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79)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79화(179/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79)
달라진 위상 (4)
“오셨습니까, 대공자님.”
“총관도 무탈하셨습니까.”
베니오가 공작성에 도착하자 임플로 총관이 베니오를 마중 나왔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일행이었지만 임플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 늙은이야 별 탈이 있겠습니까.”
임플로는 마스터다. 베니오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임플로의 기운을 느끼고는 감탄했다. 사실상 케플러 공작가의 최고수는 고상한 학살자라 물리는 나이트 엘레강트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임플로였기 때문이다.
“대공자께서야말로 명성을 떨치고 계시지요. 이곳까지 소문이 들릴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튀앙 산의 오랜 골칫거리이던 산적을 토벌하셨다구요?”
임플로는 베니오가 아니라 디아토를 보고 있었다. 임플로는 디아토가 산적 두목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그물의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형제를 얻었지요.”
“형제 말씀이십니까?”
“예. 뜻을 함께할 형제.”
디아토의 두 눈이 감동으로 일렁였다. 임플로 앞에서 베니오가 디아토를 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공식적으로 디아토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베니오가 이랬는데도 디아토의 과거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는다는 건 베니오를 모욕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자 임플로 총관이 활짝 웃었다.
“감축드립니다, 대공자님. 좋은 수하를 거두셨군요.”
“별말씀을.”
베니오는 임플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임플로가 일부러 디아토를 언급한 건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확실하게 공표하기 위함이다.
공작성이라고 해서 케플러 공작의 귀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사실은 금방 공작령의 사교계에 금세 퍼질 것이다.
“루텐 경과 주군의 새로운 수하가 되실 분은 제가 따로 안내하겠습니다. 대공자님은 안으로 드시면 됩니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각하께서?”
베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성에 왔다고 해서 케플러 공작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베니오는 왠지 케플러 공작의 호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모수 때문이구나.’
레길론 백작과 발모수에 대한 소문이 벌써 공작령까지 퍼졌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이런 속도면 아마 로쉐 예술 축제가 시작될 즈음이면 그곳에 참석하는 모든 귀족이 알게 될 것이다.
전 세계의 귀족이 모이는 로쉐 축제야말로 발모수를 제대로 홍보하고 팔아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란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지요.”
“두 분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루텐 경과 디아토가 베니오에게 목례하고 임플로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베니오는 홀로 기다란 복도를 따라 공작성의 로비를 지나쳐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그 끝에 익숙한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미 기사단.
오다가다 보았던 그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베니오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베니오 케플러. 각하의 부름을 받아 입성하였습니다. 안에 고해 주십시오.”
그러자 장미 기사가 베니오를 향해 군례를 취했다. 그리고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일전에는 무시만 당했던 장미 기사가 자신에게 깍듯하게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상전벽해 비슷한 감정을 느낀 베니오가 안에 들어섰다.
“대공자님.”
“나이트 엘레강트.”
공작은 거대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웬만한 일은 아랫사람들에 맡겨 두어도 되지만 공작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했다.
그리고 웬만한 행정관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공작이 하루에 결재하는 서류의 양은 다른 귀족과 비교해 거의 다섯 배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말릴 수도 없는 것이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저렇게 하면서 만족해하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 것이다.
“각하께서 십 분만 더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예.”
십 분.
그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 베니오는 집무실을 주욱 훑었다. 세계 제일의 부유한 가문답게 집무실 곳곳에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비싼 예술품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렇게 뭐가 많으면서도 복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인테리어도 결국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법이다.
그때 엘레강트가 베니오에게 말했다.
“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미묘하긴 한데.”
엘레강트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베니오를 쳐다봤다. 알렌 엘레강트, 베니오는 그가 마스터의 경지에 발을 반쯤 디뎠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베니오의 경지가 눈에 보일 수밖에.
“그게 느껴지십니까?”
“그럼 정말, 상급의 경지에 도달하신 겁니까?”
“예. 기연을 만났습니다.”
필스 집사. 그리고 클로에 부인이 남긴 유산인 불의 수호령 샐리.
불의 수호령이 가진 화기(火氣)가 구양신공을 촉진시키며 베니오는 단박에 경지를 뛰어넘었다. 열여덟이 되기 두 달 전에 상급의 경지를 이룩한 것이다.
이제 베니오는 베테랑 기사가 아니라 웬만한 기사단의 부단장급과 견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알렌은 베니오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감축드립니다, 대공자.”
“감사해요. 그러는 경도 곧 마스터에 도달하겠네요.”
“하핫. 그렇습니까?”
고상한 학살자라 불리는 알렌이 베니오와 이리 친근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할 것이다.
알렌은 케플러 공작의 검이자 장미 기사단의 단장으로, 그 성품이 지극히 귀족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귀족적이란 것은 우아하고 품위 넘치지만, 예의를 따지고 기사도를 중시한다는 뜻이기에 사실 부하나 하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상사로서 알렌은 까다로운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베니오 앞에만 서면 그 알렌도 무장해제가 됐다. 최상급에만 머무르던 알렌에게 마스터의 물꼬를 터 준 것이 바로 베니오였기 때문이다.
“무슨 대화를 그리 재밌게 하는 것이지?”
그때 케플러 공작이 알렌과 베니오를 향해 말했다. 서류 결재가 끝난 것이다. 베니오는 고개를 숙였다.
“각하를 뵙습니다.”
“가까이.”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알렌은 케플러 공작 뒤에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뒤였다.
“넉 달이 지났다.”
“예.”
“필스 집사를 만났다고.”
그물은 공작령 어디에나 그 눈과 귀가 존재한다. 핑귀스 마을에도 그물이 있다는 뜻이다. 베니오는 고개를 숙였다.
“예.”
“클로에의 유품을 찾은 것이냐.”
“각하께서도 역시 알고 계셨군요.”
케플러 공작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그의 안배라는 건 베니오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굳이 그가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베니오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자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귀하게 쓸 생각입니다”
“좋다. 핑귀스 마을에 대해 보고하거라.”
케플러 공작은 핑귀스 마을에 대한 것을 베니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물이 사소한 것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보고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케플러 공작은 베니오의 입을 통해 듣고자 했다. 베니오는 목을 가다듬은 다음 석 달간 핑귀스 마을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했다.
“이상입니다.”
“특산품이라.”
“발모수라는 것이옵니다.”
베니오가 품에서 발모수가 든 작은 병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케플러 공작의 눈이 반짝였다.
“레길론 백작의 오남 크레아스를 통해 레길론 백작에게 전달하였고, 그 효과를 보았다고 하니 효능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걸 네가 만들었다고?”
“예. 다행히 개차반으로 살았던 시절에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베니오가 일부러 유들거리며 말했다. 케플러 공작이 심유한 눈으로 그런 베니오를 쳐다봤지만 뭐라 부언하진 않았다.
“원료는?”
“기밀입니다.”
“독점하려 하느냐?”
케플러 공작의 말에 담긴 저의를 베니오는 단박에 알아챘다. 케플러 공작은 발모수를 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그것이 큰돈이 될 것 같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려되십니까?”
“넌 어리고 약하다.”
“하지만 케플러 공작가의 대공자이기도 합니다.”
케플러 공작의 눈에 발모수는 베니오가 갖기에는 지나치게 고부가가치의 발명품이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가졌다가는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우려하는 것이다.”
베니오가 케플러 공작가의 대공자이기 때문에 더욱 우려한다는 말이다. 이제 베니오는 그냥 케플러 가문의 핏줄 중 하나가 아니라 케플러 가문을 대표하는 대공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베니오가 감당 못 할 보물에 욕심을 내고 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발모수가 그 정도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너도 그것이 아님을 알기에 레길론 백작의 오남을 통해 발모수를 레길론 백작에게 건넨 것이 아니냐? 로쉐 축제 바로 직전에 말이다.”
베니오는 대답 없이 빙긋 웃었다. 과연 케플러 공작이었다. 그는 그 하나만으로 볼리토가 고안한 전략을 꿰뚫어 버렸다.
“발모수는 제 발명품입니다.”
“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지요.”
베니오는 케플러 공작에게 말했다.
“세 상단 중 하나를 추천해 주십시오. 그곳과 독점 계약을 맺겠습니다.”
“독점이라, 그것도 삼대 상단 중 하나와?”
“예.”
베니오는 그 정도면 자신이 많이 양보한 것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케플러 공작은 그런 베니오를 보며 상전벽해를 느꼈다.
“연기가 늘었구나.”
“들킨 것을 보니 아직 부족합니다.”
베니오가 히죽 웃었다. 삼대 상단과 독점을 맺겠다는 건 얼핏 봐서는 베니오가 많이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삼대 상단이 확보한 범 대륙 규모의 유통망과 명성을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다. 게다가 아직 그 효능이 레길론 백작을 제외하고는 확실히 인정받지 못한 발모수가 삼대 상단의 위명을 등에 업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삼대 상단이 얻게 될 이익 역시 만만치 않다.
“제가 얻을 것이 많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삼대 상단이 얻게 될 이익도 적지는 않다는 걸 고려해 주십시오.”
발모수의 독점 계약.
아마 대륙에서 돈깨나 있다는 대머리들은 하나같이 평생의 소원이 정수리가 까슬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떠한 마법도, 연금술도, 법술도 머리카락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발모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돈을 싸 들고 삼대 상단을 찾아올 것이다. 아니, 발모수를 남들보다 빨리 받기 위해 어마어마한 혜택을 알아서 제공할 것이다.
“상단주들과 자리를 마련해 주지.”
“로쉐 축제면 좋겠습니다.”
“알았다.”
베니오가 빙긋 웃었다.
“원료의 수급과 제작은 핑귀스 마을에서 도맡아 하겠습니다.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삼대 상단은 유통만 맡아 주시면 됩니다.”
“영악해졌다.”
“감사합니다, 각하.”
발모수를 거래하게 될 삼대 상단은 아마 절대로 그냥 유통만 담당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상단의 상행을 위해 핑귀스 마을로 가는 도로도 깔아야 할 것이고 발모수의 제작 수량을 늘리기 위해 핑귀스 마을 자체에 투자도 해야 할 것이다.
삼대 상단의 돈으로 핑귀스 마을을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케플러 공작은 그를 알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다.
“묘수다.”
“감사합니다.”
베니오의 발모수는 그만큼 묘수다. 케플러 공작이 딱히 꼬투리를 찾지 못할 정도다.
“내일 보지.”
“예, 각하.”
케플러 공작도 로쉐 축제에 참석한다. 내일이 개막일이니 함께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축객령을 내리고 베니오가 나가자 케플러 공작은 상념에 잠겼다.
자신을 향해 당당히 거래를 요구하던 베니오의 모습.
케플러 공작이 살아생전에 그걸 베니오로부터 보게 될 것이라고 미처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변화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각하. 베니오 대공자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가?”
게다가 베니오는 자신을 놀라게 한 것뿐만 아니라 고상한 자신의 검, 알렌부터 시작해 가문의 사대 기사단의 단장들의 마음을 전부 사로잡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삼대 상단에도 욕심을 내고 있었다.
“예. 그것 아십니까? 대공자가 벌써 상급 익스퍼트에 도달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알렌이 베니오를 칭찬하는 것이 케플러 공작의 귀에 썩 나쁘지 않게 들렸다. 케플러 공작이 아무 말 없이 알렌의 말을 듣기만 한다는 건 더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알렌이 주군의 변화에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공작의 집무실에서는 한참 동안 베니오에 대해 칭찬하는 알렌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