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s Lazy Martial Arts Genius RAW novel - chapter (181)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181화(181/300)
공작가의 게으른 무공천재 (181)
로쉐 예술 축제 (1)
크리스는 상재가 뛰어난 사람일 뿐, 일신 무력이 변변치 않았다. 암시장을 지배하고 있기에 항상 실력 있는 호위기사를 대동하고 다니나 주군인 베니오와의 독대에 호위기사를 배석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크리스의 연약한 목이 그대로 약점으로 드러났다.
콰악!
“컥!”
그 약점을 깅예르가 휘감았다. 정보 쪽에 잔뼈가 굵은 깅예르지만 정보 계통의 삶은 암흑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길거리 보호세나 이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 정보를 다룬다는 일 자체가 지극히 위험하고 범법적인 일이라 일신 무력이 때로 중요하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런 크리스의 목을 깅예르가 휘감았다.
“움직이지 마. 자칫하면 부러진다.”
꾸득.
“크, 크헉!”
크리스의 얼굴이 순간 새파래졌다. 깅예르의 팔이 정확히 크리스의 경동맥을 누른 탓이다. 열린 창문으로 마저 올라온 깅예르가 평온한 신색인 베니오를 응시했다.
“지금 무슨 짓이지?”
“내 안전을 확보한 겁니다.”
“그래? 주니오르가의 가주를 인질로 잡고?”
깅예르는 크리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크리스가 주니오르가의 가주란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깅예르라고 해서 모든 일에 완벽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합니다.”
“고분고분해졌군.”
“일단 대공자의 메모를 봤으니까.”
보호소의 소장과 관리자들의 신상 명세를 알고 있다는 것. 만일 그들을 찾아낸다면 로한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깅예르는 일단은 베니오에게 말을 높였다.
“사람 하나 잡겠군.”
“그 정도 조절하는 건 일도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죠.”
“글쎄, 내가 네게 베푼 은혜가 고작 이런 식으로 돌아오다니. 매우 슬플 따름이야.”
깅예르에게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공작성 안까지 들어와 대공자인 베니오를 마주하는데 보험이 없다는 것도 깅예르에게는 꽤나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하필 베니오와 함께 있었던 크리스의 운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깅예르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묵인해 주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깅예르, 갈턴 자작에게 버림받아 잃을 것이 없다고 해도 너의 방자함을 눈감아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난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사람에게서 손을 떼라.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대해 주지.”
베니오의 두 눈이 새파랗게 빛을 발했다. 구양신공이 끓어오르면서 베니오의 기백이 방 안에 가득 차올랐다.
깅예르는 크리스의 목을 휘감은 팔에 본능적으로 힘이 더 들어갔다. 그러나 크리스의 얼굴이 더욱 시퍼렇게 변했다. 베니오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살아온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겠지. 하지만 케플러 공작가의 대공자인 네 말을 너는 믿었어야 한다. 왜? 난 대공자고 넌 일개 범죄자에 지나지 않으니까.”
베니오의 발이 섬보를 밟았다. 그 순간 번개가 치는 듯한 섬광과 함께 깅예르가 오른팔에 격통을 느끼며 크리스의 목을 죄고 있던 팔에 저절로 힘이 빠졌다.
“아악!”
“깊이 베지 않았다.”
주르륵.
깅예르의 오른팔에서 피가 흘렀다. 베니오의 화령이 예리하게 깅예르의 오른팔을 벤 것이다. 정확히 힘이 빠질 정도로만 갈랐기에 많은 피가 흐르지도 않았다.
철컥.
붉은 화령의 검신이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깅예르는 베니오가 검을 뽑는 것도 보지 못했다. 깅예르는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베니오를 쳐다봤다.
“왜, 개차반이라고 소문났던 대공자가 검을 너무 잘 써서 놀랐나?”
“….”
“콜록, 콜록, 주군.”
그때 목이 졸렸던 크리스가 핼쑥해진 안색으로 베니오의 옆으로 후다닥 달려와 뒤에 숨었다. 베니오가 그런 크리스의 혈을 몇 군데 짚자 크리스의 호흡이 편해졌다.
“주군?”
“간단한 민간요법입니다.”
“후우. 감사합니다, 주군.”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목을 쓰다듬었다. 그곳에 피가 몰려 내일이면 시퍼렇게 멍이 들 것 같았다. 베니오는 팔에서 피를 흘리는 깅예르에게 말했다.
“조용히 들어와도 모자랄 판에 소란을 피웠구나.”
“…내가 어떻게 대공자를 믿습니까.”
“믿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넌 언제 히트맨에 의해 죽어도 모를 일이니까.”
베니건즈와 그 히트맨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카사케플러를 활보하고 있었다. 깅예르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할 말이 궁해져 이를 악물었다.
“이리로 오거라.”
“여기 있겠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느냐.”
자신이 베었으면서 혀를 차는 베니오의 모습에 깅예르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냥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방금 신기에 가까운 베니오의 칼질을 봤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어울리지 않게 조심하는구나.”
“크윽. 날 속였다면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이리 오래두.”
베니오는 깅예르의 말을 무시한 채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깅예르가 머뭇거리며 베니오에게 다가왔다.
“힐.”
파앗―!
사아아!
베니오의 머리 위로 헤일로가 떠 올랐다. 베니오의 힐은 초급 수준이지만 자상을 치료하는 것 정도까지는 얼마든 가능했다.
“크리스. 오세요.”
“예, 주군.”
크리스에게도 법술을 펼쳐 준 베니오가 깅예르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깅예르가 그곳에 있는 의자를 빼내 조심스레 앉았다.
“나에게 온 것을 보니 네가 찾은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던 모양이군.”
“….”
“로한. 내 하인이었다고 들었다.”
로한이 다리 병신이 된 것도 베니오 때문이다. 깅예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깅예르는 누군가 비난할 사람이 필요했다.
“과거의 내가 까탈스러웠던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을 내 탓이라며 어리광을 피울 생각을 하진 마라. 로한이 그렇게 된 것은 너의 책임도 아니니.”
베니오는 따뜻하게 말했다. 그리고 베니오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정곡을 찌른 베니오의 말에 깅예르는 순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덜덜덜.
깅예르의 손이 떨렸다. 깅예르가 비난할 사람이 필요했던 건 몰려드는 자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다.
보호소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행방이 오리무중이 된 건 깅예르가 조금 더 일찍 그 아이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깅예르가 조금만 일찍 무리해서라도 보호소의 행방을 확인했더라면. 그랬다면 로한은 다리 병신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깅예르가 데리고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어디로 팔려 갔는지 모를 그 아이들은 깅예르가 기억하는 순수한 웃음과 순진한 눈빛으로 떠나는 그녀를 배웅했던 그 아이들과는 다를 것이다.
세상에 부딪히고, 모진 풍파를 겪으며 변했을 것이다. 그걸 깅예르는 견딜 수 없었다.
그녀가 무능했기에, 늦었기에 그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자책하지 말라 하였다.”
그때 베니오의 부드러운 중저음이 깅예르를 위무했다. 베니오는 깅예르의 등 뒤에 자신의 장심을 대고 구양신공을 불어넣으며 깅예르에게 말했다.
“삿된 생각은 버려라.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너조차도 그저 시대의, 세상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세상이 그런 것이었을 뿐이다.”
우우우웅!
구양신공의 온기가 깅예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정신없이 떨리던 깅예르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구양신공은 삿된 기운을 태운다. 그렇기에 깅예르에게 찾아오고 있던 주화입마를 구양신공이 태웠다.
깅예르에게서 떨림이 사라지자 베니오는 조심스레 장심을 뗐다. 베니오의 이마는 그 짧은 새에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타인의 몸에 공력을 불어넣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한을 쫓아낸 것에 사과한다. 그리고 공작가에서 보호소를 폐쇄하고 죄인을 제대로 벌하지 못한 것에 가문의 대공자로서 사과한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그리된 것에 대해 타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마라.”
깅예르의 증오와 분노는 삐뚤어진 것이다. 그런 삐뚤어진 증오와 분노는 결국 본인을 파괴한다. 깅예르를 쓸 생각인 베니오는 그것부터 뜯어고쳐야 했다.
“대신 널 도와주마.”
베니오는 깅예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깅예르가 멍하니 눈을 들어 베니오를 올려다봤다. 베니오를 볼 때면 타올랐던 분노가 깅예르의 눈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보호소장과 관리인의 명단을 넘겨주마. 네가 내키는 대로 복수를 하고 돌아오거라. 대신 돌아온다면 그간 너를 불살랐던 증오와 분노를 다른 곳에 쏟아부어라.”
베니오가 깅예르와 눈높이를 맞췄다. 깅예르의 두 눈에 베니오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너와, 네 동생을 그리 만든 세상을 바꾸자. 이 공작가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바꿔 나가면 된다. 나를 따라라. 내가 바꿔 주마.”
깅예르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으로 베니오를 보다가 버석버석해진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쩌실 겁니까?”
베니오는 깅예르가 복수를 하기 전까지 그녀를 잡지 않겠다 했다. 깅예르가 복수를 한 뒤 그냥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베니오가 빙긋 웃었다.
“넌 내게 오게 될 것이다.”
“어째서 그리 자신만만하십니까.”
“갈턴 자작 같은 양아치의 밑에서 쓰이고 버리기에는 아쉽지 않으냐?”
움찔.
흉중을 찌르는 베니오의 한마디에 깅예르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베니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보호소에서 넌 갈턴 가문으로 팔려 갔다. 그게 왜겠느냐?”
“….”
갈턴 가문.
깅예르의 복수 대상 중에는 갈턴 가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보호소에 은밀히 자금을 보태 필요한 인력을 노예로 충당해 왔다는 것을 깅예르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것을 베니오가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갈턴 가문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너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지. 적의 적은 아군이라 하였다. 그러니 나는 너의 아군이 아니냐?”
베니오가 싱긋 웃으며 마지막으로 깅예르에게 말했다.
“나는 너의 아군이다. 갈턴 가문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은 넌 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베니오는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했다. 깅예르는 고개를 한 번 숙였다가 도전적인 눈빛으로 다시 얼굴을 치켜들었다.
“어디 한번 지켜보면 알겠지요.”
“그래. 일단 크리스 가주에게 사과하고, 나가면 네 방을 안내해 줄 것이다.”
“….”
깅예르는 수배 중이다. 베니건즈가 자신의 히트맨과 다른 청부업자까지 동원해 깅예르를 쫓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안전한 안가가 깅예르에게 필수다.
베니오의 말은 자신의 저택을 그녀의 안가로 쓰라는 뜻이다. 크리스는 이 안가를 대신 관리해 주는 사람이었고.
“가주께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그러자 크리스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본래 주군이 아니었다면 멱을 땄을 것이나, 주군 덕에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베니오가 아니었더라면 목이 똑하고 따였을지도 모르는 크리스다. 하지만 괜히 암시장에서 오랜 기간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는 듯 크리스는 깅예르에게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크리스. 깅예르를 지원해 주세요.”
“명을 받듭니다, 주군.”
“주니오르 가의 도움이라면 네 복수가 빨리 마무리될 수 있을 터. 로쉐 예술 축제가 끝나기 전에 다시 이곳에서 봤으면 한다.”
깅예르는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크리스가 깅예르를 데리고 나갔다. 크리스가 데리고 온 하녀라고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남은 베니오는 열린 창문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우 하룬데, 참 많은 일이 일어났군.”
공작성에 돌아온 지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여기서도 이럴진대 이제 베니오는 제 발로 폭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그 폭풍은 베니오가 일으킨 폭풍이었다.
로쉐 예술 축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베니오는 긴장되면서도 기대된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