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때 필스는 있는 힘을 다해 여자와 인간 기사에게 소리쳤다.
“도, 도망, 스, 습격자는 그냥 저렇게 죽지….”
“뭐? 그게 무슨.”
알렌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알렌의 눈이 커졌다. 분명 알렌의 검에 목이 스친 습격자는 죽어야 했지만, 그의 몸이 크게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콰앙―!
후두둑!
그리고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알렌이 튕겨져 나갈 정도의 폭발력이다. 필스 역시 그 폭발에 휘말렸고, 그런 필스와 함께 인간 여자가 함께 휘말렸다.
필스의 기억이 끊겼다.
* * *
“아….”
주르륵.
필스는 잃었던 기억을 되찾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가슴으로 깨달았다.
“아가씨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어.”
그날의 폭발로 필스는 기억을 잃었다. 하지만 공작부인, 클로에는 필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을 되찾지 못한 필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을 잃은 필스에게 그 사실은 남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클로에 부인은 쓰러진 필스의 몸에서 나온 이것을 황금색 구에 넣어 특별히 필스에게 관리하게끔 했다. 필스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눈물을 훔쳤다.
“정령의 심장.”
정령은 현세에 강림해도 물리적인 형체가 없다. 그러나 정령사와의 계약을 위해 스스로의 일부분을 떼어 현물로 만드는데 그것을 정령의 심장이라 부른다.
이 정령의 심장을 주고받는다는 건 정령사와 정령의 관계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다. 필스는 자신의 가슴께를 문질렀다.
“네 흔적인데. 정작 난 널 잊고 있었구나, 살리.”
화르륵!
그 순간 필스의 수호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속에 살며 엘프를 지킨다는 전설 속의 동물인 포레스트 하운드였다. 그러나 불꽃이 일렁이는 불의 정령이었고 필스와 가장 친화력이 높은 수호령이었다.
엘프는 수호령 외에도 다른 정령을 소환할 수 있으나 그들과의 계약은 일시적이다. 단, 수호령은 영혼을 걸고 일평생 이어지는 계약으로 수호령과 정령사와의 관계는 부모·자식 간의 그것보다도 더 깊다.
살리의 볼이 필스의 손에 닿았다. 그 순간 필스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낫기 시작했다. 필스는 기억을 되찾은 순간, 자신의 은인인 클로에 부인을 잊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 남았던 집사가 아닌 엘프 필스가 된 것이다.
사아아―!
클로에 부인 곁에 인간으로 남기 위해 노화를 택했으나 엘프란 것을 인지한 순간 온몸의 주름이 사라지고 상처가 나았다. 엘프 특유의 자연력은 회복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굽었던 허리가 펴지고, 바랬던 머리카락의 색이 돌아왔다. 엘프임을 자각하고 회복한 필스의 외형은 20대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때 그런 필스의 뺨에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클로에 아가씨. 도련님은 아가씨를 닮으셨군요, 인간 정령사라니. 길고 긴 엘프사(史)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일이거늘. 아가씨처럼 기적을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필스에게 있어 클로에 부인은 기적을 부르는 여인이었다. 그를 만나 필스는 비로소 긴 삶을 살면서도 외롭게 배타적으로 사는 엘프가 아니라 어울려 사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클로에 부인은 필스가 엘프라는 것을 케플러 공작에게 알렸고, 케플러 공작은 최고의 상인 가문답게 연을 맺고 있는 엘프를 통해 필스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필스는 클로에 부인의 집사가 되겠다고 자원했고, 케플러 공작은 그의 정체에 대해 함구했다.
화르륵!
필스가 과거를 되짚으며 아련한 눈을 하고 있는 동안 베니오는 가부좌를 튼 채 반개한 눈으로 구양신공과 반응하는 희미한 불씨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네 이름은?”
[샐리, 불의 정령. 인간, 따뜻해. 검도 따듯해. 하지만 인간과 계약을 맺은 정령은 없어. 그래서 고민돼.]“내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베니오는 자신이 정령을 보고, 정령이 자신의 곁에 다가온 것이 구양신공과 필스에게 건넨 황금색 구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인 클로에 부인이 남긴 유품이란 건 바로 엘프인 필스 그 자체였고, 그 필스는 베니오에게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왔다.
정령.
모든 오러건, 마법이건, 무공은 자연을 모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정령은 자연 그 자체다. 불의 정령이 품고 있는 순수한 불의 기운을 느낀 순간 베니오는 확신했다.
불의 정령과 손을 잡는 순간 자신은 또 다른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무공, 마법, 정령, 성력.
이 네 가지 기운을 모두 한 사람이 품은 건 역사에서도 베니오가 유일할 것이다. 케플러 공작가의 공작이 되고, 상귀스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튀어나온 혈교를 처치하고, 중원으로 돌아가 천마대제에게 복수하기 위해선 그 모든 것이 필요했다.
[뭔데?]“할지 말지 고민할 때는 그냥 확 저질러 버려야 된다는 거야. 인간 정령사? 없었던 것뿐이지 안 될 건 없잖아. 네가 최초의 정령이 되는 거야. 인간과 계약한 최초의 정령.”
[최초? 처음?]“응.”
[좋아! 나도 무언가의 처음 하고 싶어!]“그럼 나랑 가자.”
베니오는 조그마한 불씨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노란색으로, 주황색으로, 붉은색이 되었다가 초록색, 파란색, 하얀색이 되는 불씨가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불씨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베니오의 손끝에 내려앉았다.
“샐리, 내 이름은 베니오 케플러. 그리고.”
베니오의 손끝에서 따스한 자연이 느껴졌다. 베니오는 불씨를 살랑이는 샐리에게 말했다.
“육항이다. 나와 계약하자.”
[좋아, 인간. 나 인간이랑 계약할래.]불씨가 베니오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베니오의 이마로 향했다. 그리고 불씨가 이마를 거쳐 정수리에 도착한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타고 올라가듯 불씨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베니오는 느꼈다.
‘상단전.’
백회혈이 있는 그곳. 그곳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상단전이 열리지 않은 베니오지만 정령을 통해 상단전에 빈틈이 생겼다.
‘구양신공!’
그 순간 베니오는 구양신공을 맹렬하게 끌어올렸다. 구양신공의 패도적이면서 화끈한 기운이 베니오의 혈도를 따라 맹렬하게 질주했다.
목표는 열린 백회혈.
쩌저저적!
대주천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도통 허락하지 않았던 백회혈이 빈틈을 드러낸 곳을 구양신공이 뚫자 베니오는 전신에 전율을 느꼈다.
두두둥!
마치 베니오란 인간의 껍질을 한 꺼풀 벗어던지는 듯한 느낌.
베니오가 대주천을 이루는 순간, 그리고 동시에 중급에서 상급 익스퍼트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휘오오오!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 오러로 치환하기 위해 베니오를 중심으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