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63)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63화(163/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63)
백마 탄 왕자는 아니지만 (3)
조용하고 안온하기만 하던 피어스 남작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단연 성문 앞에 효수된 볼터의 머리와 줄줄이 굴비 엮듯 체포되어 압송된 피어스 남작가의 병사들로 인해 시작됐다.
‘강단 있는 아가씨였군.’
베니오는 프랑소아에 대한 자신의 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한 번 반격의 불씨가 주어지자 프랑소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단호한 처벌을 내리며 남작성 내부의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모든 명분이 프랑소아에 있다는 것도 주효했다.
다른 행정관을 중독시키고, 프랑소아에게 손길을 뻗치려고 했다는 것은 삼족이 죽어 마땅한 큰 중죄다.
프랑소아는 곧바로 볼터의 수작에 당해 중독 당한 뒤 낙향을 선택한 행정관들을 다시 남작성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기별을 보내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섰다.
그리고, 그 뒤에야 베니오는 프랑소아와 독대할 수 있었다.
“프랑소아 피어스입니다.”
“베니오 케플러입니다.”
두 귀족이 마주 보고 앉았다. 그 뒤로 프랑소아의 뒤는 베티, 베니오의 뒤에는 앰블란이 자리했다.
그제야 서로 제대로 통성명을 한 셈이다. 프랑소아는 귀 뒤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대공자님이 아니었다면 전….”
“아닙니다, 영애.”
베니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밀히 따지면 베니오는 피어스 남작의 가신을 함부로 죽인 것이 되는 셈이다. 다행히 명분이 프랑소아에게 있었던 덕분에 피어스 남작도 이걸 문제 삼지는 못할 것이다.
“피어스 남작님께는 서신을 보내셨습니까?”
“네, 그런데 아버지께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실지는 모르겠네요. 영지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이신지라.”
피어스 남작은 영지가 제대로 운영되기만 하면 그것이 볼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때마다 필요한 정치자금만 제때 보내면 프랑소아가 영주 대리가 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낙향하셨던 빅토르 행정관께서 돌아오시면 볼터의 역할을 대신하실 수 있을 테니 괜찮을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보아하니 빅토르란 자를 프랑소아는 꽤 신뢰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영지 운영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베니오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튀앙 산을 넘으면 나오는 핑귀스 마을에 이번에 새로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어, 그럼 촌장님이시군요.”
“예.”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랑소아가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럼 피어스 남작령에 오신 이유가.”
“튀앙 산의 산적에 포로로 붙잡혀 있던 용병과 보부상도 데려다줄 겸, 핑귀스 마을에 공사를 할 생각인데 그곳에 인부가 필요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시군요. 핑귀스 마을, 좋은 곳이에요.”
프랑소아의 말에 베니오는 관심을 드러냈다.
“핑귀스 마을에 대해서 아십니까?”
대외적으로 핑귀스 마을은 아무런 특산물도 없고 매장된 광물도 없는 흔한 작은 마을일 뿐이다.
케플러 공작처럼 핑귀스 마을을 북부 무역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이 없다면 핑귀스 마을을 케플러 공작가에서 탐낸 이유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 방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과 귀가 없는 건 아니랍니다.”
프랑소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여느 귀족 영애와 다를 바 없었지만 베니오는 흥미를 느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자유무역도시 필레우스.”
프랑소아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피어스 남작에 의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며 자라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카데미에 다니지도 못했고, 또래의 귀족들과 어울릴 기회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남작성에 다른 귀족성과 비교해 딱 하나 더 나은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도서관이었다.
“이곳에서 더 북부로 올라가다 보면 삼공국과 아모리아 제국이 맞닿는 곳에 그 어떠한 지배도 받지 않는 자유무역도시가 있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엄밀히 말해 필레우스는 삼공국 소속이지만 그곳을 무역거점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모두가 그곳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중립 거점으로 키워 냈다.
“역시. 도서관에서 본 적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프랑소아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배운 것이 다행이었다. 프랑소아는 친구 대신 그곳에서 책을 친구로 삼았다.
“아버지는 황도에서 관료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이 크신 분이시거든요. 피어스 남작령에는 뭐 내세울 것이 없지요. 그래서 아버지는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시기 위해서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피어스 남작의 관직에 대한 야망으로 인해 남작성의 도서관은 레길론 가문에 있는 도서관보다도 양서의 질이 높았다.
그걸 읽고 자란 프랑소아는 환하게 웃었다.
“대공자께서는 핑귀스 마을을 필레우스처럼 키우고 싶으신 것이 아니신가요?”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프랑소아가 베니오의 생각을 정확하게 짚었다. 베니오는 그런 프랑소아에게 물었다.
“간단해요. 포로로 잡힌 용병과 상인을 이곳까지 데려다주셨다고 하셨죠?”
“네.”
“핑귀스 마을을 필레우스처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 두 가지가 바로 용병과 상인이기 때문이에요.”
용병과 상인.
이 둘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론 케플러 공작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산하 상단의 경우는 자체적으로 호위 병력을 키우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단은 그럴 여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 상행을 나서는 데 있어 상단을 지켜 줄 용병은 필수다. 그 때문에 용병길드와 상인길드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다.
“용병길드와 상인길드라.”
“그러나 귀족은 대부분 그 두 길드와 직접적으로 연을 맺고 싶어 하진 않아 하죠. 귀족의 품위 때문에라도요.”
프랑소아는 낭랑한 목소리로 하나씩 짚었다. 놀랍게도 프랑소아가 짚은 부분이 베니오가 아는 누군가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었다.
‘볼리토 선생을 보는 것 같군.’
프랑소아의 통찰력이 볼리토의 수준이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닮아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플러 공작가는 다르죠. 그리고 대공자 정도 되시는 분이 직접 용병과 상인을 데리고 남작령에 오셨다는 건 더더욱 그렇고요.”
“전 다른 귀족과 다르다는 소립니까?”
프랑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아니신가요? 처음 보는 절 위해 피를 보셨는데.”
“레이디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학부에서 배웠을 뿐입니다.”
기사도.
그 고리타분한 기사도를 입에 담으면서도 베니오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프랑소아가 그런 베니오에게 눈을 찡긋했다.
“염려 마세요. 이건 저만 아는 사실로 남겨 둘 테니까요.”
“그럼 말입니다, 영애.”
베니오가 턱을 괴면서 프랑소아에게 물었다.
“핑귀스 마을을 필레우스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제가 피어스 남작령에서 무엇을 얻어 가야 할까요?”
프랑소아가 한 말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베니오가 그렇게 묻자 프랑소아가 한 송이 국화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답은 자명하지요. 대공자께서는 하려고 하셨던 것을 하시면 돼요. 사람을 얻어 가시면 됩니다.”
“사람.”
애당초 베니오가 이곳에 온 것은 인부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핑귀스 마을에 비해 20배는 더 많은 인구를 가진 피어스 남작령의 경제의 파고들 틈을 찾기 위해서다.
“서신에 대공자님의 이름을 적었어요. 그러니 아버님께서 곧 남작령으로 내려오시게 될 거예요.”
프랑소아는 앙큼하게도 수도에 보내는 서신에 베니오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볼터의 죽음이 단순히 가문 내에서 일어난 일로 인한 결과물이 아니라 케플러 공작가라는 거물이 끼어든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기억하세요. 아버님은 수도의 관직에 야망이 크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러니 아마 두 분께서 만나신다면 서로에게 좋은 제안을 하실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프랑소아가 해사하게 웃었다.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언 새겨듣지요.”
“나가실 때 베티를 붙여 드릴게요. 이래 봬도 베티가 영지 내에서는 인망이 높아요. 못난 저 대신 저택의 대소사를 책임져 주었거든요.”
남작령 같은 작은 영지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꼽으라면 단연 남작성이다. 남작성 안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베티는 직접 하인이나 하녀를 뽑았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베티를 통해 인부를 모집하시면 어렵지 않으실 거랍니다.”
프랑소아가 다시 한 번 더 해사하게 웃었다. 그녀가 몹시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베니오는 볼을 긁적인 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돌아섰다.
무언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 *
“후아, 후아아아아.”
베니오가 사라지고 난 뒤 해사하게 한 송이 국화처럼 웃던 프랑소아는 무너지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베티가 그런 프랑소아를 보면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유모, 나 잘했어?”
“네. 잘하셨다마다요.”
“떨거나 우스꽝스러워 보이진 않았겠지?”
“물론이에요. 아주 의젓하셨어요.”
베티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프랑소아의 행동은 꼭 베니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초조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프랑소아의 위기를 해결해 주고, 위기의 원흉인 볼터까지 한 칼에 처리한 베니오에 대한 프랑소아의 감정이 베티는 짐작이 갔다.
‘하긴, 아가씨도 첫사랑의 열병에 빠지실 때가 됐지.’
열여섯과 열일곱의 만남이다. 한창일 때의 소녀와 소년이 만난 것이다. 그것도 마치 동화에서처럼 프랑소아는 베니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구사일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덕분에 볼터와 그 그림자를 남작성에서 싹 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행정관인 빅토르를 다시 데려올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야 남작성이 비로소 정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떨려 죽는 줄 알았어, 유모.”
“백마를 타고 오시지 않아 아쉽네요, 저는.”
“백마? 왜?”
프랑소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유모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프랑소아에게 말했다.
“왜, 기억 안 나세요? 아가씨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시던 동화책 있잖아요. 프린스 차밍과 안나 공주요.”
“악!”
“거기서 프린스 차밍이 백마 타고 나올 때 아가씨께서 나중에 꼭 그런 왕자님과 결….”
“거기까지 해, 유모!”
프랑소아가 베티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얼굴이 빨개진 채 빼액 소리쳤다. 베티가 손바닥에 눌려 억눌린 웃음을 깔깔 터뜨렸다.
“베, 베니오 대공자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시지, 그 이상은 없어. 게다가 나 따위, 그분은 무려 케플러 공작가의 대공자이신 걸.”
“아가씨가 뭐 어때서요!”
베티가 언제 웃었냐는 듯 돌변해서는 도끼눈을 떴다.
“아가씨처럼 피부가 곱고 희신 분은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아가씨께서 대공자님과 이야기를 나누실 때 그분이 아가씨의 학식에 얼마나 놀라셨는데요!”
“그, 그럴까?”
아니라고 했으면서 베티의 말에 다시 기운이 솟는 프랑소아였다. 베티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걱정 마세요, 아가씨! 제가 이번에 베니오 대공자님의 옆에 딱 붙어 다니면서 그분의 취향이나 그런 걸 싹 알아 올게요!”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유모. 그런 거 아니라니까!”
베티는 프랑소아의 힘 빠진 부정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하인이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프랑소아에게 말했다.
“아가씨. 저, 브라운 공자님이 오셨는데요.”
“브라운 공자?”
베티가 인상을 팍 썼다. 그러자 하인이 움찔했다. 볼터의 목이 성문 밖에 걸려 있었기에 남작성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볼터의 악행을 알리는 방이 남작령 전체에 붙었지만 그럼에도 하인들은 프랑소아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남작성의 권력이 볼터에게서 프랑소아에게로 이양되었음을 한눈에 눈치챘기 때문이다.
“브라운 공자라. 기별도 없이?”
프랑소아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자꾸만 프랑소아에게 관심을 보이며 집적대는 남작가의 공자로 브라운 남작가는 피어스 남작가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볼터 행정관에 대한 소식을 듣고 왔다던데 어떻게 할까요….”
볼터의 소식을 들었으니 피어스 남작가에 올 명분이 생긴 셈이다. 느끼한 브라운 공자의 얼굴을 떠올린 프랑소아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별로 만나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겠지? 브라운 남작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